[118화]
그 누구도 배를 막아서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나갈 수 있게 피해 주었다.
새삼 자유섬에서 해적의 위상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하늘을 보며 전투를 회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거부감은 도대체 뭘까.’
한순간이긴 했어도 그 거부감에 이성을 잃었었다. 정신을 잡아먹는 분노가 올라왔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움직임. 따라갈 수 없는 그 움직임은 뭐지.”
분명 그 움직임이 나오기 전에는 비슷하게 전투를 할 수 있었다. 기술에서는 밀리더라도 자신이 압도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하고, 생각해도 도저히 그를 이기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이렇게 약한 건가.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져야 하는 거지.”
항상 위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났다.
“뭐가 이렇게 끝이 없냐.”
하늘은 빌어먹게도 푸르고, 강에 비친 하늘도 너무 푸르렀다.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을 하면서 괴로웠다가, 괜찮았다가를 반복하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어?”
하나의 관문이 눈에 들어왔다. 서도를 가로지르는 강과 이어진 호수의 부분.
아무도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배들도 그 곳은 접근하지도 않았다.
관문만 존재하고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무도 가지 않으니 괜히 눈치가 보인다.
“그래도. 가야겠지? 해도가 가라는 데로 가려면.”
해도는 서섬의 눈에 있는 눈동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 말인즉슨 눈동자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것.
서서히 관문을 향해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휴. 뭐야 이게. 괜히 긴장했네.”
긴장한 것과는 다르게 고요한 호수가 눈 앞에 펼쳐진다.
“근데 이걸 호수라고 해야 해 바다라고 해야 해?”
눈동자가 서섬의 눈의 가장 앞에서 방파제처럼 있어 파도가 거의 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물이 담수(淡水)가 아닌 해수(海水). 그렇기에 호수라고 하기에도 바다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곳이었다.
모든 이들이 서섬의 눈동자라고 부르는 이곳은 극히 고요했다.
우(右)로는 산맥이 그 웅장함을 드러내고 좌(左)로는 빽빽한 숲이 눈을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정면에는 눈동자라고 불리는 절벽이 보인다. 인위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벽.
그 벽을 향해서 천천히 나아갔다. 서도의 눈의 중심부에 이를 때쯤, 한 대의 함선이 오는 것이 보인다.
돌고래들이 그려진 깃발을 나부끼면서 다가오는 함대.
“어이! 누구냐 넌! 왜 아가씨의 배를 너가 몰고 있는 거지?”
목청은 세상을 울릴 것 같은데, 복색은 조용히 연구하는 마법사처럼 보이는 이가 눈에 들어온다.
진회색 머리가 길게 내려와, 모든 머리를 넘겨서 말총머리를 묶고, 동그란 안경을 낀 사내가 선수(船首)의 갑판에서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갑자기 아들입니다. 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고민하던 찰나.
“어? 화패도 있구나. 점점? 너 누구냐? 나 잠깐 내려간다?”
통보 아닌 통보를 한 후에 자신의 배로 천천히 내려오는 학자풍의 할아버지였다.
‘어? 마법사가 맞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늘을 나는 마법인 [플라이]는 5서클의 마법이다. 그것도 마스터가 되어야 자유로이 사용 할 수 있는.
지금 눈앞의 사내는 천천히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서 [플라이]는 아니더라도 그 분류의 마법일 것이다.
‘조금 더 마법의 대해서 공부해 놓을 걸 그랬나. 그래도 적어도 4서클은 되는 것 같은데.’
소리 없이 자신의 배에 내려선 그 할아버지는 배 주변을 살피면서 추억에 젖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 우리 아가씨가 이 배를 처음 받았을 때 그리도 좋아하셨는데, 언제 이렇게 크셨을까.”
‘어머니를 보고 아가씨라고 하는 걸 봐서는, 그리고 말을 들어보면 엄청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진짜 괴물들이 너무 많단 말이지.’
기본적으로 강자들은 대부분이 동안이다. 마나의 양이 많아질수록 몸의 노화가 느리게 진행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바디체인지를 겪었다면 더욱 나이를 알 수 없게 된다.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가 그런 경우였다. 외양으로 보면 60대가 되었을 그럴 나이.
일반인이었다면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일터인데, 여전히 꼿꼿한 자세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청년은 누구기에 우리 아가씨의 배를 타고 이곳으로 온 건가?”
“안녕하세요. 새로이 어머니의 아들이 된 범이라고 합니다. 가족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허어, 우리 아가씨께서도 대모님을 닮아가시는 건가. 눈도 좋으시지 참. 10대대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러더라고 하네.”
“이곳으로 오면 안 되는 건가요? 모든 이들이 관문을 넘어서지를 않더라구요.”
“이곳은 해적의 영역이기에 존중을 해 주는 것일 뿐이란다. 그래 이곳으로 온 이유가 무엇이더냐?”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옆집 할아버지처럼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러더님.
‘어머니께서 그동안 어떻게 생활하셨는지를 알겠네. 진짜 멋있어.’
“다름이 아니라 갈 곳이 있어서 이 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흠. 이곳을 지나서 간다라. 명확한 장소는 있는 것이더냐.”
“예.”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러더님. 그러더니 이내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헝클어트리신다.
“좋은 눈이구나. 아가씨가 좋은 아들을 들였어. 좋다! 내가 모두에게 말해 두마. 그 누구도 네 길을 막지 않을 것이야.”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자신을 믿어주는 러더님. 현상만 보면 이렇게 허술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몸을 가볍게 띄우면서 배로 돌아가시기 전.
“곧 보자꾸나. 아가씨의 막내.”
그러면서 너무나 부드럽게 다시 함대로 돌아가시는 러더님.
자신이 탄 배가 어머님의 배가 아니고 가슴에 단 화패가 없었다면 절대 이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해적의 세계에서 어머님의 위상이, 그리고 화패의 중요성이 큰 것이다.
부드럽게 돌아가는 러더님을 보면서 감탄을 넘어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괴물이잖아. 5서클 마스터 이상이잖아. 저거는.”
어떠한 공부든 천천히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도를 내려치는 것도 천천히 똑바르게 내려치는 것이 힘든 것처럼 마법도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러더님은 너무나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날아서 함대로 돌아가셨다.
“진짜 해적이 아니라 무슨 괴물들 소굴도 아니고.”
선수를 돌려서 다시 돌아가는 함대를 보면서 잠시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함대의 선미가 절벽을 지나서 나갈 때까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짜 호크님을 보고 우물 안 개구리라고 엄청 비웃었는데, 내가 우물 안 개구리잖아.”
다시 한번 자신이 모르는 세계가 아는 세계보다 훨씬 광대하다는 것을 느끼며 배를 조작했다.
작은 틈. 아니 여러 함대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지만, 그 옆의 절벽이 너무 거대해서 작게 느껴지는 틈.
그 틈으로 드러나는 바다의 광활한 풍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허리를 펴고 조타실에서 배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마나엔진의 구동을 끈다. 그리고 오로지 해류를 타고만 가야 하는 길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서 가라고 되어있었는데, 해류가 엄청 복잡하다고.”
본래 바다는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흘러간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수많은 섬들 덕분에 해류가 요동을 친다.
와류(渦流)가 곳곳에 있어서 해로(海路)를 알고 있지 않다면 난파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진짜 오즈안님이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상세한 건 그 책에서밖에 못 봤는데.”
바다의 흐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경험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즈님의 책과 오즈안님이 주신 해도에는 그 해류가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마치 바다가 흐르는 것을 눈으로 본 듯이 만든 지도였다.
“진짜 편안하게 간다. 여기가 와류가 많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
옆에서 거대한 와류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지 않았다면 그저 평온한 바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도를 따라서 가니 거대한 와류 옆을 지나가는데도 그저 흐름을 타고 평안하게 가는 것 같다.
“진짜 나는 출발선에 겨우 선 거구나.”
마력으로 가는 것보다 오히려 더 빠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재밌었다. 바다를, 파도를 타는 느낌이었다.
“만약에 해도가 없었으면 이렇게 신나는 게 아니라 죽어났겠지?”
와류를 타면 그 와류가 파도로 인도하고 파도를 타고 다시 와류를 탄다.
그렇게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오로지 조타로만 나아가는 길. 자유섬으로 올 때 탔던 함대와는 전혀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배는 빠르게 흘러서 자유섬이 멀어 보이는 위치에 왔다.
“이쯤에서 거의 다 온 거로 되어있는데.”
그리고 눈앞을 보니 신기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런 섬이 있었나? 전혀 눈에 안 보였는데.”
섬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그저 바위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것.
파도에 따라서 사라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는 신기한 바위였다.
“저 바윈데, 여기가 재능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고?”
물론 바위가 크기는 컸다. 거의 함대만 한 크기였다. 하지만 높지 않아서 파도에 따라서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내가. 내가 잘 못 왔나? 아닌데.”
잘못 왔다고 하기에는 해도가 가르쳐주는 그대로를 따라왔다. 그래서 평온히 왔다.
그때. 사라졌나 나타나기를 반복하던 그 바위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그것도 몹시 익숙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구만! 진짜 우리 아가씨는 이번에는 누굴 아들로 삼으셨길래 여기까지 왔을까.”
러더님이셨다. 러더님이 나타나고 나서는 파도가 바위를 빗기면서 치고 있었다.
“러더님?”
진짜 놀라서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던 인물이었다.
“닻을 나에게 던지거라. 이곳에 배를 두고 가야 하는 곳이니.”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러더님의 말에 따라 닻을 던져드렸다.
그러자 닻을 가지고 바위에 집어넣으셨다.
‘바위에 집어 넣어진다고 닻이?! 러더님은 연금술사인 건가? 마법인가?’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있느냐. 어서 이리 오지 않고.”
러더님이 계신 것을 보니 잘 온 것 같기는 한데 도저히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러더님을 따라서 내린 바위는 평평하고 단단했다. 결코 닻이 숙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뭐. 보아하니 꽤 튼튼한 것 같으니. 따라오거라.”
그렇게만 말씀하시더니 몇 발자국을 옮기시더니 바위 속으로 숙 들어가셨다.
‘뭐? 뭐지?’
뭘 본 건지 의심이 드는 장면이었다. 서둘러 그 장소로 가니 신기하게도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밑을 내려다보자 내려가는 러더님이 보이고, 꽤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뭘 그렇게 망설이고 있어! 퍼뜩 따라오거라.”
분명 일전에 보았을 때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는데, 바닷사람들은 모두 한 성질 하는 듯 우렁찬 소리였다.
그 말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정신을 부여잡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러더님을 지나쳐 몸이 가라앉았다.
순간 떨어지는 것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벽을 차면서 차분하게 내려갔다.
‘생각 이상으로 깊은데?’
꽤 깊게 내려오자 바닥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에 펼쳐진 장관이 있었다.
온갖 광석들이 빛을 발하면서 하나로 이어진 통로를 아름답게 수 놓고 있었다.
그 광경에 감탄하는 사이에 러더님께서 옆에 내려오셨다.
“쯧. 재미없게 생각 이상으로 강한 막내 였구만.”
옆에서 아쉬워하는 듯한 러더님이 보이지만,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러더님. 여기는 도대체?”
“신비하고 아름답지? 자연이란 참 인간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벌이고는 하지. 이 수중 동굴도 그중 하나고.”
“어디로 이어지는 곳인가요?”
자연스럽게 앞장을 서서 겉은 러더님의 뒤를 따라서 주변을 보며 물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온 것이냐? 도대체 어떻게 이곳을 알고 온 것이더냐?”
“아. 오즈안님께서 주신 해도에 이곳이 나왔어요.”
“오즈안님? 도대체가 무슨 청년이길래 아가씨의 아들에 오즈안님을 뵌 건지.”
이 생물은 도대체 무슨 생물인가 싶어서 바라보는 러더님이셨다.
“오즈안님께서 이곳을 알려 주실 때 더 알려 주신 것이 없으시더냐?”
“재능에 대해서 자신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만 말씀 해 주셨어요.”
“허허허. 그렇지 그분만큼이나 세상에서 재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분이 또 있을까.”
러더님의 반응에 설마 하는 것이 생겼다.
“설마?”
“그래. 황제의 레어에 온 것을 환영한다. 막내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