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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113화 (113/217)

[113화]

개운한 느낌이었다. 마치 일주일 만에 몸을 씻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개운했다.

전력을 다해서 부딪히는 싸움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내장이 상하고 갈빗대가 나갔지만, 웃음이 나왔다.

“화! 쿨럭. 수고하셨습니다.”

말을 하는데, 숨을 쉬는데도 폐가 저리고 가슴이 아프다. 오랜만에 느끼는 고통이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손가락이 몇 개 부러지고, 귀가 잘린 에펫 님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 제가 손해를 본 느낌인데요?”

말을 하는 와중에도 입으로 피가 튀어져 나온다. 그사이에 내장 조각이 섞인 게 느껴진다.

“큭큭. 그래도 보기에는 제가 더 많이 다쳤습니다만?”

주섬주섬 귀를 잡아서 집어 들며 말하는 에펫 님의 표정에도 후련함이 느껴진다.

에펫 님이 포션을 가지러 가는 사이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고 입가에 피가 묻은 이들이 다가온다.

“대장은, 괴물이네요.”

“대장은 언제봐도 괴물이긴 하네요.”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머리는 온통 산발인 이들이 웃겨 보인다.

“크크큭, 쿨럭. 쿨럭. 쿨럭.”

과도하게 웃다가 피가 난다. 나쁜 자식들. 다가온 에펫 님이 건네주신 포션을 마시니 숨이 편안하게 쉬어진다.

“하아. 역시 상급 포션은 효과가 남다르긴 하네요.”

어느새 에펫 님의 귀도 멀쩡하게 붙어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셨던 듯 굉장히 익숙하게 붙이신다.

“이놈의 귀는 왜 맨날 떨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떠셨습니까, 도련님?”

“상상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마스터. 단순하게 한 계단의 차이가 아니구나.”

“그나저나 괴로우시겠습니다. 저런 재능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신다는 것이.”

“글쎄? 괴롭다기보다는 신이 나는데? 나도 그럴 수 있다는 방증이 여기 버젓이 있으니.”

“과연. 철혈은 꺾이지 않는다는 것이군요.”

“그나저나 대장, 변했어요. 맞죠?”

“뭐. 그렇게 크게 변한 거는 아니지만, 조금? 기본으로 돌아갔다고 해야 하나.”

“허허. 그게 조금이라는 말씀을 하시면 세상에 큰 발전이란 없나 봅니다.”

과한 공치사가 날아온다. 그저 겉멋에, 화려함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그 기본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그걸 본다고 배움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을 한다면, 세상에 스승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있던 마니에르가 불타오르는 눈빛을 하면서 입을 연다.

“기본? 그게 무슨 의미예요? 대장. 좀 알려줘요.”

“에펫 님과 대련해 봐. 그러고 나서 이야기해 보자. 프라우 넌 나랑 하고.”

카인이 이리로 보낸 데에는 아마 이런 이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간 카인도 은근히 여우 같단 말이지.’

에펫 님과 전투를 통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어설픈 기(技)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

그런데 상대해야 할 사람이 대검호라 칭해지는 이에게 기술로 덤비는 것은 미련하다 못해 미친 짓이었다.

에펫 님에게만 해도 통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역이용당하기 십상이다.

그것은 마니에르의 조도 마찬가지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때 대검호가 자취를 감추었을 때, 그 수제자라는 사람도 같이 사라졌다고 했으니.’

십중팔구 그 기세를 줄기줄기 뿜어내던 이가 수제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니에르는 자기가 조금 더 앞선다고 생각하지만, 글쎄.’

기세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을 것도 없다. 또 경험을 무시할 수도 없다.

거기에 제일 걸리는 것은 그 거부감. 철 가면을 상대했을 때도, 그 거부감 때문인지 무엇인가 다른 게 있었다.

‘뭐, 보니까 제대로 가르치고 계시는 것 같기는 하지만.’

한시가 급했는지, 말을 하자마자 에펫 님에게 덤벼드는 마니에르가 눈에 들어온다.

“와. 진짜 깔끔하시네요?”

프라우와 조원 둘이 자신의 옆으로 와서 덤벼드는 마니에르와 그를 받아주는 에펫 님의 대련을 눈에 담는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마니에르의 움직임과는 달리, 정적이라고 할 만큼 에펫 님의 움직임은 없었다.

피하고 짧게 내지르는 주먹. 그것만으로 마니에르의 모든 공격을 막고 피해 내고 있었다.

“저게 정말 마니에르랑 같은 수준으로 맞추어주시는 건가요?”

“뭐. 어느 정도 맞춰주시는 것 맞지. 그래도 마스터의 육체 성능이 워낙 좋아서. 그래도 별다른 건 없어.”

“육체 때문이 아니라는 건가요?”

“잘 봐봐. 에펫 님과 마니에르의 차이를.”

마니에르가 육체로 부딪히고 배우기를 좋아한다면, 프라우는 이해하고 육체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앞에 좋은 시청각 교재도 있겠다, 설명을 조금 해주기로 했다.

‘그래 봐야 맞으면서 배우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그렇게 마니에르의 조를 몸풀기 삼아 가르쳐주며 에펫 님과 대련하기를 힘썼다.

*

대련을 마치고 저녁 늦은 시간이 되어 나왔을 때는, 한참을 마법사와 씨름하고 있는 레핀과 일리야의 조들이 보였다.

어디서 그런 사람을 구한 것인지, 새삼 카인도 대단한 집안이다 싶었다.

오랜만에 본 전투 마법사의 전투는 과연이라는 말이 나왔다. 2서클의 마법만을 가지고 농락을 하는 모습.

괜히 카인이 그동안 빠른 발전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구하는 건지.’

처음으로 전투 마법사를 상대하는 이들이었기에, 헤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점차 서클을 높여갈수록 더욱 헤매기 시작했다.

5서클의 전투 마법사이기에 보여 줄 수 있는 위용이라지만, 그럼에도 무시무시했다.

“왔어? 어땠어? 좀 잘 배웠어?”

“뭐. 나도 많이 배웠고, 마니에르는 아직도 남아 있어. 그나저나 저런 분은 어떻게 초청한 거야?”

“예전에 아버지께서 후원을 해준 사람이라서. 음… 넌 모를 수도 있으려나? 거머리 마법사라고 엄청 유명했었대.”

“저분이? 거머리 마법사 바로 그분이라고?”

용병들 중에서 가장 밑바닥인 전쟁 용병들이라고 할지라도 전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특출난 사람들은 전설이 되었고, 다른 용병들도 그들은 인정을 해주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무인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전투로 성장하기에 무인이 더 용이했기에 그렇다.

그중에서 자신이 전쟁에서 구를 무렵, 거대한 전쟁에 은퇴했던 전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이 거머리 마법사라고 불리는 이였다. 어찌 보면 실로 치욕적인 별명.

하지만, 그는 자신의 별명을 이명보다 좋아했고 공공연히 자신이 거머리 마법사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저 농민의 자제, 재능도 없던 그는 오로지 마법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재능이 없었기에 2서클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었고 그의 선택은 전장이었다.

전장에서 2서클 마법사는 참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다. 있으면 좋기는 한데, 짐이 되기도 한.

그렇기에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전장에 오지 않는다.

돈이 너무 급하게 필요하거나 죄를 지었거나, 갈 곳이 없는 이가 아니면.

적어도 3서클은 되어야 대우를 받는데, 그것도 흐름이 빠른 전투에서는 각광받지 못한다.

공성과 수성에서 대우를 받다 뿐이지 전투에서 활약하는 마법사는 극히 소수.

그래서 전쟁 용병 중에는 마법사가 굉장히 드물다. 그 가운데 나타난 것이 바로 그였다.

그렇기에 거머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팀 저 팀에 들러붙어서 기생하며 연명한다고.

그런 그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용병으로 5년쯤 굴렀을 때라고 한다.

전투에서도 빛을 발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경지가 상승하고 그 누구도 무시 못 하는 그런 전투 마법사가 되었다는 소설 같은 일화.

대부분은 그냥 그것을 소설이라 생각하고, 워낙 없는 전쟁 용병 중 마법사니 띄워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시디야 정복 전쟁 당시에 시디야에게 고용되어서 나타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전선에 등장한 그는, 홀로 군단을 막아내는 위용을 보인다. 거머리가 피를 빨아 기생하는 정도가 아닌 군단의 생기를 모두 거두어 갔다.

군단을 막아선 거머리 마법사. 그때 그의 위용이 진짜로 드러난 순간이었고, 그의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한 때였다.

‘지금은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겠지. 저 사람 하나로 군단을 막을 수 있다는 걸.’

그런 그를 찾아낸 것이, 그리고 후원을 한 것이 카인의 아버지라는 것도 대단했다.

카인의 말을 듣고 보니 농락당하고 있는 일리야와 레핀이 당연하게만 보였다.

“너희 아버지는 어떻게 아시고 후원을 하셨대?”

“처음에 소문을 듣고 찾아가셨더라나? 어머니도 마법사시니까 같이 가셨나 보더라고.”

그렇게 이어진 카인의 이야기에는 한 사람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것이 들어 있었다.

“5서클이 되셔서 아버지께 오셨다고 하더라. 은혜를 갚으러 왔다고. 부모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마법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러셨어. 나도 엄청 많이 배웠지.”

본래는 스승님으로도 모시고 싶었지만, 그분이 거절하셨다고 한다.

“근데 어머니가 마법사셨어? 처음 들어보는 거 같은데?”

“응. 우리 엄마 마법사야! 그것도 굉장한! 근데 아무도 몰라… 사실. 나도 그렇게 다 아는 건 아니라.”

“진짜 너네 집도 뭔 비밀이 그렇게 많냐?”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진짜 치사하게 나한테만 말 안 하고.”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일리야와 레핀의 조.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는 마법사의 앞까지 도달하는 데는 성공했다.

저녁에 이야기를 나누어 본 그분은 거머리 마법사라는 별명과 다르게 몹시도 유쾌한 분이셨다.

일리야와 레핀에게도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대지 속성의 마법만을 사용한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오로지 하나의 속성의 마법을 가지고만 자신들을 농락했다는 사살에 일리야와 레핀이 어이없어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하루를 1주일처럼 쓴 이틀이 지나가고, 드디어 엣지 마을의 향후를 가를 전투를 시작하는 날이 밝아왔다.

*

우리가 숙소가 아닌 저택에 머물렀다는 것이 굉장히 불쾌함은 내내 표를 냈던 호크가 눈에 보인다.

‘저 사람을 보면 꼭 귀족으로 태어나야만 귀족 같은 게 아닌 거 같단 말이지.’

여전히 분별없이 행동하는 그 모습이 참 한숨이 나오게 만들었다. 범에게서 개가 난 격이랄까.

그를 에펫 님도 느꼈을까,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부끄러움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시는 것 같았다.

대문이 열리고, 철 가면을 쓴 네 사람과 후드를 깊게 눌러쓴 두 사람이 들어왔다.

“위명이 자자한 에펫 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역시나 티거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를 보면서 느끼는 것을 에펫 님도 느끼셨는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허허. 철 가면을 썼다고 해도 무례하다고 하지 못할 강자를 보니 나도 기쁘오. 혹시 이름을 알 수 있겠소?”

“역시. 에펫 님께서는 알아보시는군요. 저도 에펫 님을 뵈니 몸이 근질거립니다. 통성명은 승리 후에 하도록 하지요.”

‘저런 사람이 왜 도대체 [맘몬]에 들어간 걸까.’

검호라는 칭호를 넘어서 대검호라고 불리는 이. 시디야 왕국에서도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위명도, 부도, 권력도 모두 가진 인물이 돌연 자취를 감추었을 때 수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초인이 될 단서를 얻어서 폐관에 들었다는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암살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무수한 소문이 났지만 결국 드러나지 않았던 그의 행적.

그런 그가 [맘몬]이라는 단체의 소속으로 나타났다. 생체 실험을 하는 등의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단체이기에 더욱 이상했다.

오로지 검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과는 맞지 않는 단체와 같았다.

“흐음. 이번에 저희랑 대리전을 치를 분들이 이분들인가 보군요. 으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티거. 그리고 그 시선을 피할 이유가 없기에 피하지 않았다.

“허! 비엔토라는 단체가 왜 그리도 유명한가 했더니. 이번 대리전이 굉장히 즐거워지는군요!”

기세가 올라온다. 그 즉시 느껴지는 본능적인 거부감. 그 어떤 때보다도 심하게 느껴지는 거부감은 분노를 일으킬 정도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호감과 의문이 사라지고 티거에 대한 적대감이 솟아올랐다.

다행히 그 적대감을 호승심으로 여긴 것인지 자연스러운 기세만을 피어 올렸다.

‘싫은 건 싫은 거지만, 과연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적대감에서조차 감탄이 나오는 기세였다. 고요하고 장중한 그 기세는 명확하게 자신만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 장중한 그 기세에 공기가 떨려 모든 이들이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세밀하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진짜.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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