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걸어 내려가는 길에, 문이 열린 방. 그리고 그곳에서 거세게 휘몰아치는 기운이 느껴진다.
‘어? 이 기운은….’
본능적인 거부감. 그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카인과 마니에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지 별다른 얼굴의 변화가 없었다.
“쯧. 저게 뭐람. 식당에서 저렇게 기운을 줄기차게 뿌리고 싶은가 몰라.”
“잘 봐둬. 저 사람들인 거 같으니까. 우리랑 싸워야 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그 사람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카인. 그리고 영문을 모르는 마니에르.
‘어째서 언제는 느끼는 거고 언제는 못 느끼는 거지? 기세가 중요한가?’
그들 한 명 한 명을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살펴보았다. 문이 열려서인지 모두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대검을 가지고 있는 사람 둘과 롱 소드를 들고 있는 사람 둘. 그중에서 가장 기운이 거센 사람은 대검을 옆에 놓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한껏 기세를 펼치는 이는 대검을 지닌 다른 이. 그 기세가 꽤 강렬했다.
‘저 정도면 완연한 익스퍼트를 넘어서려는 정도고, 대검은.’
기운에 민감한 자신이 믿어지지 않아서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익스퍼트 세 명에 마스터? 마스터가 있었다고?’
기이하게도 거부감은 기세를 펼치고 있는 이에게서만 느껴졌다. 하지만, 왠지 그 모두가 그럴 것 같은 직감.
그리고 그 무리에 마스터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카인.”
카인을 부른 뒤에 카인의 손에 마스터라고 적어주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세히 살피는 카인.
그리고 서둘러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맛집]을 나선 후 조금 길을 걷고 나서야 마니에르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인 거 같아?”
“흠. 한 명은 저랑 비슷한 거 같고 나머지 셋은 그냥 익스퍼트? 조금 과하지만, 없을 것 같은 조합은 아닌데요?”
역시, 생각한 대로의 반응이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그저 넘어갔으리라.
엣지 마을에는 유독 강자가 많다. 더군다나 저런 명소라면. 고개를 돌려 카인에게 묻는다.
“뭔가 알 수 있는 특징이라도 찾았어?”
“다행히도. 대검을, 그것도 저렇게 좋고 특이한 대검을 쓰는 사람은 얼마 없으니까. 아마 스승이랑 제자가 아닌가 싶네.”
자신은 그저 대검을 보았을 뿐인데, 확실히 카인은 다른 것을 또 본 모양이다.
‘역시. 카인이 말한 대로 아는 만큼 보이는 건가 보네.’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인이 있기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대장? 무슨 일인데 그렇게 심각해요. 우리랑 붙을 상대인지는 또 어떻게 알았어요?”
“그때 말한 그 기분이야? 그 거부감이 든다는.”
“응, 확 느껴지더라. 그런데 그게 기세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어. 이상하게 다른 세 명은 안 그랬거든.”
“하아. 골치 아프네. 가만히 있으면 알 수 없다는 거잖아?”
“거부감이요? 무슨 거부감이 들었다는 거예요?”
결국, 황금의 길에서 나오며 마니에르에게 설명을 하면서 다시 에펫 님의 저택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흐음. 그런 게 있었단 말이에요? 거기다가 마스터까지 있을 줄이야. 이건 생각도 못 했네요.”
설명을 들은 마니에르는 평상시의 들뜬 상태가 아니라 차분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확정적인 건 아닌데, 너도 알아볼 거 같으니까 말해 줄게. 대검의 마스터 아마 티거 님일 듯싶다.”
그 말에 나도 그리고 마니에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검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그 대검호(大劍豪) 티거 님이시라고?”
“마스터에 오른 지 꽤 된 거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들어본 이름이에요. 시디야 왕국의 요주의 인물 중 하나가 여기에 왜 있어요?”
“최근 5년 넘게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소식이 있었거든.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네가 이렇게 입 밖으로 꺼냈다는 건 확인 작업만 마치면 된다는 의미 아니야?”
표정을 보아하니 맞는 것 같았다. 위기감이 엄습해 온다. 그동안 자신들이 마주쳤던 이들과는 격이 다른 상대.
“하여튼, 마니에르 너도 알아봐봐. 난 범이랑 일단 좀 다녀올게.”
마니에르를 에펫 님의 저택에 보낸 뒤에 향한 곳은 [바람이 머물다 간]. 역시나 엣지 마을에도 있었다.
“진짜. 없는 곳이 어디냐?”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훨씬 많아. 주요 거점에 있어서 그렇게 느낄 뿐이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2층으로 향했다. 똑같은 방, 똑같은 풍경.
“량이한테 연락하려고?”
“응.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량이가 나보다 나으니까. 티거 님에 대한 조사도 할 겸.”
익숙한 손길로 통신구를 조작하는 카인. 그 손길이 자연스럽고 빠르다.
‘진짜. 나는 아무리 해도 저렇게 안 되던데.’
확실히 빠르게 답이 온다. 그리고 바로 연결되었다.
“량아, 문제가 생겼어.”
“어떤? 상대가 마스터인 시나리온가?”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두 사람이 왜 괴물인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느린지.
단어 한두 개만으로도 대화가 묘하게 이어진다. 핵심만으로 이루어지는 대화.
맥락을 모르면 전혀 알아듣지 못할 대화. 그 맥락을 아는 자신도 군데군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생긴다.
몇 번을 오갔을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뭔가 계획이 서고 대안이 나온다, 조금 끝나가는 것 같자 한마디 끼어들었다.
“근데. 량아 나 자신 없는데, 여기서도 제한하고 있어야 해?”
“아! 생각보다 잘 참았더라? 진즉에 들통날 줄 알았는데. 괜찮아. 마스터면 너도 전력을 다해야지. 티거일 수도 있다며.”
그 말에, 머릿속에 힘줄이, 혈관이 하나 솟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어. 참지 않았어도 된다는 거였어?”
“아아. 조금 시간이 필요했거든. 뭐 이제는 드러나도 되기도 하고, 아마 대충 그쪽도 바보가 아닌 이상 예상하고 있겠지.”
태연한 그 목소리에 열이 슬그머니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마스터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래도 생각보다 네가 잘 버텨줘서 훨씬 수월했어. 잘했어!”
그 말이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왠지 모를 얄미움에 정말 때리고 싶었다.
“아. 그나저나 사제는 만났어? 거기에 갔으면 탈해를 만났을 텐데.”
“아!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언제 만든 거야 그 광석은? 넌 내 도(刀)를 누가 만든 건지도 알았어?”
“뭐, 블라우에서 구역주가 된 선물이라고 하면 되지. 알았지, 순철은 오로지 스승님만이 만들 수 있는데.”
얼굴이 붉어진 량의 모습이 눈에 선연하다. 선물이라니. 그것도 구역주가 된.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보다 훨씬도 전에 준비했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량이 고맙고 귀여웠다.
“그래서 그 검은 광석은 뭐야? 암철 뭐 이런 거야?”
“아니. 무궁(無窮: 끝이 없음). 쓰레기가 될 수도 있고 그 무엇보다 찬란해질 수도 있지. 사용자에 따라서 달라져. 나도 그 끝을 알 수 없어. 사실 운이야. 지금 다시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 것 같은 그런 광물.”
“그게 가능해? 사실. 네가 대장일을 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무기가 성장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
기실 전생에서 무기란 소모품에 불과했다. 자신이 가진 무기가 그렇게 좋은 명품도 아니었다.
그냥 살육을 위한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탈해가 성장이라고 할 만하지. 대장일에서는 자부심이 누구보다 뛰어나고 무구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제니까.”
그러고 보면 량이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특히나 연금술에 관해서는 아는 지식이 일천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어려운 걸 어떡해.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
“근데, 나는 그걸 성장이라기보다 변화라고 생각했거든. 사용자의 습관, 관리 그리고 마나를 통해서 변화하는. 근데 스승님의 순철을 보게 된 거지.”
하여간 대단한 친구다. 그런 걸 보면 의지가 꺾이기 마련인데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다니.
“그래서 좀 며칠 미친 듯이 파고들었는데, 정말 우연찮게 만들어진 광물이 무궁이야. 진짜 성장을 하는 광석을. 처음에는 쓰레긴 줄 알았어.”
그럴 만도 했다. 탈해 님이 처음 보여주셨을 때, 색이 특이해서 눈에 들어왔지만 의외로 굉장히 무른 광석이었다.
“색만 특이하고 무르기만 한 쓸모없는 건 줄 알았는데 가능성이 진짜 무궁하더라고. 그래서 무궁이라고 지었지.”
“그런 걸 나한테 줘도 되는 거야?”
“뭐 내가 쓰지도 못하고. 너 정도는 되어야 끝을 보지 않을까? 나름 믿고 있다고. 그리고 사제(師弟)가 아니면 그건 제련 못 해.”
단호한 량의 말. 이 정도로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대단한 분이야?”
“스승님을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넘어선다는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사제가 해냈거든. 그 덕에 나도 목표가 생겼고.”
말하는 량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일인 것 같았다.
‘은근히 스승님을 말할 때는 체념 어린 목소리였는데, 그새 바뀌었네.’
“하여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조심해. 이제는 정말 본격적으로 부딪힐 거 같으니까.”
“흐음. 만약에 그 사람이 티거 님이라면 어느 정도야?”
그렇게 량이와 카인에게 인물에 대한 정보와 계획을 들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모든 이들을 불러 모이게 할 수밖에 없었다.
“잘들 놀았어?”
“마니에르에게는 대충 설명 들었는데, 진짜유?”
“그 티거 님이 우리 상대라는 게?”
“응. 아무래도 그럴 거 같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럼, 어스퀘이크는요? 만약에 같이 나온다고 하면 진짜 위험한 거 아니에요?”
프라우는 역시나 날카로운 구석이 있었다. 모든 이들이 티거 님에게 눈이 가려진 사이에도 본래의 적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문제야. 만일 두 팀이 같이 한 팀으로 나온다면 상상 이상으로 힘들 수 있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제대로 된 전투 마법사를 상대해 본 경험이 없다는 것.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마법사랑 전투 마법사랑은 상당히 다르니까. 마니에르 정도만 있으려나.’
[무투의 탑]은 이름처럼 싸우는 이들의 탑이었다. 그렇기에 전투 마법사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 전투 마법사가 몇 올 거야. 그들이랑 너희들이랑 대련하는 게 목표야.”
간단한 전술이었다. 한 조가 세 명의 익스퍼트를 상대하고 남은 두 조가 어스퀘이크를 상대한다.
‘나는 마스터를 상대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쥐어진 손에 땀이 흘렀다. 긴장과 설렘. 얼마 만에 느끼는 긴장인지 모르겠다.
‘그레누이랑은 또 다르겠지?’
마스터가 되고 난 후에는 긴장이 넘치는 전투를 한 적이 없었다.
퍼그 님과의 대결도 대련이었을 뿐이지 목숨을 걸고 하는 전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티거. 풀 네임은 티거 히버. 평민이 고위 귀족이 된 몇 안 되는 사례.
결혼이나 기타 다른 능력이 아니라 오롯이 무(武) 하나만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검호였다.
40이 되기도 전에 마스터가 되어서 초인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은 인물.
하지만, 50세가 넘어가도 60세가 되어도 그런 기미가 없었고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실제로 시디야 왕국의 근위 기사단은 전부 티거의 가르침을 받았고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이를 마주하는 것이다. 검호를 넘어서 대검호라고 불리는 이를.
‘진짜 기대된다. 검술의 극의에 올랐다는 사람의 검은 어떨까.’
카인과 함께 수하들에게 브리핑을 해주고 나서 자신은 혼자 잠시 시간을 가지기 위해 따로 나왔다.
‘새로운 도에 익숙해져야 해.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다르니까.’
저택에서 마련해 준 개인 수련장으로 향했다. 심지어 에펫 님의 전용 수련장을 마련해 주었다.
지하실에 위치해 있는지, 계속해서 내려가는 길. 그리고 계단이 끝나자 공동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바닥이 상상 이상으로 튼튼한데?’
아직 수련장의 문을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바닥의 단단함이 달랐다.
‘확실히 에펫 님이 수련하는 장소라서 그런가.’
마스터가 온전히 수련에 힘쓸 수 있게 고안이 된 듯해 보이는 곳. 점점 기대감이 올라왔다.
그리고 거대한 문을 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