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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109화 (109/217)

[109화]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별관 자신의 방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마니에르가 들어왔다.

“대장. 이야기 좀 합시다. 참 솔직한 대장이라니까.”

손에는 술을 들고 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술이었다. 카인에게 대충의 설명은 들었지만, 여전히 마니에르가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냐. 괜찮아.”

“거울 좀 보고 오시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잔에 술을 따르는 마니에르. 투명한 색에 향이 시원했다.

“조금. 이상했죠? 아까는. 막 비단 하나 올려 있다고 가만히 있고.”

그 물음에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왜 기분이 나쁜 건지도 명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귀족이라서, 황족이라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게 기분이 나쁜 건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면서 술을 따르고 마시기를 몇 번을 지났을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어? 사실 잘 이해가 안가기는 해.”

“쿡쿡. 이래서 내가 대장을 참 좋아해. 사람이 겉과 속이 너무 똑같거든. 표현은 잘 못하지만. 어쩜 친구들이랑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몰라.”

“흰소리 그만하고. 내 친구들이 똑똑한 거는 나도 아니까.”

“아니. 그 정도가 있지. 진짜 괴물들이라니까? 특히. 총수님. 진짜 괴물이더라. 잡아먹히는 줄 알았잖아. 내 인생에 그런 강렬함은 처음이었다니까요?”

‘량이가 좀 똑똑하기는 하지!’

“여하튼. 좀 이야기가 긴데. 다 들어야 이해가 가겠죠?”

그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무슨 전설을 듣는 줄 알았다. 끝이 비극으로 치달아 가는.

“솔직히. 엄청 신선하셨나 봐. 그러니까 대전으로 올 수 있었지. 아니였으면 진즉에 죽었겠지만.”

“와. 에펫 님. 진짜 그렇게 하나도 안 보였는데. 엄청 열혈남아에 순정파셨구나?”

“그리고 좀 애매하기도 했어. 갓 지배자가 된 인물을 죽이는 것도 뭐하니까. 그래도 명분은 차고 넘쳤지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마니에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불편함이 확 사라지고 궁금함만이 생겼다. 그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뭘 어쩌긴 어째. 대전 앞에 무릎 꿇려 있는 라일라를 본 거지. 눈도 귀도 가려진 채 온몸이 결박당한.”

“헐. 그래서 달려들었대?”

“아니. 바로 무릎을 꿇었다고 하시더라. 자신을 죽이고 그녀를 살려 달라고.”

“우와. 진짜 멋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달아, 황제 폐하께서 그들을 인정해주는 모습을 상상할 때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폐하가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거랑 지금 이거랑은 무슨 관계야?”

“흠. 이건 나름 극비긴 한데. 라일라가 어림군이었다는 사실은 알죠?”

“응. 카인에게 들으니까 무슨 친위대인가 그렇다며?”

“여기서부터는 나름 극비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말아요. 어림군은 그렇게 단순한 친위대가 아니에요.”

“응? 그럼?”

“자신의 일생을 모두 황제에게 바치기로 서약을 하고 모든 혈연을, 인연을 끊고 나서야 들어올 수 있어요.”

“허. 그런 게 가능해?”

“그럼요. 어림군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노력하는데요! 하여간. 일단 어림군이 되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요. 죽어서라도.”

“뭐? 아예 불가능하다고?”

“네. 근데 그 전례를 깨고 자유를 허락하신 거죠. 조금 변형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런 거랑 방금 그 일이랑은 무슨 관계야?”

“흠. 에펫이 외부인이기도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자유롭게 있으시다보니 그냥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죠.”

“응? 시험? 방금 그게 시험을 한 거였어?”

“그쵸. 이 마을의 지배권을 행사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 분이 폐하이신데 그걸 제가 가져간다? 저 그러면 큰일나요. 암행도 겨우겨우 허락받은 건데.”

“하. 그럼 결국에는 에펫 님이 먼저 널 찔러본 거라는 거지?”

“그쵸. 뭐 그 덕에 전 이득을 본 거지만.”

“라일라 님?”

“뿐만 아니라 에펫도죠. 라일라를 혼자 두겠어요? 아마 엄청 호되게 깨지고 있을 걸요?”

‘흠. 라일라 님이 그렇게 강해 보이지만도 않았는데 말이지.’

“대장. 지금 라일라가 별로 안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진짜 대장도 눈이 너무 높은 게 흠이라니까요.”

“진짜. 너네들은 뭐를 그렇게 다 아냐? 내 얼굴이 그렇게도 읽기가 쉬워?”

“대장. 은근히 자기 사람들 앞에서는 표현 얼굴로 다 하는 거 모르죠? 그리고, 라일라는 다른 부분으로 능력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에펫도 마스터고. 그 정도면 아주 꽁으로 먹은 거죠.”

“만약에 안 그랬으면?”

“그럼. 뭐 별수 있나요. 그 자리에서 둘 모두 죽는 거지. 폐하의 권위는 절대적이니까요.”

“진짜. 무시무시하다. 그 권위가 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헤에. 그건 대장이 워낙 주변에 쟁쟁한 사람이 많아서 그래요.”

조금은 오해가 풀리고 신기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

“하! 진짜 내가 이제야 여기를 오게 되다니. 너 때문이잖아!”

“그래서 제가 오늘은 책임지고 다 사드린다니까요?!”

“나는? 나도 너 때문에 머리 빠지게 고생했는데?”

“에이. 솔직히 카인 님한테는 머리 빠지는 일도 아니였으면서. 좋아요! 오늘은 제가 다 사겠습니다!”

전투가 코앞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아니, 활기가 넘쳤다.

저택에서 조금만 나오면 황금의 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작부터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여기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이 있어요. 아마 아는 사람이 적을 건데 특별히 데려가 드릴게요!”

저택과 이어진 황금의 길 입구. 그곳에서 바로 꺾어진 작은 골목이 있었다.

점점 황금의 길에서 떨어져 가는 길이다 보니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 길이 맞아? 황금의 길이랑 정 반대 같은데?”

“번잡한 걸 싫어하시는 분이니까요. 아마 후회 안 하실 거예요!”

“혹시? 그 분한테 가는 거야?”

“역시! 카인 님은 알고 계시는 구나. 맞아요! 그 분께 가는 거예요. 카인 님은 왜 이렇게 모르는 게 없으세요?”

“아니야. 나도 풍문으로 들었는데 설마설마했지.”

“아. 그 풍문 나도 한 번 들어 봤으면 좋겠다.”

‘쟤네는 피곤하지도 않나. 끊임없이 저러네 진짜.’

“왜 나만 모르는 건데? 어디 가는 거야?”

“비밀! 서프라이즈입니다! 보시면 압니다!”

“맞아. 가 보면 알아! 엄청나!”

‘꼭 둘이투닥대면서 나 놀릴 때만 아주 합이 9단이지?’

길을 따라서 걸을수록 인기척도, 건물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곧 공터가 나타났다.

“아직도야?”

“에이! 쉽게 가면 재미없죠!”

“아무리 봐도 아무것도 없고, 가는 곳이 대장간 같은데?”

“헤에. 가 보시면 안다니까요?”

소리 자체는 특별했다. 일정하게 울리는 맑은 소리. 대장간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진짜 청아(淸雅: 티가 없이 맑고 아름답다)하게 소리가 나네. 신기한데?’

꽤 많은 대장간을 둘러보았어도, 이렇게 맑은 소리가 나는 대장간을 본 적은 드물었다.

자신의 도를 무심코 쓰다듬는 손을 발견한다. 스승님께서 주신 도. 그러고 보니 누가 만들었는지 묻지도 못했다.

“흐음. 지금 가는 대장간이 그렇게 유명해?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없어?”

“그 대장간을 아는 것 자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면서 카인을 힐끔 보는 마니에르. 천진난만한 카인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어 내지 못 했는지 투덜거린다.

“진짜. 대장 친구 맞아요? 왜 그렇게 사람이 인간미가 없어요?”

“응? 내가?”

“됐어요. 말을 말지. 진짜. 내가 어! 내가!”

투닥대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청아한 소리를 따라서 가니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스승님이 계시던 오두막이랑 비슷한데?’

그리고 그 옆으로는 통짜로 지어진 하나의 거대한 건물. 그리고 그 위에서는 끊임없이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자신을 이끌었다고 해야 할까? 그대로 오두막이 아닌 옆의 건물로 들어갔다.

‘와.’

가까이 갈수록 열기가 몰아친다. 조금씩 그 소리와 가까워질수록 그 열기는 더해 간다.

‘진짜. 여기서 작업을 한다고? 나도 피부가 익을 것 같은데?’

피부가 익고 피가 끓어오를 것 같은 열기가 다가올 즘 청아한 소리를 내는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 진짜 멋있다. 대장일을 하는 사람이 이렇게 멋있어 보일 수도 있구나.’

정확하게 같은 장소를 정확하게 같은 시간을 두고 정확하게 같은 힘으로 내려친다.

피부가 익을 것 같은 이 온도에서도 단 하나의 흐트러짐도 없는 그 자세가 눈을 빼앗는다.

붉게 달아오른 광석이 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모든 광경이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정신을 빼앗는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노인이 일어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건 또 무슨 불청객이 이렇게 얌전한 경우라지? 어라?”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그리움이 담긴다. 그 모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인사를 한다.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 소리에 따라오다 보니 여기였고 정신을 놓고 볼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허허. 그래도 막돼먹은 놈에게 간 것은 아니라 다행이군. 관리도 잘 하는 것 같고. 스승님의 부탁이라 하는 수 없었는데, 역시 스승님이시군.”

알 수 없는 말을 하시더니 정리를 하신다.

“따라오시게. 차 한 잔은 대접할 수 있으니.”

그 말과 함께 걸어 나가는 노인을 따라서 나가자, 건물 앞에 서 있는 마니에르와 카인이 보였다.

“영감! 나 왔어!”

그러면서 달려가 그 노인에게 안기는 마니에르. 처음 보는 광경에 의아했다.

“허허. 도련님이 데리고 온 손님이었습니까? 이런. 인연이란 정말. 옆에 계신 분은?”

“안녕하세요. 카인이라고 합니다. 세계 제일의 야장(冶匠: 대장장이)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계 제일의 야장?!’

카인의 인사에 놀라서 다시 그 노인을 바라본다. 분명 소리가 청아했지만, 세계 제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세계 제일의 야장이 이 구석에 있는 거라고? 근데, 마니에르한테 왜 도련님이라고 하는 거지?’

“허. 여러모로 도련님께서는 평범한 이들과는 같이 다니지 않으시군요.”

“그치? 영감은 변한 게 없네? 여전히 정정해!”

“도련님은 여전히 말을 안 들으시고 여기서 숨어 지내시는 겁니까?”

“아니야! 허락받았어. 이제 정식으로 암행(暗行)하는 거야!”

“그걸. 저에게 말씀하시면 암행이 아니지 않습니까?”

“에이. 우리 아버지조차 묶어 두지 못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 거 같아!”

“그것은 그분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지요. 이 몸은 비록 여기에 있다지만, 여전히 제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하여간. 우리 아버지는 능력도 좋으시지. 어쩜 다 이러나 몰라.”

“허허허. 들어가시지요. 오랜만에 귀한 차를 꺼내야 겠군요.”

무엇인가 많은 이야기가 순식간에 지나가더니, 가장 앞서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노인을 자연스럽게 따라들어갔다.

“카인. 저분이 세계 제일의 야장이셔?”

“응. 파울로 님의 제자이기도 하셔! 파울로 님께서 야장은 자신을 넘었다고 인정해 주신 유일한 분이지.”

“어?”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다.

“파울로 님의 제자라고?”

파울로 님의 제자는 오로지 량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응! 엄청 유명한 이야긴데. 한 제국에 들리셨을 때 받아들이셨고,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초인이 되셨지.”

“뭐? 거기에 초인이라고? 정말로?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범이 너는 무인의 세계를 떠난다면 진짜 아는 게 없는 것 같다니까.”

“아니 근데, 파울로 님의 제자는 오로지 량뿐만인 거 아니었어? 또 다른 제자가 있어?”

“흐음. 아 맞다! 너랑 티에르 님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너가 량이고 티에르 님이 탈해 님이라고 생각하면 돼. 다만, 도축 기술을 넘어선?”

“와. 그런 게 가능해? 아니 그걸 떠나서 파울로 님이 대장장이도 하셨어?”

“연금술에서 대장일은 결코 빠질 수 없는 거라고 하시더라. 그러니까 량이도 배우겠지?”

“량이도 배워?”

“야! 넌 관심 좀 가져라! 연금술이 뭔지도 좀 알고!”

“아니. 연금술 책을 펼치기만 하면 신기하게 잠이 오는 걸 어떻게.”

“하여간. 파울로 님을 제외하면 유일한 초인이셔. 엄청난 분을 대면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한 제국의 황실 대장장이이기도 하셨지.”

“와. 그래서 마니에르한테 도련님이라고 하는구나.”

그렇게 카인과 대화를 하면서 탈해라고 불리는 노인의 오두막에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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