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엣지마을. 가장 오랫동안 한 지배자의 통치를 받고 있는 마을이자 프리 존을 제외한 가장 큰 항구를 가진 마을.
그만큼 마을의 크기도 크고 오고가는 재화의 양도 엄청나다. 그런 곳을 30년 가까이 지배하는 인물.
무수히 많은 이들이 탐냈지만, 아무도 그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에펫 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건가. 근데 그게 가능해?”
“흠. 진짜 특이하긴 한데, 둘 모두 화패를 지니고 있고 더군다나 마을 사람들도 인정했다고 하더라.”
“해적들도?”
“그러니까 둘 모두 화패(花牌)가 있겠지? 근데 원래 차남은 후계 다툼에 낄 생각이 없었대.”
“근데? 꽤 오래되었담서. 1년인가?”
“응. 그렇지. 장남은 확장을 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맘몬]이랑 접촉하려 했나 봐.”
카인의 이야기가 계속되었고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서도의 모든 이들에게 성공의 아이콘이자 꿈, 그리고 목표 중 하나가 에펫이었다.
엣지마을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무투의 탑]을 거쳐서 자신의 마을의 지배자가 되기까지.
그의 이야기는 서도 아이들의 꿈이자 목표인 이야기였다. 맨손으로 지배자에 올라간 그 신화.
“그런 아버지를 그대로 빼다 박아서 둘 모두 재능이 출중하다고 하더라. 장남은 검사로, 차남은 마법사이자 행정가로.”
“진짜 복잡하네. 쉽지 않을 수도 있겠네?”
“아마도? 병력으로는 가장 많을 걸? 에펫 님을 존경해서 그 밑으로 가려고 한 이들도 무수히 많으니까.”
“맞수. 대장. 사실 나도 그분 휘하로 들어가는 걸 꿈꾸었던 적도 있수.”
“그리고 엣지마을의 주민들도 대부분이 에펫 님의 통치를 바라니까요.”
“그럼 굳이 우리가 점령해야 할 필요가 있어? 문제만 많을 거 같은데.”
점령을 한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그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것이 서도에서 지배자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지배자로 인정을 받아도 마을에서 배척당하면 그 순간 지배를 내려놓아야 했다.
레핀의 마을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화자되는 것은 그 이유였다.
“원래는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맘몬]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갑자기 왜 [맘몬]이 튀어나오게 된 건데?”
“뭐. 좀 지지부진했는데, 블레어 왕국 계획이 망하고 나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나 보더라고.”
“하. 진짜. 골치 아프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지금까지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 기간 지배를 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없었다.
걸핏하면 도전을 받는다. 그 도전에 대해서 거부를 할 수도 없다. 평판이 깎이고 신뢰가 깎인다.
세력끼리 맞붙으면 패배하는 순간 지배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기에 구역주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결투에서도 세력전에서도 패한 적이 없는 엣지마을.
“근데 에펫 님도 곤란하긴 하셨나봐. 그래서 의외로 쉽게 풀렸어.”
“응?”
“대리전으로 치루기로 했어. 사실 에펫 님 입장에서는 가장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지.”
카인의 설명에 따르면 [맘몬]과 자신들의 전투에서 승리한 곳의 구역으로 들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맘몬]이 이기면 장남이 지배자가 되어 그 휘하로 들어가고 차남이 이기면 자신들의 구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근데, [맘몬]이라고 해야 우리가 아는 거지 그쪽은 어디라고 알고 있어?”
“오? 의외로 똑똑한데. 시야가 쪼오금은 넓어졌나 보다?”
그러면서 웃는 카인이 얄미워 보인다. 뭐라고 하려는 찰나에 다시 입을 연다. 눈치는 빨라서.
“남부에 3구역주가 있는 건 알고 있지? 그 중에 동부의 패자로 불리는 돌라. 그 사람이야.”
“뭐 유명한 사람이에요? 구역주들이 그렇게들 대단한 사람인가? 잘 모르겠는데?”
조용히 듣고 있던 마니에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하자, 그 이야기를 듣고 격분한 이는 프라우였다.
“해적님들의 인정을 받는 이들이 지배자들이고 그 지배자들을 휘하로 받는 게 구역준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쟤는 기사들은 그냥 기사라고 하면서 해적들한테는 꼭 님자를 붙인단 말이지.’
기실 [맘몬]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분개한 것도 프라우였다. 순수하고 자유로운 해적을 무시한 처사라나.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둘라 그 사람 자체로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요!”
‘프라우가 저렇게 이야기하니, 구역주 모두 본래 [맘몬]의 소속이라고 말을 못하지.’
수하들에게는 자신들이 싸우는 대상을 누군지 말해 주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진짜 어떻게 다들 이렇게 전투광들만 모아 놔서는.’
생각을 이어 가는 와중에도 프라우가 자신의 조장인 마니에르를 붙잡고 열렬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자유섬에서 태어나! 세상의 비밀을 탐구하고자 마탑에 들어간 마법사이자 마학자!”
‘진짜. 어떻게 저런 걸 다 꿰고 있나 몰라.’
“대지 속성의 재능과 마법을 다루시지만, 다른 마법도 능숙하게 다루는 4서클을 마법사!”
사실이었다. 4서클 마스터의 경지로 대지의 마법에 특화된 선천재능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하지만! 세상의 비밀은 세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무투의 탑]으로 들어와 전투와 학문을 동시에 매진!”
무슨 연설을 듣는 것 같았다. 그 예전의 과묵하고 로사만 바라보는 충성스러운 기사의 이미지는 어디 갔는지.
“[무투의 탑]에서 만난 동지들과 함께 팀을 이루며 승승장구! 그리고 팀으로 남색 수실을 달며 이제는 세상으로 나가겠다 선포!”
‘저게 진짜 프라우란 말이지. 로사는 쟤가 저러는 걸 알까 몰라.’
“동지들과 함께 마을을 하나하나 점령하고 해적들의 인정을 받아 구역주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얼마나 강하게 이야기하는지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그런 존재가 바로 돌라 님이시고 다른 구역주들도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라구요!”
창백해진 마니에르를 보니, 절대로 해적과 구역주에 대해서 프라우에겐 말을 삼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마니에르에게 일장연설을 마친 프라우가 눈을 빛내며 카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카인! 그러면 혹시. ‘어스퀘이크’가 오는 거야?”
“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진짜? 정말? 그 ‘어스퀘이크’가 온다는 거지?!”
미친 듯이 신나 하는 프라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멍한 시선으로 카인을 바라보았다.
“돌라가 만든 팀 이름이 어스퀘이크였어. 그리고 나중에 구역주가 되어서 만든 무력단체가 그 이름을 이어받았고.”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구요!”
“아니. 프라우.”
“대장님도 들어요! ‘어스퀘이크’는 둘라 님이 팀을 이룰 때 이름인 건 맞아요. 하지만 특징도 있다구요!”
이때 만큼은 카인의 여러 보조 마법들이 미웠다. 특히나 사일런스덕에 그 안에서 소리는 너무 잘 들렸다.
“두 명의 마법사와 세 명의 무인이 팀을 이루어서 만들어 낸 완벽에 가깝다는 합공. 그걸 이어받는 것이 지금의 ‘어스퀘이크’일 거예요!”
그 말에 고개를 돌려서 카인을 바라보니, 카인이 오히려 더 놀라고 있었다.
“아니. 프라우 그걸 어떻게 알았어?”
“훗. 해적과 자유섬에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알 수 있는 거라고요.”
카인의 물음에 한껏 콧대가 높아진 프라우는 설명을 이어 갔다.
“전해지기론 둘라 님께서 전반적인 전술을 보며 방어를 담당했고, 다른 마법사는 두 무인과 함께 공격을, 그리고 한 무인은 둘라 님을 보호했다고 해요.”
‘저 정도로 꿰고 있는 거면, 진짜 좀 무서운데.’
“그러니까 그 이름을 이어받은 단체도 같은 방법으로 나올 거게요!”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카인을 바라보는 프라우. 그리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카인.
‘와. 진짜 소름이다. 무섭다 무서워.’
“프라우의 말 그대로야. 어스퀘이크는 하나지만 다섯이야.”
카인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점점 마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블라우보다 조금 더 커보이는 마을.
그리고 멀리서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로 햐안 집들이 무수하게 자리한 동산.
“와. 저게 황금의 도로구나.”
하얀 집으로 이루어진 그 동산은 색과 다르게 황금의 도로라고 불리었다.
“저기에 가면 없는 게 없다면서? 서대륙, 동대륙의 모든 물건이 다 있다고.”
“그치. 황금의 도로에서 구하지 못하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 말은 꽤 유명하지?”
“근데 왜 프리 존이 아니라 여기에 존재하는 거야?”
“프리 존은 뭐랄까. 공식적인 곳인 동시에 물류가 모이는 곳이지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은 아니니까? 근데 저기는 모든 것이 거래되니까.”
“에펫 님이 진짜 대단하기는 대단한 분이구나.”
“그치. 그분은 오히려 무인으로보다도 상인으로, 행정으로 훨씬 이름이 높은 분이니까.”
“그런 에펫 님이니 명성이 자자한 것 아니겠수. 우리 마을에도 그 소문은 있었다구요. 엣지마을에는 거지가 없다.”
레핀이 일견 부러운 눈빛으로 그 동산을 바라보았다.
“왜. 이제 레핀네 마을도 발전할 건데? 량이 아주 각을 잡고 있더라. 그리고 너희가 훨씬 대단하지.”
마을의 이름은 대부분 해적이 정한다. 그 마을 출신의 이들이 마을을 부르며 이름이 지어진다.
그렇기에 이름이 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하지만 최근 변한 마을이 하나 있다.
“일리야 레핀이라니. 너희 둘의 이름을 따서 마을이 이름이 변했잖아.”
그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너희 이름이 달린 만큼 서도에서 제일가는 마을로 만들 거라고 하더라 량이가.”
그 말을 듣지 못했던 것인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두 사람이었다.
‘진짜 량이는 못하는 게 뭘까. 사람 마음도 사로잡을 줄 알고.’
그리고 그 말은 레핀과 일리야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충성도가 차오르는 게 눈에 보이는구만, 아무리 내가 간다고 하지만. 쳇.’
그런 감동의 순간도 잠시, 곧 이어서 자신들을 마중하러 나오는 인영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분들이 황금 문지기들. 우와. 내가 저분들을 실제로 볼 줄이야.”
‘진짜. 쟤는 서도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건가?’
정보 단체의 후계자가 카인이 아니라 프라우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설명이 들려오니, 마치 이미 알고서 말하는 것 같았다.
“에펫 님을 존경해서 들어오신 분들이 행정 개혁과 함께 성장해서 지금에 이른 분들을 내가 뵙다니.”
프라우는 그냥 해적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서도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아니지. 서도가 아니라 자유섬 전체인 것 같던데.’
“어! 저건 한 제국에서만 특별한 과정을 통해서 제련 된다는 백련도(百鍊刀).”
과연 프라우의 시선을 따라가니 기다란 월도에 흐르는 듯한 문양의 특이한 무늬가 생겨진 도가 보였다.
“백련도는 뭐야 또?”
“한 제국에서만 채취된다는 연철과 강한 철을 함께 섞어서 장인이 적어도 백 번 이상 접어서 만든 도. 그러면 그 특이함이 물결무늬로 난다고 해요. 강하면서 부드러운 그 아름다운 무늬 만큼이나 날카롭고 단단하다고 전해지는 그 도를 제 눈으로 보다니!”
숨도 쉬지 않고 한 번에 하는 그 설명에 도를 유심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근데? 저 도 하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무기가 그런 것 같은데?”
고개를 돌려 보니, 모든 이들의 무기에 각각 물결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져 있었다.
“과연. 역시나 황금 문지기들. 하. 정말 꿈결 같다.”
몽롱한 표정을 짓는 것은 프라우뿐만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무인인 이상 그 무기들의 자태에 눈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 무리의 가장 선두에서 오는 이는 스태프를 들고, 경장갑을 입고 걸어 나오는 미중년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인이 뒤에서 조용하게 설명을 해 준다.
“저분이 바로 인넨 님. 에펫 님의 차남이자 마법사. 4서클이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선두로 오는 이가 따로 나와서 자신들에게 왔다.
“이런 상황에서 만나 뵙게 되어서 너무 안타깝군요. 반갑습니다. 인넨이라고 합니다.”
학자 특유의 고집이 서린 입가. 그럼에도 선하게 보이는 눈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한 명 한 명을 인사하는 과정에서 레핀과 일리야의 소개를 해 주자.
“아! 당신들이 그 일리야와 그 레핀이군요, 정말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무명의 영웅들을.”
그 말에 레핀도 일리야도 얼굴이 터지기 직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