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흐음. 구문 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거지?”
수하들은 다른 배로 가고 있기에, 이 배에는 오직 자신과 량 그리고 카인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어머니께서 해 주신 말씀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량이었다.
“역시, 카인 네가 알려준 게 맞나 보네. 그 안에서 움직임이 있는 게.”
“아무래도 그럴 수도 있지, 다들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니까.”
“근데 진짜 카인 네가 정보를 주니까 너무 쉬운데?”
또 둘이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요즘 이런 일이 많아지니 괜히 서운했다.
“또! 또! 너네 둘끼리만 이야기하지. 진짜 서러워서 살겠냐!”
“저기. 우리가 말을 할 때 좀 잘 들으면 그럴 일이 없다는 생각은 안하냐!”
“잘 듣거든!”
“이 이야기 했거든! 멍청아!”
“뭔데 그래서!”
“하! 진짜. 확 그냥. 내가 연약한게 내 탓이지.”
투덜거리는 량을 뒤로하고 친절하게 입을 여는 것은 카인이었다.
“해적들 사이에서 세대교체를 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사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의혹이라고 생각했는데.”
“구문 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거겠지. 멍청이들.”
“근데. 로즈 님께서 거의 통치를 안 하시는데 왜 굳이 세대교체를 하려는 거래?”
“꽤 오래된 이야기긴 한데, 해적 안에서도 매파랑 비둘기파가 있거든.”
“응? 해적들은 하나 아니었어? 그 안에도 매파 해적이랑 비둘기파 해적이 있어? 처음 듣는데?”
“하아. 진짜 저 해맑은 얼굴을 어떻게 하냐. 너 성적 꽤 괜찮은 편이었잖냐.”
“그럼! 시험 볼 때 기억하고 깔끔하게 잊는 거지!”
어이없어 하는 량의 표정이 보인다. 저 표정을 보는 게 왜 그렇게도 좋은지 모르겠다.
“그래서 매파는 뭐고 비둘기파는 뭔데?”
“뭐 쉽게 말하면 매파는 구역을 넓히자는 입장을 가진 이들이고 비둘기파는 현재로도 족하다는 입장이지.”
“하긴, 지금 해적들의 힘이면 가능하기도 하겠다.”
“그게 문제지. 힘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점점 비둘기파에서도 동도는 다시 빼앗아 오자는 거에 찬성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근데 그게 가능한 일이야? 로즈 님이 계시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흘렀으니까. 아마 5대대/-(수정)~/9대대까지는 로즈 님과 함께 전투를 치러 본 적도 없을 걸?”
“그래도. 아니 그래도 초인인데?”
“넌 초인의 힘을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그러니까 그냥 자기들보다 조금 세구나 싶은 거지.”
“와. 진짜로? 정말 그렇게 무식하게 생각한다고?”
“생각보다 사람이 어리석어. 그렇게 현명하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럼. 진짜 너 말대로 다 적이라고 생각해야겠네?”
“참. 이럴 때 보면 머리가 나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장식으로 쓰냐? 좀 써라!”
“아무리 굴려 봐도 너는 고사하고 카인보다 못한데 왜 굳이 내가 고생해? 너희가 하라는대로 하면 되지.”
“하. 진짜 친구라고 믿어 주는 걸 고맙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냐?”
“그럼! 아 맞다. 그리고 엄마가 너한테 전하라는 말씀도 있었어.”
그 말에 긴장하는 량이 눈에 들어온다. 저런 걸 보면 참 귀엽기도 했다.
“마음이 선다면 마음 껏 해 보라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말을 하다가 량의 표정을 보니 이미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량이에게 설명을 들으며 배는 천천히 나아갔다,
*
“대장? 우리 꽤 유명해진 것 같지 않수?”
“그 정도로 난리를 쳤는데 안 유명해지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어?”
“정말. 레핀 님은 상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2주일간 미친 듯이 돌아다녔고, 전투의 연속이었다. 카인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정이었다.
“레핀 님은 진짜 재밌는 거 같아 그치?”
“하아. 친해진 건 좋은데, 이렇게 시끄러워질 줄은 몰랐는데. 프라우마저.”
“제가 뭐요 대장님! 대장님이 그렇게 굴리니까 그렇죠!”
“그건 맞수. 진짜 무슨 놈의 일정을 이렇게 지옥 같이 짠 거유?”
“진짜. 카인 님도 총수님도 너무하시지. 그리고 대장이 제일 나빠요!”
“내가? 일정을 짠 게 량이랑 카인인데? 내가 왜 나빠?”
“하? 그걸 몰라서 물어유?”
“훈련이랍시고 저희끼리만 상대하게 하지를 않나.”
“항복하려는 적들을 굳이 굳이 뭉치게 해서 한 번에 전투를 하자고 하지를 않나.”
레핀과 일리야 그리고 프라우가 마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자신에게 말한다.
“그게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
솔직히 억울했다. 훈련은 훈련이니 그런 것이고, 항복을 하려는 이들에는 간자가 있어서 그랬다.
“카인 뭐라고 해 보라고!”
“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그저 범이 시키면 해야 하는 거지.”
2주간의 미친 일정이 가능했던 이유. 돈과 정보였다. 량이 돈을 쏟아부어 구한 마차. 카인의 정보.
그런데 그 원흉 중 하나가 자신의 수하들이랑 친해지더니 자신을 놀리는데 맛이 들였다.
“왜요? 난 좋던데? 역시 대장이 최고야! 아니야?”
“하. 조장님이 제일 문제입니다.”
“진짜. 넌 좀 그래.”
“허따. 막냉이가 조장이 되더니, 미쳐 버렸으.”
그 중간에 등장한 것은 마니에르였다. 철혈에 가장 가깝다는 마니에르.
다른 건 아니고 혈은 왜 가까운 지 알 것 같았다. 전투에서 언제나 광기를 마음껏 표출하는 그.
전체의 진법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마니에르다보니 프라우가 자연히 그를 보조하게 되었다.
그를 보조하는 프라우가 죽어 나가기만 할 뿐 마니에르는 거침이 없었다.
그 주제에 광기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냉철하다.
“하. 진짜 마니에르 네가 그런 소리를 하니까 내가 무슨 전투광이 된 것 같잖아.”
그 말에 삽시간에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며 자신을 바라본다. 심지어 마니에르마저.
“왜? 왜 그러는데!”
“범아. 너가 제일 신나 했어. 전투에서. 너 전투광 맞아.”
“전투광에 우리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악덕 대장.”
“하. 대장. 자신을 좀 볼 필요가 있으유.”
“왜? 난 그래서 너무 좋던데! 신나잖아!”
“하.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그래! 내가 전투광이다!”
이런 여유를 가지게 된 것도 5개의 마을을 점령했기에 가능했다. 이제 마지막 마을을 향하는 길.
“근데 레핀. 일리야. 진짜 괜찮겠어?”
“뭐. 총수님은 믿을 만한 분이니까유. 어차피 평생 믿고 따르기로 하기도 했고.”
“믿어 보기로 했으니 믿어야죠.”
지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레핀이 마을을 하나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나만 몰랐던 것 같지만.’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레핀과 일리야의 충성을 받아 낸 량. 그리고 레핀은 그 마을을 량에게 바쳤다.
“량이 출세했다. 벌써 10개의 마을을 지배하는 구역주가 되고.”
“량이가 그 소리 들으면 다 때려치고 너한테 넘긴다고 협박할걸?”
“음음 이래서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하는 법이지. 얼마나 편하고 좋아?”
내친김에 지배자의 위치도 모든 것을 량이에게 떠맡겼다. 화패도 칼라 님께서 준비하셔서 더 수월했다.
“너 그러다가 량이한테 큰코다친다?”
“너만 조용하면 그럴 일 없다. 근데 너 많이 늘었다?”
가장 놀란 점 중에 하나는 카인의 성장이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성장을 했었다.
“그치? 생각 이상으로 재밌더라고. 역시 난 무속성인 게 마음에 들어!”
전투와 전쟁에서 가장 큰 공훈자功勳者)를 세우라면 그것은 자신도 아닌 카인이었다.
무슨 수를 쓴 건지, 이동하는 내내 은신과 말들에게 버프를 걸어 주는 괴랄함을 보여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전투에서는 모든 이들에게 한 번에 버프를 주는 괴랄함.
팔찌와 연동해 만든 기능이라지만, 그 기능을 만드는 것도 그리고 그 순간에 바로 마법을 실행하는 것도 괴물 같았다.
‘하긴, 저 정도 재능이니 [오치소르]라고 불리면서 뒷 세계에서 군림했겠지마는.’
가끔 생각하는 것이지만, 결국에 될 놈은 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 것 치고 표본들이 너무 괴물 같은 아이들이기는 하지만.’
스콜라스를 제외하고는 모든 이들이 각자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서 그를 바라보니 신기했다.
“그나저나 이 마을이 마지막이지?”
“응. 구역주에 속하지 않은 마지막 마을이야. 남부는 이미 구역주가 다 있어서.”
“진짜 신기하긴 하다. 왜 그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대?”
생각 이상으로 수월한 전투였다. 수하들의 전투력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선 관심이 없었지. 중점은 블레어 왕국이었으니까. 그리고 북부는 알다시피 강한 한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블레어 왕국에서 일이 망하면서는?”
“아마 수습하느라 바빴을걸?”
그러면서 찡끗 웃는 카인. 무슨 일을 벌이긴 벌인 것 같았었다.
그 짧은 시간에 괜히 서대륙에 있는 [맘몬]의 지점들이 다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
“뭐. 시디야 왕국에는 좀 있긴 하지만, 굳이 건드릴 필요는 못 느껴서.”
만일 필요가 있었다면, 그마저도 정리했을 거라는 투의 카인은 가끔 소름이 돋게 보인다.
“그리고 [맘몬]이 자충수를 둔 것도 있고. 감히 초인을 써먹으려고 한 것. 그것도 수호용병인.”
“그래서 그렇게 다들 전격적으로 나선 거야?”
“그렇지. 초인들이 각자가 초인이라고 하지만, 그를 추종하는 이들이 한 둘이겠어?”
“거기에 수호용병도, 그리고 그걸 조율한 게 너라는 거지.”
“내가 다한 건 아니고, 량이도 엄청 많이 도와줬지!”
그럼에도 그 빠른 시간에 정리를 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아무리 정보를 가지고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렇게 한순간에 처리하는 게 어려울 텐데. 괴물은 괴물이다. 진짜.’
전쟁터에서 평생을 살아왔기에 알고 있었다. 변수라는 놈은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그 변수를 모조리 통제해서 만들어 낸 결과가 [맘몬]의 블레어 왕국 지부의 괴멸.
거기에 더해서 지금의 미친 듯한 질주를 완성하는 것까지. 정말 괴물 같은 친구들이었다.
“하여간. 나한테 괴물이라고 하면 안 될 인간들이 나한테 괴물이라고 하긴.”
“그래 봐야 대장도 괴물이유.”
“괴물은 괴물끼리만 논다더니.”
“자기가 괴물인 건 모르는 대장님이 세상 이상한 거예요.”
“왜! 괴물이랑 있다 보면 나도 괴물이 될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아! 우리도 많이 늘었잖아!”
마니에르의 말대로였다. 훈련이 이들을 준비시켰다면 미친 질주가 이들을 완성에 가깝게 만들었다.
세 조장들은 익스퍼트를 넘어서 경계에 이르렀고 모든 유저들이 한 발 내딛어 익스퍼트에 이르렀다.
량의 약도, 희대의 진법도 이들을 이끌었지만, 전투의 치열함이 이들을 성장시켰다.
‘하긴, 그러니까 수호용병들이 질이 다르긴 하지.’
백 번의 연습을 하더라도 한 번의 실전이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 준 이들.
어느 기사단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이들이었다. 종종 생각하는 부분이기는 했다.
‘얘네가 재능이 좋은 건가. 아니면 익스퍼트가 오르기에)그리 어렵지 않은 건가?’
하지만, 이는 자신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을 베풀었는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량이 풀이를 해낸 진법은 그 근본이 결국 [바람의 탑]에 있다. 그를 그대로 배운 이들.
거기에 량이 베풀어 준 그 약통에는 수많은 강자들이 침을 흘릴 약재료가 들어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더욱 잘 아는 이들이 수하들이었다. 그렇기에 량에게, 범에게 무한한 감사를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목표. 강해지는 것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이끌어 준 이.
그렇기에 그 짧은 시간에 마음이 사로잡혀 무엇을 명해도 듣는 수하가 된 것이다.
그를 모르는 범은 의아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 너는 멍청한 거 같아. 범아.”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귀신같이 말을 거는 카인.
“응? 뭐가?”
“강해지는 게 쉽다고 생각한 거 아니었어?”
“헐. 너도 량이한테 독심술 배웠어?”
“아니. 너가 멍청하고 뿌듯한 얼굴로 수하들을 보길래 대충 때려 맞췄지,”
그 후에 이어진 카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네.’
세계 제일의 연금술사의 후계자. 서대륙 최고의 정보 조직의 후계자.
자신에게는 언제나 옆에 있는 친구들이었기에 그것이 얼마다 대단한지 잊고 있었다.
“미안.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버렸네.”
“아냐. 나도 가끔 기준이 너한테 맞춰져서 이상한 생각하는 걸 뭐,”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질주하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 엣지마을이구나.”
“그치. 원래는 레핀의 마을이 끝이지만, 거긴 숲이 너무 무성해서. 프리 존을 제외하면 가장 큰 항구마을이야.”
“그리고 [맘몬]이 최근에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 곳이라는 거지?”
“조금? 반반이라고나 할까. 저곳을 다스리는 이도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으니까. 나이가 많아서 문제지.”
“두 명이서 싸우고 있다고 했나?”
“응. 두 아들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고 해.”
“근데 그게 가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