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102화 (102/217)

[102화]

“어린아이는 일찍 자야한다는 말은 못 들었나 보군.”

“퍼그 님. 진짜 재미없어요. 어떻게 어머니랑 만나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에휴.”

“야! 내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인데!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어! 어! 막!”

“그렇게 안 하셔도 돼요. 다 들은 것도 알고 계시잖아요.”

“쯧. 도대체가 마누라 자식들은 하나같이 괴물 같다니까. 에휴.”

“그나저나. 진짜예요? 초인이 되셨다는 게.”

“제대로 듣지는 못한 모양이구나. 단초를 잡았다 뿐이지 초인이 된 것은 아니란다. 너도 알지 않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익스퍼트와 마스터의 경계에서 그 선을 못 넘는지를.”

“초인은. 더 어렵겠죠.”

“더 어렵다 뿐이냐. 단초를 잡아도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 변화한 것은 알겠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지.”

“초인이 그렇게 다른가요? 영 감이 안 잡혀요.”

“지금처럼 경계에 있어도, 넌 더 이상 내 상대가 안 된다. 그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된다.”

“하. 진짜 갈 길이 멀어도 너무 먼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저도.”

“흰소리 하지 말아라! 남자 새끼가 한 번 마음을 다잡았으면 끝까지 걸어가야지!”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네 나이에 그렇게 빠르게 한 발 한 발 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는 것이냐!”

처음 보는 퍼그 님의 엄한 모습이었다. 언제나 헐렁한 모습으로 알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사실, 또다시 흔들렸다. 어머니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던가. 그 따스함이 다시 흔들리게 했다.

누나를 만난다는 것에 설레고, 그 시끌벅적한 식사 자리에 취했다.

“흔들리는 건 좋다. 방황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향을 잃고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

퍼그 님의 말씀이 왜 하나하나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느낌일까. 듣고 싶지 않다.

“정체하지 말고 아프면 아픈대로 나아가고,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퍼그 님께서는.”

왜 자기 자신은 남으면서 자신에게는 떠나야 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너는 나아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더냐! 그곳에 너의 꿈이 있지 않더냐. 나는 내 꿈이 이미 이루어졌기에 그런 것이다.”

“하! 잘 모르겠네요.”

듣기가 싫은 말이었다. 그 말이 너무도 자신을 찔러 들어와서 더욱 그러했다.

그랬기에 도망쳤다. 퍼그 님을 두고 그냥 집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다.

“후우. 이런 건 도통 익숙해지지가 않네. 그치 않소?”

“어머? 이제는 3대대 최강이라는 이름은 내려놓아야겠네요.”

범이 떠나고 난 자리, 퍼그의 중얼거림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구문이었다.

“당신이 하면 될걸. 왜 나한테 넘기고 그러나.”

“어머? 원래 아이가 흔들릴 때 잡아 주는 건 아버지의 역할이라고요?”

“참. 아버지는 무슨. 다들 하나같이 도둑놈이라고 부르는놈들이구먼. 그나저나. 괜찮소? 처음이지 않소.”

“하아. 그러게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저도 이런데, 막내는 더 심하겠죠.”

“그러게, 왜 그렇게 한 번에 받아들였소?”

“글쎄요. 저도 모르죠. 그냥 보는 순간 눈이 확 갔다고나 할까?”

“호오? 이거 질투나게 생겼네. 누구는 한 번에 확 넘어가고 말이지. 서러워서.”

“에이~ 왜 그러실까요. 그나저나. 당신 정말 괜찮겠어요?”

“그럼! 난. 당신을 만나면서 내 꿈을 이루었으니까.”

“정말. 달콤한 말을 이리도 잘할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잠시 행복한 미소를 짓던 구문은 이내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

“자식이 가는 길을 응원해 주는 것이, 부모 된 도리겠지요. 참. 어렵네요.”

“그 누구보다 어머니의 역할을 당신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후, 부탁 할게요. 내일 좀 잘 도와줘요.”

“그럼! 궁둥이를 아주 그냥 시뻘겋게 차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해줄게!”

그렇게 아직까지 신혼을 즐기는 그들이었지만,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못 했다.

*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오자마자 자신을 끌고 나온 퍼그 님. 솔직히 따라오고 싶지 않았지만, 거스를 수 없었다.

“불퉁하기는. 도대체가 10살 꼬맹이 그대로구먼.”

“아침부터 다짜고짜 끌고 나오시니까 그렇죠!”

그냥 공터도 아니고, 절벽을 오른 뒤에도 꽤나 걸어온 뒤에 나온 공터.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친절한 질문이었음에도 별로 친절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글쎄요. 데리고 오신 퍼그 님이 아시겠죠.”

“어휴. 이런 놈이 뭐가 이쁘다고. 바닥 색을 잘 봐라.”

다른 곳과 다르게 거뭇거뭇한 바닥. 울퉁불퉁한 바닥. 그리고 작은 구멍이 무수히 많이 뚫려 있었다.

발로 툭툭 대지를 쳐 보자 꽤 단단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엄청 특이하네요?”

“그치? 화산이 굳어서 생기는 돌이다. 그만큼 더 단단하고 날카롭게 부서지지.”

“그런데 여기에 왜 온 건가요?”

“네 놈이 넋이 빠져 있으니 다시 집어넣야 할 것 아니냐.”

그러면서 메이스를 내려놓고 자신에게 손 하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손가락 하나로 까닥거리니 몹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덤비거라. 10살 꼬맹이는 한창 맞을 나이지. 특별히 맨손으로 상대해 주마.”

욱하는 감정이 올라오니, 절로 도에 손이 가고 도신에는 짙은 녹빛의 검기가 맺힌다.

“계속 꼬맹이 도발하면 그 꼬맹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그뿐이 아니다. 두 탑이 동시에 열리는 것과 하나처럼 재능이 깃들기 시작한다.

“덤벼라. 재능을 모조리 끌어내도 좋다.”

그 말이 왜 비아냥처럼 들릴까. 마치 너는 무슨 짓을 해도 나에게 솜털 하나 다치지 못하게 한다는 듯.

“진짜. 진짜로 해요. 저도 더 이상 못 참아요.”

마법을 가르고 검기를 자르며 재능 마저 잘랐던, 발아한 재능을 담는다.

“덤벼. 뭐가 그렇게 말이 많누.”

그 말이 마치 이성을 끊는 마지막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퍼그 님에게 달려들었다.

‘적어도 팔 하나는 떼어도 되겠지.’

량이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사실이 더 마음을 놓게 했다.

달려들어 가는 동시에 짙은 녹빛의 검기가 점점 짙어지더니 어느 순간 투명한 녹빛이 되었다.

“이렇게 깔끔하고 날카로운 오러블레이드는 또 오랜만에 보는구나!”

“무시하지 마시죠?”

마스터의 상징. 자를 수 없다는 것이 없다고 불리는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도 당당한 퍼그 님이 짜증 난다.

퍼그 님의 손에도 푸른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맺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그래도 본래 쓰는 무기도 아니고. 진짜 너무 무시하네.’

대부분의 무인(武人)은 자신의 주 병기가 있기 마련이다. 극에 이를수록 그것이 더 확연해진다.

여러 무기를 가지고 극에 이른 사람은 거의 없다.

자신의 주 병기에 오러 쓰레드를, 오러 블레이드를 씌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익숙해진다.

자연스럽게 다른 무기나 맨손에 오러를 맺히게 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 미세한 차이는 경지가 위로 올라갈수록 큰 차이를 나타낸다. 그런데 마스터인 자신에게 그러는 것이었다.

확연한 무시였다.

오러 블레이드가 자신의 재능을 머금고 더 날카롭게 벼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대로 오른 어깨를 베어들어간다.

“꿀렁”

분명 귀에 들린 이상한 소리, 그리고 자신의 발밑의 대지가 꿀렁이더니 튀어나온다.

“아무리 날카로운 칼도 닿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데 말이지.”

정말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한다. 마지막 이성이 사라지니 탑이 전부 개방된다.

첫 번째 탑인 노투스로 시작해서 에우루스 그리고       아펠리오테스.

짓궂은 산들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폭풍을 이끌어 오고 그 폭풍이 세상을 감싸 안는다.

자신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갇힌 모든 것을 갈가리 찢는 바람.

도날이 날카로운 바람이 되어서 모든 방향에서 몰아치는 폭풍이 되고는 퍼그 님을 감싸 안는다.

오러 블레이드가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그 광경은 절경이자 절망이었다.

속이 투병하게 비치는 녹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마치 퍼그 님을 난자할 것처럼 몰아쳤다.

걱정이 되기보다 시원했다. 이토록 모든 힘을 담아서 내지르는 것이 처음이었다.

대지가 갈라지고 검은 돌들이 날카롭게 부서지면서 비산하여 폭풍의 칼날이 되었다,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은 좋지만, 아직 어리구나! 기본적으로 지형도 잘 모르면서 온 힘을 쏟으면 되나!”

그 말과 함께 비산하던 몇몇 돌들이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마나가 담겼는지 빠르고 강맹하게 날아온다.

‘그래 봐야 돌이지.’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돌은 기껏해야 3개. 무시해도 될 양이었다. 무엇보다 바람은 끊어지면 안 되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면 큰일 난다?”

그 말과 동시에 돌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비수들처럼 날아들어 온다.

쪼개진 돌들이 말도 안되는 궤적을 그리면서 자신에게 향한다. 똑바로 날아오지 않는다.

자신의 손을 정확하게 노리고 떨어지는 돌,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돌, 발과 심장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돌.

“단초만 잡았지만, 이런 것도 할 수 있더구나!”

순간 당황스러움이 몰려온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땅이 꺼진다.

잠시 쪼개진 돌에 눈이 간 사이에 퍼그 님이 어느새 폭풍을 뚫고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내가 박투도 한 박투한다?”

그 말을 끝으로 셀 수 없는 난타가 시작되었다. 난투, 박투 모두 자신이 있는 분야였다.

수호 유술을 배우고 나서는 웬만해서는 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무게중심이 비틀어진다. 그리고 그곳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다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그 광경을 구경하는 이들이 있었다.

“와. 진짜 본격적으로 하네요.”

“우리가 막내보다 약해.”

“막내가 특출나게 강한 거지, 너희가 약한 것이 아니란다.”

“맞아. 범이 괴물 같은 거지 형들도 충분히 강해!”

구문과 린과 럼니, 칼라, 카인, 량은 한곳에 모여서 그들의 박투를 보고 있었다.

“근데 왜 저걸 하는 거야?”

“맞아! 막내는 사고 쳤어?”

가끔 자신들이 사고를 치거나 방황하고 있을 때면 언제나 도둑놈이 자신에게 해 주던 방식이었다.

“막내가 너희랑 같은 줄 아니. 그저, 흔들렸기에 그렇단다. 배가 파도에 흔들리는 것처럼.”

“그럼!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나아가야지!”

“바다 사나이란 그런 거지! 그리고 배는 원래 흔들리는 법이지!”

““하지만! 똑바로 나아가면 될 일이지!””

“진짜 언니 교육 한 번 잘 시켰네?”

“그럼. 그게 잊혀지기나 하니. 너나 나나 어머니한테 얼마나 못이 박히도록 배웠는데.”

“저어. 혹시 저게 위험한 거 아닐까요?”

조용히 옆에서 그 광경을 구경하던 카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인의 눈에는 그 광경이 너무 위험하게만 보였다. 아니 그 위험이 느껴졌다.

분명 꽤 거리가 떨어져 있는 데도 전투의 파편이 날아온다. 날카로운 돌들이 날아오는 것을 칼라 님이 쳐내 주신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자신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일 것이다.

‘그냥 파편이 튀는 게 이 정돈데.’

“괜찮단다. 어차피 그이도 적당히 하고 있고, 가끔 아이의 온 힘을 다한 투정도 받아 줘야지.”

“저게. 저게 투정이라는 건가요?”

‘무슨 투정을 저렇게 살벌하게 부려.’

“쉽게 표현하지면 욕구불만? 아마 그런 상태가 이어지니 복잡하고 방황하게 되는 것 같더구나. 한 번쯤은 저렇게 온 힘을 다해 보아야 길이 명확히 보이는 법이란다.”

“욕구불만이요?”

“마스터가 되면 생기는 일종의 병 아닌 병이랄까. 그런 거지.”

“네?”

“마스터가 되면 그것이 무인이든 마법사든 바디 체인지를 겪는단다. 알고 있지?”

“네! 그리고 각 사람의 특성 마다 또 다르다고 알고 있어요!”

“그렇지. 그 이야기는 너무 기니 생략하고. 그들이 똑같이 겪는 병이 있단다.”

“병이요?”

“그렇게 바뀌고 난 후에 온 힘을 다하지 않는 데만 신경을 쓰니 힘을 풀 곳이 없어지고, 그것이 점점 쌓이고.”

“그럼 엄청 답답하겠네요? 근데 왜 그냥 풀면 안 되요? 마법을 난사한다던가.”

“마법사는 그것이 가능하지만, 무인은 좀 다르단다. 상대가 있어야 하지.”

“아! 마스터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네요!”

“그럼. 그리고 자각하기도 너무 어려운 문제란다. 조금 조급해지고 조금 방황하는 것일 뿐이니.”

“그럼 괜찮은 거 아닌가요? 병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 말에 대답하려는 찰나에 굉음이 들려왔다.

“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