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칼라 님. 그렇게 무서우세요?”
자신이 선물받은 배 안에서 칼라 님은 여전히 안절부절못하고 계셨다.
수하들은 뒤에 다른 배를 타고 오는 상황. 이 배에는 칼라 님과 량 그리고 카인과 자신 뿐이었다.
“아니. 내가 사실 도망쳐 나온 거거든. 거기다가 촌장도 때려치고.”
“어머니 엄청 자상하시잖아요.”
“그치. 자상하지. 우리 언니 같은 사람이 없지. 근데, 한 번 화나면 진짜 무섭단 말이야.”
“괜찮을 거예요. 량이도 있잖아요!”
그 말에 화색이 돌았다가,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는 칼라 님.
“언니가, 량이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많이 아플 텐데.”
“칼라. 괜찮아. 최고의 방패가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가리키는 량이. 본래 뭐라고 했겠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량이를 보니 봐주기로 했다.
“막내야~~”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린과 럼니가 보인다. 목청도 큰지. 벌써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카인. 형들이야 저분들이.”
불타오르는 머리를 한 두 사람이 자신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며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보인다. 부럽다.”
“뭔 소리야. 너도 내 형제지. 빨리 가자. 소개해 줄게!”
배가 점점 항구에 닿자 린과 럼니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내! 오랜만이다!”
“어? 작은고모? 막내고모 왔어요? 얼마만이에요! 또 사고쳤담서요!”
“요 꼬마 녀석들! 오랜만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쪽 볼들을 양쪽으로 꼬집으면서 인사하는 칼라 님.
“내가 사고를 쳐도 너희만 하겠니.”
“아아아! 작은고모가!”
“알려 줬으면서!”
“말은 잘하지. 진짜 많이 크긴 했네?”
“가까이 있으면서!”
“오지도 않고!”
“오구구. 그래서 아쉬웠구나아”
칼라 님의 새로운 모습을 또 보는 순간, 다시 다른 모습이 튀어나왔다.
“칼라!”
푸른 머리를 질끈 묶은 구문 님의 외침에, 순식간에 손을 놓고 움츠려 드는 모습.
“빨리 이리 안 오니!”
“으. 응 언니!”
순식간에 달려가는 칼라 님의 모습은 그동안 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더 웃긴 것은, 자신도 모르게 같이 뛰어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어머니. 안녕하세요.”
어색하기 그지없는 단어. 어색하기 그지없는 상황. 모든 것이 어색했다.
한 손으로 칼라 님의 한쪽 귀를 잡고 계신 어머니께서는 환하게 웃으며 맞아 주셨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오는 거 아니니? 정말. [무투의 탑]에서 이야기는 잘 들었단다.”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데 그 손길이 참 좋았다.
“우선 들어가렴. 친구들과 함께. 린과 럼니가 안내해 줄 거란다.”
“네 어머니.”
칼라 님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는데 형들이 량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구나.”
“작은고모부 예정자.”
그 말에 얼굴이 빨갛게 올라오는 량이.
“와. 너도 어떻게 작은고모를.”
“근데 너도 대단한가 보다. 작은고모 쓸데없이 눈만 겁나 높은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동시에 말을 한다.
““그럼? 작은고모부라고 불러야하나?””
궁금한 게 뭐 그리도 많은지, 량이와 카인과 자신에게 돌아가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형들이었다.
“막내 왔구나!”
질문 속에서 어떻게 걸어왔는지 모르겠지만, 퍼그 님이 눈에 들어왔다.
“도. 아니 퍼그 님 안녕하세요. 여기 카인이랑 량이라고 해요.”
자신도 모르게 도둑놈이라고 부를 뻔했다.
“흐음. 막둥이의 남편감이 이 녀석인 건가. 에휴.”
그러더니 갑자기 량의 옆으로 가서 어깨를 토닥여 주는 퍼그 님이었다.
“어쩌다 그런 말괄량이를.”
“량이한테 손 떼 도둑놈아!”
처음으로 본 칼라 님의 무기였다. 바람을 찢으면서 날아온 것은 채찍의 끝.
정확하게 퍼그 님의 어깨를 노리며 날카롭게 뚫을 듯이 날아가는 채찍은 처음 보는 움직임이었다.
“에휴,”
한숨과 함께 너무나 능숙하게 채찍을 잡아채는 퍼그 님.
“칼라야. 내가 너 덕분에 검도 도끼도 아니고 채찍을 대하는 법이 제일 익숙하다.”
“흥! 나라고 놀고만 있는 줄 알았어?”
순간 잡혀 있는 채찍이 빳빳하게 서더니 손아귀를 밀고 들어가 퍼그 님의 어깨를 노린다.
“호오? 그래 봐야!”
그대로 허리를 숙이면서 채찍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칼라 님을 잡아당긴다.
힘에서 나는 차이 때문인지, 가볍게 끌려 나가는 칼라 님.
“누누이 말했지만, 채찍은 잡히면 위험하다고 했지?”
“조심해요. 손 날아갈 수도 있어요!”
분명 가죽으로 만들어진 맨들맨들한 채찍이었는데, 올올히 올라오더니 어느새 날카로운 가시가 되었다.
“이제 극(極)을 향하고 있구나! 세심한 변화도 가능한 걸 보니!”
아무래도 재능과 관련된 부분인 듯, 그리고 그 재능을 알고 있는 듯해 보이는 퍼그 님이었다.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손을 마나로 보호하는 동시에 허리춤에 있던 메이스를 꺼내는 퍼그 님.
“이제! 진짜로 한다?”
순간 채찍을 잡아당겨 날아오던 칼라님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퍼그 님이 메이스로 땅을 내리쳤다.
“어?”
땅이 파도치듯이 너울을 만들며 칼라 님에게 짓쳐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튀어 나가는 퍼그 님.
“이 자식들이!”
부딪히려는 찰나, 그 가운데 어머님이 나타나셨다. 눈 한쪽에 귀화가 피어오른 채로.
한 손에는 메이스를 잡고 한 손으로는 채찍을 잡은 어머니의 표정은 실로 무서웠다.
“적당히 하라고 했지! 당신! 요즘에 깨달은 게 있다고 그걸 애기한테 써먹어?”
순식간에 쭈그러지는 퍼그 님의 모습을 확인하고 바로 칼라 님에게 고개를 돌리시는 어머니.
“막내! 넌 좀 애정 표현 방식이 항상 과하다고 했어! 안 했어!”
두 사람이 모두 어머니 앞에서 말을 제대로 못하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정말 내가 못 살아! 둘 다 들어가 있어!”
그 말에 어깨가 축 처진 채로 돌아 들어가는 모습이 아빠와 딸처럼 보인다.
“정말 미안하구나, 오자마자. 정신이 없었지? 우리 막둥이.”
자신과 카인, 량이 있던 자리로 오셔서 머리를 토닥여 주는 그 손길이 참 좋았다.
“네가 카인이라는 막둥이 친구고, 네가 량이구나?”
“안녕하세요! 범이의 제일 친한 친구 카인입니다!”
“안.안녀하세요. 량이라고 합니다. 처 형님.”
“흐응. 우리 말괄량이가 누굴 잡을까 했더니.”
량이 저토록 긴장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 방금 장면을 보아서인지 더욱 긴장을 하는 량의 모습.
언제나 여유롭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태도의 량은 사라지고 안절부절한 모습의 량이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으면, 조금 진득하니 알아가고 싶은데. 아쉽네요.”
그 말이 마치 허락 아닌 허락처럼 들렸는지, 표정이 확 살아나는 량.
“그래도 아직 아닌 거 알죠? 그리고 저만 있는 것도 아니랍니다?”
순식간에 환해졌던 량의 표정이 갑자기 사그라든다. 칼라 님에게는 5명의 형제, 자매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바다의 황제로 불리는 골드 로즈가 어머니로 있었다는 걸 다시 깨달은 듯 했다.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거 같으니까. 두고 볼게요, 이쪽은 카인이라고 했지?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보니까 또 좋네.”
“저도! 좋습니다. 완전 멋있으셨어요!”
“카인도 그 삭풍(朔風)의 아들 치고는 참 활기차네요. 다시 봐야겠는데? 아버님은 잘 계시지?”
“우와! 저희 아버지를 아시는 분은 진짜 오랜만에 뵈는 것 같아요! 파울로 님도 알고 계셔서 놀랐는데!”
가끔 카인을 보면 자신의 대한 자각을 덜하는 듯했다. 그 [마타하리]의 후계자이자 초인의 아들인데 말이다.
“예전에 뵌 적이 있었단다. 그때는 정말 한눈에 반할 정도로 멋있는 분위기를 풍기고 계셨지. 어머니에게 그렇게 대드는 사람도 처음 봤단다.”
“어? 혹시 그럼 구문 님도 그때에 계셨던 거였어요? 저도 말로만 들었었는데!”
“그 후에도 몇 번은 뵈었단다. 그리고 네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가 아기일 때 널 본 적이 있기도 하지.”
“정말요?”
“그럼! 그 자그맣던 아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참 시간이 빠르구나. 거기에 막내의 제일 친한 친구라니. 참 인연이란.”
“저도 엄청 신기한 거 같아요! 아직 어머니에 대해서는 저도 모르는게 많거든요.”
“아마. 그럴 만도 할 거다. 네가 조금 더 자라면 알게 되겠지 싶구나. 하지만, 네 어머니만큼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던 게 내 꿈이란다. 그럼 들어갈까?”
“네!”
카인과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를 보니 기분은 좋지만, 왜 이상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신기한 것은 그걸 또 어떻게 알았는지, 어머니께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는 것이었다.
“막둥이. 잘 지냈어? 자주 찾아오라고 했는데 왜 그렇게 바쁜가 몰라.”
그 손길과 말에 섭섭함이 스르르사라지는 것은 또 왜일까.
“죄송해요. 저도 찾아오고 싶었는데, [무투의 탑]에 있느라.”
진짜 어머니도 아닌데, 왜 애 같아지는 지도 모르겠다.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그래. 소식은 항상 듣고 있었단다. 벌써 남색 수실을 달았다면서? 아들 대단한데?”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이렇지 않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더 잘하라고 하고, 잔소리를 하고.
마음에서는 진짜 엄마가 아니니까 이런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따스함이 참 좋다.
“일단, 어서 들어가자. 정말. 저 둘은 언제 철이 들는지.”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어가는 길은 너무 짧은 느낌이었다.
*
“안돼요!”
칼라 님과 퍼그 님이 벌인지, 밥 한술도 못 뜨고 있었다. 그러니 량이도 자연스레 먹지 못하고 자신과 카인, 형들과 어머니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은근슬쩍 손으로 회를 집어먹으려는 퍼그 님을 만류하며 손을 치는 어머니.
“엄마. 근데 큰누나는 내일 들어오는 거야?”
“아마도 그런 것 같더구나. 막내를 보고 싶다고 조금 일찍 온다더구나.”
“우와! 나도 진짜 오랜만에 훌트누나 보는 거 같은데.”
“이번에는 꼭! 이기고 싶다. 둘이 덤벼도 맨날 지는데.”
“큰 누나요? 후울트?”
“그래. 네 누나란다. 저번에 말해 줬지?”
“아. 네. 어머니.”
“엄마!”
저 두 단어를 말하는 것이 왜 그렇게도 힘든지 모르겠다.
“네. 엄마. 누나 둘이랑 형 셋이 있다고 하셨어요. 훌트누나, 스필 형, 게슈누나 그리고 린과 럼니 형들이요!”
“잘 기억하구 있구나. 엄마 대신에 1대대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더니 널 보고 싶다며 온다고 하더구나.”
“그럼 스필 ? 스필 형은요?”
“훌트가 오는 걸 보니 분명 스필에게 떠넘기고 오는 것 같더구나. 셋째는 임신 중이라 오기 힘들어 하는 것 같고.”
임신이라는 단어에서 스쳐 지나가는 어머니의 어두운 표정. 그 표정이 그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했다.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 그래도, 아니야.’
괜한 생각을 털어 내고, 다시금 누나의 이야기로 주제가 돌아왔다.
“여하튼, 훌트는 벌써 작은 부대를 하나 맡았다고 하더라. 참 누굴 닮아서 그리 똑 부러지는지.”
“큰누나는 사기야!”
“맞아! 이상해. 맨날 져.”
“큰누나가 그렇게 강해?”
“강하다?”
“음. 무섭기는 하지. 한 번도 이긴 적도 없구.”
“보면 알게 될 거란다. 어쩌면 량이랑은 이야기가 잘 통할지도 모르겠구나.”
“네?”
밥도 먹지 못하고 어물쩍거리던 량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소스라치게 당황했다.
“맞아! 훌트도 천재지! 진짜 도대체 우리 집안에는 왜 괴물들만 있는 거야!”
벌을 서고 있었던 칼라 님께서 갑자기 끼어드셨다.
“막내. 너도 그 만큼 노력하고나 말하지 그러니? 손에 든 회는 내려놓고.”
“히잉. 언니이~ 잘못했어어. 근데 언니를 빼앗아 간 나쁜 사람인걸. 흥!”
“에휴. 도대체가. 이제는 남자친구도 생긴 녀석이 언제까지 이렇게 어리광을 부릴 거니.”
“맞다! 막내고모랑 훌트누나랑 엄청 싸웠는데!”
“맞아! 우리 엄마 가지고 막 막내고모는 내 언니야! 훌트누나는 내 엄마야! 이러면서.”
“그리고 맨날 할머니한테 혼나고!”
“고모들한테도 혼나고! 엄마한테도 혼나고!”
“너네!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뭘!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잘 컸지!”
“맨날 괴롭히기만 하고.”
“놀래키기나 하고!”
어머니와 함께한 식사 자리. 8명이 함께하는 식탁이기에 엄청 떠들썩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나누는 자리는 처음이지만, 정말 좋았다.
‘스승님도 계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마틴도.’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어머니를 따라서 설거지를 하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
량이와 퍼그 님이 이야기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도 모르게 기척을 죽이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칼라는 정말 내가 딸처럼 생각하는 아이니. 잘 생각해 보거라.”
“후. 퍼그 님은 어떠신가요.”
“천재, 천재하더니만. 참 내. 나는 초인이 되더라도 여기에 머무를 생각이란다. 그녀가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으니.”
“함께 떠날 수도 있지 않나요?”
“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상대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단다.”
“네. 알겠습니다.”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량이 다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량의 자취가 사라진 순간.
“나오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