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작은 방에서 장치를 움직이면 나오는 방. 카인의 비밀의 방과 같은 구조의 방이 눈을 드러냈다.
“누가 카인이 만든 곳 아니랄까봐.”
“그치? 여기 저기 쓸모 있는 장치를 참 많이 만들어 놨길래 나도 손을 좀 봤지.”
“와. 그럼 여긴 무슨 던전이냐. 더 무서워졌나 보네.”
항상 카인이 자신의 방을 보여 주면서, 함정들도 함께 보여 주곤 했다.
그 만으로도 충분히 징하다고 생각했는데, 량의 손이 닿았다면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와. 진짜 많이 달라졌는데? 아예 너한테 준 거야?”
“웅. 이제는 내가 총수라고 아예 나한테 다 넘겨줬어.”
본래의 어지럽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서류들이 방의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것이 각이 잡힌 곳이 숨을 막히게 할 정도.
벽에 걸려 있는 그림 마저도 비뚤어진 각도 하나 없이 걸려 있었다. 먼지는 하얀 장갑을 끼고 닦아도 하나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와. 진짜. 너무 여기는 들어가도 되나 싶을 정도다? 심한데?”
“우리 자기가 조금 깨끗한 면이 있죠. 그래도 자기가 하니까!”
자기가 치운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자신의 눈앞에서 꽁냥꽁냥 대지 말라고 소리를 쳐야하는 지 잠시 고민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내려와서 할 이야기가 뭔데.”
“다른 이야기도 많긴 한데, 우선은 적아 식별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라고나 할까?”
“응? 왜? 명확한 거 아니야? [맘몬] 쳐부순다. 끝.”
“하아. 나도 가끔 너처럼 편하게 사는 게 부럽기도 하면서 매번 답답하다!”
그러면서 휘두르는 곰방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튕겨 냈다.
“내가 너한테까지 맞을 수는 없지.”
“짜증 나. 마스터 따위. 쨌든! [맘몬]이 적인 건 당연한 건데, 그 이외에도 생각해 놔야 할 게 있어. 특히 넌.”
“응? 왜? 난 무식해서 그냥 돌진하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정색하는 량이에게 재빠른 사과를 하며 다시 주제로 돌아왔다.
‘쳇. 장난도 못 치나.’
“1차적으로 [맘몬]이 적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다 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넌.”
“우리 사람? 순 상회 사람들?”
“응. 나, 카인, 마틴, 너. 그리고 로사 정도일까.”
“에밋은? 에밋은 왜 빼는데?”
“흠. 너가 수호성에 있을 때 일이긴 한데, 아니 원래 에밋은 그렇긴 했지.”
“뭔데? 갑자기 왜 그러는데?”
“갑자기는 아니었는데, 카인이 말 안 해줬나 보네. 내가 해도 되려나? 아닌가? 하튼,”
“뭐. 무슨 일 있었어?”
“에밋이 귀족치고 엄청 유하고 친구도 있는 것 같지만, 에밋도 결국 귀족이니까?”
“뭔데. 말해 줘 봐.”
“하. 뭐. 어차피 너도 알 일이기는 하니까.”
이어지는 량의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자신이 전혀 모르는 에밋이 있었다.
“그런 거지. 사실 나나, 너나 눈에 보이는 뒷배경이 있다지만, 카인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에밋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고?”
“에밋 입장에서야 뭐, 호의라면 호의였겠지만. 사실 에밋 정도만 해도 정말 대단한 건 맞지. 대상이 잘못 되어서 그렇지.”
“하아. 참. 어렵다. 귀족이라는 게 정말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구나.”
“뭐. 사실 와흐네 공작가가 대단하긴 한 거지. 공작가인데도 그 정도에 그친다는 것 자체가.”
“아니. 그래도. 그냥 그런 친구를 바라고 생각하는 게 어려운 건가?”
아직도 량이 해준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는다. 카인에게 수하로 들어오라고 하는 에밋의 말이.
수하로 들어오라는 제안 자체는 배려라면 배려였을 것이다. 와흐네 영지에 있는 마탑은 마법사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장소니까.
하지만, 마탑에도 두 가지 성격의 마법사가 존재했다. 마법에 평생을 바친 이들이 마법사로, 연구자로 살아가는 이들.
다른 부류는 와흐네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고 마탑에 들어와 마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마법사.
에밋은 카인에게 자신의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고 들어오라고 하였다.
‘재능이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지만 친구이기에 수하로 들어오라고 제안한 거라고?’
심지어 거기에 친우로 대하나 자신의 수하가 되면 철저한 상명하복의 조건이 담긴 서약서를 내밀었다고 한다.
‘받는 만큼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철저하게 계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고?’
조금 실망이 들려고, 아니 들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에밋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근데, 에밋에게 뭐라고 할 건 아니지. 우리도 다르지 않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당연히 다르지!”
“아니지. 너도, 나도 우리 사람에게 잘해 주는 거지 모든 사람에게 한량없이 잘해 주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배경을 보는.”
“아니. 배경을 안 볼 뿐이지. 우리는 서로 다른 걸 보는 거지. 사실 어떤 것도 맞다 틀리다는 없어.”
“어째서? 귀족들은 그럼 그렇게 자기 멋대로 하는 게 맞다는 거야?”
“아니지. 기준이 다르다는 거지. 결국에는 그네나 우리나 뭐 다를 바는 없지. 그렇다고 그들이 적이 아닌 건 아니고.”
“뭔데. 너 너무 어렵게 말하는 거 같아.”
“너가 그런 무능한 귀족을 싫어하는 것처럼, 그 귀족들도 핏줄이 다르다는 생각에 우리를 싫어할 뿐이지.”
“영. 나는 하나도 모르겠다. 굳이 이해해 줘야 하는거야?”
그 말에 피식 웃는 량이었다.
“이해는 무슨. 그런 놈들을 이해따위 해 줄 필요 없지. 다만, 너가 그런 모든 것에 너무 매몰되지 말라는 거야.”
항상 그렇듯, 량의 이야기는 이해가 갈 듯 하면서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몰라. 복잡다단하다. 그냥 이래저래. 에밋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넌 안 그럴 거 같냐? 그냥 환경이 다른 거야.”
‘당연히 다르지! 라고 하고 싶지만, 또 한 소리 들을 것 같고 왠지 맞는 말일 거 같으니까.’
“하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피아 식별부터 하자. 우선 너는 그냥 다 적이라고 생각해.”
“다? 싹 다? 그럼 위험하지 않아? 애초에 에밋의 마법단에 방어를 맡기는 거 아니었어?”
“흠. 원래 그러려고 했는데, 에밋도 바보는 아니라서 대진을 끌고 왔단 말이지. 좀 변형을 할 거야. 뭐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상관없을거야.”
“참 너도 진짜 복잡하게 산다. 그게 다 계산이 되고 막 그래?”
“이게 왜 복잡해? 그냥 너가 숨을 쉬는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재수 없어…”
그렇게 시작된 강의 아닌 강의는 더 이상 뇌가 작동하지 않을 때까지 이어졌다.
“죽을 것 같아. 그냥 빨리 때려 부수고 와라만 기억나는 거 같아.”
“응? 그럼 다시 시작해 볼까?”
“아냐! 다 외웠어! 어서 가서 준비 할게! 고생했어!”
그렇게 량이를 뒤로하고 도망 나갔다. 혹시라도 부를까 최대한 빠르게.
*
그렇게 범이 나가고 난 후에 조금 더러워진 바닥을 쓸면서 입을 여는 량.
“진짜. 쟤는 바보인지, 천재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래도 자기가 정말 좋아한다는 건 알겠던데? 질투나게끔.”
“질투는 무슨, 내가 뭘 좋아한다고 그래.”
“흐응. 그래요오? 누구가 마음 정한 거 같으니까 자기 살을 깍아서 남을 떠먹여 주려고 하는 거 같던데에~”
자신을 놀리는 칼라를 보며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칼라는 진짜 사람 같아 보여서 다행이다. 조금 귀찮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사고 속도를 조금이나마 따라오는 칼라가 더욱 예쁘게만 보였다.
세상에 홀로 사는 것 같은 두려움이, 동 세대에서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두려움이.
두 사람을 통해서 많이 해소가 되었다.
‘그 위도 존재한다는 걸 깨달아서 다행이지. 나도 꿈이란 걸 꿀 수 있으니까.’
그렇게 예뻐 보이는 칼라의 목덜미를 잡았다. 당차 보이는 주제에 이럴 때는 부끄러워하는 모습 또한 예뻐 보인다.
*
“하. 진짜 천재들은 어렵다 어려워. 칼라 님은 도대체 쟤랑 어떻게 대화하는 걸까.”
아예 보는 시야가 다르다는 것을 항상 느끼게 된다.
“날 보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언제나 궁금한 점. 자신을 바라보는 량의 시각은 어떨까. 량이 보는 세상은 어떨까.
“그래 봐야 내가 알 일도 아니지 뭐.”
량이 시킨 일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에밋이 카인에게 그랬다는 게 아직도 안 믿기네.”
량의 말에 따르자면 친우와 친구는 다르다고 했다. 친우가 오래되어 친구가 된다고.
하지만, 에밋의 기준에서 카인은 친우는 될 수 있지만, 친구는 될 수 없다고.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르며 자신은 공작이 될 것이고 친우였던 카인은 아랫사람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카인에게 설명해 주며 수하로 들어오라고 하였다고 한다.
친우와 같은 수하로 대해 주겠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이 최대의 배려인 것처럼.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변했을까.
자신들을 시련에 던전에 데리고 간 이유는 뭐였을까. 자신들은 친구가 맞았을까.
“하긴. 해 봐야 무슨 소용이냐. 지금이 중요하지. 카인, 이 새끼 또 상처받았으려나.”
괜한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밝고 활기차지만 그 누구보다 속이 여린 친구.
“쯧. 빨리 카인이 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이번에 출정하게 될 때, 카인도 함께 간다고 했다. 두 사람과 함께.
가장 빠르게 점령할 수 있는 인선이라고 했지만, 아직 이해가 모두 된 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터 내가 다 이해하고 다녔다고. 그냥 하고 보는 거지!”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금 일어나 수하들이 있는 별관으로 향했다.
어쩐지 모르게 에밋이 있는 별관을 피해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조금, 씁쓸하긴 하구나. 아쉬운 건가?’
*
“범아! 나 돌아왔어! 이번엔 우리 같이 출발하는 거 알지?”
한껏 신난 채로 돌아오는 카인을 보니 어제 씁쓸했던 마음이 많이 가신다.
“두 분도 안녕하세요.”
카인의 뒤에 선 두 분에게 인사를 하자마자, 카인에게 이끌려서 카인의 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자! 선물!”
작은 팔각형의 각기 다른 문양이 음각된 동전을 자신에게 건네주는 카인.
“이게 뭔데? 뭐길래 그렇게 어깨를 활짝 펴고 주는 건데?”
“이게 뭔지 몰라? 화패(花牌)받을 때 설명 안 들었어? 은패를 받았는데도? 도대체 누가 준 거야?”
“형이?”
“뭐? 무슨 형? 너 형도 있어? 마틴 말고도 또 누가 있어? 그런데도 나한테 한 번도 말 안했단 말이야? 소개도 안 해 주고?”
그냥 두었다가는 숨도 쉬지 않은 채 내가 질식할 것 같은 말을 내 뱉을 카인이었다.
“아니. 새로 생긴 형이야. 어머니의 먼저 된 자식들이니까 형이지.”
“뭐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따라와!”
갑자기 자신을 끌고 량이 있는 방으로 데려가는 카인이었다.
‘이럴 때는 마법사 주제에 뭐 이렇게 힘이 센 거야.’
그렇게 끌려서 간 곳에는 칼라 님과 꽁냥꽁냥대는 량이 있었다.
“량아! 너 들었어? 범이 엄마도 있고 막 막 형제도 생겼다는 거?”
한껏 소리 높여서 말하는 카인의 목소리에는 어디엔가 서러움이 묻어났다.
“아. 그거. 맞다. 미안. 너한테도 말해 줘야 하나 싶었는데 잊고 있었어.”
“무어?! 범이 너! 치사하게 량이한테는 말한 거야?”
“어? 량아 넌 어떻게 알… 아! 칼라 님?”
“응. 칼라가 알려 줬지. 진짜 어이가 없더라.”
“왜! 뭔데! 왜 나만 모르는 건데! 그런 보고 없었단 말이야!”
“로즈 님의 자식들의 일인데, 그게 보고가 되면 이상한 일이지.”
“어? 그러고 보면, 량이 너가 내 작은 고모부가 되는거 아니야?”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게지는 량이. 그리고 그 옆에서 빵 터진 카인.
카인에게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자신에게 과분한 양어머니가 생겼노라고.
자신의 일처럼 축하해 주는 카인의 모습이 감동이었다. 진심으로.
“아! 맞다. 이거!”
량이 곱게 접힌 편지를 자신에게 전해 주었다. 어머니께서 쓰신 편지.
“왜~ 뭐라고 쓰여 있는데 그렇게 좋아해!”
“그냥. 한 번 오라고 하시네. 아! 칼라 님도 꼭 같이 데리고 오라고, 량이는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폭풍 전이기에 조금 부담될 거라고 꼭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네.”
“언… 언니가? 나! 어? 잠깐만!”
그렇게 얼굴이 파래진 채로 급하게 자신의 방으로 향하는 칼라.
“왜 그러셔?”
“나이 차가 많이 나서 거의 구문 님이 업어 키우셨나 보더라고. 가장 좋아하고 가장 무서워하시는 분이라더라.”
“근데 너는 왜 그렇게 떠는데?”
“응? 아닌데? 잠시 있어 봐.”
그러고서는 량이도 방을 빠져나갔다.
“나도! 나도 갈래!”
“당연히 너도 가야지. 가서 준비하자. 좀 바쁘게 가야 할 것 같네.”
그렇게 수하들에게도 통보를 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