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후. 대장 꼭 이렇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슴다. 같이 가야 하는 이유가 있슴까?”
3개 마을의 연합군. 각 마을에 자치를 위한 병력을 놓고 왔음에도 그들의 수는 다 합쳐서 기백이 넘어갔다.
“뭐. 어쩌겠나. 명령인데. 거기에 다들 당해 봐야 알겠지.”
“우리가요? 아니면 저쪽이요?”
“어느 쪽이던. 근데, 과연 도련님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실까?”
“도련님이라고 불러도 되는 검까? 대장님이랑 저랑만 알고 있지 않슴까. 도련님도 기억하시려나 모르겠슴다.”
“아마 아실 거다. 그러니 그 마을에 자리를 잡으신 거겠지. 위치가 절묘하지 않나.”
“흠. 그렇게까지 똑똑하심까? 그냥 순박 그 자체였는디. 사탕을 주실 때 정말.”
“보면 알 거다. 네가 본 도련님의 모습은 단면이라는걸.”
“근데, 똑똑한 거랑 강한 거랑은 또 다른 문제 아님까?”
“방도가 있으시겠지. 어쨌든, 너무 막 나가지는 말라는 이야기다.”
“모르겠슴다. 그래도 그 블라우 마을의 지배자가 되었다는 사람이 있으니 다르긴 하겠죠?”
“글세. 친구분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지, 나도 확실한 건 모르는데.”
“친구? 친구면 고작해야 20살 아님까?”
“뭐. 그렇겠지? 아카데미 동기라고 하셨으니.”
“에? 뭠니까? 완전 망한 거 아님까?”
“가 보면 알겠지. 이제 거의 다 와 가는데. 슬슬 보이네. 진짜 크긴 크구만.”
그렇게 소리 죽여 이야기하는 사이에 시야에 마을이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한 조당 대충 40명 정도만 상대하면 된다. 할 만할 거야. 제대로 배우기만 했으면.”
짙은 푸른색에 녹빛의 선들이 그려져있는 코트를 입고 있는 이들이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본다.
“죽이지 말고, 크게 다치면 그 조는 나랑 즐거운 1주일을 보낼 거야. 한 명당!”
그 말에 인상이 지푸려지는 이들이 보이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이어서 말한다.
“자리 잡고 대기해. 신호에 맞추는 거 잊지 말고.”
불안함이 가시지를 않기는 하다. 첫 실전, 첫 호흡. 그것을 너무 과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량이 말대로면 그나마 할 만한데, 좀 빨리 정리해야겠다. 세 마을 중 하나는 [마타 하리] 소속이랬지.’
말은 조당 40명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이 시선을 끌면 반으로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우. 아직 훈련도 제대로 못 시켰는데, 뭐. 량이도 있으니.’
모두가 자리 잡은 것이 느껴진다. 그제야 눈에 재능을 집중해 본다.
‘알면 알수록, 선천재능이라는 거 끝이 없는 느낌이야.’
자신의 재능인 [절(切)]. 조금씩 발전할수록 끊어내는 행동을 위한 모든 것에 발전이 있었다.
지금. 재능을 눈에 집중하는 것도 그 맥락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묘한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꼭. 자른다는 게 물질적인 것만 아니었다는 거지.’
오러를 자를 수 있게 된 무렵부터 단련하고 단련하기를 멈추지 않아서 알게 된 하나.
자르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의지를 집중하면 묘한 선이, 흐름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너무 미약해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를 통해서 중심을 알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로도 충분했다.
‘저긴데. 쫌 많이 돌아다녀야겠네.’
중심이 자신이 특히 신경 써야 할 이들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확인을 마치고 신호를 보낸다.
“후. 가자.”
그대로 모여 있는 인영들 사이로 뛰어들어 간다.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 무기를 뽑는 소리가 들린다.
‘마법사의 단점. 빠르게 적군 속으로 들어가면 잔뼈가 굵은 전투 마법사가 아니라면 대처하기 힘들다.’
“안녕? 아저씨가 요란한 방패 아저씨 맞죠?”
카인이 설명해 준 그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요란한 방패라는 이명과 다르게 엄청 호리호리 했다.
“죄송하지만, 잠시만 어울려 주세요.”
그리고 그대로 몽둥이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타격이 목적이 아닌 밀어내기 위함.
“어? 어이!”
그대로 날아가는 아저씨, 그리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그새 무기를 쥐고 자신을 공격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흠.”
‘조금만 더 해 볼까?’
탑을 전부 개방한다. [이니티움] 덕분에 배우게 된 세밀한 움직임.
3개의 탑이 열리면 마스터가 된다. 하지만, 마스터의 경지가 아니더라도 3개의 탑을 운용할 수는 있다.
‘진짜. [이니티움]은 뭔지를 모르겠네. 정말 대단해.’
본래는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아티팩트. 밖으로 방사하는 것이 아닌 몸 안에서 갈무리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주변에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한다. 그 사이사이를 다른 바람이 채운다.
모여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보이는 순간, 들이닥치는 자신의 수하들이 보인다.
“당황하지 마라! 적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도 정신이 있는 이는 있는지, 그새 대형을 만들어 반격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몽둥이를 고쳐 잡고, 다시 아저씨를 향해서 달려 나간다. 주변의 무기를 쳐 내며 차근차근.
“어. 이야기를! 아 좀!”
자신의 몸 만한 방패. 그것을 앞으로 돌려 매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온다.
‘저기로 던져 볼까.’
바람에 힘을 담아서 다시 아저씨를 올려치는 순간. 거대한 소리가 나온다.
“후우. 도련님 친구 분이라지만, 너무 막 가는 거 아닙니까?”
“우와. 요란한 방패라더니 진짜 장난 아니네요.”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꽤나 강력한 공격인데도 전혀 미동도 없이 막아낸다. 오로지 거대한 굉음만이 들린다.
“후우.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빈약한 거 아닙니까.”
주변을 둘러보니 난장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4명이 한 조가 된 이들이 여기저기서 소란을 일으킨다.
‘역시. 마니에르가 확실히 빠르긴 빠른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바람을 그려 내고 있는 조가 마니에르의 조와 일리야의 조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우왕좌왕해 보이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돈됐다. 괜히 한 마을을 지키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제가 있는 거니까요. 아저씨도 수고 좀 해주세요.”
“저는 아직까지는 ‘적’입니다만?”
“그러니까요. 갑니다?”
자신의 주변에 휘돌고 있던 바람을 발끝에 집중하며 발 구름을 구른다.
“이게 무슨?”
갑작스러운 돌풍이 모여 작은 용권풍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자신은 등을 돌려 도망친다.
‘저 아저씨가 제일 문제라고 했으니까. 나한테 붙게 놔두고.’
레핀의 조로 향한다. 아직까지 어색함이 많다. 유기적으로 움직여야하는데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모르는 망설임이 흐름을 끊는다.
“레핀! 마음 가는 대로 해! 어차피 맞아도 안 죽어! 망설이지 마!”
“자기가 안 맞는다고 너무 말을 쉽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충실하게 말을 듣는 레핀. 꼭 한마디를 저렇게 해야 직성이 풀리나 싶다.
“따라와. 내 뒤를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고 생각해.”
방패 아저씨가 잠시 용권풍과 씨름하는 사이, 레핀의 자리에 들어와 그에게 보여 준다.
“넌 어차피 그렇게 상냥하고 친절하지 못 해. 너가 중심이야! 몰아쳐. 주변이 너를 맞추는 거야!”
등 뒤로 레핀이 따라붙는 것이 느껴진다. 유성추를 사용하는 주제에 배려하려고 하니 될 턱이 있나.
“네가 가진 그대로를 폭발하면 3명이 너를 맞출 거야. 애초에 그렇게 만들었어.”
레핀이 폭풍이 되면 그 중심을 잡아 주는 것이 세 사람. 레핀의 조가 만들어 내는 바람은 미친 듯한 강풍.
한 번 불면 거대한 나무가 뿌리째 뽑히고 배가 뒤집어지는 그런 바람.
그런 주제에 소심하게 조심하니 이루어질리 없었다.
“이렇게! 넌 그저 휘몰아치면 되는 거야!”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레핀이 앞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제야 본연의 모습이 나온다.
유성추라고 하지만, 밧줄의 끝에 매달린 나무로 만든 닻. 그것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그 뒤와 옆을 보조하는 이들. 조금이나마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좋아!”
뒤에서 그를 향해 달려오는 아저씨가 느껴진다. 은근히 능력 있는 아저씨.
“간다! 죽이면 안 되니까 너무 몰아치지는 말고!”
“바라는 것도 많은 대장이구만유!”
신나 하는 레핀을 뒤로하고 다시 아저씨를 마주한다.
“와. 무슨 마법사인 줄 알았습니다. 뭡니까 그건? 재능? 아티팩트?”
“에이. 그런 재능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생각보다 빨리 해결하셨네요?”
이제는 아저씨 혼자가 아니라 그 옆에 거대한 메이스를 들고 있는 거한이 있었다.
“혼자 오시면 되지, 왜 그렇게 무섭게.”
“하. 아직은 부족해서 한 명 몫을 하려면 둘이 필요한지라.”
요란한 방패와 침묵의 메이스. 두 사람은 생각 이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카인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는 그를 위한 경호원이기도 한 이들이었다.
“에이. 카인이 그렇게 두 분 칭찬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런 소리를 하면 섭섭하죠.”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하면 마스터를 잡아 둘 수 있다,라는 것이 카인 아버지의 평가.
본래 마스터를 상대하기 위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맞부딪힐 수 있으려면 적어도 익스퍼트가 10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설.
그런데 그 둘은 둘이면 충분하다는 것이 초인의 평가. 그렇기에 최대한 도망 다니는 수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마음 놓고 싸우지도 못하니까.’
량이의 계획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익스퍼트의 경계에 있어야 했다.
‘덕분에, 배운 거는 있지만. 답답하네.’
언제든지 부르기만 하면 달려오는 시종이 있다가 없는 느낌이랄까. 사람은 있던 것이 없어야, 확실한 상실감을 느끼는 것 같다.
“도련님 친구분이라 조금 두고 보려고 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약간 열이 받았는지, 아까의 사람 좋아 보이던 표정과는 달랐다. 거기에 온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으니 좀 고생한 듯 싶었다.
“에. 저는 그럼 이만.”
망설이지 않고 도망친다. 수하들이 없는, 적들만이 가득한 곳으로.
“잡아!”
침묵의 메이스. 굉음이 나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의 메이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괴력이 없느냐. 땅이 패이는 것을 보면 그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짜 무섭네. 진짜 제대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네.”
백 번 설명을 들어봐야 한 번 본 것이 더 생생하게 와닿는다. 자신이 있던 자리에 생긴 몸의 반 만한 구덩이.
“진짜. 재능이 다양하긴 한가 보네.”
자신이 이렇게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닐수록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진다.
꽤 경험이 많은 마법사가 존재했던 듯, 자신의 눈앞에서 섬광이 터진다.
찾아온 잠시간의 암전. 하지만, 당황보다는 경탄이 먼저 나온다.
“오? 천잰데?”
하지만, 자신에게 암전이란 것이 크게 영항을 주지 않는다. 기척이 느껴지고 바람이 느껴진다.
“와씨. 진짜 위험했다.”
남들이 보면 하나도 위험해 보이지 않은 투로 말을 내뱉지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섬광과 동시에 암전이 찾아오고 그에 이어서 소리도 없이 메이스가 자신을 스쳐 지나갔다.
바람결이 갈라지는 것이 아니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은밀함. 저 거대함에 은밀함이라니 모순이었다.
‘굉음이 울리는 와중에 저 메이스가 다가오면 진짜 심란하겠네.’
왜 저 둘의 조합이 무서운 조합인지 알겠다. 저 둘을 모은 카인의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조금씩 도망다니며, 마법사들을 위주로 기절시키니 시력도 슬슬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 조금씩 정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한데.’
자신이 휘젓고 다니면서 발생한 여파로 기절한 사람들, 자신의 수하들이 기절시킨 사람들.
어느새 똑바로 서 있는 사람보다 기절해 있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수하들 역시 슬슬 상처가 늘어나고 지쳐 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이는 하나도 없었지만, 언제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타이밍 한 번 진짜 기가 막히네.”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울리는 것이 느껴진다.
“하. 도련님도 참. 이러면 인정 안 할 리는 없겠네요.”
어느새 다가온 방패 아저씨. 내려놓은 방패를 보니 이제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그. 한 명이 부추겨서 그런 거라고 했죠?”
“네. 아마 그렇게 깔끔하게 해결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하긴, 생각 이상으로 허접한 부분이 있기는 했죠. 여기도, 저기도.”
“하. 복잡하네요.”
시야에 로사가 기마대를 이끌고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급격히 사기가 떨어지는 모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