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95화 (95/217)

[95화]

B22

“일어났노? 쯧. 고집만 센 멍청한 아해(兒孩 : 아이) 같으니라고.”

눈을 떠 보니, 자신이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천장이 너무 어색했다.

‘무슨 일이지?’

분명, 기억을 하고 있는데 온전한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온 것인지 알겠지만, 알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좀! 누가 눈치챈다고! 슬쩍, 슬쩍 풀고 할 것이지. 에잉! 멍청하기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오즈안 님께서 몹시 불만에 찬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계셨다.

“탁!”

가벼운 소리에 전신이 찌릿한 기분이란. 일어나서 인사를 드리려다, 이마를 얻어맞기만 했다.

“됐다. 일어나기는 무슨. 그렇게 피를 철철 흘리고도 잘만 가더니, 여기 와서 쓰러지는 건 무슨 심보더냐!”

몸을 보니, 상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금 기력이 허한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실 것 같았다.

“옜다. 받아라.”

툭 던져진 것이 가슴팍에 닿았다. 남색 수실에 황금빛 동전이 달려 있었다.

“오즈안 님? 이게? 이렇게 주셔도?”

남색 수실은 본래 시상과 함께, 꽤 격식을 갖추어서 주는 것으로 들었다. 연전이 끝나고.

‘연전이 끝나고? 끝나고 내가 받았구나!’

어떻게든 참 잘 끝내고 왔다 싶었다. 생각 이상으로 피를 많이 흘렸는지, 홀 앞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참. 이런 경우는 또 오랜만이네.’

항상 전장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와서 쓰러지는 것은 일상이기도 했다.

지금에야 그 느낌이 어색하고, 처음이지만 본래는 가장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거기에 더해진 것은 조금의 의아함. 사제분이 계신 와중에도 자신이 쓰러졌다니.

“멍청하기는, 그렇게 피를 흘려 놓고 멀쩡할 것이라 생각했냐! 그리고 쓰러지면 될 것이지 왜 버티기는 또 버텼어?”

한껏 혼나면서도 새로운 사실이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위험한 순간이 아니라면, 자연 치유를 하게 하신다는 거구나. 뭔가 복잡하네.’

“딱!”

전신이 찌릿거리는 저 딱밤은 정말 배우고 싶었다.

“어딜! 어르신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딴 생각을 하고 있어!”

참 무서운 양반이 따로 없다. 독심술을 진짜로 익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헛생각 그만하고! 아직 멀었다! 그나저나. 아쉽게 되었구나. 조금 더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네?”

“되었다! 이제 일어났으니 그만 가보거라. 쯧. 그리고 조심하거라.”

뭔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강제로 쫓겨났다.

“흠, 그래도 이 수실 마음에 드는데?”

유백색의 거대한 도, 그리고 그 도파(刀把)의 끝에 달린 남색 수실, 금색의 동전.

자신의 도와 잘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은고 두 번에, 동고 한 번인가?”

이번에 얻게 된 출입증까지 합친다면 어느새 세 번의 기회가 자신에게 있었다.

일이 많아서 들리지를 못했는데, 이 기회에 잠시 들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대장! 대장님!”

갈색 머리에 촐랑이며 다가오는 마니에르.

‘도대체 저게 어디가 철혈이고 역대급이라는 건지. 천재들은 다들 좀 나사 하나가 빠진 건가?’

“왜. 다 가르쳐 줬자나. 나 힘들어. 좀.”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수정구에서 미친 듯이 빨간 불이 들어오는데요?”

“뭐?”

별채에 존재하는 작은 수정구. 카인이 설치해 둔 비상연락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켜졌다는 건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가자!”

마니에르를 지나쳐, 최대한 빠르게 [바람이 머물다 간]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

“하. 진짜 도움이 안 되네. 마니에르. 애들 불러와라.”

2층에서 기다리던 마니에르에게, 수하들을 모두 소집하라고 일러두고 준비를 하기 시직했다.

“후. 보라 수실은 무슨. 내 인생 진짜 사건이 끊이지를 않네.”

허리에 도를 차고, 용병단의 가죽 갑옷을 차고, 마지막으로 코트를 둘러 입었다. 전쟁을 나갈 때 하던 의식.

별채로 내려가니, 모두 준비가 된 상태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이한 열기와 함께.

흥분. 긴장. 설레임이 뒤섞인 그들은 보니 오히려 자신이 편안해 지는 느낌이 든다.

“후. 좀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려고 했는데, 하필 이렇게 사건이 터지네.”

그 말에 왜 다들 조금 신나 보이는 건지.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는데 왜 저리 신나 있는 건지.

“우리 마을에 전쟁을 선포한 이들이 나타났다고 하네. 슬슬 간도 봤다 싶었나 보지.”

환호성이 들려온다. 도대체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 이들인지 웃긴다.

“아직 할 것도 많고, 가르칠 것도 많긴 한데. 우선 마을을 지키는 것부터 해야지? 그리고 실전에서 배우면 되고.”

저리도 신나 하는 것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가자!”

배로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 목적지는 마을이 아닌 다른 곳. 량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떠난다.

*

“잘할 수 있을까? 너무 갑작스러운 거 아닐까?”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가장 높은 곳. 그곳에 카인과 량이 자신의 마을로 향하는 이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흠. 뭐 대충 될 것 같은데. 갑작스럽다기 보다 우습게 본 거겠지.”

말을 하는 량의 표정에는 그간 보지 못한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

“어리고, 별로 수도 없고, 그저 부모의 위세만 믿는 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서도의 북쪽에는 이렇다 할 구역주(區域主: 몇 마을을 지배해 그 지역을 지배하는 존재)가 존재하지 않았다.

남쪽은 맘몬의 세력이 대부분 쥐고 있는 상황. 몇몇의 마을을 제외한다면 세 명의 구역주가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마타 하리]의 정보로 그 세 구역주가 모두 맘몬의 휘하임을 알게 되었다.

“쯧. 그래서 우선 북쪽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쉽게 가는 일이 없네.”

“그래도 너무한 조건이라고 생각하기는 해. 사상자가 한 명도 나오면 안 된다니. 그냥 싫다는 이야기잖아.”

“뭐. 범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싸그리 다 없애고 싶은데.”

그 말에 진심이 드러난다. 냉혹하기 그지 없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던 표정.

“그래도 일단 하나로 만들어 놓고, 정리해 놓으면 쓸 만해지겠지.”

“진짜. 량이 넌 가끔 많이 무서운 거 알지? 범이 아니었음.”

“알아. 그래서 범이랑 너랑 마틴한테 고마워하고 있어.”

‘인간을 인간으로 보게 해 준, 나를 인간으로 만들게 해 준 게 친구들이라니. 웃기지도 않아.’

비틀린 표정이 슬쩍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순식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량.

*

사람은 언제 공포를 느낄까?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 공포를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회피를 할 뿐. 자신이 그런 공포였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세상이 뚜렷하게 보였고 알 수 없지만 말들이 뚜렷하게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낳은 부모라는 인간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재능은 분석. 나누고 해체하고 이해하는 것.’

자신은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그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야 각자가 가진 재능은 성장하면서 서서히 깨닫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아는 것이라는 것도.

하지만, 자신은 그 과정이 몹시 빨랐다. 2살이 되기 전에 자신은 사물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의 재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아이, 아니 아기가 눈동자를 뚜렷이 보며 어눌하게나마 말을 하는 것이 부모라는 존재에게는 공포였나보다.

몇몇 사건들이 일어났고, 그것이 자신으로 인해서라고 부모라는 존재는 말하기 시작했다.

저주받은 아이. 그것이 부모가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태어난 지 3년도 되지 않아서, 빈민가에 버려졌다. 부모의 손에 의해.

그곳에서 조금 오지랖이 심한 거지를 만났다. 그 거지 덕에 자신은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도와 주었다. 빈민가의 아이들을 모아 일을 시키고, 그 거지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 내 나이 8살. 하지만, 결국 그 거지도 변했다. 돈이 생기고 지위가 생기니 변했다.

자신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그 이룬 것을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기에 먼저 정리했다. 자신에게 인간이란 하나의 장기짝에 불과했다.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무렵,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사실을 같이 깨달았다.

그래서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없는 거지들의 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이 도저히 분석할 수 없는 영감을 만났다.

그 영감을 따라갔고, 제자가 되었다. 삶이 변했고 배움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인간이란 장기짝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흥미로운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어린아이인 척하는 이상한 놈, 하나는 괴물을 품고 있는 놈. 둘이 어울려 다닌다니. 저것도 재밌네.’

비릿한 혈향이 풍기는 아이와 차갑기 그지없는 냉랭함이 풍기는 아이.

그 둘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흥미가 생겨났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이 변하기 시작했다.

혈향이 풍기는 주제에 열등감에 시달리며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아이.

냉랭하기 그지없으면서 따스함을 갈구하는 아이.

꼭 모든 인간이 다 한 면만을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석되지 않는 것들이 찌꺼기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여전히 자신은 그대로였다. 흥미 본위로 움직인다. 그것이 자신이었다.

그래서 범이라는 아이를 따라서 수호 용병단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결국, 만났다.

한없이 빛이 나고 나서 자신을 너무 쓸모없는 버러지로 만드는 존재감.

그 존재의 한마디가 자신의 귓가를 울렸고, 눈물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고생했다. 너는 사랑스럽고 누구보다 인간다운 인간이란다.”

그렇게 진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공감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다. 다만, 여전히 소수이지만.

*

‘미쳤네. 갑자기 쓸데없이. 진짜. 확 정리해 버릴까 보다.’

높은 곳에서 보이는 저 무리들이 개미 같아 보인다. 그저 밟으면 죽는.

“하. 진짜 빡빡하게 해야겠어. 아무래도 스트레스라는 걸 나도 받나보다.”

“웃기고 있네! 퍽이나 그렇겠다.”

아옹다옹하는 사이, 수정 하나에 빛이 들어오더니 화면이 하나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범이다!”

“역시. 시간 하나는 칼같이 잘 지키는구나.”

“이거 진짜 좋은 것 같은데 좀 많이 만들면 안 돼?”

“하. 이래서 무식한 마법사들이랑은 말을 섞으면 안 돼요. 이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아냐.”

“무식하다니! 그럼 네 눈에 안 무식한 사람이 누가 있는데!”

“파울로 님. 성하. 마틴.”

“재수 없어. 그래! 천재라 아주 좋겠다!”

‘지도 나 같은 괴물이면서 웃기고 있네.’

“그렇게 하면 좋냐?”

“뭐! 너도 비슷해져 가는 주제에 말이 많다?”

“후. 됐다. 그나저나. 어떻게 하려나? 대충 말은 해 주었다지만, 쉽지 않을 텐데.”

*

강을 타고 내린 그 순간부터 기척을 없애고 달리기 시작했다. 량에게 듣고 난 후 바꾼 무기들.

함께 달리고 있는 모두가 뭉툭한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진짜. 다행이네, 미리 만들어 둔게.”

“대장님. 좀 이상한 거 같아요.”

“대장 변태요?”

“너희 훈련 때문에 만든 거라니까!”

량이에게 부탁해서 만든 것들이 알맞게 도착하기도 했었다.

“아니 세상에 철목으로 무기를 만드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있다요. 진짜 변태가 아니고서는.”

“게다가 이 철목 이상한 철목이야.”

“난 원래 몽둥이로 만드는 재료인 줄 알았다고!”

스승님께 열심히 맞던 시절 스승님의 몽둥이를 파울로 님이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량이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몽둥이가 철목(鐵木)으로 불리는 유명한 나무였다. 배의 재료가 되는.

단단한데 탄성이 있고, 거대하고 가벼운 재질이기에 최고의 재료였다.

그런 철목을 압축하여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이 맞고 맞은 몽둥이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눈에 보이는 상처도 안 남고 아프기는 오지게 아픈 그런 몽둥이.

“조용!”

그렇게 한창을 구박을 받으면서 달리다가 멈추고 명령을 내렸다.

“기억해. 죽이면 안 돼. 그리고 4인으로 한 번 시도해 봐.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

이제 평범한 사람의 눈에도 보일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그곳에 보이는 백 명이 넘는 무리.

그곳을 향해 달려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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