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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88화 (88/217)

[88화]

‘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그럼 한 번?’

꽤 재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무인은 자신의 무기로, 전투로 드러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꽤 마음에 들었다. 생긴 것이 보여지는 것과 다르게 마음에 드는 친구였다.

하지만, 아직 더 볼 것이 확연하게 남아 있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 창을 들고 들어오는 마니에르는 반도 꺼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이거면 잘 통할 것 같은데.’

순환되는 탑을 모두 첫 번째 탑으로 흘려보낸다. 폭풍이 종종 드러나던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얼핏 보면 포기하는 듯하는 모습. 힘을 모두 빼고 도를 늘여 놓는다.

여전히 빠른 속도로 자신을 향해 찔러 들어오는 마니에르의 표정은 의아함과 분노 그리고 당황스러움이 섞인다.

그리고 그 순간,

라니에르는 어느새 연무장 밖으로 튀어 나가 벽에 굉음을 내면서 부딪힌다.

‘흠… 생각한 거 이상인데. 워낙 빨라서 그런 건가?’

예상 이상의 효과였지만, 담담한 척 가만히 서 있는다. 다른 의미의 고요함이 찾아온다.

“마니에르! 신성 마니에르가! 벽에 쳐 박히고 맙니다. 과연 다시 일어서서 다가 올까요!”

사회자의 외침을 끝으로 모두가 고요한 채로 자신과 벽에 파묻힌 마니에르를 번갈아 본다.

자신을 향한 환호성이 터진다. 간간히 욕이 섞이는 것이 들렸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온 신경은 벽에 파묻힌 마니에르를 향해 날이 서 있을 뿐이었다.

‘역시!’

무너진 잔해가 들썩거리더니 마니에르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일어나고 있었다.

그저 요요히 빛이 나던 붉은 눈동자가 한층 더 색을 발하고 있었고 입가에는 미소가 짙게 서려 있었다.

“와. 루키가 아닌 거 같은데. 괜히 노란 수실이 아닌가 보네. 좋다! 좋다! 조심하셔요. 아직 조절을 못하니.”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자신의 귀에서는 또렸한 의지가 실려서 닿은 그의 소리.

마치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으며 몸을 몇 번 땅에서 박차더니 순간 사라진다.

‘하!’

온 신경을 집중하지 않고 있었더라면 자신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아무리 경계에 서 있는 정도로 자신을 억압하고 있더라도 감각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런데 일시적으로나마 그 감각을 벗어나려고 했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했다.

“와! 역시! 역시! 역시!”

한껏 신이 났다. 마치 자신이 원하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점점 빨라지는 마니에르.

‘좋다. 량이한테 맡겨야 겠는데? 잘 꼬셔 보라고 해야지.’

그리고 기세를 다시 바꾼다. 진심으로 덤비는 마니에르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

‘비록 다 보여 주지는 못하지만. 대충 재능이라고 이해할 정도로만.’

경계에 있다면 몸이 견디지 못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바람의 탑] 또한 괴랄한 무예이긴 했다.

애초에 인간의 몸에 모든 바람을 담을 발상 자체가 범상치 않은 것이긴 했다.

첫 번째의 탑과 두 번째의 탑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한다. 마치 본래부터 맞물리는 것처럼 아귀가 맞는다.

자신의 몸에 마치 두 가지 바람이 동시에 존재하는 듯했다. 산들바람이 불고 그 뒤로 폭풍이 따라왔다.

두 탑이 하나가 되자,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재능을 일깨운다.

이제는 완연하게 깨어나 싹을 틔운 재능. 그 재능은 자신이 자를 수 있는 것을 한층 늘려 주었다.

‘마르쿠스랑의 일 후에, 나아갈 길도 어렴풋이 찾기는 했고. 이게 말이 되는가 싶기는 하지만. 뭐 재능 중에 말이 되는 게 있기는 한가.’

바람의 흐름이 더 명확하게 느껴진다.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마니에르의 움직임이 단순하게 변한다.

자유자재(自由自在)로 변화하는 바람과 비교한다면, 마니에르의 움직임은 단순하다 못해 뻔하다.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한 번의 지르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찔러 들어오는 듯해 보인다.

‘어이가 없는 건 저게 다 실체라는 거지. 허상도 허실도 아니고. 미쳤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밌었다. 언제 이런 경험을 또 해 보겠나. 그리고 미쳐서 덤벼 오는 마니에르도 신나 보였다.

이제, 슬슬 폭풍이 몰아칠 정도가 되었다. 바람이 모이고 모여서 휘몰아치는 그 순간, 터트릴 그 순간을 가늠하던 때!

“털썩.”

“아… 조루였냐?”

그렇게 기절하는 마니에르에 모습은 개운한 미소가, 여전히 멀쩡히 서 있는 자신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떠올랐다.

“누가 이긴 건지 모르겠네.”

사회자가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고 관객들은 모두 자신을 향해 환호 했지만, 아쉽고 아쉬울 뿐이었다.

*

그리고 뒤에 나온 세 사람은 그저 그랬다. 한 제국 특유의 무예가 조금 눈에 들어왔을 뿐.

오히려 첫 상대인 마니에르가 훨씬 재미있고 설레는 상대였다. 뭔가 점점 욕구불만이 되어 가는 것 같은 그때.

‘어?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아닌가? 묘하게 이상한데.’

사회자의 소개를 유심하게 듣겠다 생각한 순간 자신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사회자.

“이제 마지막 개인전의 5번째 선수! 불과 2년 전 혜성처럼 등장해! 무투의 탑에 파란을 몰고 온 그!”

그러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돈을 땄다는 듯 말하는 이가 제법 되었다.

‘하기사. 저 정도면, 내가 느끼는게 맞으면 파란을 일으킬 만한데. 조금 이상하단 말이지. 마치. 그래! 균형이 어긋난 것처럼.’

“어디서 왔는지, 언제나 가면을 쓰고 다녀서 그 얼굴이 어떤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의 시종 겸 수행원을 데리고 있는, 가면을 쓴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어이가 없었다.

‘쟤가 저기서 왜 나오는 건데?’

그 시종도 자신을 본 것인지 순간 당황하다가 이내 분노가 서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옆을 보더니 비웃음을 날린다. 마치 넌 졌다는 듯이.

‘쟤는 여전하구만. 근데 왜 저기에 있는 거지?’

“최근에 시종을 새로 들이면서 그의 정체가 드러날까 했지만, 여전히 신비에 쌓인 그! 과연 루키는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흠. 아직 제대로 싸우지 않은 모양이네. 그럼 곤란한데. 그래도 뭐. 해보면 알겠지.’

누구보다 괴랄하고 강한 인간들과 대련을 해 온 자신의 경험을 믿었다.

“한 자루 대검을 들고 혜성처럼 등장해서! 강자의 면모를 갖추고 이번 해에 초록 수실을 졸업할 지도 모른다는 내기를 만들어 낸 강자!”

시종이 뒤로 물러난다. 저 자신만만한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새삼 보고 싶었다.

‘역시. 쟤는 괴롭혀야 제맛이지.’

“첫 대결 이후 승승장구를 이어 온 루키와! 이제는 전통의 강호가 된 철가면! 대결을 시작합니다!”

철가면을 쓴 사람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다. 가면의 눈은 비어 있었기에 그의 눈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뭐냐. 저 눈빛은. 마치 자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하는 태도는.’

누가 누구를 아래로 보는 건지. 이상한 기운을 풍기는 주제에. 확 개방을 할까 싶었지만 량이의 당부가 떠오른다.

‘너 절대로, 절대로 네가 마스터인 걸 드러내면 안된다! 알았지? 그게 내 계획에 핵심 중에 하나다!’

거듭 강조하고 강조한 말이기에 함부로 어길 수가 없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계획이 들어 있는데, 그걸 망치면. 자신은 감당할 자신이 없다.

‘에효.’

“흠. 애송이 치고는 나쁘지 않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군. 뭐. 너 정도라면 첫 제물로는 알맞겠군.”

‘아. 그런 부류구나. 재수 없는 살인마. 그럼. 뭐 나도’

“제물” 그 단어에 기분이 팍 상했다. [무투의 탑]. 그런 만큼 온갖 사람이 모이곤 했다.

무투의 탐에서 개인적인 대련이나 전투는 엄금(嚴禁)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련장에서는 그 규율이 자유로웠다.

게다가 사제님들이, 그것도 여차하면 주교님이 치료를 해 주시니 자신의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곤 한다.

그 중에서도 악질들은 “제물”이라 표현하며 상대를 장애로 만들거나 죽이는 것에 의의를 둔다.

주교조차 나의 상대를 고치지 못 했다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이들.

그 중에 하나가 눈앞에 있었다.

‘로안은 왜 꼭 저런 이상한 것들이랑 어울리는지. 쯧.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제물은 무슨. 재수 없게. 하. 스트레스나 풀어야겠네.”

자신의 말을 듣고 뭐라 반박하려 하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곧장 탑 두 개를 합친다.

활력이 돌고 시야가 변한다. 그리고 재능을 한껏 도에 담는다.

“제물이라고 했지? 재밌는 경험을 시켜줄게.”

자신의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온갖 벨 수 있는 길들이 눈에 들어온다.

‘오랜만에 거부감이 없는 인간을 만났네. 정말로.’

이제는 너무 오래되었다 생각한 전생(前生)의 감각과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보다 못나고 약했지만, 사람을 베는 것에 국한(局限: 일정 부분에 한정함)한다면 그때가 더 익숙했다. 망설임은 없었고 거북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이었다. 수호산맥을 제외한다면 대륙에는 벨 대상은 인간 뿐이었다.

그렇기에 베고 또 베고, 베었다. 언젠가부터 인간은 모두 베는 대상이 되었다.

이번 생에는 그것이 몹시 거북했다. 정말 웃긴 일이기도 했다. 몬스터를 베고 마수를 베지만, 인간은 거북했다.

눈에 들어오는 그 선들이, 가끔 지인들에게 드러날 때면 더욱, 거북했고 보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베어야 예상하지 못할까를 고민한다.

‘헤. 오랜만인데.’

순식간에 튀어 나간다. 언제나 바람은 생각하지 못한 때에 튀어나오곤 한다.

특히나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산들바람은 더더욱 그러하다.

발목을 노리고 들어가는 도를 늦게 눈치챘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자신의 도에는 자신의 재능이 담겨 있다.

‘쯧. 살짝 얕았네.’

생각보다 맷집이 있는 듯, 아킬레스건을 끊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럼. 좀 더 빠르고 다양하게 가볼까?’

변덕스럽기 그지 없는 바람이, 자신의 도를 통해서 연무장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

정신은 금방 차렸다. 사제님들의 치료는 실로 대단하니까. 거기에 다른 문제가 아니라 육체가 과부화 되었을 뿐이었고.

‘그래서 지금 나왔는데. 와.’

자신 이후의 3명은 그다지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상대가 철가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 설마하는 감정이 들었다. 이기길 바라면서도 그것이 가능할까 싶은 그 마음.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처리는 광경은 자신을 사랑에 빠지게 만들었다.

‘저건.’

자신의 이상향이 펼쳐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화무쌍한 도격(刀擊).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만, 하나하나가 변칙적이다.

‘내 이상향이 여기에 있었다니.’

자신의 재능에 눌리기 일수였다. 그렇기에 직선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리는 그림은 그것이 아니었다. 미친 듯이 빠르지만, 변화무쌍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저. 저 분을 따라가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점차, 점차 그 도격을 뇌리에 새기기 시작했다.

*

“하! 빠르고 변화롭지만, 간지럽기 그지 없군.”

“그러면 그 옷들이나 내려놓고 말하지 그래? 마수의 가죽으로 만든 보호구를 찬 채로 말해 봐야 하나도 설득력이 없는걸?”

몇 번의 손맛을 보니 알게 되었다. 자신이 자주 보던 마수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보호를 위해서 마수를 처단하기도 하지만, 인기가 많은 마수는 의뢰를 받아서 처단하기도 한다.

‘2성 마수 중에서 가장 방어력이 뛰어나다는 트거의 피부로 만든 가죽 갑옷. 어떻게 저렇게 구했지?’

2성 마수인 트거는 변종이었다. 그만큼 찾는 이는 많았지만, 정작 찾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사냥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용병들도 매우 소수. 그렇기에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그런 마수의 가죽으로 이루어진 가죽 갑옷을, 위아래로 모두 갖춰입었다.

그 반증으로 베어진 부분이 천천히 재생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뒤에 뭔가가 있기는 한가 본데. 그럼.’

재능을 깨우고 난 후에, 세세하게 연습하기 위해서 단계를 정해 놓았다.

재능을 한 차례 더 깊게 덧씌운다. 마수를 상대할 때처럼.

“하! 좋은 무구를 구하는 것 또한 무인의 능력이지. 이제 장난은 그만하지.”

뒤로 물러서더니 양손으로 대검을 잡는다.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뭐려나.’

“하압!”

세찬 기합 소리와 함께 자신을 향해 뛰어서 크게 휘두르는 철가면.

꽤 빠른 속도였지만, 자신 정도면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재미없지.’

재능과 검기를 한껏 담은 도를 허리에 둔다. 그리고 한 점. 저 대검의 한 점이 선으로 눈에 들어온다.

“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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