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기절한 모두를 프라우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구석에 치워 놓는다.
그 기척은 느껴질지언정 지금 두 사람에게는 다른 세상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상대의 얼굴이, 전신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분명히 경지는 내가 압도적인데, 이 긴장감은 진짜. 천재라는 건가.’
아직 마스터에 오르지 못한 로사. 그 경계에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제아무리 경계에 있다고 한들 마스터와 익스퍼트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격차가 있다.
그럼에도 그 투기가, 열망이 자신의 전신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로사가 있다는 것이 너무 큰 축복이었다.
‘하. 도(刀)를 들고 싶은데, 탑도 다 개방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로사만 보면 끓어오르는 느낌이 있다. 모든 것을 쏟아 내고 싶은 그 기분.
그 기분은 로사가 점점 성장할수록 더 강해지고 있었다. 전생(前生)에서 스쳐 지나가듯 본 그 장면.
그 한 장면이 너무 강렬해서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그 장면. 전장에서 장군으로 활약하는 그 모습.
로사가 점점 그 모습을 닮아갈수록 호승심이 주체할 수 없이 올라오는 자신이 보인다.
‘아직. 아직이니까.’
“진짜 괴물이 다 되어 가는구나. 넌. 언제나 나보다 앞서 있어.”
눈을 반짝이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로사. 그 눈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저 눈에 비치는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자신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온전히 집중을 하면 온통 어떻게 하면 베어질지만 보인다.
‘약점이라. 어떻게 보이려나.’
“왜? 네 눈에는 내가, 세상이 어떻게 보여?”
순간적이지만, 코와 눈이 찌푸려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로사의 세상도 아름답지만은 않은가 보다.
“그냥. 그렇게 좋지는 않아. 몰라. 그럼. 이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이상하고 신기한 걸 배웠네, 이상하게 보이는데, 사라진단 말이지.’
그래도 피에르가 모든 것을 가르치긴 했는지, 로사의 움직임에서 폭풍이 그려진다.
순간적인 사각에서 레이피어의 찌르기가 폭풍처럼 몰아친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미 몸에 구명이 몇 개는 났을 움직임.
‘탑. 하나로 우선.’
마지막으로 개방을 했던 탑을 연다. 곧장 몸이 가벼워지고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찌르면 찌르는 데로 부드럽게 넘어간다. 강렬한 폭풍 속에서도 폭풍의 눈에 있는 것처럼 고요하며 부드러운 움직임.
순간 로사의 움직임이 변화한다. 폭풍 같던 그 찌르기에 변화가 생긴다. 마치 폭풍에 눈이 더해진 그런 느낌.
‘진짜 괴물은 눈앞에 있었네. 가르쳐 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로사를 회유하는 과정은 자신이 안드로니쿠스의 적법한 후계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는 [바람의 탑]의 형식(形式)을 알려주었는데,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로사.
그 괴물 같은 습득력에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조금 버겁기는 한데, 아직은 괜찮아.’
폭풍 같은 찌르기에 간혹 섞이는 꺾어짐이 더해지자 예측을 벗어나는 움직임이 나온다.
조금씩 베어져서 피가 흘러내리지만 아직까지는 모두 얕은 상처들. 이 순간이 너무 즐겁다.
‘나와 같은 [바람의 탑]을 사용하는 사람을, 그것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언제 또 보겠어.’
로사와의 대련이 너무 즐겁다.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그 움직임이 너무 흥겹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작은 생채기들이 모여 옷은 붉게 물들었고, 로사의 전신이 떨리고 있었다.
잠시간의 대치 기간에 전신이 떨리는 로사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최대치를 보여 줘. 지금 너가 할 수 있는.”
“조심해. 아직 나도 적당히가 안 되는 거니까.”
[바람의 탑]. 열려 있는 세 번째 탑을 타고 두 번째 탑과 첫 번째 탑을 개방한다.
전신에 활력이 돋고, 몸이 가벼워지는 동시에 근육이 쫄깃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최대한 마나를 갈무리하고 갈무리하지만 아직까지는 모두를 다루는 것은 무리였다.
‘힘이 넘친다. 진짜 자칫하면 위험하겠어.’
“로사. 진짜 조심해. 사력(死力)을 다해야해.”
“알겠어.”
심지가 굳은 로사의 눈동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인다. 그리고 자신은 바람이 되었다.
*
그 대련을 바라보고 있는 프라우는 경악에 경악을 거듭할 뿐이었다.
“아가씨고 천재지만, 범 님은 도대체가.”
자신의 세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천재는 당연 로사 아가씨였다.
순직한 아버지 대신에 언제나 함께해 주던 아가씨였다. 함께 자고 함께 훈련하고 함께 자라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동생인 로사.
어린 시절 항상 트레어라고 부르며 자신을 잘 따르던 그 아이는 찬란한 재능과 함께 꽃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카데미에서 만난 이상한 평민에게 계속해서 절망을 맛보았다.
관계가 어색해지고 외로워 하는 로사를 보며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쫓기고 쫓긴 신전에서 만난 범이라는 평민. 그 평민 덕에 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자신의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범이라는 평민이 그 안드로니쿠스 님의 후계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보다 로사 아가씨가 빠르게 배우는 모습을 보며 더 놀랐다.
하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세상에 천재를 넘어서는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하는 것보다 맞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계속해서 튀어 나가고 싶은 마음에 몸이 움찔거린다.
‘나간다고 내가 막을 수나 있을까.’
폭풍 같다가 어느 순간 고요해지고 그러다가 부드럽더니 다시 폭풍같아진다.
“진짜, 바람 같다. 저게 진짜 안드로니쿠스 님의 바람”
변화무쌍하기 그지 없었다. 단 한순간도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로사 님이 눈에 들어온다.
“로사 님!”
*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는 로사가 눈에 들어온다. 천재는 그저 재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만 같다.
그리고 눈동자에 힘이 풀어지는 것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로사의 옆으로 간다.
“로사 님!”
프라우의 외침이 들린다. 그 전에 로사를 부드럽게 안아든다.
“고생했어. 대단해. 역시 넌 정말 대단해.”
자신의 말을 들은 것인지 미소가 떠오르는 로사다. 분명 기절한 것 같았는데.
로사를 안아들고 별관을 지나서 본관의 2층으로 향한다. 프라우는 뭐가 그리 불만인지 뒤에서 투덜거리지만.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갔다.
*
조용하고 고요하기 그지없는 별관이지만, 한 발 안으로 들어가면 곡소리가 울려퍼진다.
여기저기로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비명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로사와 프라우가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이번에도 지면 우리가 밥이 없어! 공주님이라고 봐주지 말라고!”
두 패로 나뉜 이들이 서로를 향해서 격돌을 하다가 뛰어든 자신으로 인해서 다시 한 패로 엮인다.
“나쁘지는 않은데! 아직 느려!! 비어 있는 공간이 너무 많잖아!”
“대장! 너무한 거 아뇨!”
“죽어라 대장!”
“한 대만 맞자!”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대장이라고 부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죽으라고 외치는 이들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1주일 치고는 정말 빠르게 느네. 역시 사람은 굴려야 제맛이지.’
문득, 로사가 기절하고 일어난 그 다음 날이 떠오른다.
*
“네?!”
자신의 말에 눈이 똥그래지는 프라우가 눈에 들어온다. 반면, 로사는 미소를 짓는다.
“왜? 어려운 말한 거 아닌데? 너가 2조장을 맡으라고.”
“아니. 전! 난! 내가 왜!”
“너가 제일 알맞으니까. 그리고 다른 이들도 불만 없는 것 같은데?”
기절하고 난 뒤 일어나기가 무섭게 자신에게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이들.
모두가 강해지기 위해서, 경계를 넘기 위해서 자신을 찾아왔다. 대화를 하면서 더욱 자세히 한 명 한 명을 알게 되었다.
사슬을 쓰던 남자는 레핀이었고 쌍 단도를 쓰던 여자는 일리야였다.
그래서 오늘 정한 것이 1조장으로 일리야 2조장으로 프라우였다.
로사는 훗날 자신의 가문의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 나서야 하기에 조장으로 임명하지 않았다.
보는 시야가 넓고 지휘에 능숙한 일리야는 1조장으로 임명을 했고 레핀은 돌격을 담당할 2조를 위해 부관으로 임명한다고 하니 수긍했다. 여기서 수긍하지 못한 인물은 오로지 프라우뿐이었다.
“훗날에 로사가 떠나도 넌 못 떠나. 못 들었어?”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얼굴로 로사를 쳐다보는 프라우. 그 눈을 제대로 못 맞추는 로사.
그 광경을 보아하니 아직도 프라우에게 말을 하지 못한 듯했다. 프라우에게만은 참 무른 로사였다.
“왜죠?! 누가 결정한 거죠?”
진심으로 화가 나 보이는 프라우였다. 조금 무섭기도 했다.
“량이가 제안했고 내가 받아들였어. 아무래도 난 프라우가 있으면, 마음을 놓게 되니까.”
“아가씨.”
저 표정은, 유모가 카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던 그런 표정이었다. 진짜 가관이다.
“난. 프라우를 믿어. 내가 없이도 잘할 거야!”
“아가씨!”
‘신파를 찍는다 찍어, 부끄럽지도 않나? 나이가 몇 갠데.’
문제는. 자신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다들 달달하고 감동받은 눈으로 저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감성이 메마른 건지. 여기 감성이 이상한 건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서 빠르게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자! 그럼 여길 봐. 이게 기본적인 우리의 진형이 될 거야.”
매번 어디에서 꺼내나 싶더니. 모든 여관들에서 카인이 자신에게 강의를 해 주던 칠판을 이번에는 자신이 꺼내 들었다.
“기본적으로 망치와 모루라고 생각하면 돼. 수호용병들이 사용하는 가장 기초적이 진형이야.”
짧은 설명 이후로는 몸이 기억하는 방법이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무자비하게 굴리는 시간이 찾아왔다.
*
‘그때는 그렇게 서로 애틋하더니 지금은 그래도 독기가 생겼네.’
가장 치사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먹을 것으로 조련하는 것이 었다.
중요한 점은 먹는 이들 누가 먹어도 맛있는 것을 먹어야한다는 건데, 그 부분은 쉬웠다.
‘애초에 나만큼 도축하는 사람이 손질한 고기를 먹어 본 사람이 얼마 없으니까.’
도축은 언제나 빠짐없이 수련해왔기에 지금은 티에르 님과 비슷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건 진짜 내 재능의 덕이지만, 덕분에 스승님께도 인정받았지.’
라니우스 님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 도축 실력이 좋아졌기에, 그런 고기를 한 번 맛본 이들은 죽기 살기로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만!”
그 외침에 모두가 순식간에 반응해서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수고했어! 오늘은 다 같이 먹자!”
환호성이 들려온다. 모두가 땀과 먼지에 범벅이 되었는데도 즐거워하기 그지없어 한다.
“대장!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렇다요?”
레핀이 다가와서 물어본다. 그 소식에 가장 좋아하는 것이 레핀이었기에 더했다.
“내일부터는 바빠질 예정이니까. 그리고 다행히 다들 조금은 몸에 익은 것 같고.”
“이게 조금이라는 거면 도대체 수호용병들은 얼마나 괴물이라는?”
“아니, 우리 용병단이 특이한 거지. 그냥 내 기준이 높다고 생각하면 돼.”
“하여간. 괴물은 괴물끼리만 논다더니, 그나저나 오늘은 생선도 있던가요?”
그 소리에 로사의 고개가 번쩍 들렸고 돌아서며 자신을 바라본다.
“회?”
자유섬에 와서 놀란 점 중에 하나가 생선을 생(生)으로 먹는다는 것이었다.
숙성 방법에 따라서 똑같은 생선도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 신비하고 재밌었다.
그 이유에서인지 [바람이 머물다 간]의 주방장에게 회를 뜨는 방법을 배웠다.
오히려 내 재능이 회를 뜨는 것에 더 잘 맞는 느낌도 들었다. 훨씬 싱싱하게 포를 뜬 회는 엄청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회를 좋아하는 것은 로사였다. 가끔 회를 준다는 이야기를 하면 진심으로 모든 힘을 다해 결전을 벌이고는 했다.
‘뭐. 그 덕에 다들 빠르게 적응되기도 했지만.’
“오늘은 마음껏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으니까 기대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축된 고기와 함께 여러 생선들이 생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대환장 파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