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84화 (84/217)

[84화]

“그래서. 은패가 그 정도란 거구나. 대단하네.”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봤어? 누군지? 너가 들어온 시간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한 번만 보고 싶다.”

“저도. 은패를 보고 싶기는 합니다.”

그 말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코트를 벗고 가슴을 편다.

“…!!!!!”

“!!!!!!!!”

로사와 프라우의 표정이 정말 재밌게 변한다. 프라우는 마치 소녀가 된 표정으로, 로사는 미쳤다는 표정으로.

‘와. 이 둘이 이렇게 표현이 풍부한 애들이라는 건 몰랐네.’

상상 이상의 반응이 돌아오자, 이 맛에 자신을 놀리는 것을 카인과 량이 멈추지 못하나 싶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은패의 소유자가 너라고?”

“범 님! 범 님! 좀 더 가까이!”

자신을 부르며 점점 가슴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프라우를 보면서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프라우! 정신 차려!”

그 모습을 로사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프라우는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가져다 댈 분위기였다.

***

한바탕의 소동과 설명 끝에 로사와 프라우와 함께 자신의 수하들이 될 이들을 만나러 나올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서열 정리는 끝내 놓았으니까. 게다가 그 은패도 있으니 엄청 쉽게 되겠다.”

“흠. 글쎄 과연 그럴까 싶기는 한데. 만나보면 알겠지. 얼마나 된다고?”

해적들과 함께 짧고 굵은 2주를 보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바닷 사람들. 특히나 뱃사람들은 쉬이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호쾌하게 받아들이는 면도 있지만, 그 과정까지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카인인지 아니면 량인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수완이 좋더라. 대부분 익스퍼트 바로 앞에 오른 이들로만 20명 가까이 모았더라고. 우리까지 20명이야.”

“와. 생각 이상인데?”

적어도 로사의 판단이라면 그리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보아하니 마스터의 직전에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판단대로라면 정말로 익스퍼트에 다가온 이들로/(추가),/ 18명이라면 엄청난 전력이었다,

익스퍼트면 기사단장의 최소 자격 조건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익스퍼트에 거의 다다랐다면.

‘수석 기사는 쉽게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도대체 얘네는 어디서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거지?’

새삼 친구들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며 [바람이 머물다 간]의 별관으로 향했다.

‘참,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아버님께서 모두 개관(改館: 건물을 새로이 고치다)을 하신 것이라는 말이지.’

[바람이 머물다 간]의 여관은 각 지방의 특색이 한결 묻어나게 지어졌다.

그럼에도 어느 곳을 가던 같은 느낌을 주는 신비한 곳이었다. 그 중에서 자신은 별관이 제일 신기했다.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으면서도, 닫혀 있는 느낌은 아니란 말이지. 어떻게 이렇게 지으셨나 몰라.’

별관이 여러 곳인 곳도, 하나인 곳도 있었지만. 이곳의 별관은 꽤 여러 개가 존재했다.

‘심지어 그 별관 하나하나가 모두 독립적으로 되어 있단 밀이지.’

별관 두 개를 사용하는 중인 이들은, 중간에 있는 벽을 터놓아 마치 하나의 별관처럼 느껴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공주님! 공주님 오셨어라? 다들 퍼뜩 나와라! 공주님 오셨다!!”

가장 먼저 자신들을 발견한 이가 이내 로사를 보고 외쳤다.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아 꽤 마음을 얻은 듯했다.

그의 외침에 별관 곳곳에서 로사를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주님!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오셨당가. 은패가 들어왔다는데 그 사람이나 구경하러 갈라우?”

“여기 있어. 은패의 소유자.”

로사의 말에 어느새 다 나온 18명의 눈길이 자신에게 꽂힌다. 가슴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바라보는 이들은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허? 익스퍼트가 두 명이나 있네? 좀 특이한데? 거기에, 진짜 다들 계기만 있으면 익스퍼트에 오를 것 같고. 진짜 얘네는 대단하다. 대단해.’

가장 앞에서 로사를 반겨주었던 누가 봐도 뱃사람으로 보이는 이, 그리고 조용히 가장 끝에서 소리 없이 살펴보는 이.

그들은 한 명 한 명 살필수록 카인과 량의 대단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공주님 나이 또래로 보이는데, 얼굴로 먹고사는 것도 아닌데, 은패는 있고 실력은 없는 것 같지는 않는데. 혹시 귀족 나리요?”

가장 앞에서 로사를 반겨주었던 이가 이들의 대표인 듯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는다.

‘꽤 날카로운데? 그런데 귀족처럼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근디 분위기를 보아하니 귀족은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우리랑 비슷한 냄새가 나는데. 은패랑 너무 안 맞는단 말이지. 무슨 영웅처럼 마스터도 아닐 것이고잉. 정체가 뭐요?”

‘카인이 준 내용을 자세하게 읽어보기를 잘했네. 비록 틀린 부분은 두 개있지만.’

카인이 준 서류에도 익스퍼트에 이르렀다는 말은 나와 있지 않았다.

최근에 경지를 밟은 것으로 보아, 아마 갱신이 되지 않은 듯했다. 아직까지 가다듬어지지 않은 그 기세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저 정도면 엄청 빠르게 적응했다는 뜻인데, 그러니까 로사도 눈치 못 챘지.’

“이보쇼?”

생각에 빠져 잠시 눈앞에 이들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너희 대장이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싸하게 가라 앉고 모두의 시선이 꽂힌다.

“흐음. 꼬마는 아닌데, 아직 그렇다고 젖비린내가 나는 사람이 대장이라… 이야기가 조금 다른데.”

역시나 입을 연 것은 그 사내였다. 은연중에 무리들을 이끄는 이로 인정을 받는 듯했다.

‘실력만큼이나 또 뭔가 있다는 거겠지. 꽤 인정을 받는가 본데? 근데 무슨 소리를 한 거지?’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대장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말이지.”

“사실 돈이야, 여기 있는 애들 정도면 부족하지 않게 벌 수는 있는데, 사장 나리가 그랬단 말이지.”

‘사장 나리면, 카인인가?’

“괴물을 만나게 해 주겠다고, 경지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괴물을. 근데 아무리 봐도 괴물로는 전혀 안 보이는데? 공주님은 괴물이라기보다는 천재고.”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괴물이라니, 이번 생에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전생에 로사는 한 번도 괴물이라고 불린 적은 없단 말이지.’

그와 동시에 도 대신에 허리에 차고 있던 나무 몽둥이를 슬그머니 꺼냈다.

참 자신을 무수히 많이 어루만져주었던 나무. 그래서인지 버릴 수 없었고, 쓸모가 생겼다.

“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덤벼. 모두 다.”

말과 함께 기세를 살짝 피어 올린다. 순간 서늘한 바람이 두 별관 사이의 공터를 휩쓸고 지나간다.

자신의 말에 기분 나빠하는 이도, 재밌어 하는 이도 있었다. 가장 앞의 사내는 실소를 짓더니 입을 연다.

“하여간,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 인간들이 있단 말이지. 우린, 또 그렇게 하라면 하지. 다구리라고 들어는 봤나 모르겠네?”

그 말이 끝나자 슬금슬금 움직이더니 대형이 잡힌 이들이었다. 꽤 움직임이 정돈된 것이 한두 번 해 본 것은 아니었다.

‘하여간, 자유섬은 무서운 동네라니까. 어릴 때부터 배우는 기본 대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지. 진짜.’

자유섬은 그 주민들이 어린 시절부터 몇몇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대형 훈련이었다.

침략에 대비하는 일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이것이 나중에 용병이나 해적이 되어서 빛을 발한다.

그 결과가 눈앞에 드러나 있었다. 방심도 안 하는지 촘촘하게 강자를 상대하는 진형이었다.

‘진짜. 자유섬. 무서운 곳이라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중구난방이긴 하지만.’

듣자 하니 동섬조차 완전한 한 제국의 점령지는 아니었다. 자치권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었다.

‘그럼. 우선 저 아가씨부터 확인 해 볼까?’

촘촘한 진형도 자신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을 확인해 볼 더 좋은 기회일 뿐이었다.

이 세계 진형의 정점은 수호용병. 마수와 몬스터를 상대하는 이들이니 만큼 그 발전도가 다르다.

그리고 자신은 그중에서도 최고라는 용병단의 소대장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진형의 허술함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사람은 알고 배우고 봐야 해. 괜히 공부를 시키신 게 아니란 말이지.’

1탑을 개방시키면서 재능은 억누른다. 자칫 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바람과 함께 진형의 틈으로 흘러 들어간다. 목적지는 조용하던 그 여자.

진법의 가장 바깥에서 모든 것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걸로 보아, 아무래도 인정받고 있는 듯했다.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이들의 사이를 지나쳐 단숨에 그녀 앞으로 다가간다.

“틈이 많아. 그리고 넌 나를 놓쳤네?”

얄밉게 말 한마디를 하고 발목을 그대로 휘둘러 쳤다. 발목을 맞고 회전하며 날아가는 여자.

“흠. 그래도 영 맹탕은 아니라 이건데.”

휘둘러 지는 느낌에 손맛이 덜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맞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순응해 그대로 날아갔다는 뜻.

“다른 애들도 영 맹탕은 아닌 것 같고. 꽤 괜찮은데?”

긴장감이 바짝 오른 이들이 자연스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다시 보인다.

“거기 자칭 대장도 생각 이상인데?”

그의 말과 동시에 끝에 톱니 형태의 칼이 달린 사슬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보인다.

“오? 사슬? 밧줄? 신기한데?”

슬쩍 피했지만, 요상하게 휘더니 자신의 허리를 향해서 다시 날아온다.

그 동시에 두 사람이 허벅지와 어깨를 노리고 양 옆에서 다가오고 뒤에서는 도끼가 내려처진다.

“헤. 진짜 괜찮은데?”

순간적으로 당황했음이 분명했는데도 진형을 다시 정비하고 자신을 향해서 돌격하는 이들.

‘음, 잘 쳐주면 새끼 불스들이랑 비슷할 수도 있겠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은 단합력에 더욱 마음에 들어가고 있었다. 다양한 무기도 마음에 들었다.

움직이는 순간 핑.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우와!”

여유롭게 쳐내며 보니 단창을 투장으로 날리는 이도 보였다,

“그럼. 조금 빠르게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신명 나는 리듬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종종 사이사이에 추임새도 들어간다.

탁! 툭! 퍽!

윽! 악! 투투툭 팍! 탁! 윽! 억!

‘탁! 퍽! 이 맛인가. 이 손맛은 진짜. 중독이라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다들 쓰러져 있었다. 아니, 단 한 사람은 그래도 어찌어찌 서 있었다.

“하! 사장 나리가 말한 대로 괴물 맞구만. 분명 도(刀)를 쓴다고 들었는데 말이지.”

“헤에. 괴물은 아니고, 그냥 조금 강한 인간. 아직 나도 멀었다고 진짜 괴물들에 비하면.”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사는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괴물 맞구만유. 그럼. 가유 대장!”

듣고 싶은 말을 하면서도 달려오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발을 딛고 사슬을 뒤로 뺐다가 다시 앞으로 날린다.

“오?”

한 번, 두 번, 세 번. 자신이 본 광경이었다. 그 때마다 속도가 빨라진다. 그리고 종내에는 선이 아닌 점으로 보인다.

“헤에. 재능인가 본데, 마나도 잘 담겨 있고.”

잠시의 고민 끝에 고개를 살짝 피하고 앞으로 달려들어 간다. 그리고 그 순간, 사슬이 꺾였다.

쳐내려고 하는 순간 꺾이고 또 꺾인다. 그리고 네 번째 꺾이는 순간이었다.

“씁… 진짜. 이러면 뒷맛이 개운치가 않은데.”

그대로 기절하는 사내. 아쉽기 그지 없었다. 꺾이면서도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을 보니 진짜 재밌었다.

“와. 진짜 많이 변했다 범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로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 눈에는 묘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흠. 너도 한 번 할까?”

흥이 한참 오르려고 하는 무렵에 확 식어 버려서 자신도 개운치 않았다. 그런데 열망이 서린 로사의 눈을 보니 다시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까. 범아. 거의 5년 만인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귀에서 검을 꺼내 드는 로사. 그리고 변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하는 말이 변한다.

“경지는 너가 더 높으니까. 나만 무기를 쓸게?”

이제는 조금 시야가 트인 듯, 고집을 많이 내려논 로사. 그녀가 검을 쥐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