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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83화 (83/217)

[83화]

“흐음. 이렇게 빨리 그것도 은패까지 달고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카인의 방에 들어온 칼라 님의 첫마디였다.

“어. 칼라 님?”

“응? 아! 말 안 해줬구나! 량이는 이제 내 거야! 그러니 나도 여기에 포함되는 거지!”

그 말에 량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 붉어졌다. 그리고 은연중에 수치심이 보였다.

“네?”

잘못 들은 게 확실했다. 량이 얼굴이 붉어진 것도 잘못 본 게 확실하다.

“너가 없는 2주 동안!! 드디어 성공했지! 카인을 좀 꼬셨더니 금방 성공하더라고.”

“카인… 배신자… 진짜 배신자…”

뭘 회상하는지, 넋이 나간 량이와 그 옆에서 실실 웃는 카인. 그리고 미소가 활짝 핀 칼라 님이었다.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카인의 입에 자기도 모르게 집중이 되어가는 것을 발견한다.

***

“범이 보고 싶다아~”

“일하라니까?”

여전히 빈둥대고 있는 두 사람. 카인은 자신의 방에 대피해 있는 량이 이상했다.

“어차피 별달리 할 일 없다고 한 것도 너잖아! 그리고/ 칼라 님이 뭐 어떻다고 여기에 도망 와 있는 건데?”

본래는 15세가 되면 가정을 이룬다고 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생긴 이후로 조금 변화가 생겼다.

태중 혼약이 되어 있지 않다면 대부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야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모르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순결 서약을 한 이들이 아니라면, 솔직히 서약을 한 이들도, 아카데미는 실로 밤이 화려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 꽤나 이름을 날렸던 녀석이 바로 량이었다. 자신의 지기(知己)들 중에는 유일했다.

그런 녀석이 칼라 님이 달려들면 한사코 도망가기 바빴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나이도 어차피 5살밖에 차이도 안 나고! 엄청 예쁘고! 몸매도! 게다가 머리도! 네가 말하던 이상형 아니야?”

그러자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량이 한마디를 꺼냈다.

“칼라, 좋지. 좋아. 다 좋은데, 칼라랑 만나는 순간 내 인생의 즐거움은 끝이야. 너도 알 텐데? 섬 여인.”

“이! 멍청이!!! 변태!!! 그렇다 놓치고 후회한다?”

모든 자유섬의 여인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다수 여인들의 특징이 있었다.

여자들은 그를 순애(殉愛: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침)라고 불렀고, 남자들은 순애(䀏愛: 현기증이 나고 아찔한 사랑)라고 불렀다.

웬만해서는 일부일처(一夫一妻)만을 허용한다. 순해 보이지만 그 안은 그 무엇보다 단단하다.

거친 섬사람들이, 바닷사람들이, 뱃사람들이 그들의 부인에게는 꼼짝도 못 한다.

칼라 님은 어찌 보면 그런 여인들의 정점에 있는 인물. 최연소 촌장을 역임할 만큼 능력도 출중하다.

장로가 보장되어 있다고 하는 그런 사람. 그리고 자신의 조사에 따르면 골드 로즈가 말년에 받아들인 8째 딸이기도 했다.

세상은 5명의 자식이 있다고만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8명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막내가 칼라 님이었다.

“그래도. 도망도 못 가. 넌 알고 있었지?”

“응? 뭘?”

“칼라가 로즈 님의 딸이라는 거.”

“어? 헤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잖아~”

“뭐가 안 중요해! 생각해 봐. 황제에게서 도망갈 수 있겠어?”

“에이~ 좋게 보면 황제의 막냇사위가 되는 건데 뭐~”

“그렇게 좋으면 너가 꼬시던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한다. 그러다 너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으라고? 됐네요~ 난 나간다. 잘 숨어있어.”

량을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칼라 님의 집이었다.

“칼라 님!”

“카인 왔구나.”

항상 밝고 활기차던 칼라 님이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의기소침해 보였다.

몇 번의 침입 시도에도 실패하자 의기소침해 진 것이었다.

“왜 그렇게 의기소침해 계셔요.”

“너네 상회 이상해. 내가 엄마 배에 침입하는 것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야. 알고도 넘어가 주신 부분이 있겠죠. 어떻게 감히 로즈 님의 배와 비교할 수 있겠어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좀!”

“그래서 말인데요. 제 생각에는 량이도 칼라 님을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죠.”

“그치? 그런 거지? 나만 이런 거 아니지?!”

갑자기 활기가 돋기 시작하는 칼라 님.

‘이런 칼라 님인데, 이 자식 복도 많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모의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량이는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가 끝이 났다.

***

“이런 내용이지.”

“응! 맞아. 카인은 앞으로 평생 내 은인이야.”

“칼라 님? 막내셨어요? 그럼. 이모님?”

“에이~ 이모라니. 아니야. 너는 그냥 날 형수님이라고 부르면 돼”

불그스름해 진 얼굴로 말하는 칼라 님, 아니 형수님의 얼굴은 참 행복해 보였다.

“그런고로. 나도 여기에 들어갈 거야! 순 상회! 촌장도 때려쳤어!!”

“어? 그게 가능한 겁니까?”

“원래 안 되는데 난 돼! 원래 능력이 있으면 다 되는 거야.”

‘가장 나중에, 어쩌면 영영 안 갈 거라고 생각한 녀석이 가장 먼저 가게 생겼네.’

“뭐. 그렇게 됐다.”

“량이가~ 이거 빨리 끝내고 결혼식 올리자고 했어. 그러니까 빨리 끝내야지.”

그 말을 내뱉는 형수님의 얼굴에는 결연함이 서려 있었다.

“그럼?”

“이제야, 우리도 정식으로 서도(西島) 쟁탈에 한발 걸칠 수 있게 된거지. 너가 정식으로 인정받았으니까.”

이야기가 시작 돼서야 풀려난 량이가 앞으로 나와서 지도를 펼쳤다. 서도의 꽤나 자세한 지도였다.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 블라우. 여기를 중심으로 쉽게 말하면 친 해적파가 이렇게. 그리고 여기는 맘몬이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해주니 한결 이해하기 편리했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맘몬의 영역이 거대했다.

“근데, 로즈 님이 계시는데 저 영역이 의미가 있는 거야?”

“역시! 그동안 가르친 보람이 있어! 로즈 님은 군림하지 않으신다는 주의셔. 해적들도 그걸 그대로 이어받았고.”

“군림을 안 해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군림하시는 거 아니고?”

그 때 형수님이 갑작스럽게 끼어들었다.

“아니야! 우리 엄마는 진짜 이상한 짓만 안 하면 내비두신다구!”

그 말을 그대로 량이 받았다.

“맞아. 사실이야. 대부분이 너처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알게 되었지. 진짜라는 걸. 아니 오히려 노다지라는걸.”

“노다지? 손을 안 댄다는 건 알겠는데 노다지는 뭔데?”

“섬 내에서의 일은 섬 내에서의 일이다. 이게 로즈 님의 말씀이셨지, 그러니 외부 침략은 철저하게 막으셨고.”

“좀 이상한데? 그러면 외부인이 들어오는 거를, 지배권 자체를 막으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지, 아니야. 이상한 게 아니라 엄청나게 현명한 선택인 거지. 섬이 고착화되지 않게 만드신 거니까.”

그렇게 한참을 설명을 시작하는 량이. 이제는 량이 익숙해진 것인지, 내가 익숙해진 것인지 모르지만 꽤나 머릿속에 잘 들어오는 설명이었다.

“그럼, 결론적으로는 세금만 내면 섬 내에서 자치권은 완벽하게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거네? 심지어 세금도 퍼센트가 아니라 정해진 금액이고.”

“그렇지! 그러니까 이미 동도를 장악한 한 제국에서도 서도를 탐내는 거지.”

“중도는?”

“불가! 신전과 해적의 장소야 그곳은. 우리 목표는 서도에서의 맘몬 말살이야.”

“그게 가능해?”

“원래는 불가능까지는 아니고 복잡했을 텐데, 카인 덕분에 쉬워졌지.”

“전부 내 덕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대충 정리가 끝났어. 대륙에서는 시디야를 제외하고는 맘몬의 세력은 거의 다 물러난 상태야.”

“와. 그게 가능해? 이렇게 단 시일 내에?”

“뭐. 본래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수호용병들의 힘이 생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더라고.”

“그래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뭔데?”

“그건”

***

“이상해. 이상해. 왠지 량이랑 카인 손에 놀아나는 느낌이란 말이지”

하루. 자신이 쉰 시간이었다. 그리고는 어느새 프리 존으로 달려가고 있는 자신이었다.

“분명히 지분은 내가 1/4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지.”

카인과 량의 계획에 따르면, 자신은 두 가지 임무가 있었다. 그리고 두 임무 모두 프리 존에 있었다.

프리 존에 있는 자신의 수하를 만나는 것. 그리고 격투 대회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하. 뭐 약한 내가 죄지. 머리 나쁜 내가 죄지. 이 세상은 머리 나쁘면 고생하는 세상.”

의미 없는 말들을 흥얼거리며 달리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블라우 마을의 배는 됨직한 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 기회에 구경이나 마음껏 한다고 생각하자! 카인도 량도 없는 이때가 기회지!”

점점 그 성벽과 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유섬의 특징이라면 특징 중 하나는 자유 속의 규율이었다.

엄청 자유롭고 분방해 보이는 그 가운데 생각 이상으로 엄격한 규율이 존재했는데, 문지기도 그러했다.

문 앞을 조심스러운 태도로 슬슬 진입하는 그때였다.

“은패의 소유자께 인사드립니다! 프리 존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경례와 함께 자신에게 인사하는 두 경비병. 의도치 않게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

‘은패가. 이 정도였나? 뭐가 더 있는 거지? 어쩐지 이놈에 자식들이!’

어쩐지 자신을 내보낼 때 짓던 그 웃음이 묘하게 불길하더라 했다.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언제 누구와 무엇을가지고 왔는지 명확하게 소명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프리 존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는데’

자신은 그저 통과였다. 아무런 검사도 흔적도 없이, 오히려 경례를 받으며 통과했다.

약간은 아직 어안이 벙벙한 채 [바람이 머물다 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얼굴 뚫어지겠네.’

걸어가는 내내 자신의 가슴과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구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은패만 보고 먹어 보라며 노상 상점 주인들이 이것저것 하나씩 건네주기도 했다.

‘도대체. 이 은패는 정체가 뭐야? 이렇게 대단한 거야?’

결국, 견디다 못해서 코트로 자신의 은패를 가려버렸다. 그러고 나서야 조금 잠잠해지고 무사히 여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2층으로 향했다. 카인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 모든 여관의 2층은 자신의 방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진짜. 카인이 부자라는 걸 계속 까먹는다는 말이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연중에 들떠 있는 로사가 눈에 들어온다.

쇼트커트가 정말 잘 어울리는 로사는, 자신과 대화할 때를 뺀다면 정말 예쁘게 생기긴 했다.

심지어 그 옆에서 언제나 진중하던 프라우마저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드러날 정도였다.

“범아! 들었어?! 아니 넌 봤으려나? 은패의 소유자가 있대!! 오늘 들어왔대!”

‘로사마저 저렇게 흥분할 정도로 은패가 대단한 건가? 도대체 얘네는 뭘 말을 안 해 준 거야!’

로즈 님의 책에는 화패(花牌)에 대해서는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은패도 갖지 못한 머저리라면 해적의 간부라고 칭할 수 없다. 이렇게만 쓰셨는데.’

그래서 자신도 그렇게 알았다. 화패가 중요하지만, 화투를 위한 것이고 생각보다 쉽게 얻는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이런 반응들을 보아하니 그것이 단단히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은패가 그렇게 대단한 거야?”

로사에게 질문을 던지자, 로사와 프라우가 이 멍청이는 설마 그걸 모르나 같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범아! 은패야!! 목패도 동패도 아닌 은패! 해적의 간부들이 하나 정도나 가질 수 있는!”

“간부면 다 가질 수 있는 거 아니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간부가 되면 하나를 받기는 하지만 그걸 누가 주겠어!”

‘린은. 아니 형은 그런 걸 나한테 주려고 한 거네.’

새삼 고마운 마음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가족을 가져보지 못했지만,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은패를 가지면, 뭐가 좋은데?”

“범 님. 은패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해적에게 가족으로 인정받은 사람. 그것도 간부에게 또는 그 이상의 공을 세워야 해적 이외의 사람에게 은패가 주어지게 됩니다.”

뜬금없이 프라우가 앞으로 나서서 격정 어린(프라우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격정적인 표현이다)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은패를 가지고 있으면, 자유섬의 어느 곳이던 상관없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점에서 적어도 2할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을뿐더러.”

계속해서 프라우가 쏟아 내는 말들을 들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얘는 해적이 꿈인 아이였나?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 마냥 냉정하고 외골수인 줄만 알았는데’

그러면서도 프라우는 지치는 줄 모르고 해적과 화패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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