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꽤나 힘들고, 어렵죠?”
도착하자 구문 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그 옆에 퍼그 님이 얄미운 표정으로 함께하고 계셨다.
“자알 날아가던데? 시원하게! 재밌었다!!”
그러면서 웃는 퍼그 님은 정말 얄미웠다. 거대한 파도처럼 세게 몰아쳐 들어오던 그 모습이 거짓말 같게 느껴진다.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자유로우신 거죠?”
“크하하하. 그건 너가 차차 알아갈 일이지. 그래서? 포기할래?”
“아니에요. 그럼 도전하는 건 언제든지 가능한 건가요?”
“뭐. 당분간은 계속 여기 있을 거니까 상관없지만, 언제 일이 생길지 모르지?”
‘진짜 얄밉다. 진심으로 한 대 때리고 싶다.’
분명 멋있어 보이고 장대해 보였는데, 사람이 인상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나 싶었다.
“이이는! 범 군. 잘했어요. 처음치고 정말 잘한 거예요. 꽤 기대되는걸요?”
얼굴만 천사 같은 게 아니었다. 도대체 왜 저런 얄미운 사람이랑 결혼한 걸까.
“도둑 대장. 대장도 쫄았으면서 무슨. 놀란 거 다 티 나드만.”
자신을 태우고 온 붉은 머리의 사내가 얄밉게 웃고 있는 퍼그 님에게 한마디 하자 얼굴이 구겨진다.
“아니거든! 그리고 넌 언제까지 도둑이라고 부를 거냐! 린 너나 럼니도!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 아버지라고 하면 되잖아!!”
“으웩.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저나 럼니가 어머니 때문에 여기 있는 거에나 감사하쇼.”
투닥대는 두 사람은 전혀 상하 관계 같아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들에게서 부발 님과 데마르 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둘! 다!”
두 사람의 귀밑머리를 잡고 구석으로 끌고 가서 혼내는 구문 님. 3번대의 대장은 퍼그 님이 아니라 구문 님이었다.
***
구문 님에게 잡힌 두 사람이 끌려가는 사이, 어떤 사람이 자신을 데리고 간 장소.
앞에는 바로 바다가 보이는 한 움막 같은 곳이었다. 움막 안에는 조금 파인 곳에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이게. 침대라는 거지?”
해먹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하늘이 보이는 천장.
불안한 마음으로 해먹에 누운 순간, 생각 이상의 안락함이 몰려왔다.
‘생각보다 편한데?’
언제 해가 졌는지, 달이 천장을 통해서 그 모습을 수줍게 드러내고 있었다.
‘하. 애들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나저나 잘들 지내고 있으려나?’
장판 위에서의 장면이 떠오르며 서서히, 서서히 잠에 빠져들어 갔다.
***
시끌시끌한 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려온다. 우렁찬 기합 소리 같기도 하고 노랫소리 같기도 한 그것.
“뭐지?”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 밖을 바라보니 해가 곧 뜨려고만 하는 그 시각.
웃통을 벗은 남정네들과 함께 구문 님께서 달리고 계셨다. 가장 선두에는 퍼그 님이 있었다.
“와. 엄청나네?”
어제의 그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들의 구보는 각이 잡혀 있었다.
“꼬맹이! 일어났으면 퍼뜩 뛰어와라!”
가장 앞서가던 퍼그 님께서 소리를 지르신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러 달려가고 있었다.
“자. 받아라, 넌 마스터니까 이것도.”
건네받은 것은, 마나 구속구와 함께 자신의 몸무게와 같은 가방 하나였다.
“이게?”
“이것도 안 하면 하는 의미가 없지 않냐. 하루 내내 뛸 것도 아니고. 퍼뜩 해!”
마나 구속구를 차자, 온몸에 흐르던 마나가 서서히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 이상으로 체계적인데? 해적이 아니라 무슨 해군 같은데?’
만(灣)을 두어 바퀴쯤 돌았을까, 절벽으로 향하는 대열. 자신이 떨어져 내린 바로 옆의 절벽으로 향했다.
‘헐. 진짜 멍청했네, 과거의 나.’
그 바로 옆 절벽에는 여러 개의 구멍과 튀어나온 돌들이 있었다. 마치 올라가고 내려가라고 만든 것처럼.
“자! 그럼! 출발! 꼬맹이 너는 날 따라오면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올라가기 시작하는 이들이었다. 어떤 이들은 구멍에 어떤 이들은 튀어나온 돌에 손을 얹고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와.”
모두가 거침없이 절벽을 올라가는 장면은 하나의 장관이었다. 구문 님마저 너무 수월하게 올라가고 계셨다.
“꼬맹이! 뭐하냐! 제일 늦는 놈은 아침 없다!”
“옙!!”
그리고 그렇게 해적들과의 동거는 9일이라는 시간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해주었다.
***
“요 한 2일은 붙자고도 안 하더니, 무슨 자신감일까?”
여전히 얄밉고 능글맞게 웃고 있는 퍼그 님이 눈앞에 보인다. 첫 날과 똑같은 장소, 시간, 자세였다.
다만, 이번에는 자신도 꽤 익숙하게 무게 중심을 잡고 있었다. 아침을 제외하고는 매일 바다에서 살았던 것이 효과가 있다.
“꼭. 이겨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랄까요?”
‘그리고 꽤 재밌는 것도 알았고.’
배 위에서 매일을 보내며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파도는 바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걸 알고 나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갑니다!”
이번에는 먼저 치고 나갔다. 발을 밀어주는 파도의 느낌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곧장 달려들기보단, 바로 앞에 멈추어서서 크게 발 구름을 한다. 자연스럽게 장판이 요동치지만, 여전히 퍼그 님은 유유자적.
‘기대도 안 했지, 그렇지만!’
왜 안드로니쿠스 님이 대륙 곳곳을 여행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바람을 모르면 [바람의 탑]은 이룰 수 없는 무학(武學)이었다.
‘산들바람인 줄만 알았더니, 비를 불러오기도 한다는 말이지. 꽤 고약한 비도 있단 말이지.’
신이 나고 흥이 난다. 찌르기가 없는 도(刀)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순식간에 자신은 산들바람처럼 흩날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 도가 비산한다.
“호오?”
도첨(刀尖: 도의 끝부분)이 요소요소를 노리면서 찔러 들어간다. 피하고 막지만, 끊이지 않는다.
“쿵!”
갑작스러운 장판의 요동이 느껴진다. 하지만, 여전히 자유로운 모습으로 퍼그 님을 향해서 찔러 들어가는 도첨.
슬쩍슬쩍 베이며 핏방울이 장판에 떨어진다. 가랑비가 내리는 것처럼 피가 방울진다.
“크하하하하! 아주 좋은데? 나도 진심으로 간다? 조심해라. 안 죽으면 통과다!”
*
“호오? 범이가 많이 성장했는데? 쟤도 괴물이구나.”
“그래도 멀었죠!”
“저희가 더 괴물이죠!”
붉은 머리의 두 청년과 구문이 둘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
“에?”
장판 위를 너무나 자유롭게 다니는 범을 보면서 치솟던 어깨가 내려가는 그 둘이었다.
“호호호. 범이가 더 괴물인가 본데?”
그리고 퍼그의 외침이 들려온다.
“하. 진짜! 저 이이가! 위험할 텐데.”
“오!!”
“도둑놈!! 박살을 내라!!”
그 외침에 감탄을 하던 구문은 한숨과 걱정을, 두 붉은 머리의 청년들은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
퍼그 님의 외침 직후에 굉음이 들려온다. 마치 장판이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굉음.
‘미…미친!’
파도 같은 울림이 아니라 진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장판의 끝에서부터 장판을 잡아먹을 정도의 크기의 파도가.
“퍼그 님!”
있는 힘껏 퍼그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무시하셨다. 몇 번의 굉음이 더 울리고 우직하게 자신의 찌르기를 막고 피하고 맞으며 다가오신다.
“애송아! 해적은! 바다에서는 적이 없어서 해적이라고 하는 거다!”
미친 듯이 웃으며 자신을 향해 오는 퍼그 님의 모습은 자신이 들었던 전투광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퍼그 님의 메이스가 자신의 다리를 허리를 향해서 미친 듯한 속도로 날아온다.
‘씨…!’
피하고자 해도 피할 수가 없다. 파도가 미친 듯이 몰아친다. 장판이 요동치는 것도 요동치는 것이지만, 파도가 장판 위를 덮치기도 한다.
물에 가려진 곳에서 메이스가 튀어나오고, 장판이 요동치는 것에 맞추어 메이스가 날아온다.
‘진짜. 진짜. 위험하다.’
감이 날카롭게 서기 시작한다. 한 번 잘못 맞으면 바로 골로 갈 힘이 실린 일격들.
은은하게 빛이 나는 그 메이스는 심지어 오러 쓰레드 마저 실려 있음을 알려 준다.
극한의 상황에서 감이 극도로 날이 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 또한 극한으로 발휘되기 시작한다.
‘물도 칼로 물을 벨 수도 있구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생각이 나고, 미처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생사(生死)의 경계에서 온갖 경험들이 하나가 되면서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어느 순간부터는 생각이 끊어졌다. 그저 보이는 데로 베고 피하고 나아간다.
퍼그 님의 얼굴이 사라진다. 물과 길만이 눈에 들어온다. 메이스의 움직임이 바람의 기척만이 느껴진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갑작스럽게 장판이 울리며 중간에 나타난 구문 님이 눈에 들어온다.
“둘 다 이제 그만.”
처음 들어보는 구문 님의 낮은 목소리. 소름이 오소소 든다. 감각이 가민히 있으라고 미친 듯이 소리친다.
‘죽…죽는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목에 칼이 대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에 이렇게 들어온다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래도 괴물은 퍼그 님만이 아니였던 듯하다. 퍼그 님이 괜히 구문 님에게 잡혀 사는 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당신. 이따 따. 로. 봐. 요. 둘 다 내려가요.”
구문 님의 명령에 우리는 순한 강아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퍼그 님.”
순간 침울해진 퍼그 님의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
퍼그 님이 구문 님에게 끌려가고 난 후 린과 럼니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대단해!”
“살아남았어!”
두 사람은 같은 듯 전혀 다른 이들이었다. 갑판장인 린은 언제나 차분한 듯 고요했고 보급대장인 럼니는 언제나 활기찼다.
“구문 님?”
“어머님? 아! 맞네. 넌 처음 느꼈겠구나.”
“엄청나시지. 아마 우리 대대 최강이실걸?”
“그 정도야?”
“응!”
“대모님이 인정하신 강자 중 하나이시고, 따님이시기도 하니까!”
“대모님이면 골드 로즈 님?”
“응!”
“맞아!”
‘그 황제의 자식 중 하나였구나. 어쩐지. 아니 설마?’
바다의 황제라고 불리는 골드 로즈에게는 5명의 자식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상 골드 로즈를 대신해서 해적단을 이끌고 있는 이들이었다. 대장의 위에 있는 존재들.
‘그 중 첫째가 분가를 했다고 들었는데?’
“설마 구문 님이?”
“응! 맞아!”
“대모님의 첫째!”
“하.하.하.하.”
‘미친 동안이시구나. 그나저나 첫째 자식이라. 그렇다면?’
“그럼 혹시 그 소문이 사실이야?”
“응? 아!”
“어! 맞아! 최상위 재능을 타고나신 분이지. 엄청나지?”
그저 소문일 뿐이었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부풀려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
그것은 바로 다섯 자식 중 첫째가 무려 최상위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륙에서도 찾기 힘든 그 재능을 그저 자유섬의 사람이, 그것도 해적이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만이었을 수도 있다.
“대모님이 그러셨어! 어머니를 보면서.”
“초인이 될 수는 없으나,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재능이라고.”
‘초인은 될 수 없다라. 확실히 초인이랑 재능이라는 밀접하긴 한가 보네.’
카인의 아버지와 함께 야영을 하던 당시에 흘리면서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최상위 재능이 초인이 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어렵다. 그를 이룬 괴물은 단 한 명뿐이었다.라고 하셨는데 말이지.’
궁금해서 물어보았지만, 그저 자연스럽게 알 거라면서 웃음으로 넘어가셨다.
그리고 해적 가운데에서 최상위 재능을 또 만났다. 참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은 것 같았다.
“우리도 만만치 않지!”
“우리도 상위 재능이니까!”
“응. 알아. 너희가 많이 말해 줬어. 상위 재능이여 봤자 나한테 한 입 거리면서.”
말하면서 웃음을 지어 주었다. 사실 이 둘이 가장 친해지기도 했고, 자신을 가장 많이 도와준 이들이기도 했다.
항상 밝고 통통 튀는 이 둘이 있어서 시간이 더욱 빨리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축하해!”
“정식으로 오르투수에서 블라우 마을의 지배자가 된 것을!!”
근래에 알게 된 것이지만, 각 대마다 지배하는 영역에 따라서 이름이 달랐다.
3대의 경우에는 그 지역을 오르투수라고 불렀다. 그러니 그 지역의 블라우 마을의 지배자라고 하는 것이었다.
“고마워. 그나저나 아쉽다.”
지배자로 인정을 받아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이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
“자!”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