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퍼그님을 따라서 가다 보니, 만(만) 한 가운데에 떠 있는 거대한 목판이 눈에 들어왔다.
‘와 예쁘다…’
하지만, 자신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 목판이 이어진 다리 앞에 서 있는 여성이었다.
건강미라는 것을 모두 모아놓은 느낌의 여성. 포니테일로 질끈 묶은 푸른 빛 머리는 마틴을 연상시켰다.
“흐음. 이번에는 성공할 수도 있겠는데? 반가워요. 부대장인 구문이라고 해요.”
“하하하하! 그래고 내 부인이지! 눈독 들이지 말라고!”
“네?!?!”
여기에 와서 가장 놀랐다. 진짜 믿어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걸까.
“짝!”
찰진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목소리는 그 건강미 넘치는 것과 다르게 나긋하고 부드러웠다.
“이이도 참.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죠?! 혹시 이이가 시험에 대해서 설명은 해 주었나요?”
얼굴에 홍조와 함께 미소가 피어나는 모습을 보니, 약점을 잡힌 것은 아닌 듯했다.
‘부럽다. 진짜 보기 좋다.’
“저기요?”
“부럽습니다!”
자신의 엉뚱한 대답과 함께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구문님은 미소를 지으시고 옆의 퍼그님은 호탕하게 웃으신다.
“크하하하! 애송이! 솔직한데!? 보는 눈도 있고! 아주 마음에 들어!!”
‘하..씨… 미쳤다… ’
“죄… 죄송합니다.”
고개가 절로 푹 숙여진다. 요즘 종종 말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괜찮아요. 오히려 기분이 좋은걸요?”
잠시 후에 소요가 가라앉자, 구문님께서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보나 마나 설명은 안 했을 거 같고. 특이한 놈 온다고 신나서 나간 걸 보니.”
“아 네. 시험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하. 원래는 시험이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거지만…”
“넌! 하나뿐이다! 단순하고 명쾌하지. 나를 이길 때까지 혹은 무승부가 날 때까지 싸우는 거다!”
‘쉬운데? 무승부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쉽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명심하셔야 해요. 육지에서가 아닌. 저기에서 니까.”
그제야 만(灣) 한 가운데에 떠 있는 목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왜 저렇게 넓은 목판이 있나 싶더라니. 근데 많이 다른가?’
“근질근질 하구만! 애송이 빨리 올라와라!”
옆에 있던 부하에게서 메이스를 받아들고 목판으로 훌쩍 뛰어가는 퍼그님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범님이 포기하시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도전하실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그 말이 더 소름 돋게 다가왔다. 제아무리 카인과 량이 똑똑해서 마을을 찾았다고 한들, 그전에도 많은 사람이 찾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인정을 받는 세력이, 사람이 없다는 것이 시험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흠 뭘까. 저 목판이 뭐가 다른가? 재밌겠는데?’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특이한 경험은 오히려 자신이 청해야 할 정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목판에 이어진 다리를 걸어갔다.
‘어 이거… 생각 이상인데?’
방파제로 막아 놓았다고 한들, 바다였다. 파도가 치는 곳. 그리고 그 위에 떠있는 곳이기에 걸음이 이상했다.
‘생각보다 어렵겠는데. 왜 어려운지도 알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퍼그님은 어째서…’
눈앞에 이미 목판에 서 있는 퍼그님의 자세는 안정되어 있었다. 마치 육지에서 서 있는 것처럼.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지?”
비웃음이라기보다 장난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에게 말하는 퍼그님의 얼굴이 얄밉다.
“할만..!”
괜한 오기를 부리려다 넘어질 뻔 했다. 분명 넓어서 괜찮을 것 같은 장판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무게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크흐흐. 원래 맞으면서 익숙 해 지는 법이지. 그럼, 간다?”
순간이었다. 무게 중심을 잡는 것조차 어려운 그 장소에서, 육지와 다르지 않다는 듯 퍼그님이 가볍게 달려온다.
“쾅!”
비록 막기는 했지만, 바로 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동시에 다시 메이스가 넘어진 자신의 얼굴로 내리쳐진다.
황급히 옆으로 굴러서 피하지만, 일어서지 못했다. 내리쳐지는 메이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자신을 노린다.
‘뭐 이따위야! 여기서 어떻게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시는 거지?’
자신은 마스터였다. 익스퍼트만 되어도 보통의 균형감각과는 다른 균형감각을 가진다.
그렇다면 바디 체인지를 겪을 마스터는? 비교할 수 없는 균형감각을 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이 장판은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수시로 높낮이가 변한다. 힘을 주면 들어가고 그만큼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을 어떻게 이겨! 진짜 지랄 맞은 시험이네’
그토록 좋은 위치에 있는 마을이 왜 아직 주인이 없는지 여실히 알 수 있게 해 주는 시험이었다, 제아무리 마을마다 시험의 수준이 다르다고 해도 이건 너무 했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
“너 정도면 천재, 괴물 뭐 이런 소리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별거 아닌데?”
어느새 자신을 농락하다 물러서고 메이스를 빙글빙글 돌리며 약 올리는 퍼그님.
‘저 주둥이를 진짜…’
얄밉기로 경지를 논했다면, 저 인간은 이 세계 최강자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은 얄미움.
‘후…’
순간 몸에 힘을 뺀다. 시간을 주었다는 걸 후회하게 만들고자 한 집념이 만들어낸 선택.
마스터가 되면서 열린 3번째 탑. 아펠리오테스. 모든 바람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바람.
그것이 첫 탑인 노투사와 만나면 신기한 일이 생긴다. 최근에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경지.
‘왜 안드로니쿠스님이 이 세계에서는 4개의 탑까지만 허락된다는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랄까.’
심지어, 스승님께서 ‘격이 다르다’라고 표현하시며 폐관에 들어가게 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점점, 점점 가벼워지던 몸은 어느 순간부터 마치 무게가 없는 듯하다.
‘아직은 익숙해 지려면 멀었지만… 가자!’
“툭.”
가벼운 발걸음에도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간다. 그리고 휘둘러지는 도(刀). 가벼운 움직임과 다르게 무게가 가득 실려있는 도.
“호오? 생각보다 빠른 건지, 다른 게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쿵!”
퍼그님의 발 구름소리와 함께 장판이 요동을 치면서 날아온다. 그 요동에 순간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딱 봐도 아직은 익숙 해 보이지 않는 걸 꺼내면 안 되지.”
요동과는 너무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요동을 타고오는 퍼그님의 모습은 마치 파도가 짖쳐드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똑같았다, 짖쳐드는 퍼그님을 피해서 다니는 동안 반격은 꿈도 못 꾸었다,
*
한 편, 둘의 격돌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 사이에 가장 앞에 있는 두 사람. 부대장인 구문과 다른 한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흠 저 정도면 꽤 역대급인 거 같은데요? 확실히 보통 꼬맹이는 아닌가 본데요?”
“칼라가 꽤 마음에 들어 하는 아이가 데리고 온 아이니까. 그 까다로운 녀석이 고른 놈이라면 다르겠지. 그래도.”
때맞춰 장판이 요동치고 그 요동을 따라서 그들의 대장이 짖쳐드는 모습이 보인다.
“진짜 도둑놈 저 기술 하나는 사기 같다니까요. 특히나 바다에서는.”
“넌 아직도 도둑놈이라고 하니. 정말. 언제 크려고 하는 거니. 그래도 꽤 버티는 걸 보면 이번에는 괜찮을 수도 있겠구나.”
“어머니를 빼앗아간 놈이니까요. 진짜 대장만 아니었고, 어머니만 아니였으면.”
그 말에 웃음을 지으며 옆에 서 있는 이의 머리를 흐트려 놓는다.
“너도, 럼니도 이제는 홀로서기 해야지 않니.”
“저는 절대로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 입이 열리는 순간 굉음과 함께 바다로 날아가는 도전자, 범이라는 소년이 눈에 들어온다.
“나중에 훌쩍 떠나지 말고. 애들 시켜서 데리고 오라고 하러 가. 먼저 들어가 보마.”
“넵! 들어가세요!”
*
순식간이었다.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었고, 장판을 지나 바다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뭐.. 뭐지?’
분명 꽤 잘하고 있다 느꼈다. 적응을 하지는 못 했더라도, 자유함이 생기기는 했다.
요동치는 듯이 하는 그 장판에서도, 짖쳐드는 파도 같은 그 장판도 나름 견디고 있었다고 생각 한순간.
굉음이 울렸고, 울렁이더니 다리 밑에서 무엇인가 올라왔고, 옆구리에 통증이 느껴지더니 자신이 날아가고 있었다.
‘분명 그 정도 힘이 들어갈 수 없었는데.’
옆구리로 오는 공격이 안 보인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위로 솟구쳐질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지만, 그 정도는 맞아도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근데 생각 이상의 힘이었단 말이지. 뛰지 않으면 위험할 뻔했어.’
결국, 맞는 동시에 같이 날아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지금 바다가 점점 얼굴에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나 수영… 할 줄 아나?’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되었고, 결국 바다에 빠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어…!어?’
의외로 바다는 따스했고, (떨어질 때 좀 아프기는 했지만) 포근했으며 숨이 쉬어졌다.
‘물에서.. 바다에서 숨이 쉬어진다고?!?’
자신이 알기로 인간은 물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자신은 너무나 편하게 쉬어진다.
‘어?’
심지어 입을 열어도 수월했다. 그때, 따스한 그 느낌의 진원이 어딘지 점차 느껴지기 시작했다.
“목걸이가?”
누구도 감정하지 못해서, 3층에 있다는 어이없는 소문이 도는 목걸이. 자신을 당기는 그 느낌에 선택한 그 목걸이에서 자신을 감싸는 것이 느껴진다.
그때!
“쿠엑!”
“오? 생각보다 멀쩡하네?”
마치 불타오르는 듯이 하는 머리가 태양에 비쳐 진짜 타오르는 것만 같아 보이는 청년이 자신을 건져 올렸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하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공손한 말이 튀어나온다. 그동안 카인과 량이의 수고가 헛되지만도 않았다.
“가…감사합니다.”
소형선이라기보다 나룻배라고 해야 할까. 놀라운 건 이 나룻배에도 마나 엔진이 달려있다는 것.
“그래도 꽤 싹수가 있어 보여서 직접 왔네. 어머니도 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네? 어머니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출발하는 나룻배. 바람결에 자신의 질문이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좋다..”
순간 고민이 사라질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비록 몸이 젖었지만, 그래서 더 바람이 잘 느껴졌다.
바람에서 풍기는 짭조름 함도, 태양에 빛을 받아 따스한 그 바람도 좋았다.
“흐응 혹시 해적 할 생각은 없으려나? 지금 보니까 바다에서 살아가도 딱 좋아 보이는데?”
바람을 느끼면서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고 보기 좋았던지 그 붉은 머리의 사내가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해적…”
해적(海賊). 바다의 도적. 난폭하고 살인을 즐기며 술에 취해 사는 이들.
하지만, 자유섬에서만큼은 다른 일이었다. 그리고 자유섬 덕분에 변화하기도 했다.
본래, 자유섬에서 해적이란 가장 아이들이 되고 싶어 하는 이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등장한 바다의 황제. 해적들의 수장. 골드 로즈. 그녀로 인해서 흔히 말하던 해적들은 씨가 말랐다.
온전히 자유섬의 해적만이 남게 되었다. 바다는 온전한 자유를 찾았고, 해적은 더욱 이상이 되었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이 해적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바다 사람 특유의 배타성마저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 꽤 직위가 있어 보이는 이가 자신에게 해적이 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은, 자신을 몹시 좋게 보았다는 말이었다.
“진짜 해적 멋있기는 하죠. 근데 저는 친구들이 더 좋은 것 같아요.”
“푸하하하하! 정답이다! 그 대답마저 마음에 드는데? 진짜 생각 한번 해봐.”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생각지도 못한 권유를 받아서 더 기분이 좋아진 채로, 자신을 기다리는 이들을 향해서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