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바다를 건너는 경험은 처음이다. 수평선이 멀리 보이는 광활한 바다를 보면 새삼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다른 세상의 한 사제가 바다를 가른 이적(異蹟)을 보인 적이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었다.
‘나도 상위세계로 올라간다면 가능해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하루는 그 광대함에 넋을 놓고 이틀은 해로 인해 물드는 바다의 색에 눈을 빼앗겼다.
“그리고 지금은… 질린다…”
망망대해(茫茫大海 : 한없이 크고 넓은 바다)는 정말 막막하게 만든다.
“뱃사람은 힘들겠다.”
그럼에도 갑판에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조금 있으면 섬이 보인다고 했는데 말이지.”
조금 집중을 하자 저 멀리 산의 형상과 함께 섬이 희끄무레 보이기 시작한다.
“와…”
해미( : 바다의 짙은 안개)가 짙게 깔린 사이로 어렴풋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섬의 모습.
거기에 더해서 짙은 해미를 뚫고 비치는 일출의 모습.
그 모습은 마치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바다에 질린 그 감정도 가시고 그저 감탄만이 나오는 절경이었다.
“운이 좋구만. 역시 성하(聖下)의 총애를 받는 이는 다르다는 건가.”
뒤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건만, 선장(船長)이었다.
희끗히끗한 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단련 된 몸이 보인다.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은 그 얼굴은 은연히 고집스러운 그의 성격을 나타냈지만, 심해와 같이 깊은 눈이 단순한 고집쟁이로 보이지 않게 했다.
“선장님께서…”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단순한 선장이 아니기 때문. 신전의 소속 되어있는 모든 배들의 수장.
바다에서 유일한 황제의 칭호를 받은 골다스가 유일하게 자신과 바다에서 대적(對敵) 할 수 있는 사람이라 평한 인물이었다.
“매번 배를 탄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 절로 경탄이 나오는 광경 아닌가.”
심지어 부발님의 윗세대에서 활약한 인물이 여전히 정정한 모습을 보니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네 정말 절경이네요… 그간 바다에서 고생한 느낌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것 같아요.”
“하 애송이구만, 망망대해가 주는 평안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라니. 하긴…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지.”
점점 섬의 모습이 거대해지자, 돌연 동전을 하나 건네주시는 선장님이었다.
“이건?”
“잘 갖고 있어라. 쓸모가 있을 터이니. 부발이 신신당부를 하더구나. 쯧. 팔이나 하나 떨어지고… 멀었어 멀었어.”
혀를 차며 뒤돌아서는 선장님의 모습은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도대체 단장님은… 수호용병이면서 어떻게 여기저기 사람들을 다 아는 거야?”
풀리지 않은 의문을 품은 채 점점 다가오는 섬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
생각보다 많이 복작거리지 않는 거리였다. 조용한 가운데 분주한 느낌의 차분한 항구도시.
바다 사람들이 억세다는 소문을 들었던 것이 마치 거짓인냥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항구에서부터 보이는 거대한 신전의 모습이 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범아!!”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가 자신을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빨리 와~ 오늘은 구경할 시간 없어! 나중에 구경하고 어서 가자!”
뭐가 그리 바쁜지, 좋아서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카인이었다.
“빨리! 빨리!”
평소보다도 조금 더 들떠 보이는 카인의 모습에 뭐라고 물어보기도 무서웠다.
‘평소에도 말이 많은데 저 정도면…’
그런 생각을 삼키고 얌전히 카인의 뒤를 따라가자 어느새 있는 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가자!”
호기롭게 외치며 마차에 들어가는 카인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분명 안에는 기척이 없었는데 앉아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는 건, 처음인가. 반갑네 범군. 카인의 못난 아비 되는 사람일세.”
생각지도 않은 만남에, 뇌가 잠시 정지되었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인사를 하려 했다.
“아! 안녕하세요..! 카인의 친구 범입니다.”
당황해서 마차라는 사실도 까먹은 채 일어서려다가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푸하하하하! 범아 너 완전 웃겼!!!.. 아야!!”
경쾌한 딱밤 소리와 함께 카인의 웃음이 멎었다.
“이 녀석아, 나이를 들어도 어떻게 애 같은 면은 변하지를 않는 것이냐.”
“아니, 지금은 괜찮자나요오~”
새삼스럽게 애교를 떠는 카인의 모습이 왠지 부럽게 느껴졌다.
‘저런 아버지가 있었다면… 조금 더 행복했을까’
잠시간 카인의 투정을 받아주시던 카인의 아버지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하셨다.
“꽤나 굳은 눈이긴 한데. 아직 흔들리는가 보구나.”
정곡을 찔린 듯한 말에, 괜한 부끄러움이 올라온다.
“괜찮다. 원래 흔들리면서 나아가는 길이니. 그나저나 아들의 하나뿐인 친구를 이제야 보러 와서 미안하구나. 그래도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베스페라라고 이름을 밝히신 아버님은, 꽤나 유쾌하고 진중하신 분이었다.
카인이 철이 들면 저런 모습일까 싶은 모습.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돌연 진중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아들에게서 [뿌리]들에 대해서는 대략 들었겠지?”
“아… 네. 천년왕국의 잔재라고 들었습니다. [마타하리] 또한 [뿌리]의 하나라는 것도.”
“흠… 정말 대충 설명해 주었구나?”
“아.. 아니! 복잡하게 설명해 봤자 뭐해! 그래도 핵심은 다 이야기 했다구!!”
자신뿐만 아니라 아버지 앞에서도 어린아이가 되는 카인의 모습이 조금 부러웠다.
“흠… 너무 설명하면 길어지니, 나중에 카인에게 상세하게 듣도록 하려무나. 다만, 조심하라고 꼭 말해주고 싶구나.”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음을 모르시는 건가 싶기도 했다.
“마스터라는 고절한 경지에 오른 것은 알고 있단다. 네 무예가 대단하다는 것도, 재능도 꽤 발전했을 것이라는 것도.”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재능이 성장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모르는데… 아니, 마르쿠스를 제외한다면 아무도 모를 텐데?’
“훗… 표정 관리하는 연습도 조금 해야겠구나. 배울 게 많겠어.”
짓궂은 웃음을 보이는 카인 아버님의 모습은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카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눈은, 정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하는 날카로움이 서린 것만 같았다.
“그분께서 세상을 나누시고 각 위계에 맞는 한계를 내리셨지. 하지만, 정말로 한계만을 내리셨을까?”
아버님의 말씀이 마치 천둥처럼 귓가에 꽂혀 들어왔다. 전혀 생각해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었다.
“초인. 인간을 넘어선 힘을 지닌 이들의 힘을 제대로 본 사람이,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실제로도 그러했다. 초인이라는 명칭에 대한 위대함은 널리 퍼졌지만, 그들의 무위를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전생(前生)에서 조차 초인의 등장은 없었지. 로사도 초인에 오르고서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고. 그러네…?’
“무위에는, 마법에는 한계를 내리셨지만, 그것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잠재력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지.”
“그게… 재능이라는 건가요?!”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그런 대단한 잠재력이 자신은 기본인가 싶으면서도 두근거림이 괜히 들었다.
“그렇단다. 그것이 우리들의 재능이지. 그리고 초인이라고 하면 경지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재능을 한단계 개화시킨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란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마스터를 낮게 부르던 부발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 도대체 초인은… 그럼 어떻게…”
“모든 것을 허락하는 신전이 놔두지 않는 것이 있단다. 그리고 그것이 신전의 주 업무이기도 하지. 초인의 관리. 초인들의 무위가 알려지지 않게 하는 것.”
“왜…”
“인간은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마주하게 되면 경외하거나 배척하기에 그렇단다.”
아직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초인의 무위(武威 : 무력의 위엄)가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하는 것일까 싶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이야기를 하시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 내색을 바로 읽으셨는지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번에 [뿌리]를 조사하면서 조금 질이 안 좋은 것들을 발견해서 말이다. 아무래도 네가 맞닥뜨릴 상대가 쉽지 않을 것 같더구나.”
“질이 안 좋다면 어떤 의미로…”
“뭐 생체 실험이나 이런 것은 당연히 하는 인간들에 거기에 더해서 비인(非人)들이 모두 [뿌리]의 소속이더구나.”
“비인(非人) 인간답지 못한 인간이라니요?”
비인(非人)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명칭이었다. 단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명칭.
전생에서의 전쟁에서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명칭이었다.
“그 전에, 이 세상에 마스터나 5서클 마법사는 얼마나 될까?”
갑작스러운 전환이었지만, 안 그래도 종종 하던 생각이었다. 전생에서 자신은 골드 용병을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경지는 익스퍼트의 끝자락이었을 뿐이다. 그 위의 미스릴 용병은 그럼 어떤 경지일까?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서 받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기세가 달랐다.
그리고 그런 미스릴 용병의 수는 그렇게 적지만도 않았다. 대륙의 반을 지배하는 블레어 왕국에서도 세 자릿수나 있었다.
전체의 인구수로 보자면 많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수로 보면 그리 적은 수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마스터라는 경지가 지고(至高 : 지극히 높음)하고 몇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경지가 지고 하기는 하지만 의외로 많지 않을까 생각하던 참이다.
“흠, 그래도 꽤 많지 않을까요?”
자신의 말에 은은한 미소가 어리는 아버님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마스터에 이르렀다고 범이는 그나마 정확히 알고있구나. 카인은 완전한 오답이었는데 말이다.”
“아니! 완전한 오답까지는 아니자나요!!!!”
“뭘. 완전히 틀렸지. 서대륙에만 100명이 뭐냐. 자릿수가 틀려먹었구만.”
카인의 투덜을 잠시 받아주시던 아버님은 이내 말을 이으셨다.
“우리가 추정하고 조사하기로는 블레어 왕국에만 존재하는 이들이 1000명이 넘어간단다.”
“네..?! 천 명이 넘어간다는 말씀인가요?”
100명을 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1000명은 생각하지도 못한 숫자였다.
“그래. 그리고 그중에서 초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몇 명일까?”
알려지기로 초인의 수는 20이 넘지 않는다. 그것도 최근 20년간에 초인으로 오른 이는 아무도 없었다.
“17명. 그것이 초인의 숫자란다. 그렇게 지고한 경지에 오른 이들조차 꿈에서나 그리는 경지에 오른 이들이.”
새삼 초인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숫자였다.
‘그중에 나는 다섯 사람이나 만난 건가… 새삼. 대단한 분들이네’
교황 성하, 라니우스님, 부발님, 파울로님에 이어서 티토님까지. 벌써 5명의 초인과 만난 자신이었다.
“그리구! 우리 아빠도 초인이지!! 왜 그건 빼먹어!”
방금 6명이 되었다. 이번 생은 초인과 연이 강한가보다 싶었다.
“허허. 나는 말석에 불과하니 그렇지. 그리고 네가 타고 온 배의 선장님도 초인이시란다.”
아니 7명이었다. 17명의 초인 중에서 벌써 7명이나 만난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초인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역행(逆行)을 택한 자들이 있지. 그들을 비인(非人)이라고 한단다.”
마차는 하염없이 갈 길을 향했고,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흘렀다.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몰랐기에 어느새 마차가 멈추어 선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이제 슬슬 야영을 준비하자꾸나.”
그 말을 끝으로 내리자 밖에는 모든 야영준비가 마쳐있었다. 그저 비박으로 야영을 하던 자신과는 다른 모습.
딱 보아도 포근해 보이는 천막과 중앙에는 이미 불이 피워져 있었고, 작은 식탁에는 세 사람의 음식이 놓여 있었다.
“이..이게…”
몇 사람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머쓱한 표정의 아버님이 눈에 들어온다.
“좀… 애들이 과잉 충성이 있어서. 워낙에 카인을 이뻐하기도 하고.”
마치 자신은 전혀 이런 것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표정에는 진실성만이 가득 해 보였다.
오히려 쑥스러워하는 그 표정이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미 차려진 마당에 어쩔 수 있나. 고맙네.”
고맙다는 말에 바람이 한차례 불고 지나간다.
‘내가 감지한 인원은 8명인데…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문득 궁금증이 드는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