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내 삶은 아카데미 입학 전과 후로 나뉘었다. 입학 전에는 누구도 내 위에 있지 않았다.
손에 꼽게 등장한다는 최상위 재능을 타고났다. 거기에 무재 또한 엄청났다. 그것이 타인의 평가였다.
5살에 검을 잡았다. 좀 힘들었다. 이해는 다 되었는데 몸이 따라가지를 못했다. 힘이, 체력이 받혀주지를 못했다.
7살에 검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레이피어를 선택한 것은 참 탁월한 선택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찬란한 재능이라고 하지만 스콜라스는 마법으로 대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재인은 최상위 재능이지만 힘과는 관련이 없는 재능이었다. 결국, 그 가운데 우뚝 서는 것은 나뿐이라는 이야기였다.
입학식에서 기본 재능을 타고 난 아이를 보았다. 참 열심히 한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 재능을 타고난 저 아이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최상위 재능을 타고난 나는 응당 그 위치에 걸맞게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 아이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나는 그 기본 재능의 아이를 넘어설 수 없었다. 첫 대련에서 어이없이 졌다. 너무 무시했기에 방심했다고 생각했다.
마나조차 사용하지 않았으니 방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대련. 마나를 사용했다.
그리고…. 졌다. 인정할 수 없었다. 그 아이의 말이 뇌를 헤집었다. 기본 재능은 당연히 무시되어야 한다, 평민은 당연히 재능이 떨어진다는 사고가 흔들린다.
마음을 다잡았다. 결코 그 아이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그 아이는 나를 위한 시련이다.
첫 수련회를 떠났다. 시체가 썩는 악취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전장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전장은 처음이었다.
모든 1학년들이 괴로워하는 가운데(심지어 나조차 토할 뻔했다) 태연히 서 있는 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 아이였다.
어떤 수라장(修羅場)을 헤쳐 왔기에 여기서도 담담한가 싶었다. 그리고 시작된 수련회는 최악이었고 최고였다.
스콜라스 때문에 죽을 뻔하고 그 아이에게 생명의 구함을 얻었다. 초인이라 일컫는 분을 감히 만나 뵙게 되었다.
그리고 새삼 내가, 온실 속의 화초였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진짜 야생에서 피어난 꽃을 보았다.
목표가 생겼다. 아카데미 졸업 전에 그 아이를 넘어서고야 말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뚜렷한 목표가 생기니 발전이 따라왔다. 그 덕인지 사탈레스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5대 영웅, 그 중 폭풍의 검의 일맥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아이를 이길 수 없었다. 그 아이 곁에 친구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공작가의 후계로 이미 확정된 에밋이 눈엣가시처럼 보였다. 내가 더 친해질 수 있는데! 내가 더 잘해줄 수 있는데! 우리는 같은 검사인데 내 자리를 뺏긴 기분이었다.
점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아이가 나를 싫어하고 무시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하지만, 결국 내 옆에 있는 이들은 프라우를 제외한다면 오라버니의 수족들.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동아리에 들어가려고 했던 나를 제외하고 아카데미의 클라운이었던 아이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마치 처음 들어본다는 듯 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했다. 하! 나를 두고 그따위 클라운을 선택하다니 실망이었다.
더욱더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것이라는 일념(一念)으로.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점차 주변의 아이들이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동경이 아닌 질시로.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이리될 것을 알고 있었다. 로안은 자기가 잘 숨긴다고 생각하지만,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 아이가 떠나고 난 후, 더욱더 검에 매진했다. 나에게 남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검. 그것밖에 없었다.
스승님이 점점 이상해진다. 한없이 자애롭고 한없이 나를 자랑스러워하던 스승님이었는데, 가끔 싸늘한 눈이 꽂히는 것만 같다.
‘착각이겠지…?’
스승님마저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자애롭게 보지 않는다. 빠르게 늘어나는 실력과 반비례해서 스승님의 애정은 사라져갔다.
결국, 내 옆에는 프라우만 남았다. 중앙 신전으로 쫓기듯이 파견 돼 나왔고,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경지가 오를수록 경계만이 늘어났다, 내가 강하지는 것에 비례해서 주변인은 줄어들었다. 지금 파견 나온 이곳에조차 나는 외인(外人)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제일 보고 싶지 않은, 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이가 눈앞에 서 있다.
“범아… 네가 어떻게…”
*
아침이 밝아오자 대충 아침을 먹고 신전으로 향했다. 불편한 일을 빨리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파견을 나온 외부인들을 위한 숙소는 신전의 한 켠에 있었다. 조금은 떨어진 장소.
처음 와보는 장소였다. 조금은 떨어진 외진 장소에 있어서 그런지 조용하고 고즈넉해 보이는 별세계였다.
“와… 이런 곳도 있었네. 외부인을 위한 장소라 그랬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은데?”
조금 더 들어가니 몇몇 사람들이 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을 지나쳐 건물의 뒤편까지 나가서야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힘이 없고 지친 표정이었지만, 분명 로사였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렇게 변했지?’
전생(前生)에서의 로사는 누구보다 빛나 보이는 사람이었다. 멀리서 한 번 본 것뿐이지만 그 누구보다 빛이 나 보이는 사람이었다.
현생(現生)에서도 비록 조금은 고집이 있었지만, 누구보다 빛이 나는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힘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보였다. 바람에 한없이 줄어든 촛불 같았다.
로사의 앞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로사도 나를 보았는지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응…? 왜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이지?’
“범아… 네가 어떻게…”
“네가 여기로 파견 왔다는 소식 들어서. 부탁할 것도 있고, 궁금한 그것도 있고 해서.”
“너도… 너도… 날 비웃으러 온 거야?”
“널 왜 비웃으러 와…? 누가 널 비웃어!”
“너…너어…도…내…내..애가…얼마아… 나…흐..엉…엉…..”
“어?? 어??!?”
갑자기, 너무나도 뜬금없이 눈물을 터트리는 로사의 모습에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갑자기 내 쪽으로 오는 것에도 반응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로사를 내가 토닥여 주고 있었다. 서럽게 우는 로사를 보니 내 마음도 괜히 아파져 왔다.
이야기하러 왔는데 오히려 로사를 토닥이는 이 상황이 몹시나 어색했다. 그래도 서럽게 우는 로사를 내치지는 못했다.
그간 쌓인 것이 많았는지, 이만하면 된 것 같은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다.
다 드러나지 않던 해가 온전히 모습을 다 드러내고, 로사의 눈은 너무 부어 본래의 눈을 반쯤 가리게 될 즈음 로사의 눈물은 멈추었다.
“좀… 괜찮아졌어?”
그 말에 현실을 자각(自覺)했는지, 순식간에 얼굴을 시작으로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로사였다.
“…응”
집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잘 듣지 못할 정도의 소리로 말하는 로사였다.
“무슨 일이야.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내 질문 하나가 기폭제가 되었는지 그동안 있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흠… 결국에는 찡찡대는 거잖아. 왜 자기를 알아서 받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게 귀족의 사고관인가…?’
로사는 원래 그렇다 하기에 전생(前生)에서의 로사의 평가가 마음에 걸렸다.
[누구보다 귀족같고 부하의 마음을 사로잡는 철혈의 여장군. 그녀의 휘하의 장병들은 그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이런 평가를 받았던 로사와는 사뭇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득 량이가 전에 로사를 보며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로사는 힘들겠네… 기사는 되어도 장군은 못 될지도…”
로사의 미래를 알고 있기에 전혀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천재인 량이도 틀릴 때가 있구나 싶었다.
“왜?”
“흠… 사람들은 기대한 만큼 그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뛰어넘지 못하면 무시하고 낮춰보는 습성(習性 : 종의 특유한 성질)이 있거든.”
“그런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량이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누구보다 기대를 많이 받은 아이가 로사잖아. 근데 웬걸 이상한 놈이 앞을 가로막는 거지.”
그 이상한 놈이 자신이라는 걸 알기에 량이를 째려보았으나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 량이었다.
“그럼.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아! 별거 아닌데? 에이… 별로네. 이러면서. 뭐. 혹시 모르지. 그걸 다 극복하고 나아갈 수 있을지도.”
여전히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량이의 말은 다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꼭 저렇게 말해야 하나. 딱! 똭! 딱! 이렇게 말해주면 좀 좋아… 이래서 천재들이란.’
“넌 이래서 천재들이란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천재는… 독심술도 할 줄 아는 건가!’
*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였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떠오르는 말이었다.
자신이 없었더라면, 로사는 그야말로 승승장구(乘勝長驅) 했을 것이다.
누구와 비교 할 수 없는 성장. 선망. 동경. 그렇게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로사는 후작이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아는 로사는 부딪히고 깨지더라도 정면으로 나아가는 아이였다. 그렇게 성장한 로사는 위대하다 일컬어지는 장군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과는 다르게…
‘결국… 나 때문인 건가. 뭐… 내 잘못은 아니라지만… 조금 미안하긴 하네.’
자신의 존재가 로사의 미래를 빼앗은 느낌이 살짝 들었다.
자신은 운이 좋아 친구들이 있었지만, 로사는 없었다. 자신은 귀족이 아니기에 자유로웠지만 로사는 귀족이기에 자유롭지 못했다.
그 차이가 지금의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었다. 카인에게 듣기로 가문에서조차 경계했다고 하니 참 힘들었을 것 같았다.
‘본래의 역사라면… 가문에서조차 찬양하고 자연스럽게 후계가 이동하게 되었을 텐데…’
조금은 로사가 불쌍해 보였다. 누구보다 찬란했던 그녀가 지금 신전의 외곽에 홀로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조금 말이 부드럽게 나왔다.
“많이 힘들었겠다… 그 가운데서도 대단하네… 정말 고생했어…”
그렇게 울고 나서도 아직도 눈에 눈물이 남아있던 것인지 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다행히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묻는 로사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묻어났다.
“너도… 내가 좀 한심하지…? 왜… 나는 이런 걸까… 그냥 검이 좋았는데…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기가 차는 이야기였다. 두려움이 묻어나지 않았으면 큰소리로 뭐라고 했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최상위 재능을 가지고 어린 나이에 벌써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랐으며 지금은 마스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생(前生)에서는 그래도 인간답게(?) 28살의 나이로 마스터가 되었다면 지금은 8년 이상을 줄였다.
그런데도 안된다고 하는 모습이 정말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50년이 걸려서야 당도한 경지에 그 반도 안 되어 바라보고 있는 주제에!
“후우… 로사. 넌 아직 20살도 안 되었잖아. 그런데도 마스터를 바라보고 있고.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네가 이룩한 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
“그래도… 결국 나는 혼자 남았는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스승님조차… 날 경원시하시는 걸… 누구도 날 좋아 해 주지 않아.”
‘이 상황에 와도 스승님이라고 하는 건가… 참…’
“프라우가 있잖아. 그리고 너에겐 힘이 있고. 넌 마스터를 바라보는 힘이 있어. 그리고 로사… 넌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간 적은 있어?”
내 질문에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사를 보니 불쌍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기분이었다.
‘에휴… 귀족이란…’
“네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간 적도 없는데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아직 하지 못한 노력이 남아있단 거야.”
“후우….”
“그리고 이 모든 게 온전히 너의 탓은 아니야.”
내 말에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로사. 그에게는 조금은 잔인하게 들릴 말을 해야 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로사는 내 입을 빤히 바라보며 어서 이야기하라는 듯 재촉하는 눈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