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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72화 (72/217)

[72화]

잠시 누군가를 회상하는 듯 사색에 잠긴 표정의 성하(聖下)께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 아이를 열심히 가르치고 인도했지, 그 덕일지 최연소 주교로 역사에 남기도 했지만… 그때가 되어서야 옳고 그름이라고 생각한 것이 내 독선임을 알게 되었지…”

참 슬픈 이야기였다. 상상하는 것 이상의 아픔을 지니고 사는 사람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그 슬픔이 크게 다가왔다.

“결국 나도 인간에 불과할 진데, 어느새 교황이라는 자리에 취해있던 것이더구나. 나를 세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교황으로 바라보고 있더구나.”

‘그러고 보면… 성하께서는 언제부터 성하이셨던 거지…?’

갑작스럽게 드는 상념에 빠지려고 하는 찰나에 자신의 귀에 천둥처럼 들리는 말이 꽂혀 들어왔다.

“넌. 어떠하냐.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더냐. 무인이더나, 마스터이더냐, 용병이더나, 아니면 너 자체더냐.”

‘나… 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니… 나는…’

다시 살아나고 난 후의 일생이 뒤감기며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전쟁, 그전의 그레누이, 그전의 용병단, 그전의 아카데미, 그리고 그전의 고아원.

전생(前生)의 기억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발버둥 치고자 했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 발버둥 친 거지…? 무엇 때문에…’

자신의 죽음 뒤에 만난 관리자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더 높은 재능을 마다했고 더 좋은 환경을 마다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을 선택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열등감의 해소도, 비웃어 주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해 보고 싶었던 거지. 신의 얼굴에 죽빵을 날리는.’

그래서 마음을 열지 않았다. 오직 마틴에게만 마음을 열고자 했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언제나 같다.

칸님께 은혜를 받았고 프란체스코 님에게 배움을 받았다. 스승님을 만났다.

친구들이 생겼다. 카인을 만나게 되었고 에밋을 만나게 되었다. 량이를 만나게 되었다.

동료들이 생겼다. 부발 단장님을 만났고 데마르님을 만났고 씨어님을 만났다.

수하가 생겼다. 마르쿠스가 뒤에 언제나 섰다. 씰과 베어는 언제나 투닥거리고 파로님은 조언을 건네며 힐페는 이상한 먹거리를 가져다준다.

이 세상이 좋아졌다. 친구들이 있고 스승님이 있으며 동료가 있고 수하가 있는 이 세상이 너무 좋아졌다.

더욱이 이 세상에서 자신은 강자였다. 초인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를 제외한다면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였다.

그 모든 것을 두고 떠날 자신이 없었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위에 있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누군가 의지가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안락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처음의 의지가 연해지기 시작했다. 오르면 안 되는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단장님의 힘을 보게 되었다.

의지가 연해진 틈으로 자신감이 꺾였다. 그리고 구색 좋게 재인이 등장했다. 뿌리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가지 않을 이유를 찾게 되면서부터 변명을 고민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자연스러울지 회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그렇다고 해서… 내가 꼭 올라가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살면서 변 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런 고민과 회피를 넘나드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성하께서 입을 열었다.

“괜찮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다만, 택하기 두려운 걸 선택하려무나. 그게 너의 진심일 테니.”

안도가 되는 동시에 섬뜩한 말이기도 했다. 두려워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말이… 무서웠다.

‘실패하면… 대신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지 않나… 내 인생인데…’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성하의 입에서 마치 나의 마음을 읽는 듯한 말이 튀어나왔다.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단다. 너의 인생이라 쉽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실패한다 해서 너의 인생이 망하는 것이 아니란다.”

“하지만… 제 인연이 모두 끊어지게 되잖아요. 상위 세계에서 실패하면 전 결국 아무것도 얻는 게 없지 않나요.”

“왜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생각하느냐. 상위 세계에 올라가서 인연이 있을 것이고 너의 삶이 있을 것인데. 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네 인생이 없는 건 아니란다.”

무언가 알 것 같기도 했지만, 확신은 서지 않았다. 그리 쉽게 결정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다른 이가 말하는 삶을 삶이라 생각하지 말고 너의 삶을 살거라. 넘어져도 네가 넘어지는 것이고 날아가도 네가 날아가는 것이다. 누구도 너 대신 삶을 살아주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성하께서는 어찌하여 이 세상에 계속 남아계시는 겁니까…?”

나의 질문에 시원하게 웃는 성하였다. 이렇게 크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교황이 되면 말이다… 상위 세계에 갈 수 없단다. 너도 관리자를 뵈어서 이야기가 좀 쉬울 수 있겠구나.”

“네…? 설마…?!”

“하하하하. 아니다 감히 내가 어찌 관리자님과 같은 위치에 설 수 있겠느냐. 다만, 이 세상과 관리자님의 중간에 서 있는 것이란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격의 차이가 났던 관리자님이 생각이 났다. 그런 분과 한 발이라도 걸쳐 있다니.

“아! 그리고 관리자님께서도 종종 네 이야기를 하시더구나. 당신께서 맡으신 이후의 첫 등반자일 수 있다고.”

“첫 등반자… 관리자님께서는 자주 바뀌시는 건가요?”

“허허… 뭐 나도 잘 모르지만 내가 교황이 되면서 바뀌었단다. 하지만 그분이 3번째 관리자인 걸 생각하면 자주 바뀌는 건 아닌 것 같구나.”

“혹시… 성하께서는 연치(年齒 : 나이의 높임말)가…”

“뭐… 대충 300년은 넘지 싶구나. 후계가 생기기 전에는 죽지 못하는 것이 교황의 자리니… 내가 못나서 그렇지.”

뭔가 과도한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니 혼란해졌다. 300년이라니… 인간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다. 너의 앞길을 어떻게 정 할 것이냐가 중요하지.”

“아…! 그러네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언제든 고민이 있다면 늦은 저녁에 이리 오거라.”

“감… 사… 감사합니다…”

“허허허. 아니다. 네가 내 첫 등반자일 수도 있고 마틴과 친구이지 않더냐.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단다.”

성하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은 정신이 없었다. 들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정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신전에서 여관으로 향하는 길 내에 머릿속에는 새로운 정보들의 기존의 정보들과 치열하게 다투었다.

성하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심중(心中)을 꿰뚫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이야기가 그랬다는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 갈래가 너무 많아 정리되지 않았다. 여관에 도착해서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카인은 마틴과 함께 있는 듯 방이 비어 있었다. 빈방의 중앙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보기에 아무것도 안 하는 듯했지만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이 새로 생겨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머리가 아파지려는 찰나에 생각하는 심결(心結)이있었다.

‘극기심결!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 극기심결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화두(話頭)를 정하고 그에 집중하며 호흡하기 시작했다.

‘지금… 결국 내 모든 고민의 중심에는 오르느냐, 마느냐에 있어.’

화두가 정해졌다. 그 화두를 가지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사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르고 싶은 걸까… 사실 오르고 싶어. 아니, 그냥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정점에 이르고 싶어.’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내가 가능할까. 적어도 우리 세계에서는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어.’

‘오르지 말아야 할 이유는 뭐가 있지? 진짜 인연 때문에 나는 망설이고 있는 걸까?’

극기심결은 이름 그대로 자신을 넘어서게 하는(극기) 마음의 비결(심결)이다. 그리하기 위해 선결(先決 : 다른 문제보다 앞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객관화.

자신의 모습을, 마음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몹시 불편한 일이었다. 우리는,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직시(直視 : 진실을 바로 봄)하는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야… 인연이 소중한 건 사실이야. 그 때문에 남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직시하는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첫걸음이자 나를 넘어서는 첫 계단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르고 싶지 않은 건 아니야. 확신이 있다면 난 인연을 두고 오를 수 있어. 진실은… 확신이 없다는 거지. 무서운 거야.’

‘결국… 내가 원하는 건 확신. 하지만 그건 누구도 줄 수 없어. 성하께서 그러셨지 선택의 기로에서 두려운 선택이 진짜 내가 원하는 선택이라고…’

그렇게 점점 내 자신의 숨겨진 마음을 향해서 깊이깊이 묵상하고 사색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

“범아…?”

범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나게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느낌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방 한가운데 좌정(坐停)하고 있는 범의 모습이 보였다.

‘쟤는 설마 또 막 깨달음 이런 건가? 무슨 괴물도 아니고 매번 그럴 리도 없는데…’

여태 보지 못할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서 집중하고 있는 범의 모습은 뭔가 괴로워 보였다.

“어?”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다른 방으로 가려던 찰나에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들리지 않은 듯했다.

좌정한 채로 괴로워하는 범이었다. 그리고 그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괴로운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범이가…많이 힘들구나. 고민이 엄청 많구나… 정말… 힘드나 보네… 힘내…’

조용히,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아예 방 밖으로 나섰다. 방문을 조용히 닫고 그 앞에 앉았다.

“실드(Shield) - 사일런스(Silence) -  커랜틀리(Currently). 조합.”

세 가지 마법의 마법진이 차례차례 나타나더니 하나의 마법진으로 조화되기 시작했다.

“사일런트 룸(Silent Room)”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 없지만… 힘내…’

방문 앞에 앉아 방을 감싸는 마법을 펼친 후 그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듯, 방의 수문장처럼 카인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

“후아… 난 진짜 쓰레기구나…”

눈을 뜨고 그동안 숨을 참은 듯이 큰 숨을 토해냈다.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마른 자욱이 느껴졌다.

“후… 결국 넘어서지는 못했네… 참… 겁쟁이에… 하. 얼마나 시간이 지났으려나.”

미동도 하지 않고 좌정해 있던 몸이 스트레칭을 하지 비명을 지른다. 몸을 풀고 있을 때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뭐지? 마력이 흐르는데…? 소리도… 안 나?”

머리는 천천히 생각하고 있지만, 몸은 어느새 스트레칭을 그만두고 문을 열었다.

“어?”

위화감이 느껴지기에 연 문 앞에 카인이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는지 일어서서 뒤를 돌아보는 카인.

“범아!!! 깜짝 놀랐자나!”

“어? 왜? 놀라긴 내가 놀라야지. 넌 뭐 하고 있어. 문 앞에서. 이상한 마력은 또 뭐고.”

“아니. 네가 뭔가 집중하길래 마법진으로 뭘 좀 했지. 그나저나!! 뭘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어!”

“오래…? 얼마나 지났는데?”

“모르지!! 내가 본 이후만 해도 6시간이 지났는데?”

“벌써?! 와 미쳤네… 그런데 이 마력은 뭔데?”

“이거? 역시… 마스터 정도 되면 느껴지나 보네… 짱이지?! 멋있지?!”

“아니… 뭔지를 알아야지… 그런데 진짜 묘한 위화감 정도만 있네…”

“내가 만든 마법이야! 알다시피 내가 무속성이기도 하고 마법진을 주로 다루잖아 그래서 계속해서 만들고 있는데 성공작 중 하나지!”

으쓱해하는 카인을 보니 울적해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항상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왔지만, 언제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신이었다.

“대단한데? 진짜로. 나라도 집중하지 않거나 다른데 정신이 팔려 있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겠는데?”

“오? 그 정도야? 좋아 좋아. 그나저나 안에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설마… 또…”

“아니야. 무슨 내가 천재도 아니고.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집중하고 있었던 거야.”

“무슨 생각을 6시간이 넘게 집중해서 생각하냐! 난 또. 깜짝 놀랐네.”

“그래서 무슨 마법인데?”

“아! 사일런스 룸이라는 마법인데 말이야…”

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이면서 화제를 전환했다. 아직은,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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