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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68화 (68/217)

[68화]

데스투도 백작가와의 일이 끝나고 돌아온 용병단의 저택에는 량이도 도착해 있었다. 상자를 받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꼭 그게 다는 아닌 것 같기는 했다.

영상을 찍고 있는 단장님과 데마르 님을 뒤로하고 저택에 와서 바로 량이를 찾았다.

그리고 재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고 고민을 털어놓자, 자신의 말을 듣고 나서 묘한 눈으로 한참을 쳐다보던 량이 내뱉은 말이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한 게 이상해?”

“당연히 이상하지.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 아니 학식 있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무력이 제일이다.!’ 이럴걸?”

“흠… 너는 그렇지 않으니 천재다 뭐 이런 거야?”

자신의 말에 소리 없이 쿡쿡 웃던 량은 이내 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천재는 시류를 앞서 나아가는 인물이 천재지. 나는 시류를 거스르니까. 이단아 정도일까?”

“하. 그래. 그래. 천재 이단아 님. 나 진지하다고.”

“알아. 알아. 안 그래도 그래서 여기로 바로 온 것도 있으니까.”

“안 그래도 알아봤는데, 데스투도 가문의 가훈(家訓) 같은 거였다고 하더라.”

“어? 뭐가? 왜 갑자기 뜬금없이 가훈이 나와?”

“만일을 대비하는 거. 최근 들어서야 권세를 잡았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역사가 있는 가문이더라고.”

“아. 그래서 [마타하리]가 못 찾아냈다?”

“그런 거지. 이번에도 조사하면서 드러난 사실이니까. 그리고, 아니 뭐 이건 아직 확실하지 않으니까.”

“흠. 그럼 어쩌면 좋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너 로사한테 다녀와야 할 것 같아.”

“로사??? 걔가 왜 여기서 튀어나와?”

로사에 대한 기억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전생의 이야기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기도 했고 자신에게 이상하게 삐대는 감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별로 신경도 안 쓰고 멀리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량이 로사의 이름을 꺼냈다.

로사의 이름을 듣고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얼굴을 보면서 량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재인이 아주, 아주 큰 그림을 그렸더라고.”

“그래서. 로사는 왜.”

“재인의 큰 그림 중에 핵심을 이루는 게 스콜라스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거였거든. 근데 스콜라스가 처음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사람이 있었거든.”

“그게 로사다?”

“응. 그래서 아카데미 입학하면서부터 슬슬 시작했더라고. 그 와중에 네가 나타난 거지.”

“내가?”

“어. 그래서 널 이용해서 쏠쏠하게 써먹는다 싶었는데, 둘이 붙어먹을 것 같아 보이는 거지. 그래서 수를 여러 가지 썼더라고.”

“내가 로사랑?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말에 세상 이런 한심한 사람이 존재하나 싶은 눈길로 바라보는 량이었다.

“진짜. 너 같은 놈이랑. 후. 하여간, 어쨌듯, 그래서 카시스 후작가도 좀 찌르고 그러다 보니 로사가 고립이 된 거지.”

“저어. 하나도 못 따라가겠는데요.”

“뭐, 세세한 건 나중에 카인한테 듣고, 예로 들면 [우시아]에 가입을 못하게 한 것도 있지.”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왜 자신은 받아주지 않으면서 마르쿠스를 받아주었냐 외치던 로사의 모습.

당시에는 지원서도 내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가 싶어서 짜증만 낫던 그 순간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자신도 모르게 나온 낮은 목소리에는 은은한 분노가 서려있었다.

“[마타하리] 무섭던데? 아주 인생을 싹 다 팠더라고, 근데 거기에 재인이 매수해서 지원서도 빼돌리고 뭐 이런 게 많더라. 로사를 상대로”

“하. 어쩐지.”

“왜? 로사가 그때 뭐라고 했어?”

“왜 자기는 안 받아주고 마르쿠스만 받아줬냐고. 하…”

“크하하하하하 범이 놀아났네에~”

“왜. 나만 놀아났나? 자칭 천재 이단아 님께서도 놀아나신 거지.”

“…”

“그러니까 좀 신경 써서 처리해 줘. 괜히 어영부영하지 말고. 진짜 생각 이상으로 위험할 수 있으니까.”

“하아. 귀찮았는데. 가버리는 주제로 알고 있었구만, 왜 눌러앉아 가지고. 알았어, 그럼 로사나 빨리 만나고 와. 지금 중앙신전에 있으니까.”

“중앙신전에?”

“어. 참 보면 진짜 불쌍한 건 로사니까. 좀 잘 대해주고.”

“몰라. 몰라.”

“아! 그리고 거기 가면 카인도 있고 마틴도 있어. 화이팅!”

“마틴은 또 언제. 하. 그래! 간다! 가.”

악동처럼 웃는 량이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얄밉기 그지 없었다.

‘카인이랑 마틴’

최근 들어 드는 생각이란 ‘굳이 상위세계로 향해야 할까?’였다. 이곳에 있는 인연을 다 두고 떠나야만 할까.

‘내가. 상위세계로 간다고 해서 정점(頂點)에 이를 수 있을까?’

그 정점이라는 게 그리도 가치가 있는 것일까. 과연 어디가 정점일까. 생각이 점차 많아지고 있었다.

마스터에 오른 지금, 이 세계에서 자신은 정점에 가까이 올랐다. 마스터에서 초인. 단, 하나의 계단만이 남아 있다.

비록 계단 하나의 차이지만 평생을 걸쳐 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계단이다. 그만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상위세계로 올라간다면 몇 개의 계단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그 계단을 과연 자신이 모두 오를 수 있을까.

단장님의 전투가 떠올랐다. 실로 괴물 같은 위용이었다. 모든 힘을 다 쏟은 것이 아님에도 전율 그 자체였다.

‘내. 기본재능으로도 과연 가능할까?’

선천재능의 차이를 뼈져리게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자신이 초인 된다고 한들 다른 초인과 겨룰 수 있을까.

자신의 재능이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을지 자신도 확신도 없었다.

단장님에게 외유를 허락받으러 가는 그 길 가운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쿵’

“아!”

자신도 모르게 머리로 노크를 해 버렸다. 생각 이상으로 깊게 상념에 빠져있었던 듯하다.

“들어와라”

자신의 박치기가 노크로 들렸는지 안에서 단장님의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들어가니 영상 구슬을 만지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 단장님이 보였다.

“일은 다 마치셨어요?”

“뭐. 그렇지. 후. 어쩐 일이냐.”

“아. 다른 게 아니고 중앙신전에 다녀올까 해서요. 의외로 꽤 길어 질 것 같네요.”

“량이가 그러던? 흠. 그럼 그렇게 될 것 같기는 한데. 근데 표정이 왜 그 모양이냐?”

“그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조금 털어놓았다. 재능에 대한 것, 상위세계에 대한 것.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단장님이었다.

“후. 일단.”

‘빡!’

세상에, 별이 보인다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시더니 다가와 딱밤을 날리는 단장님이었다.

“멍청아! 후. 뭐 다른 건 라니우스 님께 듣고 선천 재능에 대해서만 짧게 이야기 해 주마. 나도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만.”

“으어. 딱밤이. 뭔 놈에 딱밤이…”

‘똭!’

“엄살은. 정신 차리고 앉아라.”

맞은 곳을 정확하게 다시 때리는 단장님. 과연 초인이라고 할 만했다. 아픈 머리를 감싸 안으며 자리에 앉자, 잔에 호박빛 술을 따라주는 단장님이었다.

“너랑 단둘이 술을 마셔 본 적은 없는 것 같네. 아마 이 세계 최고의 술일 거다.”

그 말에 흐르는 호박빛의 줄기를 따라 병을 바라보니 고동색의 투박한 병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기본적으로 항상 피와 함께하는 용병들은 술을 좋아한다. 의뢰 후의 술 한 잔을 거절하는 용병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벌이가 시원치 않으니 싸구려 술을 마시던 전생에 전쟁 용병 시절 전설처럼 들었던 술이 있었다.

도시 괴담처럼 모든 용병이 한 번쯤 마시고 싶다 노래를 부르는 술. 그리고 현생에 그 술이 실존하는 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권세가(權勢家: 권력가 세력이 있는 사람, 가문)라면 한 병씩은 가지고 있다는 술이었다. 술을 만든 장본인은 단장의 세대의 두 세대 위의 괴짜 수호 용병이었다.

술에 살고 술에 죽는다고 알려졌던 그 용병은 기분 좋게 취하는 술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자신의 의뢰비는 모두 술을 개발하고 마시는데 쓰기를 몇십 년. 그렇게 탄생한 술이 즐거움이라는 의미의 [포이드]라는 술.

마시면 마실수록 몸이 건강해지면서 취하는, 그리고 그 맛조차 부드럽고 달며 시원하다.

한 해에 고작해야 200병 남짓 주조(酒造: 술을 빚어 만듦)되는 술은 무조건 일 년에 단 한 번만 판매되고 그 장소에 가야만 구할 수 있었다.

값조차 매겨지지 않는 이 술은 철저하게 그 주조법이 비밀에 부쳐지고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었다.

이를 담당하는 용병대가 점점 세가 커져 용병단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술의 위력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술이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의 잔에 따라지고 있었다.

금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맑은 그 색은 자신을 한시라도 빨리 맛보라며 유혹하고 있었다.

“와. 이거 없다고, 다 마셨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니셨으면서.”

“단장이 되면 좋은 점이지.”

앞서 생각하고 있던 고민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지금 이 순간은 호박의 빛을 내며 싱그러운 향을 내는 술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잔을 들어서 입으로 향했다. 술이 목을 넘어가면서 위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즉시 몸에 열이 미약하게 올라왔다. 전신에 느껴지는 상쾌함과 활력 그 반대로 팽팽히 긴장되었던 정신은 느슨해졌다.

마스터에 오른 자신의 몸에 변화를 줄 정도였다. 마스터에 오르면서 단단해진 자신의 정신에도 영향을 주었다.

술을 준 사람이 단장님이, 부발 님이 아니었다면 강력한 마약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아.”

수많은 이명이 붙은 술이었다. 환상의 술, 사랑의 묘약, 강자의 술, 오아시스, 그중 왜 이 술이 신뢰의 술이라는 이명이 있는지 이제서야 깨달았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가식마저 산산이 부수어 내는 술. 그렇기에 진짜 신뢰하는 이와 함께가 아니라면 마실 수 없는 술이었다.

“은근히 강하지? 본래 천천히 마시는 술이야. 주도(酒道: 술 자리의 도리)를 강제하는게 마음에 안 들지만, 이 정도 술이라면 따라줘야지.”

한결, 아니 몹시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민에 경직되어 있던 전신이 편안하게 풀어졌다. 희미한 미소가 얼굴에 맴돌았다.

“이건. 진짜 미쳤네요.”

단장님의 얼굴에도 손자를 바라보는 미소가 담겼다. 단장님의 얼굴에서 저런 미소를 보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동안 술잔의 술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방의 분위기는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잔잔하고 부드럽다니, 무식의 대명사인 부발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지만, 지금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술을 음미하며 그 부드러움을, 잔잔함을 즐기고 있던 두 사람 중 부발이 입을 열었다.

“어떠냐. 별거 아니지? 너가 하던 고민, 생각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

사뭇 즐겁기만 하던, 한없이 잡아두고 싶었던 시간이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부발 님에 대한 불평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불평이 내려간 것은 금방이었다. 이 순간을 선물해준 이가 부발 님이었다.

“후… 그래도… 지금 이 순간뿐이니까요.”

결국,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은 회피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눈앞에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아니야. 별거 아니야. 선천 재능이라는거. 너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하지만…”

“물론 중요하고 엄청 큰 힘이 되고 하지. 하지만 본질에서 벗어나지 마.”

“하지만 같은 경지라면…”

“그걸 왜 생각하고 있어? 정말 같은 경지라는 게 존재할 것 같아? 아직도?”

“후. 그래도, 큰 변수는 될 수 있잖아요.”

“변수. 그래 딱 그 정도지. 네가 지금의 경지에 만족하고 이 세상에 만족한다면, 그건 실로 큰 변수가 될 수 있겠지.”

역시나.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선천 재능의 크기는 작지 않았다. 그것이 초인이 될지라도.

엄습하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결국, 자신이 재능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다시 솟아올라왔다.

‘결국. 세상은. 타고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였지.’

느슨해진 정신 사이로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이 죽을 듯 노력했던 과거들이 덧없어지는 것만 같은 순간.

부발 님의 입이 열렸다.

“그런데. 초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과연 마스터의 경지의 위에 오른다 해서 초인이라고 부를까?”

‘…? 이건 무슨 의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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