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안개가 짙어지기를 그치자 주변에 보이는 인물이 없어졌다. 데마르 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잘 모르겠어요. 제 곁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뭔가 이상해요. 지금”
갑자기 환경이 변하는 까닭에, 기감을 넓게 퍼트렸다. 그러자 주변의 마나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어디로 이동된 거야?”
“아니에요. 우리가 있던 그 자리에요. 다만 마나가 이상하게 꼬이고 있어요.”
“허. 젠장.”
“잠시만 있어보세요.”
이동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주변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마나는 꼬이고 얽히는 느낌이었지만 뭔가 어색한 것이 느껴졌다.
“캉!”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뜨자 데마르 님이 검을 뽑아서 휘두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 말고 집중하고 있어라. 나도 그렇게 연약한 건 아니니. 안개가 칼질할 줄 안다는 게 참… 미친 곳이구나.”
데마르 님의 말을 듣고 다시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분명 방금의 공격도 마나로는 감지하지 못했지만, 위화감이 분명 느껴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집중하는 자신의 곁은 데마르 님이 충실히 지켜주고 있었다. 이따금 일어나는 칼 소리와 함께 집중은 더해져 갔다.
*
골짜기의 한 절벽 위의 공간. 그곳에서 불스 용병단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 일단의 무리에 재인이 있었다.
“호호호… 실제로 효과가 확실하네요.”
골짜기의 진형 중에서 가장 넓은 장소. 그곳에서 용병단은 앞이 보이지 않는 듯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아직 확실하게 복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체계가 너무 달라서…”
“그래도 저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닌가요? 지금 용병단이 보고 있는 장면이 어떻죠?”
“어둡고 짙은 안개 속에서 주변이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저희가 보낸 이들은 안개로 보이는 거랬죠?”
“예. 저희가 만든 아티팩트를 지니고 들어간 이들은 안개로 보이고 기감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호호호호! 아주 좋아요! 저 정도면 무적이겠는데요?”
“근데…”
“초인에게는 안된다고 하셨죠. 쯧.”
“예. 복원이 그 정도로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하. 천년왕국의 힘은 정말… 대단하네요. 초인을 제외하고는 그럼 완벽히 대응 가능한가요?”
“아직은 진척 중이라. 본래라면 주변 환경도 완전히 바뀌어야 할 텐데, 아직은…”
“그럼… 저기서 나오려면 협곡이니까 바람에 의지해서 저희가 미리 설치해 둔 마정석을 파괴해야 하는 거네요? 마나가 꼬인 상태에서?”
“네. 그렇습니다.”
“하! 그런 괴물이 어디 있겠어요. 아주 잘하셨어요! 이름이 뭐라고 했죠?”
“무한무로진(無限霧路陣)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래 천년왕국에서 초인을 위한 감옥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동 가능하게만 만들면. 아주 좋을 것 같네요. 아주. 아주. 좋아요오 어?”
한참 칭찬을 하던 재인이 순간 의아함이 담긴 소리를 내뱉었다.
“저, 저거 설마?”
두 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이 점점 앞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정확하게 마정석 있는 방향이었다.
*
눈을 감고 집중하면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부분을 찾고자 집중하고 있었다.
‘마나는 온통 꼬여 있어. 이건 내가 풀 수 있는 게 아니야 당장은. 그럼 어디서 위화감이 오는 거지? 마나는 아닌 것 같은데...’
집중하던 기감을 과감하게 내려놓았다. 기감에 집중하기를 포기하자 위화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마나를 사용하는 걸 그만두니까 더 위화감이 커졌어. 뭐지?’
‘바람이구나! 바람이 달라. 안개가 움직이는 것과 바람이 달랐어!’
어느새 태양이 강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시각. 그렇기에 골짜기에 골바람이 부는 시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골바람 덕에 주변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자신이 바람을 다루기에 가능한 기예이기도 했다.
바람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주변이 점점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지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뛰어다니는 인물들이 있었다.
바닥에서 움직이지 않은 인영, 뛰어다니는 인영, 각종 무리가 무기를 휘두르는 것 등 모든 것들이 바람을 만들어 내고 뒤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깊숙한 곳에 무엇인가 있는 것을 알아냈다. 그 주변으로는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았다.
“데마르 님! 찾았어요!!”
“해결할 수 있겠어?”
“확실하지는 않은데… 아마 그럴 것 같아요. 천천히 따라오세요.”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칼날을 헤쳐 가며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옮기기 시작했다.
점점 전진할수록 안개가 더욱 짙어지고 사위는 더더욱 어두워졌다. 점차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칼날이 많아졌다.
“범아?”
점차 앞으로 나아갈수록 안개가 짙어지고 어둠이 진해졌다. 사방의 안개가 칼처럼 공격해 왔다.
‘점점 공격이 많아지고 있는 걸 보면 맞게 가고 있는 거야!’
“범아?”
데마르 님의 의아심 어린 물음에 확신하고 대답을 했다.
“맞게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가면 돼요.”
기감을 내려놓고 보니 오히려 더 뚜렷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짓쳐들어오는 칼날도 주변도 점점 뚜렷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후. 후우…”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도달한 데마르 님에게도 짓쳐들어오는 칼날 같은 안개를 쳐 내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기감은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오로지 감각으로만 다가오는 공격을 막아내야 하기에 집중에 집중을 거듭해야 했다.
그 와중에 범의 뒤를 따라가면서 칼날이 점점 늘어나자 조금씩 숨이 벅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둡고 안개가 무겁게 낀 곳, 그런 곳에서 안개가 언제 칼날로 돌변할지 모르는 긴장감. 점점 늘어나는 칼날의 수.
이런 긴장감이 가득한 순간이 계속되자 오히려 점점 더 데마르의 감각은 날카로워져 갔다.
과거 용병단의 일선에서 뛰어다닐 당시, 부발과 함께 했던 매 순간순간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몰랐던 그 순간의 감각이 살아나고 있었다.
‘좋다… 좋아…!! 너무 나태해졌었던 거야.’
수호 용병단이 되고 난 후 몇 년이 지나자 일선에서 뛰기보다 조율을 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보냈던 데마르였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일선에서의 치열함이, 섬뜩한 그 감각이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목이 달아날 것 같은 섬뜩함이. 치열함이 즐거웠다.
대다수 용병이 이 치열함을, 섬뜩함을 좋아한다. 변태 같을 수 있지만, 그 섬뜩함을 거치고 사냥을 마친 쾌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마정석이 있는 부근과 가까워질 수록 데마르의 감각은 점점 날카롭게 벼려지기 시작했다.
‘어…? 이거. 마정석 기운인데? 그것도 2성 마수 정도 되는?’
현재 대륙에서 데마르보다 마정석을 많이 보고 느껴 본 이는 손에 꼽는다. 그렇기에 마나가 꼬인 상황에서도 마정석 특유의 끈적하고 폭력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데마르였다.
“범아. 마정석이다. 그걸 부시면 돼.”
방향은 알겠지만, 특정한 위치까지는 알아내기에 마나가 너무 꼬여 있었다. 하지만 범에게는 다른 이야기.
“마정석이었어요? 알겠습니다.”
도기를 앞으로 방사하려던 범은 마정석이라는 이야기에 도기를 응축하고 응축했다.
익스퍼트에 오르면 각자의 무기에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완숙해지면 질수록 아지랑이가 정돈되면서 끝자락에 다다르면 뚜렷한 선이 생기는데 이를 오러 쓰레드라 불렀다.
익스퍼트를 넘어 마스터가 되면 선이 뭉치고 뭉쳐서 단단한 날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오러 블레이드었다.
자르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평가되는 오러 블레이드. 마정석은 그런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라면 파괴할 수 없었다.
선과 같은 녹빛이 겹치고 겹쳐 하나의 날을 만들어 내었다. 선이 뭉칠수록 진한 녹빛이 아닌 속이 투명하게 보이는 녹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범의 도에 서렸다.
오러 블레이드가 서린 채 무엇가 있는 장소로 달려나간 범. 바람으로 느낀 바대로 땅에 반쯤 묻혀 있는 마정석에 오러 블레이드를 내리쳤다.
“쿠아아아앙!”
땅이 갈려 나가는 소리가 들리며 안개와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밝게 드러난 협곡. 안개가 아닌 자신들을 공격하던 이들이 드러났다.
그 와중에 쓰러진 이들이 보였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이들도 보였지만, 새끼 불스들도 꽤나 많아 보였다.
“검은 복장. 다 죽여버려!”
데마르 님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불스 용병단원들은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을 때야 문제지만 환히 드러난 곳에서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정리가 되자 데마르 님이 다시 밀집 진형으로 모두를 불러들였다.
“최대한 빠르게 협곡을 돌파한다.”
다리를 다친 새끼 불스들은 불스용병단의 소대장들이 챙겼다. 그리고 곧장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협곡 윗부분의 동굴, 그곳에서 용병단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 점차 범과 데마르가 마정석으로 향하자 점점 말이 없어졌다.
“분명. 저 안에서는 어떤 방법을 써도 위치나 방향을 찾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분명. 내부에 마나가 꼬여서 기감으로도 찾지 못하고 마법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지금 저기 보이는! 저! 똑바로 가는 건 뭐죠!!”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마정석을 파괴할 수는 없을 것 입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이 이어지는 찰나에 굉음이 들려왔다. 마정석이 파괴되면서 나는 굉음. 그 굉음에 말을 잇던 남자는 말을 잃었다.
“마정석이 뭐라고 하셨죠?”
“죄송합니다…”
“하. 너무. 너무 생각 이상으로 많이 살아남았어요. 우선, 이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죠.”
급하게 돌아서 나가는 재인의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정신이 나가 보이는 남자였다.
“분명… 마정석이 파괴되려면 최소한 오러 블레이드가 필요한데… 설마…”
마정석이 오러 블레이드의 파괴력에만 파괴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아니 마정석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전히 넋이 나가 있는 남성은 재인에게 그 사실을 전해주지 못했다.
*
불스 용병단이 슐랑거 백작가에서 떠날 무렵, 부발과 씨어는 수호성에 도착했다. 옆에서 숨을 격히 쉬고 있는 씨어를 보면 얼마나 강행군을 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서둘러 도착한 용병 사무소에는 사무소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다짜고짜 들어가서 갑자기 내뱉는 질문에 황당하긴 했지만, 부발의 상황을 알고 있기에 빠르게 설명을 해 주었다.
“며칠 전에 누가 불스 용병단 저택에 침입했어. 근데 별다른 피해는 없고, 범인도 잡혔고 근데… 일단 이거 읽어 봐.”
건네준 양피지에는 ‘단장님에게’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었다.
“량이라고 했던가? 그 아이가 쓴 거야. 직후에 와흐네 영지로 출발했어.”
읽고 있는 부발의 표정이 점점 찌푸려지기 시작하더니 손의 떨림이 시작되었다.
“단장님. 무슨 일입니까?”
씨어의 물음에 부발은 쥐고 있던 양피지를 내던졌다. 던져진 양피지를 가까스로 잡은 씨어는 이내 양피지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하… 미친 새끼들…”
“후… 난 먼저 출발할 테니 네가 들고 와라. 간다.”
량은 양피지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포션들을 준비해 주었었다. 씨어가 그것을 챙기러 갈 무렵 부발은 이미 수호성 남문으로 나서고 있었다.
수호성을 나와 다시 최대한 빠르게 출발하려는 찰나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뭐지?”
느껴지는 기운을 무시하지 못하고 방향을 조금 틀어서 기운의 근원지로 향했다.
“왜…?”
부발이 자리를 옮긴 곳은 수호성에서 떨어진 황량한 장소. 그곳에 너무도 의외인 사람을 만났다.
“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고 하자. 정말 미안하군.”
초인 중에 누가 가장 강한가에 대한 말은 너무도 많다. 명확하지 않으니 소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어 초인 중에 누가 가장 유명한가는 명확한 대답이 있었다. 바로 인간 성채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호트.
부발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 그는 정점에 있던 수호용병이었다. 안쉐 수호성에서 활약하던 당시 그는 혼자 몬스터 웨이브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
하지만 그런 그가 초인이 중에서 가장 유명하게 된 데에는 그의 실력과 명성이 따른 것은 아니었다.
50이 되어 낳은 유일한 자식. 그 자식을 위해 은퇴를 했지만 오히려 그 자식 덕분에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
12살 무렵부터 사고를 치기 시작해서, 15세에는 아버지가 아카데미에 찾아와 사과해 그 유명세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도박에 빠지게 되어 아버지가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데 일조했으며, 그 이후 수많은 사고에 빚을 아버지가 갚게 하는 망나니.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망나니의 아버지. 그렇게 유명세를 치른 이가 눈앞의 호트였다.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귀한 늦둥이이기에 그저 언젠가 정신을 차릴 것이라는 희망으로 모든 짐을 떠안아 준 초인.
최근 들어서 소문이 없어 세간에는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나보다는 인식이 있었다.
“도대체 왜! 왜 선배가 여기 있는 겁니까!”
“널… 죽이러 왔다. 미안해. 미안하다…”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방패를 들고 호트가 짓쳐들어왔다.
대륙이 두려워하는 초인들의 싸움이 한 황량한 대지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
협곡을 빠져나오는 동안 다행히 후속적인 공격은 없었다. 하지만 협곡이 끝나고 난 후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협곡을 나선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2일은 한 방향의 길로 가야 했다. 협곡에서 나오면 마중하는 것이 강이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으로는 순례의 길이 존재했다. 순례의 길은 최근 피를 묻힌 자신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길.
그렇기에 강을 따라서 전진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강을 따라가면 나오는 것이 데스투도 백작가의 영주성이 있는 곳이었다. 슐랑거 백작가에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에 선택한 길이었다.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 지금은 악수(惡手)가 되고 만 것이다. 다만, 그나마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는 점은 순례자의 길 덕분이었다.
순례자의 길에서 양옆으로 하루 거리에서는 전투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기에 안심이 되는 요소였다. 신전에 대한, 그리고 창조주에 대한 예의였다.
다만 불문율이지 그것이 정해진 법도는 아니었기에 마음을 완전히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강을 따라 데스투도 백작의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오는 평야였다.
협곡을 나와서 이틀 정도를 강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평야가 있었다. 광활하기 그지없는 평야는 숨을 장소도 대피할 장소도 마땅하지 않은 곳이다.
현재 불스 용병단의 최우선 목표는 새끼 불스들을 최대한 살려서 수호성으로 보내는 것. 그것만이 목표였다.
그 이유에서 협곡을 나와서 최대한 순례자의 길에 가까이 있는 장소에 머물러 야영을 결정한 데마르 님이였다.
지옥 같은 협곡을 빠져나오고 나서 자리를 잡고 부상자들을 치료하자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현재 부상자랑 사상자가 얼마나 된다고?”
“사상자는… 새끼 불스 중에서는 70명 불스 용병단에서는 2명입니다. 부상자는 중상자만 따지면 12명, 2명만 불스 용병단입니다.”
“하…”
생각 이상으로 죽은 이들이 많았다. 불스 용병단에서조차 사상자가 나왔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데마르.
“부상자들은 얼마나 심한 거야?”
“포션 덕분에 살아날 것 같긴 하지만 전투에는, 아니 강행군에는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1명은 위태롭습니다.”
“순례자의 길은… 힘들겠지…?”
“혼자 거동할 수 있는 정도까지 회복하려면… 적어도 4일은 푹 쉬고 치료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내가 너무 안이했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지…”
자책하는 데마르와 뾰족한 대안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용병 단원들 사이에 짙은 침묵이 흘러 지나갔다.
주변의 지형을 숙지하고 왔지만, 자신들이 활동하는 수호산맥처럼 꿰뚫고 있지는 못하기에 기발한 방법이 도통 나오질 않고 있을 무렵.
순례자의 길을 가로질러 나오는 인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례자의 길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접근하는 인영.
“너!!”
데마르의 외침이 적막을 사정없이 깨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