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멈추어 서자 각 용병들이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수를 세는 것부터 부상을 확인하는 것까지. 일사불란한 움직임.
불스 용병단에서 소대장 이상의 인물들은 모두 데마르의 곁으로 모였다.
“지금 선택해야 해. 나아갈 건지 돌아갈 건지.”
데마르 님의 말에 각자 고심을 하는 용병들. 그 가운데는 그저 생각나는 것을 뱉는 이들도 있었다.
“그냥 절벽을 올라가면 안 되나?”
“기각. 우리끼리 가면 몰라도 새끼 불스들은 시간이 오래 걸려.”
“수준이 그렇게 높아 보이지도 않는데 그냥 통과하지?”
“글쎄, 지금 공격이 공격이 아니라 유인이면 문제가 생겨. 그리고 우리한테야 문제가 안 되는 거지 꽤 강한 공격이기도 했고”
언제나 돌발적인 사고가 생겼을 때 불스 용병단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해결해 왔다.
급박한 상황에서야 리더가 모든 책임을 지지만 잠시라도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머리를 맞대는 것이 불스 용병단의 방침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후퇴하면 안 되나요?”
“후퇴?”
처음으로 데마르 님이 반박을 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졌다. 그 동시에 모여있는 모든 용병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다,
“유인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후퇴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요.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흠… 후퇴라…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다시금 토론 아닌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주제는 후퇴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결국은 다수의 의견대로 뚫고 나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그렇게 결정이 내려지고 보고를 받은 데마르 님은 그나마 부상자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다시 대형을 맞추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빠른지만 그들에게는 완속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불스 용병대원 1개 조가 앞으로 먼저 가서 정찰하고 그 뒤를 완속으로 따라가는 불스 용병단.
자신은 진형의 중앙에 위치한 채 최대한 기감(氣感 : 기를 퍼트려 감각을 넓혀서 느껴지는 감각)을 넓게넓게 펼치면서 전진하고 있었다.
‘뭔가… 뭔가… 걸리는 게 있는데…’
스승님께서 분명 감을 너무 의지하지도 말라고 하셨지만, 너무 무시하지도 말라고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범아. 익스퍼트가 되면 감이라는 게 생기는데 일종의 육감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육감이요?’
‘소위 직감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지 않든. 그것이 좋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럼 익스퍼트가 되면 다들 그렇게 되는 건가요?’
‘뭐… 어느 정도 감이 생기기는 하지. 사람마다 다르지만.’
‘근데… 가 나올 거 같아요.’
‘허허허. 맞다. 익스퍼트의 감은 너무 불안정하지. 하지만 마스터에 이르면 또 바뀐단다.’
‘어떻게요?’
‘그렇게 무시할 수만은 없게 바뀐단다. 마스터는 아직 모든 정보를 자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말이다.’
‘네?’
‘음… 깊이 들어가면 복잡하지만, 우선을 알아만 두거라. 마스터가 되었으니 말해주는 것이다. 너의 감을 너무 무시하지 말거라.’
마스터에 오르고 나서 들은 조언이었다. 익스퍼트 때 감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 것과 사뭇 다른 조언.
그런데 계속 그 감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는, 무언가 위화감이 드는 경고가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기감 계속해서 넓히고 넓히는 과정에 거슬리는 것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전방…?’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데마르 님의 옆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냐.”
데마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더 기감에 집중하기를 얼마 지나지 않아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벽에 움직임이 있어!’
“벽에 뭔가 움직이는 게 있어요. 위험해요. 대비해야 할 것 같아요.”
“벽에?”
이야기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런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오래 그리고 많이 부발과 함께 다닌 데마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 방어 태세!!”
데마르 님의 외침에 다시 방어 태세를 굳건하게 세우고 뛰는 것을 멈춘 불스 용병단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벽에서 화살과 마법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막아!!”
“쿠쿠쿠쿵!!”
쏟아지는 공격을 막느라 정신없는 순간 굉음과 함께 용병단의 뒤에 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퇴로가 막혀 버렸다.
붉고 하얀 협곡에서 갑자기 구멍이 나타나면서 공격을 할 거란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었을까.
그나마 자신의 외침에 빠른 대응이 불의의 사상자를 내지 않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화살과 마법은 날아오고 있었고 용병단은 그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전방에!!”
자신의 외침과 함께 전방에 달려오는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복장이 통일되지 않은 무리들이었지만 목표는 뚜렷해 보였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자 결국 데마르 님도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돌파한다! 전속 전진!!”
결국, 희생을 감수하고 전진하는 선택을 내린 데마르 님. 새끼 불스들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용병단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가니 부상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전방의 무리와 격돌하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온 무리들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리가 가까이 왔을 무렵부터 준비하고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섰다.
길을 만들기 위해 전력으로 도를 휘둘렀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범의 도기에 무리들이 말 그대로 썰려 나가기 시작했다.
“조심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이들은 더욱 정상이 아니었다.
팔이 떨어지고 다리가 떨어져도 무작정 달려들고 공격을 해 왔다. 고통이라는 감각을 못 느끼는지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무리들에 점점 진형이 얽히고 있었다.
그 수가 적으면 돌아가 처리를 할 테지만 길을 내려고 휘몰아쳐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무리에 난감해할 무렵.
“머리를 노려! 다른 곳을 노리지 말고 머리나 심장을 노려라!”
데마르 님의 외침에 길을 내는 것에 집중하던 도가 방향을 바꾸었다. 한 번에 머리 두셋씩. 정확하게 머리를 가르는데,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머리를 수확하기 시작했지만 몰려드는 무리의 수와 끊이지 않는 화살과 마법의 세례는 계속해서 피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혼란도 잠시 데마르 님이 명령을 내리면서 진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불스 용병단원과 새끼 불스들이 함께 조를 짜면서 대응하기 시작했다.
“범아! 넌 최대한 많이 휘저어. 굳이 머리를 노리지 말고 최대한 많은 수를 잘라내!”
자신에게 내려진 데마르 님의 명령에 길을 내기 위해서 선두를 굳건히 하던 것에서 진형을 이탈해서 무리들 속으로 들어갔다.
늑대가 양 떼의 무리에 들어가 양들을 유린하듯 범의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최대한 많은 수에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위해서 선택한 것은 폭풍이었다.
일부러 진형에서 이탈한 이유도 아직 조절이 미숙하기에 진심으로 펼치는 폭풍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
그 의미인즉슨, 제어하지 않는다면 마음껏 폭풍을 몰아치게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끊이지 않고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도는 정녕 폭풍과도 같았다.
분명 바람은 볼 수 없지만, 폭풍을 볼 수 있듯이 도의 폭풍 또한 다르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도를 따라서 피가 튀어 오르고 그 바람에 휩쓸려 붉은빛을 드러냈다.
석양이 붉게 물들어 세상을 붉게 비추는 시간에 붉은 피가 폭풍이 되어 몰아치는 광경은 섬뜩했고 동시에 마력이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자신이, 전력이 아님에도 폭풍을 만들어 내고 무리들을 너무나 쉽게 몰아치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힘을 더욱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폭풍의 진의(眞意)도 깨달아가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자신이 생각하는 속도에 바로바로 반응하고 있었다.
분명 불스 용병단에게는 위기의 상황이지만 자신에게는 성장의 순간이었다.
자신이 명령을 받고 진형을 벗어나서 무리를 휘젓기 불과 수 분이 지났을 뿐인데, 어느새 달려드는 무리들은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다시 전속으로 전진한다!!”
데마르의 말에 다시금 진형의 중앙으로 돌아와 여전히 날아오는 화살과 마법을 요격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하!”
협곡의 가장 높은 장소에 있는 굴.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점에서 재인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뭘 본 거지?”
자신의 계산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최소한 1/3은 확실하게 줄일 수 있다고 계산을 했건만.
“범이. 초인이 된 건가요?”
자신이 본 것은 자신의 동기가 그것도 기본재능의 동기가 자신이 보낸 무리를 학살하는 광경이었다.
“초인이 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익스퍼트의 끝에 이르렀거나 경계에 선 것 같습니다.”
재인의 왼편에 서있는 무사가 재인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역시나 마음에 드는 대답은 아니였는지 아미가 찌푸러져 있었다.
“아무리 그 경계라는 점에 서있다고 해도. 실험체들이 저렇게 쉽게 당할 정도인가요?”
“아직 완성된 제품이 아니라 이지(理智 : 사물을 분별하고 깨닫는 능력)가 너무 사라진다는 단점이.”
재인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오른편에 서 있는 중년인이었다.
“그래도 제가 알기로 실험체들이 전부 우리가 처리할 용병들로 채운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지만. 공격성이 너무 커지고 이지가 없다 보니 사실상 달려드는 것밖에는…”
“흠… 그 부분은 확실히 조정이 필요하겠네요. 그래도 공격성과 과감성만큼은 만족스럽네요.”
“충분히 개량 중이니 조만간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흠… 그럼 저희도 이동하죠. 생각보다 피해가 덜하긴 했지만, 아직 협곡이 끝나려면 멀었으니까요.”
그 말이 끝나고 세 사람은 동굴의 안쪽으로 깊이깊이 걸어 들어갔다.
*
정면만을 보고 달리길 얼마 지나지 않아 화살과 마법이 쏟아지는 것이 멈추었다. 그럼에도 용병단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 더 가자 직선으로 뻗어있던 협곡이 꺾어지는 부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이 되어서야 잠시 멈춰선 용병단이었다.
멈추어 서기 무섭게 부상자와 사상자 확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동시에 자신 또한 아공간을 열어서 포션을 꺼내 놓았다.
5분. 부상자와 사상자를 확인하고 대처하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이 용병단이 얼마나 훈련이 되어 있는지 알려주는 요소였지만. 보고를 받은 데마르 님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하… 사상자가 있단 말이지… 그것도 5명이나…”
이번에 나오면서 사상자가 생길 것이라고 사실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데마르 님이었다. 정당한 명분을 갖고 있기에 정면 대결만을 생각했던 실책이었다.
그리고 그 실책이 5명의 사상자로 나타났다. 협곡이 아직 남은 이 시점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이제 곧 해가 진다는 점이었다. 야영하기에 위험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이곳은 비트를 파기에는 최악의 지형. 은폐도 할 수도 없는 지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밤에 계속 나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야영을 준비시키는 데마르였다.
야영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행인 것은 범의 아공간에 식량 또한 있었다는 점.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어둠이 짙게 깔렸다.
각자 불침번을 서면서 짧게라도 잠을 청하는 이들이었다. 다행히 여타 다른 습격은 없는 듯했다.
*
달이 기울고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이른 시각. 야영을 정리하고 있는 불스 용병단의 모습이었다.
다행히도 밤사이 여타 다른 습격은 없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나온 결론은 전속 행진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멈추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협곡을 지나가는 것. 그리고 배후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는 데스투도 백작가의 소행이었지만 증거가 없었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백작가로 진격을 하자니 무슨 수를 쓰는지 모르기에 함부로 진격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새끼 불스들을 최대한 살려서 데리고 가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진형을 다시 잡는 용병단. 이번에는 모두가 한데 뭉친 것이 아닌 불스 용병단의 1개 소대가 각자 정해진 수의 새끼 불스와 함께 소규모로 진형을 맞추었다.
소규모로 이루어진 진형이 각자 자리를 잡아 쐐기 모양의 진형을 이루고 그 중심에 범과 데마르가 자리했다.
진형을 갖춘 불스 용병단은 전속력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전진하는 불스 용병단.
하지만 긴장을 하고 가는 것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더욱 긴장감을 높여 주었다.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데마르가 소리치려는 순간 갑자기 거대한 마나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전투 준비!!”
자신의 외침과 함께 갑자기 주변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짙은 안개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주변 경계를 하면서 데마르 님의 곁에 바짝 붙어서 섰다.
“제 옆에서 벗어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