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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재능으로 정점-61화 (61/217)

[61화]

도시 전체에게 악의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느낌을 받고 있었다. 슐랑거 백작가. 비열하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영지민에게는 그래도 꽤 신뢰를 받았던 듯하다.

아니면 이곳이 영주성이기에 더욱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영주성에 있는 4일 동안 습격만 20회가 넘었다.

“정말 질리는 곳이네, 여러모로. 근데 넌 더 독한 놈이다.”

부발 님이 꼬롬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만에 차 보였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우리가 악인이니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면서 지난 4일 자신이 한 일을 회상해 보았다.

*

전쟁이 끝나고 백작의 성으로 들어온 후에 부발 님에게 부탁을 드려서 백작의 방으로 들어왔다.

“분명. 내가 본 게 틀린 게 아니라면… 오러를 그 자체로 베었단 말이지.”

자신이 본 것에 대한 탐구가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오러 그 자체를 자르다니. 말도 안 되었다.

“아무리 봐도. 재능 때문인 것 같은데. 이게 말이 되나?”

모든 사람들이 하찮다고 말하는 기본재능이. 오러를 잘랐다는 말을 하면 모두가 비웃을 것이다.

오러와 마법 두 가지 모두 마나를 가공해서 만들어 낸 산물이다. 튕겨 내거나 폭파를 시키는 것은 가능해도 잘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나는 자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법사와 전투를 하는 기사들은 그래서 오러로 마법을 비껴 내거나 폭파시킨다.

그런 마나의 가공된 산물 중 하나인 오러를 자신이 베어버린 것이다.

“우선. 재능 어? 어…?”

자신의 의지대로 재능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재능을 잠재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잠재워 보려고 하니 재능이 잠들 생각을 안 한다. 마치 본능인 것처럼.

“뭐지? 재능이 개화한 건가? 말도 안 돼는데. 발아한 것 까지는 빠르다 쳐도.”

서둘러 자리에 앉은 채 극기심결을 운용해 보았다. 자신을 관조하는 것에는 가장 알맞은 심결.

깊이. 깊이 자신의 안으로 침체되어 간다. 그리고 자신이 형상화한 재능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끝없이 펼쳐진 휑한 대지. 그 가운데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는 자신의 재능이 보인다.

씨앗에서 새초롬하게 난 싹이 아닌 이제 줄기가 조금은 자라난 그 모습을.

‘재능이. 성장했어. 내 생각 이상으로! 근데 개화는 무슨.  아직 멀었구나. 나는 하나도 모르고 있던 거였네. 근데…’

싹이 아닌 줄기로 자라난 자신의 재능을 보는 경험은 실로 기묘했다. 자신을 반겨주는 듯한, 그러면서 투정을 부리는 듯하는 그 모습.

순식간에 침체되어 있던 정신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너에게는 여기까지라는 듯.

“내 재능 때문이었구나. 재능이 성장 한 거였어!”

이후로 점검의 시작이었다. 백작의 방에는 실험할 물건들이 참 많았다.

무가(武家)의 정점의 방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방어구들과 무기들이 존재했다.

오러를 씌워서, 씌우지 않아서, 재능을 덧대어서 재능을 더 일깨워서.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이 이어졌다.

“내 재능은. 본능 같은 건가. 왠지 모르게 더 잘 자르는 방법을 알 것 같단 말이지. 재능을 깨우면 깨울수록”

잘려진 여러 가지 무기들을 발 밑에 두고 달라진 점을 점검한다.

“극기심결 덕분인가. 조금더 구체적으로 알 것 같은데. 전생에서는 개화는커녕 발아를 겨우 한 거였어. 마지막이라 그런거였고.”

실험이 2일째로 접어들자 마르쿠스를 불러들였다.

“여기에 씌우면 될까요?”

꽤나 값이 나가보이는 창을 들고 순박한 얼굴로 물어 오는 마르쿠스였다.

“응. 최대한으로 해서 씌워 줘.”

“예”

푸르게 빛나는 창을 보며 집중을 시작했다.

‘조금 더. 조금 더.’

본능적으로만 사용하던 재능을 의지로 사용하기까지는 생각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조금의 감각이 생겼다. 온몸이 알려 주는 감각. 온몸에 퍼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하!”

자신도 모르게 기합을 내지르며 창을 베었다. 마르쿠스의 오러가 씌여진 창이 그대로 잘려 나갔다.

“역시!!”

“?!?!?!??”

경악이 서린 마르쿠스의 표정을 본 뒤로 자신이 본 것이 허구가 아니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대가 오러가 그대로 씌여진 채로 땅에 떨어지고 몇 번의 소리와 함께 오러가 사라졌다.

“범. 범 님? 지금 제, 제가 본 게…”

경악에 말을 잇지 못하는 마르쿠스가 눈에 들어온다. 배워 온 진리의 역설이 눈앞에 펼쳐지니 이해가 간다.

‘나도. 아직도 안 믿기는데 뭐.’

“재능이 성장해서 그런 것 같아.”

“아니. 범 님 기본재능 아니셨나요? 세상에 그럼 모든 기본재능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권능(權能)이 있는 건가요?”

“권능이라니. 그런 무서운 소리하지 마. 잡혀간다. 나도 사실 안 믿기는데. 뭐 아는게 있어야지.”

권능(權能). 신의 권세와 능력을 말한다. 성하(聖下)께만 허락된 능력.

자신의 능력이 그런 권능에 비견(比肩: 어깨를 나란히 함)되어 보이는 것이 이해가 간다.

‘오러를 자르다니. 상상도 못 했는데. 잠깐! 그럼 마법도 자를 수 있다는 거잖아?’

모두가 무시했던 기본재능이 이제는 권능과 비견되어 보인다. 참 세상 다시 살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경악이 서린 마르쿠스와 함께 실험하는 나날이 지나갔다.

*

문득 상념에서 돌아와 다시 부발 님이 말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오늘 나가는 날이니 다행이다. 진짜 노숙을 하는 게 백배는 낫겠어.”

죽일 사람도 다 죽이고 뽑을 정보도 대충 다 뽑아냈기에 떠나는 발걸음이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잘 때도 마음 편히 못 자는 것은 정말 상상 외로 정신적인 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었던 듯했다.

자신은 몰랐지만, 오죽했으면 영주성에 모든 이들과 격리된 공간에서 따로 잠을 청했을 정도였으니, 정말 상상 이상의 심력 소모였다고 한다.

영주성에서 밝혀낸 바로는 데스투도 백작 가문의 연관이 확정적으로 드러났다.

슐랑거 가문의 후계였던 페이그도 데스투도 백작가로 향한 것으로 추정되기에 다음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데스투도 백작의 영지가 되었다.

데스투도 백작가에서는 아무런 회신이 없기에 우선 데스투도 백작가 영지의 경계로 가는 것을 목표로 했다.

수호성에 있는 불스용병단의 저택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어제 받은 단장님은 수호성에 다녀와야 했다.

저택이 곧 용병단의 본부였기에 그에 관한 것은 단장님이 있어야만 하는 규례가 있기에 복귀해야 하는 단장님이었다.

아무래도 용병단 전원이 밖에 나가 있는 사이에 저택을 털려고 했던 간 큰 도적이 있던 모양인 듯 했다.

그 소식에 자신이 너무 조용히 살아서 불스용병단을 우습게 본다며 노발대발하면서 씨어 님과 함께 수호성으로 출발하셨다.

그랬기에 데스투도 백작가로 향하는 총 지휘자는 데마르 님이 맡았다. 단장님과 씨어 님은 후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준비를 다 마치고 정렬한 이들 중 크게 다친 이는 다행히 하나도 없었다. 모든 이들이 정렬한 채로 문 밖을 나서기 시작했다.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은 이곳이나 수호성이나 같은 행위였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사람 한 명 없는 거리를 걷는 것은 의외로 으슬으슬한 느낌이었다.

익스퍼트쯤 되면 상대가 내뿜은 악의나 살의에 민감해지게 된다. 그리고 마스터가 되면 더욱 민감해지게 된다.

그리고 그 민감한 감각이 지금 전방위에서 악의가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영주가 거하던 곳을 나와서 성문으로 향하는 길. 본래 사람이 활발히 활동할 시간이건만 아무도 밖을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탁!”

걸어가고 있는 사이에 누군가 돌을 던졌다. 돌을 잡고 무심코 돌을 던진 이에게 시선을 돌려보니 어린 아이가 몸을 떨며 서있었다.

“살인자들!!”

그렇게 외치고 도망가는 아이를 보니 새삼 과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눈을 돌려 데마르 님을 쳐다보니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언제나 마수를 상대하고 몬스터를 상대하고 와서 존중을 받고 살았던 이들에게 이런 악의는 생소한 것이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기운이 한 템포 쳐져서 문밖을 나가는 불스 용병단이었다. 이기고 승리해서 나가는 모습으로 보이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

불스 용병단이 영주성에서 떠나기 하루 전. 데스투도 백작가에는 환영하지 못하는 손님이 찾아왔다.

슐랑거 백작가의 후계자였던 페이그. 그가 야음을 틈타 데스투도 백작가로 찾아왔던 것이다.

“백작님을 만나게 해 다오.”

데스투도 백작가의 접선 장소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재인이었다. 이미 후계자로 공고히 자리를 잡은 그녀가 나타났다는 것에 의아했지만,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하는 페이그였다.

“따라오시죠.”

이렇듯 바로 백작을 만나게 될 줄 몰랐지만 그만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에 대한 자신감이 있던 페이그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백작가의 저택 뒤편에 있는 정원이었다. 달빛이 비춰 주는 정원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백작님은 어디에 있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너무도 고요한 정원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한 느낌이 드는 순간 페이그는 자신의 검을 뽑으려 했다.

“크르륵…”

하지만 이미 페이그의 목에 단검이 꽂혀져 있었다. 힘없이 허물어지는 페이그 뒤로 데스투도 백작이 나타났다.

“쯧. 결국 이렇게 된 건가.”

“예상하던 사태이기도 하니까요. 어쩔 수 없죠.”

“후. 그래도 웬만하면 원만하게 지나가고 싶었건만.”

“그럴 가능성이 적었으니까요. 그리고 겸사겸사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되죠.”

“그럼. 용병단에게 회신을 해야겠군. 단장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꽤 힘들긴 했지만 성공했어요.”

“후. 네 재능은 아직도?”

“네. 이번 일에 있어서는 반응이 오질 않네요. 그래도 나쁘지 않은 거로 봐서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진행하자.”

*

데스투도 백작가의 영지로 향하는 길에 유명한 골짜기가 하나 있었다. 골짜기 자체도 멋있었지만, 그에 얽힌 이야기가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피가 흐르는 협곡]

다섯 영웅이 봉기했을 때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협곡. 천년왕국도 다섯 영웅의 진영도 모두 피를 흘린 협곡.

누구의 승리도 패배도 없이 그저 양측에 심대한 타격만 가져다준 전투. 그 전투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양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솟아있는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불스 용병단.

“우와… 진짜 돌의 색이 붉은색이야.”

피가 너무 많이 흐르고 흘러 돌에 스며들어 붉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듯 절벽의 1/3은 붉은색의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가 피가 흐르는 협곡이구나…”

석양에 물든 하얀 협곡의 상층부가 붉은 하단부와 함께 보이니 정말 피가 흐르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자연의 장엄한 광경에 압도되는 것 같은 기분이었고, 속에서 호연지기가 절로 일어나는 광경이었다.

붉게 물든 석양의 한가운데, 석양이 점점 다가오는 미묘한 느낌을 받은 범이었다. 그리고 외쳤다.

“방어 태세!! 마법이다!”

외침과 동시에 일행의 중앙으로 달려들어 갔다. 그리고 도를 꺼내 쥐고 전방의 다가오는 마법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외침과 동시에 용병단은 방어 태세로 순식간에 진형을 바꾸었다. 진형의 한가운데 있다가 순간 앞으로 뛰쳐나갔다.

파이어볼. 마법사로 인정받는 3서클이 되면 모든 마법사가 필수로 배우는 마법. 마법사들의 전투 근간이 되는 마법이었다.

날아오는 파이어볼을 향해 돌진한다. 그리고 그대로 마법을 베어냈다. 폭발한 것이 아니라 베어져 사라진 마법이었다.

자신이 내보인 신기 같은 일에 모두 놀랐지만, 그 시간도 잠시 화살과 마법 그리고 돌들이 그들을 향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전부! 전속력으로 협곡을 돌파한다!!”

분명 정찰 결과 협곡의 끝까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였기에 전속력으로 협곡을 빠져나가는 명령을 내린 데마르 님.

그 명에 따라서 불스용병단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형의 안쪽의 새끼 불스들을 보호하는데, 최대한 집중하면서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

“저게 가능한가요?”

범이 마법을 막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베어낸 것을 본 재인이 마법사에게 물은 질문이었다.

“선천재능이 특별한…”

“쟤 기본재능입니다.”

“그 그렇다면 특별한 아티펙트나 유물을”

명확한 답을 알고자 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얼버무리는 마법사를 보니 한숨이 나오는 재인이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피해가 미미한 것 같은데?”

“생각 이상으로 대응이 빠르고 실력이”

‘하. 피해보다는 앞으로 전진시키려는 목적이었다지만, 너무 얕봤나. 쯧.’

마음속으로 눈앞의 마법사에 대한 처우를 결정한 재인은 마법사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저희도 이제 가죠.”

말을 타고 돌아가는 재인을 보며 초조한 안색으로 뒤따라가는 마법사였다.

*

얼마 달리지 않아서 더 이상 공격이 날아오지 않음을 확인한 데마르 님의 명령으로 잠시 멈추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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