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하루 중 가장 해가 밝게 비치는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는 그 시간 무어 평야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진형을 갖추고 서서히 나아가는 불스 용병단의 반대로 두 진형으로 나누어진 슐랑거 가문의 모습이 데마르의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 쯧”
“뭘 모르니 그런 거 아니겠수?”
“나수투스. 네가 지휘를 맡아. 슐랑거 기사단은 씨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난전으로 만들어.”
“그거야 아주 쉽고 쉬운 일이지요. 흐흐”
“씨어. 넌 섬멸전으로 가. 3명씩 차근차근. 다 죽여도 되는 애들이니 사정 봐주지 말고.”
“옙.”
“범. 나랑 간다. 새끼 불스들도 다 날 따라온다.”
불스 용병단은 슐랑거 기사단과 백사 기사단이 뭉쳐 있는 곳으로, 새끼 불스들은 백사 기병대가 있는 곳으로, 서서히 진형이 나누어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쳐다본 이들의 대치는 풍차를 향해 나아가는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모습이었다.
60여 명의 용병이 150여 명의 기사단에 접근하는 것은 그나마 이해가 갔지만, 200명도 안 되는 무리가 600여 명의 기병에게 다가가는 것은 도저히 무리로 보였다.
그 중심에 데마르가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울프 라이더를 상대한다고 생각해. 그보다 훨씬 쉬울 테니까.”
데마르의 신호에 용병들이 넓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마르쿠스가 3소대원과 함께 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치는 백사 기병대들이었다. 돌진에서 가장 강하다는 기병대에게 달려드는 용병들이 멍청해 보일 따름이었다.
“저기 망치 들고 달려오는 용병은 죽이면 안 된다. 다들 조심하라고.”
비록 경기병인 자신들이었지만, 중갑기병에 비교해서 경기병일 뿐이지 그들의 무장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거기에 말과 함께 돌진하는 파괴력은 언제나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기병대가 돌진하기 시작했다. 600명의 기병대가 돌진하는 모습은 위압감이 넘쳤다. 앞에 존재하는 어떤 장애물도 파괴할 것 같은 위엄이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 모습을 가장 앞에서 보는 마르쿠스의 표정은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역시. 범 님은 항상 옳으시구나.’
몬스터와 마수 중에서는 덩치가 거대한 이들도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기마대의 돌격은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3소대원을 통틀어서 돌진하는 적을 막는 데는 마르쿠스가 가장 효과적이고 강력했다.
달리는 마르쿠스의 손에 쥔 망치에 돌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돌만 생겼던 과거와 다르게 그 사이사이에 하얀색이 보였다.
곧장 자신들에게 덮쳐 올 것 같은 기마대 말의 눈이 뚜렷하게 보이는 거리가 되자 마르쿠스는 온 힘을 다해 망치를 땅으로 내려쳤다.
“쾅!”
천지를 울리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땅이 앞으로 터져 나갔다. 그리고 그 진동에 달려오던 기마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고작 한 번의 망치질이 가져온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지옥이 펼쳐졌다. 전장의 경험이 없는 이들은 모두가 낙마하고 말에 밟히기 시작했다.
전열을 맞추어 다가오기에 그 피해가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그나마 전열의 몇몇과 후열의 기마들이 자신들의 동료였던 이들을 짓밟으며 돌진을 이어갔지만, 그 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동시에 뒤에서 화살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화살 비와 같은 수량은 아니었지만, 한 발 한 발이 강력하고 정확한 화살들이 기마의 눈과 기갑의 비어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노리며 날아왔다.
그리고 정면에 마르쿠스가 돌진을 다시 시작했다. 마르쿠스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기마대에게 돌격을 하며 기사들을 노리지 않았다.
오로지 말을 노렸다. 마르쿠스의 망치가 한 번씩 기마들을 가격할 때마다 기마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기마들이 그 채로 날아가 주변 기마들을 덮쳐 피해를 더 늘렸다.
그 과정을 차분히 보고 있는 자신은 새삼 인간을 상대로 한 무력에 새삼 놀라워하고 있었다.
‘진짜. 마르쿠스도 그렇고 우리 용병단이 강하긴 강하구나. 기병대를 가지고 노네.’
고개를 돌려 본 장소에서는 불스 용병단이 기사단을 상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왜 나수투스가 지휘자로 선택되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수투스는 기사단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좋게 말하면 치밀했고 보이는 대로 말하면 치사했다.
각각 용병들이 조를 이루어 한 명의 기사를 차근차근 죽이고 있었다. 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결국 공격을 할 수 있는 인원은 정해져 있기에 그 원리를 사정없이 파고든 나수투스였다.
‘마법사가 없어서 다행인가. 근데 이상하네, 기사 가문이여도 마법사는 있기 마련인데 말이지’
상황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횡이 유리했다. 자신이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은 단순했다.
죽지 않게 하는 것. 애초에 훈련으로 생각했는지 자신에게 크게 날뛰지 말라고 말한 데마르 님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백작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기사와 기병대가 출진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몹시 좋았던 백작이었다. 언제 보아도 자신의 기병대와 기사단의 출진은 흡족함이 드는 광경이었다.
흡족함을 느끼기 무섭게 기사단과 기병대로 각기 나뉘어 오는 용병대를 보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기사대전이나 전쟁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는 용병이 역시나 그렇지라는 생각에 쉽게 가져가는 전투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기병대를 향해 달려오는 망치를 든 용병이 보였다. 내심 걱정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저 용병은 베라타 가문의 자제였다.
혹여나 죽을까 내심 걱정하던 찰나. 그 용병이 땅을 치고 기마가 넘어지고 그 용병의 망치가 휘둘러질 때 날아가는 기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의 기사단도 전투가 아닌 사냥을 당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눈을 감고 꿈이라 생각했다.
*
한창 기병대와 난전을 이루고 그 사이사이를 메우고 있던 자신에게 데마르의 외침이 들렸다.
“범아!!”
듣고 싶었던 말이 들려왔다. 열심히 돌아다니며 전투에 참여했지만 내심 부족함을 느끼던 자신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돌아다니던 자리에 멈추어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코를 향해 들어오는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전생에서 항상 맡던 그 비릿한 공기의 내음에 과거의 향취가 떠올랐다. 그리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달려들어 간 동시에 도에는 도신을 감싸는 도기가 예리하게 떠올랐다. 날카롭게 정련된 도기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기병대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후 폭풍이 일어났다. 지나가는 길의 모든 것을 잡아 삼키는 폭풍. 순식간에 기마들이 폭풍에 잡아먹히기 시작했다.
‘이상한데. 생각 이상으로 쉬운데?’
기마대의 한가운데로 돌진한 후 도를 휘두르며 느껴지는 것은 의아함이었다.
‘잘려지는 것들이. 너무 매끄럽게 잘려나가는데. 이상하네?’
도가 휘둘러진 후에는 베었다는 손맛이 분명 없었는데 눈에는 잘려져 나가는 기마들과 인간들이 보인다.
‘흠. 다시.’
대상을 바꾸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대상을 베어 가면서 조장들로 보이는 이들을 향해 간다.
‘익스퍼트니까 나름 다르겠지?’
이 혼란과 난리에도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자신의 상황에 웃음이 났다.
“방진을 짜라! 포위해. 고작 한 명이다!”
자신을 향해서 열심히 소리치고 있는 이들을 향해서 달려나갔다.
“안녕?”
자신의 인사와 함께 푸른 기가 넘실거리는 창을 찔러 들어온다.
말의 머리부터 창과 함께 깔끔하게 반으로 베어주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미친! 오러가 베인다고?’
분명 눈에 들어왔다. 창이 베이면서 오러가 남은 채로 떨어지는 것이,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보였다.
자신이 멈춘 그 순간,
400여 명으로 줄어들었던 기마대의 진형 한 가운에 이미 넓은 길이 생겼다. 그 길에 남은 것은 시체와 함께 흐르는 강뿐이었다.
몇 번 숨 쉴 수 있는 시간에 일어난 일에 전투가 멈추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이 잠깐 흐르는 동안 남은 기마대는 자신들의 무기를 땅에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
남은 기병대의 항복 의사와 함께 환호가 울려 퍼졌다. 기병대와의 전투가 끝이 나고 환호가 나는 동시에 데마르 님은 자신과 마르쿠스를 불스 용병단에게 보냈다.
사실 그들을 보낼 필요까지 없었지만, 최대한 빠르게 전투를 끝내기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마르 님이였다.
“기본 전술 중에 [난입] 기억하지? 너랑 마르쿠스가 난입조라고 생각하고 가면 돼.”
그 말을 기억하며 마르쿠스와 함께 기사단과 불스 용병단의 전투가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그래도 1/3은 이미 잡은 것 같은데.’
그래도 몇몇 용병들이 상처를 입은 것이 보였다. 전황을 살펴본 후에 바로 전투 한가운데로 마르쿠스와 뛰어들었다.
갑작스러운 난입에 백사 기사단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철저하게 자신들은 제외하고 슐랑거 기사단을 목표하던 불스 용병단이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조금 해이해져 있던 상황에 난입하여 망치와 도를 휘두르는 이들은 당황스러운 불청객이었다.
“정신 차려라! 고작 둘뿐이다!”
기사단장의 외침으로 갑작스러운 난입에 당황스러워하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리되기 시작했다.
‘역시… 기사단이 약한 게 아니었어. 우리 용병단이 훨씬 강할 뿐이지.’
정리되어가는 모습이 보이자 마르쿠스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마르쿠스가 다시금 뛰어들었다.
난입은 실상 가장 위험한 전술 중의 하나였다. 한 위치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날뛰어야 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그리고 그 난입자는 언제나 등 뒤에 칼이 다가올지 모르기에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대부분 [난입] 전술에서 난입자는 기감이 뛰어나거나 민첩한 이가 맡았다. 하지만 마르쿠스와 자신이 들어오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마르쿠스가 그 힘으로 미친 황소처럼 날뛰고 자신이 그 뒤를 지켜주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용병들은 전술 [난입]에서 만큼은 그 누구보다 둘이 뛰어나다고 감탄을 할 정도였다.
그런 둘의 페어는 침입과 후퇴만이 지속하던 기사단과 불스 용병단의 전투 양상을 크게 뒤틀어 놓았다.
점차 기사단의 수가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마르쿠스와 자신이 착실하게 백사 기사단을 사냥했고, 여유가 생긴 불스용병단은 더 빠르게 슐랑거 기사단을 사냥했다.
*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새 자신의 기사단이 박살 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의 기사단이었다.
자부심이 있었다. 왕국의 그 어느 기사단과 비교해도 두 손에 꼽힐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 자신의 기사단이. 자신의 기사들이 처절하게 파괴되고 박살 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무(武)에 재능이 없기에 더욱 기사단에 신경을 썼는데 그 희망이 파괴되는 모습에 백작은 눈이 돌아가며 기절하고 말았다.
*
그렇게 전투는 끝이 났다. 불스 용병단은 사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에 슐랑거 기사단은 전멸, 백사 기사단도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줄에 묶인 이들을 데리고 백작가의 진영에 가니 부발 님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크. 역시 데마르야 수고했어.”
“혹시….”
부발 님 옆에 쓰러져 있는 백작을 보면서 데마르 님이 흘겨보며 질문을 던졌다.
“아니야! 아니야! 나 아니다! 괜히 혼자 보다가 기절한 거야!”
“흐음… 그렇군요.”
기절해 있는 백작이 눈을 뜨자 자신의 눈앞에 서있는 부발과 묶여있는 자신의 기사단이 보였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끝이 난 것이다.
“자. 이제 대가를 치러야지?”
말을 하면서 자신의 무기를 꺼내드는 부발의 모습이 사신의 모습과 같았다.
후작의 위를 노리던 강성한 백작가의 주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허망한 결과였다.
다만, 건드릴 상대를 잘못 선택한 이의 최후였을뿐이었다.
*
서대륙 전역에 충격적인 소식이 강타했다. 한낱 용병단이 백작가를 몰살시킨 것이다.
모든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사건인 만큼 소문이 퍼지는 속도 또한 매우 빨랐다.
수호용병의 힘이 다시금 대륙 전역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였다. 백작가의 멸절에 대한 소식과 함께 한 가지 소문이 더 돌았다.
그 백작가의 후예가 도망을 쳤다는 소문이었다. 백작가와 함께 한 두 귀족가가 멸화를 피하지 못하는 사이 백작가의 후계자는 도주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영지 내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소문은 다시금 대륙의 시선을 주목하게 했다.
수호용병단이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이제는 모든 대륙의 이들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