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불스용병단이 출정을 하는 시각. 슐랑거 백작가의 성에서도 한창 전쟁을 준비하느라 바쁜 움직임이 계속 되었다.
기사들과 기병들이 전쟁을 준비하느라 바쁜 사이 백작의 성 가장 내부에 존재하는 백작의 방에서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당대의 슐랑거 가문의 가주, 그의 참모 그리고 그 후계자인 페이그가 자리에 있었다.
“준비는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기사단 200명 그리고 500 기병대가 모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후작가로 반등할 명성을 얻는다라. 꽤나 좋은 생각이었어.”
“감사합니다.”
“단장이 후일 따로 나서지 않는 것은 확실한 거지?”
“예, 수호용병들의 전쟁에는 신전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승패나 어떠한 결과가 나더라도 끝마치게 되면 그 후에는 다시 나설 수 없습니다.”
“후… 초인이라… 참 매력적이긴 한데, 참 어렵군. 그래서 죽여서 안 되는 인물은 누구누구라고?”
“우선. 베라타 가문의 마르쿠스는 절대 어떤 일이 있어도 죽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범이라는 소년도 살리면 좋기는 하지만 절대는 아닙니다.”
“마르쿠스라… 클라운으로 살아갈 뻔한 인생이 갑자기 그리 변할 줄이야… 핏줄은 역시 다르다는 건가. 쯧”
백작의 혀 차는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어깨가 수그러드는 페이그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더욱 탐탁지 않아 하는 백작이었다.
“쯧. 한 번 졌다고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아직도 모르다니. 그래서 후일 어떻게 너에게 백작가를 맡길지…”
“주군, 아직 도련님께서는 갓 아카데미를 졸업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쯧. 발밑에 두려면 제대로 두거나 그러지 못할 것 같았으면 나서지 말았어야지. 아카데미를 갓 졸업? 졸업하지도 않은 베라타 가문의 새끼는 실버 용병이다.”
마르쿠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수치심과 분노에 주먹이 절로 쥐어지는 페이그였다.
“쯧. 아직도. 잘 들어라. 슐랑거 가문의 분노는 그렇게 뜨겁지 않다. 언제나 냉정하고 차갑게. 숙일 필요가 있을 때는 언제든 숙이는 것이 우리 가문이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쯧. 되었다. 나가 봐라.”
페이그가 나가고 난 후, 백작의 얼굴에는 근심이 어렸다.
“후… 후계자라고 하는 놈이…”
“도련님께서는 그 나이대에 비하면 충분히 훌륭하게 성장하고 계십니다. 아직 혈기가 있을 나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주군.”
그 말에 처음으로 웃음을 짓는 백작이었다. 다만 냉소였을 뿐이었다.
“그런 말을 하는 주제에 꼬박꼬박 도련님이라고 하는 건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직 도련님이시니까요.”
“후. 그건 차차 생각하고. 그나저나 단장을 묶어 둘 방법이 확실한 것이지?”
“네. 확실합니다.”
“만일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가문이 멸문을 면치 못할 수 있음이야.”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입니다. 확신합니다.”
“그대가 확신한다면 믿을 수 있겠지. 그나저나 수호용병단이라고 할 지라도 기사대전을 수락할 줄이야. 우리 가문이 만만해 보인 건지, 용병단이라고 정신을 논 건지. 쯧”
“그럴 만한 전력이 되니 그렇겠지요. 거기에 단장도 초인이니 말입니다.”
“쯧. 초인이라는 게 생각이 없기는.”
그렇게 불스용병단과 슐랑거 백작가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각기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
무어평야. 끝없이 펼쳐진 너른 평야는 슐랑거 백작가가 기병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준 목초지. 평화로운 그곳이 긴장감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기사대전은 힘과 힘의 대결인 경우가 많았다. 전술은 있을지언정 전략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기에 마주한 두 진영은 눈으로 보기에 전세가 확 기울어 보였다. 한 진영은 천이 넘어가는 군세가 있는 반면에 한 진영은 그 반도 안 되어 보였다.
두 진영에서 각기 몇 사람이 중앙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슐랑거 백작가에서는 백작이 그리고 불스용병단에서는 부발이 선두에 서서 중앙으로 향했다.
중앙에 이르자 선두에 섰던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위대한 초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슐랑거 가문의 가주 플라치라고 합니다.”
“불스 수호용병단 단장 부발이다.”
“이렇게 안 좋은 상황에서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지랄. 귀족들은 이게 문제야. 혓바닥만 잘 놀리면 다 되는 줄 알지.”
“하. 초인이면 초인에 맞는 격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본론을 좋아하시니 받으시지요.”
부발이 건네받은 것은 둘둘 말려있는 두루마기였다. 곧장 그것을 펴 본 부발의 표정은 찡그려졌다.
“하. 진짜 별. 대충 생각은 했다지만. 쯧 그나저나 숫자가 많은데?”
“걱정 마시지요. 기사대전에 맞게 오롯이 700명 만이 출전할 것이니. 보기보다 겁이 많으신가 봅니다.”
“혓바닥을 잘못 놀리면 그 혓바닥에 목이 메어 죽는 수가 있다는 건 모르나 보네?”
“아직까지 잘 살아있습니다만. 그럼 정오에 뵙죠.”
돌아서는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가 좋지 않았다. 각자 일행으로 돌아간 이들. 부발 님의 곁에는 데마르 님과 각 대대장들이 있었다.
“진짜. 저 새끼는 내가 죽이고 만다. 이래서 귀족들이랑은 별로 상종하고 싶지가 않아.”
“어떻게 되셨습니까?”
데마르 님의 물음에 건네받은 두루마기를 건네주면서 말을 이었다.
“결국, 네가 말한 대로 됐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구경이나 해야 한다니.”
데마르 님이 펼친 두루마기에는 신전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장황하게 써 있지만 결국 초인이 개입하기에는 사건이 크지 않으니 초인인 부발이 전쟁이 개입하지 말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권고긴 한데, 신전의 권고는 웬만하면 따르는 게 맞기는 하니까.”
“어차피 단장님이 개입하신다면 저쪽에서 또 다른 수를 쓸 수 있습니다. 깔끔하게 단장님이 참가를 안 하는 게 오히려 낫겠네요.”
“그래도 우리는 범이가 있으니까. 흐흐흐.”
“시간은 언제로 하기로 하셨습니까?”
“어? 아 정오. 그럼 데마르 네가 준비 좀 해줘. 난 범이랑 따로 이야기 좀 할게.”
“예. 알겠습니다.”
데마르와 대대장들이 각기 준비를 하러 가자 부발은 이내 자신을 따로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결국에 내가 참가를 못 하게 되었다.”
“하. 결국, 그렇게 나왔나 보네요.”
“그래서 말인데. 너가 궃은 일을 해야겠다. 용병대 애들 좀 잘 지켜봐라. 너네 소대는 별동대로 돌릴 테니까.”
“별동대…요? 저희 소대가 전부 별동대면 절 따라오기 힘들 텐데요?”
“그래서 너희 3소대는 용병대랑 함께 기병대를 맡아주었으면 좋겠어. 1대대가 슐랑거기사단을 맡을 거고 2대대랑 3대대가 백사기사단을 맡을 거야.”
“그럼 저희 소대랑 용병대들이 기병대를 맡는 건가요?”
“거기에 데마르가 같이 갈 거야.”
“데마르 님이요?”
“응. 데마르가 있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데마르가 원래 행정보다는 전술에 더 뛰어나니까.”
“데마르 님이요?!”
“그럼. 용병 사무소에서 주는 몬스터/마수 사냥법도 데마르 손을 거친 게 꽤 된다.”
“전혀 몰랐어요.”
“데마르가 나서는 거야 어차피 3성 마수밖에 없으니까 근래에는. 처음에는 데마르 덕을 엄청 봤지.”
“진짜. 데마르 님이 우리 용병단의 심장이였네요.”
“그래! 데마르가 우리 용병단 심장이다! 그놈에 심장 심장.”
“에이. 단장님께서 없었으면 어떻게 불스용병단이 용병단이 되었겠어요. 데마르 님 없이는 20년은 더 걸렸을 수는 있겠지만…?”
“나가! 어서 심장한테나 가 봐라!”
“옙!”
전쟁이 다가오는 시점이라고 하기에는 전혀 긴장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범을 믿고 있는 부발이었다.
부발 님을 뒤로하고 중앙의 막사에 들어가자 자유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불스용병 단원들과 용병대장과 달리 긴장하고 있는 용병대의 간부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단장님은?”
“먼저 가라고 하셔서요. 저희 소대랑 데마르 님이 용병대랑 함께 할 거라고 하시던데?”
“그 이상은 아무 말 안하시고?”
“데마르 님께 그냥 가라고”
“하아. 내가 진짜. 이리 와라.”
데마르 님에게 가서 작전의 개요를 듣는 의아함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 기사단의 힘은 파괴적이었다.
그런데 그 기사단을 고작 1대대가 하나를 2대대가 하나를 맡는다는 것이 아무리 전원이 익스퍼트이더라도 가능한가 싶었다.
자신이 맡은 기병대에 대한 걱정은 별로 되지 않지만, 기사단을 맡은 이들이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었다. 그 기색을 읽은 데마르 님이 자신에게 물었다.
“왜? 기사단을 맡은 애들이 걱정되냐?”
“네? 아 네. 조금이요? 너무 수 차이가 많이 나지 않나요?”
“큭큭. 범이가 걱정을 하는구나아. 그러고 보니 범이 넌 우리랑 사냥을 간 적이 없지.”
“네? 네. 들어오고 나서 대대가 나간 적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그런 거지. 기사단이라고 해봐야 마수에 비하면 그리 위험한 사냥도 아니지.”
“그런 가요?”
“쉽게 생각해서 지금 네가 기사단이랑 붙으면 어떨 거 같냐?”
“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어떤 기사단이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막 쉽게 지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살아남는 게 목적이면 무조건 살 수는 있을 거 같구요.”
“아! 마스터라는 녀석이 정작 자기 경지에 대해서 나보다도 모르면 어떡하냐. 백이면 백 네가 이긴다. 몇몇 기사단을 제외하고서는.”
“마스터가… 그 정도인가요?”
“너도 참. 이번에 한 번 경험해 봐라. 네가 있는 용병단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이번 전쟁에서 넌 프리 롤이다.”
“프리 롤이요? 그건 마수 사냥 할 때 있는 롤 아니였어요?”
“마수를 사냥하는 거나 사람을 사냥하는 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위험하다 싶은 애들 보이면 좀 도와주고 그래.”
“그럼. 저희 소대는요?”
“마르쿠스가 망치지. 말 그대로 망치 역할이다. 나머지가 옆에 붙어 줄거고 용병대 애들은 몰이꾼이고.”
“와. 이건 완전 마수 사냥이나 다름 없네요?”
“마수보다 쉬울걸? 애초에 단장님이 참가를 못 한다는 전제하에서 우리 승률은 100%니까. 다만 사상자를 줄이려고 그러는 거지.”
데마르 님의 말에 아직도 감이 안 잡히는 게 사실이었다. 전생에서 기억하는 기사단의 파괴력은 그야말로 극강.
마스터라고 해 봐야 전심으로 상대해 본 마스터라고는 전생의 자신의 목을 딴 마스터 뿐이었다. 그리고 그다지 강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정보 부족에서 오는 괴리감이었다. 재능을 온전히 사용하는 마스터는 감히 기사단 하나와 버금갔다.
강함이 상대적이기에 자신이 용병 시절 보았던 기사단의 파괴력은 상대적으로 강하게, 그리고 자신과 맞붙었던 마스터는 별거 아니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충 이해가 갔지? 그래도 훈련은 몇 번 했으니까 프리 롤. 뛸 수 있겠지?”
“네. 가능할 것 같아요. 최대한 사상자가 안 나오게 해 볼게요.”
“그래. 너도 그럼 가서 소대원들 준비시켜. 슬슬 시간이다.”
데마르 님과 용병들에게 인사를 하고 막사를 나오니 어느새 해가 중천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소대원들이 각기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장! 뭐가 그리 혼자 바빠!”
확실히 씰이 살아난 후에 더욱 활기가 있어진 베어였다. 씰이 말을 못하니 오히려 더욱 말이 많아진 베어였다.
“이거 저거 배우고 오는 길이라. 좀 늦어졌네. 준비는 다 했고?”
“네. 다 했습니다. 범 님”
오른편을 보니 풀 플레이트를 입고 있는 마르쿠스의 모습이 보였다. 풀 플레이트를 입고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는 마르쿠스의 모습은 위압감 그 자체였다.
“일단. 다들 모여 봐.”
모두가 모이자 데마르 님에게 들었던 전술을 설명해 주었다. 전술을 듣고 오히려 자신보다 잘 받아들이는 대원들의 모습에 새삼 자신이 용병단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다.
각자의 맡아야 할 임무에 대해서 알려주고 나서 마르쿠스를 바라보았다.
“이번 전쟁에서 제일 부각되는 게 너일 수도 있겠는데?”
“아닙니다. 저보다는 범 님이…”
“나야. 검강을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겠어. 근데 넌 변한게 많자나? 특히 네 재능…”
“범 님 덕분입니다. 정말… 정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진짜. 둘이 보면 매번 신파 찍는거 같아요. 남자 둘이 뭐하는 건지 뭐람. 대장. 진짜 막둥이만 이뻐하고!!”
베어의 말에 소대원 전부가 웃음을 터트리게 되었다.
정말, 전쟁 전이라기에는 너무도 여유롭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점점 시간이 다가오자 그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고 날카로운 군기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
“저렇게 하면… 안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