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죽여라. 깔끔하게 죽이는 게 좋을 거야”
“씨어 님….?”
“아 놔! 야!!”
“씨어 님!!”
불의의 인영이 씨어임을 확인하자마자 황급하게 도를 내리고 씨어를 껴안았다.
“야! 야! 저리 가! 막둥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그 모습에 다른 소대원들도 마저 나왔다. 소대원들이 나오는 것과 안았던 것을 푸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든 소대원들이 본부로 가 있지 않고 지금 절규의 산에서 만난 것에서 씨어의 표정은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냐.”
그새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는 씨어는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씨어 님… 씰이…”
“씰? 씰이 왜. 어디 갔어. 그놈은.”
“씰이… 먼저 갔어요…”
“뭐!? 너네 임무가 그런 임무가 아니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너네는 왜 본부로 귀환하지 않고 여기에 있는 거고!”
씨어의 물음에 차근차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씨어의 표정은 점점 더 싸늘해져만 갔다.
“본부로 바로 오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인 것 같구나. 그래서 슐랑거랑 울프라고?”
“확실하지는 않아요… 가장 의심이 되는 거지 확신은 없어요.”
“우선 알아봐야겠구나. 아직도 우리 용병단에 칼을 들이대는 미친놈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요즘 너무 유하게 살았나 보구나.”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우선 있어 봐라.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구나. 베어! 절규의 산 교관실 알고 있지?”
“네.”
“다들 그곳으로 가 있어라. 어차피 훈련을 취소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니.”
“넵!”
그렇게 지시를 내린 씨어는 이내 다시 수호성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3소대원은 다시 각자의 짐을 지고 베어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베어. 교관실이 뭐야?”
“마르쿠스. 네가 여기서 훈련 받을 때 교관들이 막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고 했잖아?”
“응. 진짜… 그때만 생각하면…”
“그렇게 교관들이 고생하는데 너희 훈련생이랑 같이 비박이나 할 수는 없잖아?”
이어진 베어의 말에 마르쿠스도 힐페도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은 표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곳이 교관실이야. 절규의 산 중턱에 하나 정상에 하나 있어. 우리가 가는 곳은 중턱이고.”
“와… 난 그래도 교관들이 우리랑 같이 고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별 크게 다르지 않아.”
베어의 말과 다르게 베어를 따라서 도착한 교관실은 산 중간에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봐봐.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지? 그냥 비박보다 깔끔하고 침대가 있고 샤워실이 있고 뭐 이 정도?”
태연하게 말하는 베어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고 싶은 마르쿠스와 힐페였다.
“자. 그럼 빨리 짐 풀고 좀 쉬자. 여기까지 달려오는데 다들 고생했으니.”
마르쿠스가 진심으로 베어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이에 범이 지시를 하달했다.
그 소리에 그저 한숨을 쉬고 짐을 풀러 가는 마르쿠스와 힐페였다.
*
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고요했던 교관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범아!!”
반가운 소리에 한달음에 뛰쳐나갔다. 교관실 앞에 도착하니 량이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량아! 네가 어떻게?!”
“나 혼자만 온 건 아니야.”
뛰어오는 량이의 모습 뒤로 씨어와 부발 그리고 데마르가 보였다. 실로 불스용병단의 간부 중에서도 최상위 간부가 모인 셈이었다.
“고생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격려 후에 다시 부발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하. 그나저나 소드마스터라니 진짜. 괴물 이긴 괴물이구나.”
“아니에요. 그래 봤자 씰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요.”
“걱정하지 마라. 씰의 원수는 샅샅이 살펴서 하나하나 갚아줄 테니.”
보고가 끝나고 나자 조용히 듣고 있던 량이 입을 열었다.
“근데. 여기서 다들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어요.”
“뭐냐 량아.”
“우리가 받은 임무가. 그것도 범이네 소대가 지목받은 그 임무가 왕가의 것이라는 것.”
“!?!?!!!”
“그리고 파로 님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결국 목표가 범이나 마르쿠스일 수 있었다는 것.”
“하…!”
“그렇게 되면 지금 왕가에도 힘을 미칠 만한 가문이나 인물이 있다는 뜻이에요.”
“젠장”
“설마. 왕가에 날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백작가들 중에서도 힘이 있다는 슐랑거 가문이라지만 왕가의 임무에 손을 댄다는 건 어불성설이야.”
“왕가의 임무라…. 그건 누가 정하는 거야?”
“국왕이 직접 행사하는 때도 있지만, 그건 매우 드물고 대부분 궁내부(宮內府: 왕실의 일을 맡아서 하는 부서)에서 결정이 돼.”
“궁내부? 거기는 그냥 왕궁을 관리하는 그런 곳 아니야?”
“아니야. 궁내부는 왕궁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왕의 기조에 따라서 조언을 하고 전략을 짜주는 거야.”
“하. 넌 진짜 이런 건 어떻게 다 알고 있냐.”
“그리고 궁내부에서도 왕가의 임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어. 아마 그곳을 파 봐야 할 것 같아.”
“하아. 부발 님?”
“왕궁 내부는 내가 별로 힘을 못 쓴다. 알아보는 시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럼. 지금 왕가에 나를 목표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네?”
“왕가 또는 궁내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 슐랑거 가문이랑 울프용병대와 합작을 한 거라고 봐야지.”
“합작? 그건 왜?”
“그렇지 않다면 수호성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너희가 받은 임무가 슐랑거 백작가의 주된 정찰 지역 중 하나라는 점. 그리고 수호성에 마수 그것도 3성 마수 그레누이의 동면 지역이 바뀐 사실이 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설명이 안 돼.”
“와. 괴물 옆에는 괴물만 모이는 건가? 대장이 괴물 대장이고 그 옆에 마르쿠스 괴물 그리고 그 옆에 량이 괴물이다. 저걸 어떻게 다 생각하고 살지?”
량이의 설명을 조용히 듣던 베어가 감탄을 하며 자기도 모르게 꽤나 큰 소리로 말을 꺼냈다.
“하하하하! 우리 량이가 천재긴 하지! 내가 그래서 량이를 데리고 오려고 노력한 거라고.”
그새 터져 나온 데마르의 량에 대한 자랑과 사랑에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 이걸 의도한 것인가 싶을 정도. 조금 가벼워진 분위기에서 부발 님이 입을 열었다.
“그럼. 아직 임무는 진행 중인 것으로 하자.”
“그럼. 저희는 어디에 가 있을까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부발 님이 아니라 량이었다.
“아니야 옮길 필요 없어. 이번 훈련은 불스용병단에서 진행하기로 해서 이리로 올 거야.”
“허허허. 데마르가 항상 량이가 천재 천재라고 하더니 나도 이번에 알겠더구나. 다짜고짜 화를 내면서 나오라더니 이런 이유였어.”
“헤헤. 천재까지는 아니구요.”
부발 님의 칭찬에 입이 벌어지던 량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특훈을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불스용병단 1대대와 2대대가 올 거고 3대대는 수호성 내에서 있을 거야. 그리고 산하 용병대 중에서 3개의 용병대가 올 거고.
“자! 그럼 일단 우리도 짐 정리를 해야 하니 다들 짐을 가지고 절규의 산 훈련 본부로 가자꾸나.”
모두가 짐을 다시 가지고 나와서 훈련 본부로 향할 때 조심스럽게 량이에게 따로 부탁했다.
“량아. 카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
“카인? 아마 중앙신전에서 출발해서 수호성에 곧 올 텐데? 왜?
“올 때 카인도 불러줘. 스승님과 함께.”
“흠. 알았어. 두 사람이면 되는 거지?”
“응.”
“에밋에게는 내가 따로 말해 둘게.”
“후. 민폐를 진짜.”
그 소리에 짐짓 진지해진 얼굴로 량이 입을 열었다.
“범. 그런 소리 하지 마. 네 덕분에 우리가 모일 수 있었고 널 중심으로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있었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너 같아도 우리 중에 누가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량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뿌듯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생은 참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
“뭘. 이제 널 향해서 칼을 뽑을 사람들은 내가 후회하게 만들어 줄게.”
“진짜 고마워. 네가 나서면 진짜 힘이 되지.”
“진짜. 넌 가끔 보면 멍하고 바보 같은데 이럴 때는 진짜 똑똑한 것 같단 말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앞으로 나가는 량이를 보면서 든든함을 느꼈다.
‘우리 중에서 가장 천재를 꼽으라면 단연코 량이지. 드러내길 싫어해서 그렇지, 전생에 량이는 찬란한 세대에서도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사람이니까.’
*
단 하루. 1대대와 2대대 그리고 3대대마저 전원이 모이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었다.
넓은 본부라고 생각했지만, 남자 60명이 모여 있으니 그다지 넓지만은 않아 보이는 본부. 그곳에서는 한창 논쟁 아닌 논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냥! 일단 울프용병대부터 조지고 보면 된다니까?”
“그렇게 생각이 없으면 어떻게 할래? 그럼 슐랑거 가문은 어떡하려고?”
“그냥 가주만 조지고 오면 되지!”
“멍청한! 진짜 뇌는 왜 달고 다니냐?”
누구를 어떻게 징계를 할 것이냐에 대한 토론이 점점 심화되어 가는 도중 마지막으로 데마르가 들어왔다.
그러자 신기할 정도로 모두 말이 없어졌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역시. 데마르 네가 있어야 한다니까. 그래서 대충 알아는 보고 왔어?”
“이리저리 알아보기는 했는데. 일단 울프용병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슐랑거 가문도.”
데마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술렁거리려는 찰나에 부발이 탁자를 살포시 두들겼다.
“후우. 그놈에 존대는 소름이 돋는다니까 진짜. 하여튼 그리고 나머지는?”
“그게 좀. 알아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왕가의 그것도 궁내부의 일이다 보니…”
“흠.”
“그래도 한가지 확인한 사실은 궁내부 대신이 움직인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 전략실 그 내부에서 움직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선은 정보 수집. 누구를 상대하는지 명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 갈 건지도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데마르와 부발이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 조용히 마르쿠스가 손을 들었다.
“마르쿠스? 말해 봐라.”
“슐랑거 가문은 제가 맡고 싶습니다. 증거만 명확하면 저희 가문의 힘도 보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사대전(騎士對戰)을 신청하면 되니까요.”
기사대전. 각 가문의 분쟁을 처리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전쟁은 물자의 소모가 극심하기에 국가에서 나서는 전쟁이 아닌 국내의 영지전은 거의 금지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분쟁을 힘으로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사대전이었다. 각 가문의 기사단끼리 하는 소규모 전쟁.
그것이 기사대전이었다.
“흠. 그럼 울프용병대를 족쳐보면 뭔가 나올 것 같으니까. 그건 조금 기다려 봐라. 그나저나 궁내부라.”
“단장님.”
고민하는 부발을 향해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제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범이 네가?!?”
“네.”
“어떻게??”
“신전에 부탁해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스승님께 소개받은 정보 단체에도 의뢰할 생각입니다.”
“하. 정보 단체야 돈이 있다면 된다고 치지만 신전은. 사사로운 부탁은 안 들어줄 텐데?”
그 말에 품에 항상 지니고 다니던 브로치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건?!”
“몰타 기사단장님의 증표입니다. 이거면… 정보를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 진짜 넌 까면 까도 뭔가 나올 구석이 더 있는가 보다. 그래 그거면 충분히 되기는 하겠는데…”
“괜찮습니다. 전혀 아깝지 않으니 그렇게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일단 3대대가 일 좀 하자. 드러나지 않게 울프용병대 좀 족쳐보자.”
“그럼. 산하 용병대 좀 써도 됩니까?”
이어지는 나수투스의 물음에 호쾌하게 대답하는 부발이었다.
“지금. 우리는 전쟁을 준비하는 거야. 그럼 무엇이든 가져다 써도 되는 거야. 보고만 해!”
“넵!”
“그럼 일단 회의는 파하고 2대대는 본부로 돌아가서 일상적으로 있는 척 좀 하면서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범이는 나 좀 잠깐 보자.”
모든 이들이 다 나가고 나자 부발은 따로 자신을 데리고 훈련 본부에 있는 사무실 하나로 들어갔다.
“어떻게 할 거냐.”
“음. 원래는 바로 올라가려 했지만, 안 될 것 같아요.”
“하. 역시 그런 거였나. 진짜 괴물은 괴물이구나. 그래 너라면 가능할 것 같다.”
“네.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지어야죠,”
“진짜 너만 한 괴물은 내 인생에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거다. 소드마스터가 된 걸 축하한다. 괴물.”
“감사합니다.”
*
“카인. 좀 도와줘.”
“걱정하지 마! 내가 진짜! 감히!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