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놀람과 경악 이후에 찾아온 것은 지독한 악취였다. 순식간에 덮친 악취에 모두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자 황급히 씻고 나와야만 했다.
씻고 나온 후 바로 던전을 나가는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자신이 들어가 있던 한 달여간의 기간 동안 각자 얻은 부분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고,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1주일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지나갔다. 각자 정리를 마치고 모인 곳은 바로 샤워장이었다.
샤워장의 물이 흘러나오던 샘 그 옆에 있던 거대한 검의 문양. 그곳 앞에 3소대원 전부가 서 있었다.
“대장. 여기…가 출구라구요?”
“응. 확실해. 기다려 봐.”
그리고 도를 꺼내고 마나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와 같던 검기가 어느새 정련된 하나의 날처럼 도를 휘감았다.
녹빛의 정련된 검기는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 검기가 맺힌 도를 벽의 문양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도가 꽤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문양을 따라서 도를 움직이자 손에서 미세한 느낌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하나하나 끊어지는 그 감각이 도를 타고 이어져 손에 느껴졌다. 검의 문양 중 검신(劍身)을 다 따라서 그어내자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이 느껴지자 도를 벽에서 빼 다시 허리에 패용했다. 곧 문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검신의 문양 그대로 앞으로 나오면서 옆으로 비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에 통로가 나타났다.
“빛이다!!”
통로의 끝으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3소대원은 진형을 잡고 그 통로를 향해 들어갔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통로를 나와보니 자신들이 있던 곳이 폭포 뒤편의 동굴임을 알 수 있었다. 3소대원 모두 폭포를 지나쳐 나오자 태양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쓰으으읍. 하아아아아…. 밖의 공기라니… 살 거 같다.”
모두가 크게 숨을 쉬면서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깥공기를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은 파로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파로 님. 저희가 어디쯤인지 알 수 있으시겠어요?”
“흠. 조금 어려운데요. 차라리 오늘 하루는 여기서 쉬고 내일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해가 그리 머지않아서 질 테니까요.”
“좋아요. 그럼 베어랑 파로 님이랑 주변 경계만 보고 와주세요. 저도 반대편을 살펴볼게요.”
그리고 남은 이들은 야영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에 곧바로 돌아왔다.
“범 님. 벌써 다녀오셨습니까?”
“응. 확실히 나와보니까 조금씩 달라진 걸 느끼긴 하네.”
“마스터라니. 대단하십니다.”
“왜? 나보다 네가 더 대단한 거 같은데? 벌써 경계를 바라볼 정도라니 진짜. 진짜 천재는 여기 있었네?”
“다 범 님이 잘 인도해주셔서 그렇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너는 소대장만 일평생 바라보는구나? 그래서 여자는 만나겠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파로와 베어가 돌아왔다. 저녁을 해결하고 해가 뉘였뉘였 져서 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파로 님. 지금 저희가 어디 부분인지 아시겠어요?”
함께 지도를 펴고 지금 현 위치를 파악하려고 파로와 머리를 맞대었다.
“흠… 던전의 입구와 출구가 얼마나 차이가 날지 계산이 안 돼서 애매하긴 한데.”
한참을 지도와 하늘의 별을 보면서 계산을 하던 파로는 지도의 한 부분을 짚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우리가 지금 이쯤에 위치한 것 같은데. 던전의 입구와 꽤 차이가 나도 던전이라는 특수성이라면… 아마 크게 차이는 나지 않을 것 같군요.”
파로가 짚은 지도의 위치는 처음 들어왔던 던전의 위치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멀지도 않았다.
들어간 입구와 출구가 그저 산맥 하나를 통과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던전의 특수성을 고려해 본다면 그리 차이가 나는 거리는 아니었다.
“흠… 그러면 수호성으로 돌아가는데 넉넉하게 잡고 3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3주면 충분할 것 같군요. 그것도 꽤 넉넉하게 잡아서.”
“그럼. 저희가 길게 봐서 3주라고 말씀드렸으니 3주 반 정도 걸린 거로 생각하면 되겠죠?”
“던전 안에서 제대로 날짜를 셋다는 전제 하이기는 한데 아마 그렇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조용히 말을 듣고 있던 마르쿠스가 자신의 말에 대답했다.
“근데. 대장. 어떻게 할 거요?”
그리고 그 말에 질문을 던진 것은 베어였다. 그 질문과 함께 소대원들의 분위기가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제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조금 석연치 않은 부분이 확실히 있지?”
“네.”
“그동안 곰곰이 생각을 해 본 건데. 울프용병대랑 슐랑거 가문이 아무래도 손을 쓴 것 같은데…”
“슐랑거 가문이요? 뱀쟁이? 그 가문이랑도 척을 졌수? 대장?”
베어가 놀라 반문했다. 뱀쟁이라고 무시 받지만, 그 영향력과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가문
“음… 내가 아니라… 마르쿠스 네가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마르쿠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충 귀족 가문의 자제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다들 둘째나 서자라고 생각했던 마르쿠스가 가문의 장자.
그것도 그저 그런 가문이 아닌 그 유명한 베라타 가문의, 현(現) 근위기사단장의 장자라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슐랑거 가문의 자제와 엮인 그 사실에 놀라고, 망치를 들고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이 불과 몇 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이들이었다.
“와… 소대장만 괴물이 아니었네… 3년? 4년? 만에 …”
“괴물은 괴물이랑 다닌다는 건가…”
베어와 힐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정보의 과부하와 함께 괴물 같은 이들이라며 놀라고 있었다. 그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오직 파로뿐이었다.
“소대장. 아무리 슐랑거 백작가가 대단하고 울프용병대와 힘을 합쳤다라고 해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수호성에 영향을 미치려면 아마 둘 만으로는 힘들었겠죠. 그래도 지금 생각나는 건 둘이 제일 유력해요.”
“후. 백작가 하나와 용병대 하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을 텐데…”
파로와의 대화에 아직 수호용병에 대한 감이 없던 마르쿠스가 질문을 던졌다.
“수호용병단이 그렇게 강해요?”
마르쿠스의 말에 자신과 파로뿐만 아니라 베어와 힐페마저 웃음을 터트렸다.
“마르쿠스가 이럴 때 귀족 도련님이라는 걸 종종 느낀다니까?”
평소 마르쿠스와 가장 잘 지내던 힐페가 나서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마르쿠스. 수호용병단이 총 몇이나 있게?”
“20개의 용병단 아닌가요…?”
“그렇지. 근데 그 20개의 용병단이 블레어왕국에서만 20개일까?”
“그렇지 않나요?”
“대부분의 귀족가 자제들의 착각이기도 한데. 서 대륙에서만 20개의 용병단인 거야.”
“아…! 그렇네요. 그래도 귀족 가문에 비하면 한 용병단은 약하지 않을까요…?”
“우리 용병단이 용병단 중에서는 가장 숫자가 적은 거 알고 있지?”
“그럼요! 그런데도 용병단일 수 있는 건 전원이 익스퍼트에 이른 강자이기 때문이죠!”
“그래! 60명의 익스퍼트가 있는 집단이라는 거지.”
“60명…기사단장이 60명인 거네요.”
그제야 어렴풋이 자신이 속해 있는 용병단의 강함을 체감하는 듯 하는 마르쿠스였다.
“거기에 수호용병 중에서 골드 정도만 되어도 웬만한 기사는 찜 쪄 먹지. 실전 경험의 양이 다르니까. 그런데 한 수호성에 골드 용병이 얼마나 있을까?”
“음… 한 천 명? 정도 있지 않을까요?”
“땡! 정답은 블레어 수호성에만 존재하는 용병은 1만명입니다.”
“1만. 기사가 만 명. 와…”
“괜히 수호용병이 되면 제약의 서에 서명을 하는 게 아니야. 그만한 힘이 있기 때문에 서명을 하는 거지.”
힐페의 말이 사실이었다. 오히려 축소를 한 부분도 있을 정도로 수호용병의 힘은 강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수호용병단의 힘과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는 거지. 제약의 서 마지막 부분 기억나?”
수호용병단에 가입을 하면서 마르쿠스도 제약의 서에 서명을 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어…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당사자에게 그리고 당사자가 속한 용병단체에 직접적인 위해가 가해질 때 수호성을 떠나 심판을 할 권리를 가진다?”
“그렇지! 그러니까 만약에 우리를 직접 노린 것이 백작가랑 용병대 하나라면 어떻게 되겠어?”
“저희 용병단이 수호성을 벗어날 수 있는 건가요…?”
“땡! 다시 생각해 봐.”
“음… 아! 용병 단체!!”
“그래! 직접적으로만 우리 산하에 있는 용병대가 몇이라고 알려줬지?”
“12이요”
“그러니까 마스터 2명 익스퍼트 70명에 골드 용병만 700명. 단순하게만 계산한 게 이 정도.”
힐페의 말을 듣자 숨이 막혀오는 자신을 발견하는 마르쿠스였다. 그리고 왜 하나의 용병대와 백작가만으로는 자신들을 습격할 수 없는지 확 체감되었다.
“그렇네요… 고작 백작가 하나와 용병대 하나인 거네요…”
“응.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힐페의 설명이 끝나자 다시 대책회의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일단. 정보를 취합해야 하는데… 우리가 수호성에 들어가면, 애매해질 거란 말이지?”
“흠. 그렇다고 수호성에 몰래 들어가는 건 불가능한데요.”
블레어왕국의 수도보다도 철저한 경비 태세가 이루어지는 곳들이 수호성이었기에 아무리 마스터인 자신이라도 몰래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힐페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난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씨어 님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이때쯤 훈련 들어가시잖아요! 저희 산하 용병대 데리고 훈련 들어가시는 장소는 항상 똑같잖아요!”
“맞네! 절규의 산으로 가면 부대장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도 교관으로 종종 참여해서 잘 알고 있으니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절규의 산 이야기가 나오자 그 말을 꺼낸 힐페와 그 옆의 마르쿠스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진짜, 고통과 절규밖에 없는 산인데”
항상 당당하고 단단하던 마르쿠스의 표정이 무너지며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수호성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좋은 생각인 거 같은데? 파로 님. 어때요? 훈련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을까요?”
“흠. 오히려 훈련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수호성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까 한 18일 정도면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으니 좋은 생각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절규의 산으로 가는 거로 하죠!”
대화가 일단락되자, 내일 출발을 위해서 다들 각자의 잠자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불침번을 서게 된 자신은 중앙에 홀로 남아 별을 보면서 누웠다.
‘누구랑 어디가 더 연관됐는지 모르겠는데, 카인한테도 손을 뻗어야겠네. 씰… 내가 복수는 제대로 해주고 갈게.’
이제는 찬란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자신을 위해서, 소대원들을 대신해서 너무도 쉽게 간 씰의 복수를 다짐하며 밤을 보냈다.
*
다들 한 단계 앞으로 나가서 그런지 돌아가는 길은 쾌속 그 자체였다. 경지가 정체되었던 파로마저 이제는 경계에 다다랐다.
그렇게 3소대원은 18일이 아닌 16일 만에 목적했던 절규의 산의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절규의 산은 마치 황량하고 황폐할 것만 같은 그 이름과는 다르게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푸르고 푸른 산이었다.
수려하기 그지없는 그 산의 이름을 절규의 산으로 만든 인물을 기다리면서 소대원은 훈련 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안 온 것 같은데?”
“이제 하루 정도면 올 거 같으니. 대충 짐을 풀어 놓면 될 것 같습니다.”
베어의 말에 따라서 각자 짐을 풀고 다시 본부에 모였다. 본부에 모여서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을까를 고민하려는 찰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어나갔다.
자신이 자리를 박차는 동시에 3소대원은 진형을 잡고 본부 밖으로 나와 벽을 등에 지고 자리를 잡았다.
본부 곁에 있던 나무의 뒤로 돌아가 본부로 향하고 있던 한 인영의 뒤로 돌아 도를 목에 대었다. 목에 도가 닿자 그 인영이 단호히 말을 꺼냈다.
“죽여라. 깔끔하게 죽이는 게 좋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