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 하는 장기 의뢰다 보니 다들 준비할 것이 적지 않았다.
출발하는 당일 새벽 3소대원 전원이 준비가 완료된 상태로 용병단 본부의 정문에 모여 있었다.
“스승님!”
“호들갑은. 이제 너도 소대장이니 진중하여지라고 하지 않았느냐?. 자 받거라.”
작은 구슬처럼 보이는 무엇인가를 건네받은 범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처하면 구슬을 깨트리도록 하거라. 그러면 결계가 펼쳐질 거다. 3성의 마수라도 30분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다.”
“스승님...”
“어서 가 보거라. 기다리지 않느냐.”
“다녀오겠습니다. 스승님.”
배웅을 받고 자신을 기다리는 소대원을 이끌고 북문을 나서는 범이었다.
*
쾌적하다고 할 수 없지만, 문제가 없던 만큼 순탄한 길이였다고 생각되는 1달이었다.
변화한 지형을 확인하고 몬스터와 마수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꼼꼼하게 지도를 보완하며 온 길이었다.
그리고 의뢰받은 포인트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불침번을 서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인영이 있었다.
“대장. 교대할 시간이에요.”
“파로 님. 감사해요.”
“대장. 내일부터는 조금 조심해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소.”
“왜요?”
“감이 좋지 않소.”
“흠… 그럼 내일부터는 속행이 아니라 은밀 기동으로 바꿔서 가죠.”
“고맙소. 잘 들어줘서.”
“파로 님의 감이잖아요. 저도 오래 살고 싶으니까요.”
피식 웃는 파로를 뒤로 하고 눈을 붙이러 가는 와중에도 표정은 진지했다.
‘길잡이의 감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셨지… 별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조금 불안한 밤을 보낸 것치고는 은밀 기동으로 가는 내내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의뢰 포인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맥 꽤 깊은 곳임에도 너른 분지 지형의 장소였다.
“정지!”
“대장. 포인트가 여기가 확실한 거죠?”
“흠… 정확히 여기긴 한데…아직 오버플로 기간이 아니라서 그런가…”
“분지 내로 들어가면 조금 더 명확하게 조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로 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흠…. 흠…. 당장 튀고 싶은데… 보이는 게 너무 없는데…”
“그럼 일단 진입해서 조사부터 진행하는 거로 하죠.”
“다만, 긴장은 하고 조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 감이 안 좋아요.”
파로님의 말에 소대원 전부가 긴장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 느껴졌다. 의뢰를 진행하면서 파로의 감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분지의 가장자리에 진입하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대장. 여기가 일종에 통로인 건 맞는 거 같은데요?”
“맞아요. 오버플로가 일어나면 이 길목으로 나오는 것 같기는 하네요.”
조금씩 조사를 하면서 분지의 내부로 진행하는 3소대.
분지의 중앙 부분에 도착하자 범이 소리를 치는 동시에 땅이 들썩이면서 무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후퇴. 후퇴!!”
외침과 함께 진형을 잡고 바로 후퇴하는 3소대였다. 그리고 그제야 파로의 감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인하게 된 3소대였다.
“씨발… 그레누이가 왜 여기에 있어!”
파로의 감은 다른 것이 아니라 3성 마수 그레누이의 존재 때문이었다. 3m 크기의 두꺼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수.
대부분의 마수가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천적이 없다고 알려진 마수가 그레누이였다.
한 번의 뜀박질에도 무시무시하게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상황. 완벽한 도주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머리는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판단이 서자 바로 품 안에서 구슬을 던졌다. 구슬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레누이를 막는 결계가 생성되었다.
“휘우! 대장 살았네요.”
결계를 보고 마음을 놓아버린 씰이었지만, 이어진 말에 다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소대원들이었다.
“저거 오래 안 가. 그래 봐야 30분이라셨으니 20분 정도라고 생각해야 해. 파로 님. 지금 여기서 이곳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지도를 황급히 꺼내 지목한 위치를 보고 가늠하는 파로였다.
“최단 시간으로 따지면 5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방법이…?”
“그레누이에게 인식된 순간 도망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죠? 이곳에 던전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일단 살 수는 있을 거예요. 바로 출발할 수 있겠어요?”
“대충 어딘지는 알 것 같습니다.”
“가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출발하는 3소대였다. 목표로 하는 지점은 수호산맥의 깊은 곳이었기에 무조건 속행으로만 갈 수도 없었다.
피가 말리는 30분이었다. 분명 따라오는 기척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바로 뒤에 무엇인가 다가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뇌에서 계속 그레누이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날 때였다.
“웅…”
“웅…”
미세하게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파로, 얼마?”
“10분이요!”
“다들! 전속으로 달려!”
그 말에 모두 마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호산맥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이 금기나 다름없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조금씩 그 진동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고, 다른 소대원들도 듣게 되었다.
미친 듯이 파로의 등을 보면서 달리면서도 점점 커지는 진동 소리는 피를 말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쿵!”
이제 명확하게 진동이 느껴지기조차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니 그레누이가 멀리서 뛰어서 오는 것이 보였다.
“대장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어딥니까.”
“제가 앞장설게요!”
파로의 말을 듣고 바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절벽이었다. 수호산맥에서도 높아 보이는 산봉우리가 깎아지르는 절벽을 통해서 그 위용을 드러냈다.
“대장!”
평소 같으면 그 위용에 감탄할 수 있었겠지만, 등 뒤에 오는 그레누이는 그 절벽을 절망으로 만들 뿐이었다.
“다들 절벽 앞으로 가서 튀어나온 돌에 그려진 대검 문양 찾아 빨리!”
이해도 가지 않지만 바로 절벽에 붙어서 문양을 찾는 소대원들은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쿵!”
“쿵!”
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다들 절벽을 뚫어질 듯이 찾아보고 있었다.
“여기!”
씰의 외침에 자신이 가장 먼저 다가왔고 모두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 돌 앞에 섰다. 대뜸 손을 긋고 나서 그 돌에 손을 얹었다.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했기에, 누구보다 강해진 검. 그 의지를 따르기 위해 여기에 섰으니 시험을 받고자 합니다.”
빠르게 말을 하자 이내 피 묻은 돌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절벽에서 문의 모양으로 돌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튀어나온 그 돌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급하고 상황도 급한데 돌은 너무나 천천히 열리는 것 같았다.
“다들 들어가!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바로 서 있기만 하고 들어가!”
자신의 말에 따라서 파로가 들어간 순간
“쿵!”
그레누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를 잡자마자 입에서 기다란 혀가 튀어나왔다.
“들어가! 빨리!”
가까스로 도를 들어 혀를 튕겨 낸 후에 소리치자 빠르게 다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튀어 나간 혀가 갑자기 공중에서 꺾어지더니 자신의 옆에 있던 씰의 다리를 휘감고 낚아챘다.
“씰!”
뛰어나가려던 자신을 마지막으로 들어가고 있던 마르쿠스가 억지로 잡아서 끌고 들어갔다.
끌려 들어가는 순간 보이는 것은 그레누이의 입으로 향하고 있는 씰의 모습이었다.
마르쿠스에게 억지로 잡혀 오고 나서야 자신이 던전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씨발!! 마르쿠스 뭐 하는 짓이야!!”
“죄송합니다. 하지만 범 님이 죽게 둘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렇다고!!”
너무 허탈하고 허무한 상실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현실은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
정신을 차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모두가 마음을 추스르기까지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직면해야 했다. 자신들의 형제를 잃었다는 것을.
“후… 미안하다. 대장인 내가 정신을 먼저 차렸어야 했는데.”
“후… 대장은 누굴 잃어 본 게 처음이니 괜찮소. 그래서 여긴 어디길래 3성 마수가 못 들어오는 겁니까?”
“본래는 수련장이자 교육장으로 사용했던 던전입니다. 안쉐 님을 다들 알고 계시죠?”
“폭풍의 검의 그 안쉐 님?!”
“네. 그분이 만드신 던전입니다.”
“그럼.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 건가요?”
“아뇨. 그게 좀 문젠데… 여긴 마스터가 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던전입니다.”
자신의 말이 끝나자 모두 당황스럽기 그지없어했다.
“본래라면 식량도 다 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서 그렇게 오랫동안 있지는 못합니다.”
다들 그 말에 절망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는 소대원들, 그중에서 파로만이 자신에게 질문을 건넸다.
“얼마나 있을 수 있을 것 같소 대장.”
“모두가 먹을 식량으로 따지자면 1년 정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년?! 그렇게나 우리가 식량을 많이 챙겨왔어요?”
“우리가 챙긴 식량은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그러자 자신의 아공간을 공개했다. 그리고 그 아공간에 식량과 량이 만든 식량 대신의 물건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후… 그래도 살 방법은 있는 것 같네요.”
“그나저나 소드마스터가 1년 안에 나올 수 있을까요…”
“범 님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르쿠스의 말에 소대원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았다.
“저도 확신은 못 해요… 그래도 이곳이 수련장으로 만들어진 곳이니 죽어라 해 봐야죠.”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던전으로 깊게 들어가기 시작하는 3소대였다.
“이곳이 숙소 같은 곳이에요. 그리고 옆에 바로 씻을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숙소 같은 공간으로 들어오자 모두가 짐을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대장은 어떻게 여길 아는 겁니까?”
파로의 물음에 모든 소대원이 범을 바라보고 앉았다.
“스승님께서 던전 발굴에 참여하셨어요. 그래서 알고 있는 곳이에요.”
폭풍의 검이라는 이명의 안쉐의 이름이 안드로니쿠스라는 것 그리고 [바람의 탑]을 계승한 것이 자신이라는 것도 모두 말해 주었다.
경악에 경악을 거듭하는 소대원들이었다. 전설의 영웅의 후예와 자신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람이 거듭되었다.
던전에 대한 설명과 자신에 대한 설명이 다 끝나고 나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이번 임무에서 그레누이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그게 좀 이상해요. 대장”
그 말에 바로 대답을 한 것은 베어였다. 생존에 특화되었다는 말을 듣는 만큼 수호산맥의 몬스터와 마수의 생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베어였다.
“본래 그레누이는 이런 중반 부분에 있지 않아요. 대부분의 3성 마수가 그렇듯이. 그런데 동면을 취할 때만 이렇게 내려와서 있다 말이죠.”
“그 동면을 취하는 장소가 하필이면 우리가 받은 의뢰의 포인트였다. 이건가…”
“사실 대장의 결계가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서 얼마 가지 못하고 다 죽었을 거예요.”
“그 동면을 취하는 장소를 미리 알 수 있나?”
“그게 이상하다는 거죠. 대부분의 3성 마수에 대한 위치는 각 성에서 알고 있거든요. 동면을 취하는 장소가 변화하긴 하는데 그걸 수색하고 발견하면 바로 보고를 하거든요.”
“본래의 위치는 알고 있나?”
“그게…이쪽으로 우리가 나온다고 해서 제가 보고된 내용을 다시 보고 왔거든요?”
“그런데?”
파로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베어의 입에 모든 소대원의 눈이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