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아카데미의 클라운이었던 마르쿠스의 골든리그 본선 진출은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재능을 알아본 범의 평가는 더욱 올라갔다.
그 가운데 심기가 몹시 불편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페이그 슐랑거. 애초에 마르쿠스를 클라운으로 만든 인물이었다.
페이그가 마르쿠스를 클라운으로 만든 인물이라는 것을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범의 평가가 올라가는 만큼 페이그의 평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젠장… 클라운 따위가 어떻게!”
연꽃 문양이 새겨진 의자들이 늘어선 곳에서 페이그는 화를 토해내고 있었다. 그 곁에 있던 재인이 감정의 동요 없이 말을 했다.
“시기가 더욱 좋지 않습니다. 최소한 마르쿠스보다는 상위의…”
“감히! 네가…! 내가 설마 그딴 클라운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할 것 같으냐!”
“대진운에 따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문제입니다.”
“젠장… 클라운 새끼도 그 고아 새끼도 도움이 안 돼… 진작에 쫓아내던 수를 썼어야지!”
“저의 때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지금 내가 내년에 졸업생이 된다고 아주 기고만장하지? 내년부터는 내 자리가 네 것이 될 것만 같지?”
흥분해 있는 페이그를 말없이 보는 로사였다. 그리고 이내 품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저도 저희 회원이 안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준비했습니다.”
다시 공손해진 모습으로 보랏빛이 찰랑거리는 약병을 건네는 재인을 보면서 조금은 화를 가라앉히는 페이그였다.
“뭐지 이건…? 처음 보는 약병인데?”
“아직 실험 중인 물건이긴 하지만, 효과는 확실합니다. 이른바 증폭의 비약입니다. 복용하고 30분 동안 근력을 2배 상승시켜 줍니다.”
“하…! 2배나…? 그래서 부작용은?”
“온종일 탈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틀 정도는 정양해야 합니다.”
“하… 젠장… 내가 이런 약 따위에…”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게 뭐지?”
“최대한 강자를 피해서 대진에 넣어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64강에서 마르쿠스를 만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오른다는 전제 하입니다만…”
“…운영위에 손을 대는 건 미친 짓일 텐데…?”
“저만의 힘이 아닙니다. 저희 [로티스]의 힘과 재물로 겨우 성사된 일입니다. 모든 회원이 힘을 합친 결과입니다.”
“하하하하하하. 역시… 역시 [로티스]는 달라. 좋아. 이렇게 판을 깔아주면 내가 또 질 수 없지. 역시 아주 잘했어. 내 자리를 물려받을 만하군. 수고했다.”
재인의 설명을 듣고 흡족해하며 나가는 페이그였다. 그리고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재인이었다.
“독사의 가문에서… 미꾸라지인 건가… 그럼 잡아먹혀야지. 증폭의 비약은 무슨… “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자리가 될 그 자리를 정리하고 마무리를 차차 해나가는 재인이었다.
*
정신을 차리자 눈에 보이는 것은 [우시아]의 얼굴들이었다. 아직 정신이 살짝 멍했다. 그 상태로 온갖 축하와 환호가 들려왔다.
“저… 통과했나요?”
걱정을 한껏 담은 마르쿠스의 질문에 한껏 웃음으로 대답하는 [우시아]였다. 한창 웃고 있는 [우시아] 사이에서 범 님이 나오셨다.
“축하해! 종합 2위로 본선 진출한걸. 이제 그 누구도 감히 너에게 클라운이라 할 수 없겠는데?”
범 님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얼굴에서,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과거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재생이 되었다. 위대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겠다는 꿈을 안고 아카데미에 입학한 그 순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재능은 무가치했고 그 어떤 검술도 자신과 맞지 않았다. 미친 듯이 노력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자 자신은 어느샌가 클라운이 되어 있었다. 누가 선동했는지 뻔히 알지만 맞설 수 없었다.
자신은 클라운이라 불리어도 다를 바 없는 무가치한 쓰레기였기에.
아버지의,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자살을 생각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2학년 이후로는 본가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다만, 내 생명을 놓지 못하는 것은 아카데미를 들어오기 전 아버지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널 믿는다.’
들어오기 전에 방에 들어와 자신에게 말해 준 그 한마디가 삶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3학년이 되자 신기한 소문을 들었다.
기본 재능. 자신의 재능보다도 더 낮고 낮은 아이가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부러웠다. 나는 왜 저렇게 되지 못할까 봐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그 아이가 최상위 재능을 이겼다는 소문이 들렸다. 무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자신은 점점 더 비루해져 보였다. 더 이상 무슨 노력이 필요한가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죽을 수는 없었다.
그 아이는 초인의 제자가 되었다. 자신은 여전히 버러지 같은 클라운이었다.
그 아이가 동아리를 만들었다. 회원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궁금했다. 자신과 그 아이의 차이가.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찾아갔다. 이도 안되면 그저 사라질 것이라 결심하고 찾아갔다.
그 자리에 그 아이가 보였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걸고서 나를 받아준다고 했을 때 미쳤나 싶었다. 그리고 너무 고마웠다.
처음 그 아이와 함께 수련장에 나갔을 때는 자신을 조롱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지한 그 아이의 눈에 나는 망치를 쥐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 아이는 빛이었다. 새로운 삶이 찾아왔다.
하지만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자신 때문에 동아리의 아이들이 욕을 먹고 있었다. 자신이 벗에게 민폐가 되었다.
이를 더 악물었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망치를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은 여전히 클라운이었다.
무투대회가 점점 다가올수록 두려웠다. 여전히 자신은 클라운이었다.
예선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무렵이었다. 마나를 사용하지 말라는 라니우스 님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단단하게 자신을 믿는 범 님의 눈동자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예선전이 기어코 다가왔다. 두렵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도 억지로 시험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범 님의 응원이 들려왔다. 긴장이 조금은 풀렸다. 그리고 자신은 통과했다.
시험을 통과할수록 마음에서 하나하나 무엇인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에서 기절한 기억 이후로 처음 본 얼굴이 [우시아]의 친구들이었다. 자신을 믿어 준 친구들
범 님이 합격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오늘 다시 태어났다. 이제 더 이상 나는 클라운이 아니었다. 나는 마르쿠스. 주인을 선택하는 검가(劍家) 베타라 가문의 장자. 그리고 범 님의 검이다.
*
클라운이라고 놀리지 못할 거라는 축하와 농담 섞인 말에 갑자기 눈물 흘리는 마르쿠스였다.
갑자기 눈물 흘리는 마르쿠스의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도 에밋이 그리고 아이들이 나서서 토닥여주었다.
곧이어 격한 감사 인사를 건넨 마르쿠스를 데리고 아카데미를 나와서 식당으로 향하는 [우시아]의 아이들이었다.
“오늘은. 내가! 쏜다!”
당당하게 모든 아이들을 이끌고 갔다. 오늘 하루 무려 3만7천골드를 벌어들인 범은, 무척이나 당당했다.
수도의 유명한 식당에 들어간 아이들은 별관으로 자리를 잡고 이동했다.
가는 동안 마르쿠스가 벌써 유명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천 배당의 사나이.’
몇몇 사람들이 마르쿠스에게 돈을 걸어 인생 역전을 했다는 전설 같은 소문이 벌써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별관에서 내일은 없다는 듯이 음식을 먹으며 예선 통과 파티를 모두가 신나게 즐겼다.
*
아카데미에서 언제나 자신의 뒤에서 걷는 마르쿠스였다. 예선이 끝나고 하루. 세상이 마르쿠스를 바라보는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수군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수군거린다 해도 그것이 질투이고 경악이며 놀람이었다.
자신이 칭찬을 받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그날 이후 마르쿠스는 변했다.
은연중에 의기소침하고 어깨가 접히는 마르쿠스가 아니었다. 누구보다 당당했고 단단해 보이는 모습이 되었다.
하루 만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마르쿠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 축제의 꽃. 골든리그 본선의 무대가 막을 올렸다.
*
[우시아]의 아이들이 함께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와… 진짜 매년 느끼는 거지만, 사람 정말 많다…”
약간 질린 듯한 자신의 말에 세상 신나 보이는 카인이 말을 받아주었다.
“왕국에서 가장 큰 축제니까! 거기다가 오늘이 골든리그 본선의 시작이잖아! 범이랑 마르쿠스 덕에! 자리도 좋아!”
“뭐… 난 딱히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르쿠스네 아버님은 어련히 좋은 자리를 받으실 테니 다행히 우리 동아리 수가 적어서 다 같이 가는 거지.”
“그래도! 그래도! 경기장 바로 앞에 앉을 수 있는 게 어디야!”
“그래. 그래. 신나서 다행이다. 난 이제 먼저 들어가 볼게.”
“응! 내가 준 거는 대충 다 봤지? 잘해! 화이팅!!”
안 그래도 카인이 준 자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마르쿠스와 함께 카인에게 자료를 받고 강의 아닌 강의를 들었다.
대진표와 함께 각각 유념해야 할 인물에 대해서 받은 강의는 꽤 상세하고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은 로사나 다른 아카데미의 유망한 아이들과는 정반대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도움이 되었다.
상대를 모르고 싸우는 것과 알고 싸우는 것은 실로 큰 차이가 있기에 언제나 자신에게 큰 도움을 주는 카인이었다.
아이들과 떨어져서 마르쿠스와 함께 경기장의 대기실로 향했다. 32강이 되면 따로 방을 준다고 하지만, 지금은 한 대기실에 모두가 같이 모여 있었다.
거대한 대기실에 128명의 아이가 긴장을 하는 곳은 자칫하면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하… 조금 있으면 다 나가야 하는 건가…”
“네. 모두가 나가서 사열식과 개회식을 한 후에야 대회가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회식…이런 건 너무 나랑 안 맞아… 너도 그렇고 나도 오늘 시합은 좀 편하려나?”
“카인의 설명에 따르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마르쿠스와 소소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가 있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로사? 너랑 만나려면 결승이던데? 결승까지 올라올 거라 자신하는 건가 봐?”
“말 돌리려 하지 말고! 네가 놓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줄게.”
“아니… 쥐어 본 적도 없다니까.”
“넌 항상… 그런 식이지.”
무언가 더 이야기가 진행되려는 찰나에 사용인들이 대기자를 밖으로 이끌었다.
대기자들이 경기장으로 나오자 그들은 맞아주는 것은 거대한 환호였다. 경기장을 둘러서 수많은 사람이 들어차 있었다.
경기장의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부터 꽤 높은 곳까지 지어진 관중석은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와….”
수많은 사람이 들어차 있는 그 광경에, 그리고 그 많은 사람이 보내는 환호에 순간 압도된 대기자들이었다.
개중에는 나름 익숙해 보이는 아이들도 보였지만, 자연스러운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만 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의 환호는 그만큼 거대했고 큰 압박을 주었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마르쿠스를 툭 쳐주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겠는데? 상상 이상이다”
“네? 네…”
“괜찮아. 우리가 저 사람들이랑 싸우는 건 아니잖아.”
“넵!”
기합과 긴장이 된 상태로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골든리그가 시작되었다는 선포와 함께 터져 나온 환호는 마치 전장에서 진군할 때 내지르는 환성과도 같았다. 익숙한 듯 다른 듯한 그 느낌에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와… 진짜 엄청나다… 기분이 울렁거리는데?’
그리고 그런 거대한 환호와 함께 축제의 꽃인 무투대회. 그리고 그 무투대회에서도 꽃인 골든 리그가 개막을 알렸다.
*
“반드시 이기고 오겠습니다!”
저렇게 의욕과 힘에 찬 마르쿠스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눈에는 독기가 풍기는 모습은 자신도 흠칫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