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스승님께 정신도 몸도 만신창이가 되어서 돌아온 범을 반겨주는 것은 역시나 카인이었다.
“범… 아?”
“카인… 너도 들어왔구나.”
“라니우스 님께 다녀온 거야?”
“응… 하… 죽겠다.”
“라니우스 님도 참… 이제 갓 돌아왔는데.”
“아… 카인 나 말할 게 있어.”
“응? 뭔데 뭔데?”
“나 아마도… 올해를 끝으로 아카데미에서 나가게 될 것 같아.”
“어?! 무슨 말이야 그게! 용병단에서 자퇴하고 나오래?”
“아니… 그게 아니라 졸업 요건도 갖추기도 했고, [우시아]는 너희가 있으니 마음 편히 나올 수 있을 거 같아. 대신 이번 무투대회는 나갈 거고.”
“뭐 졸업 요건을 갖춰서 졸업한다면야…”
이내 수긍을 하던 카인은 곰곰이 되짚어 보다 새삼 깨닫고 놀라 소리쳤다.
“졸업 요건… 졸…업…? 범아!! 너 설마!!! 말도 안 돼!”
“헤헤헤헤.”
“진짜로 익스퍼트에 오른 거야?!! 벌써?? 14살인데??”
“응… 그렇게 되었어.”
“와… 진짜 범이 너는…”
한동안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는 카인이었다.
“너는 항상 앞서나가는구나 범아. 진짜 축하해!! 정말 대단하다.”
“스승님께서 잘 이끌어 주셔서 그렇지. 네 도움도 많이 받고 파울로 님도 많이 도와줬고. 이래저래 운이 좋았어.”
“아니! 진짜… 그래서 [우시아]에는 말할 거야?”
“흠… 잘 모르겠는데… 아마 하지 싶은데?”
“그럼 공표는?”
“아마… 그냥 무투대회에서 밝히지 싶어.”
“흠… 로사 공녀님은?”
“로사 공녀님?”
“둘이 싸운 거는 어떻게 된 거야. 미리 말 안 해주면 또 싸우는 거 아니야?”
“하! 아니야 걱정하지 마 끝냈어. 일단 씻고 나올게!”
이내 범이 씻으러 들어가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 듯 고민하는 카인이었다.
“흠… 조금 이상한 정보가 들어오긴 했는데… 그래도 로사 공녀 정도면 이리 당하지 않을 텐데… 진짜 모르는 건가… 범이한테는… 아직 뭐 확실한 것도 아니니.”
그렇게 결정을 내린 카인은, 새삼 자신의 친구가 너무 대단한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며 의욕을 불태웠다.
“나도… 나도 뒤처지면 안 되겠어. 더 더 연구에 집중해야겠어.”
그 열의에 로사 공녀에 대한 고민은 그새 타올라서 사라지고 말았다.
*
이튿날 수업이 모두 마치고 [우시아] 전원이 동아리 방에서 모임을 했다. 전원 참석을 필요로 하는 호출에 의아한 아이들이었다.
모든 아이가 들어오자, 입을 여는 범이었다.
“다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 그런데 중요한 안건이 있어서 불렀어.”
“안건이 뭔데? 그나저나 전체 호출을 하고 안건을 내는 게 처음인 거 알아? 동아리장님?”
“그러게…? 영 바빴어서. 안 그래도 그 때문도 있고. 그래서 안건은… 새로운 동아리 장의 선출.”
순간 조용해져 있던 분위기의 아이들이 이내 경악을 토하는 순간이었다. 량이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범? 왜 무슨 일인데 갑자기. 카인 넌 왜 가만히…?”
“에밋도 있고 너도 있고 나보다 훨씬 잘할 아이들이 있는데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것도 어색했거든.”
“아니… 그렇다고 갑자기 이렇게 통보하듯이 말하는 건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에밋이 약간의 실망과 분노를 드러내면서 입을 열자 다시금 조용해지는 아이들이었다.
“하하하. 고마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서, 내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아카데미를 더 이상 다니지 않을 것 같아서. 이 이유가 가장 커.”
그 말이 마치 폭탄이 터지는 충격이었던 듯, 소리 없는 경악이 찾아왔고, 에밋조차 멍해서 횡설수설하였다.
“아니… 왜? 마르쿠스 때문에 누가 압박을 했어? 아닌데 아카데미에 그렇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을 텐데… 그럼 다른 방법을 썼나…”
그 와중에 조용히 생각하고 있던 량이 입을 열었다.
“범아… 자퇴야. 졸업이야.”
량의 말에 모든 아이가 생각난 것이 있는 듯 범을 쳐다보았지만,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더 컸다.
“역시. 량이는 똑똑한 거 같아.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카데미에서 조기 졸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대표적인 것은 익스퍼트의 경지 또는 4서클 유저.
항상 조용히 에밋의 곁을 지키고 있는 샨이 놀라 범에게 물었다.
“지금… 지금… 네가 익스퍼트에 올랐다고… 말하는 거지…?”
그저 자신의 도를 들어 미약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자신의 검기를 시연해 주었다.
백색의 도신(刀身)에 하늘거리며 형체를 드러내는 초록빛의 검기, 유형화된 모습은 아니더라도 그 검기는 분명 익스퍼트의 상징.
“와…”
“하…”
“허…”
아이들 마다 저마다 다른 탄식이 터져 나왔다. 믿지 못할 사실이 드러나면서 탈력감과 함께 탄식만 내는 그런 상태였다.
걔 중에서 빨리 정신을 차린 량이 조차도, 축하를 표현하지 못했다.
“범아… 진짜 너는… 그냥 모든 재능이 도에 몰린 케이스인 건가…?”
“재능… 이라고 하기에는 좀 아닐걸…?”
“아니… 선천 재능이 아니라 그냥 무(武) 그 자체에 대한 재능이라고 해야하나… 진짜…”
그렇게 강제로 멍하고 탈력감이 드는 시간이 지나자 점차 아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축하를 건넸다.
하지만, 그중에 표정이 심각한 아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마르쿠스였다. 아이들이 모두 축하를 건네는 동안에도 표정이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와 별개로 회의는 그제야 진행이 되었다. 자신이 졸업하게 되면 공석이 되는 장을 반드시 뽑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범의 유훈(遺訓)도 있기에 더욱 중요했다. 동아리의 유훈. 그것은 동아리의 역사였다.
각 장이 유훈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변해왔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곧 그 동아리의 역사였고, 그렇기에 초대의 유훈은 가장 중요했다.
본래라면 초대의 동아리장이 그 동아리의 성격과 분위기를 잡아두고 나가기에 유훈이 잘 지켜졌지만, 자신은 동아리가 확장된 연도에 졸업하기에 다음 대의 장이 더욱 중요했다.
짧은 토론과 표결로 결국 2대의 장은 에밋이 되었다. 량이 고사한 탓에 쉽게 결정된 부분이었다.
“그래서. 네 유훈은 뭐야?”
“음… 유훈… 선천 재능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길에, 본질에 집중하라. 이 정도…?”
“너무 날 믿는 거 아니야?”
“너라면 잘하겠지라는 생각도 있고, 애초에 우리가 같이 만든 동아리잖아! 그리고! 그럼 널 믿지 않고 믿어? 축하해 동아리장!”
아이들의 축하를 모두 받고 나서 에밋이 처음 한 것은 범이 익스퍼트에 오른 사실을 함구하는 함구령을 내린 것이었다.
좋은 소식에 대한 함구령을 내린 것이 처음에는 의아한 아이들이었지만, 범이 원하는 것이라는 소리에 수긍하였다.
그리고 남은 것은 파티였다. 범과 에밋을 위한 파티가 열렸고, 비록 술은 없었지만, 술이 있는 것처럼 모두 정신을 놓고 놀았다.
*
파티 이후로도 일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침에 교양 수업을 듣고 점심부터 저녁까지 모두 수련, 수련, 수련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마르쿠스였다. 아침의 수업을 제외한다면 항상 자신의 옆에 붙어 있었다.
2일간을 심각한 표정을 종종 드러내던 마르쿠스가, 자신에게 굳은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범 님. 저는 자퇴하겠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마르쿠스의 말에 진심으로 놀랐다. 웬만하면, 아니 거의 대부분 귀족도 졸업하는 것이 아카데미였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고서는 아카데미를 포기하는 이는 없었다. 귀족에게는 아카데미가 최소의 자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아카데미를 지금 자퇴하겠다고 나서니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싶었다.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카데미를 떠나 범 님을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렸습니다.”
“도대체 왜? 네가 날 따라온다고 해서 불스용병단에서 받아주는 것도 아닌데?”
“저는 범의 검으로 살 것을 맹세했습니다. 그러니 따라가는 게 맞습니다.”
“아니, 아카데미 졸업 안 하면 곤란해지는 것 아니고?”
“능력이 없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면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서도 범 님을 따라가는 게 더 좋습니다.”
“하아… 잠시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이렇게 막중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진다.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거 맞고?”
“네. 그렇습니다.”
“하… 그래 알았어. 그래도 골드 리그에는 참가하고 자퇴하든 하자. 보여주고 자퇴해야지.”
“네! 범 님. 감사합니다!”
“아니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고.”
“네.”
전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표정의 마르쿠스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한숨과 웃음이 나왔다.
마르쿠스를 내려보내고선 언제나처럼 스승님과의 대련이 진행되었다.
“오늘은 영 집중을 못 하는구나? 마르쿠스 때문이더냐?”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신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충성을, 기한이 있다지만, 맹세한 사람이었다.
아카데미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서 흘려보낸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아는 자신이기에 더욱 걱정되었다.
“무엇이 그렇게도 걱정이 되는 것이야?”
“아카데미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아서요. 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는 걸 저 때문에 못 배울 거 같아서…”
“아카데미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여러 지식이요. 배울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은데…”
“아카데미를 나가서는 배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쉽지 않지 않을까요?”
“쉽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우지 못 하는 것은 아니지. 아카데미에서 정말로 많은 것을 배워 가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많지 않을까요? 묻기만 하면 알려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렇게 묻는 아이가 의외로 얼마 없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그리고 그렇게 묻는 아이는 나가서도 충분히 묻고 배운단다.”
순간 조금 멍한 기분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배움에 있어서 끝은 없다고 하지, 배울 사람은 그 장소가 어디이든 간에 배우고 나아간단다. 그것은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란다.”
그 스승님의 말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에서 느낌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전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그때, 자신에게 알려주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뒤늦게나마 아카데미에서 정신을 차려 훈련을 할 때, 용병이 되었을 때, 전장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도움을 주려는 이가 없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값싼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호의를 무시하니 갈등이 생기고, 갈등이 갈등을 불러왔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자신의 시야는 좁아져갔고 전장이 아니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없었다.
결국, 전생의 자신을 만든 것은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잠시의 상념 뒤에 눈을 뜨자 자신을 기다려주고 있는 스승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님. 감사해요. 정말로. 스승님 덕분에 항상 배우고 나아갈 수 있는 거 같아요.”
“크흠. 알면 되었고, 이제 정리가 된 듯하니 다시 도를 쥐거라.”
스승님이 사뭇 퉁명스럽게 말씀하셨지만, 목이 빨개진 것은 초인이라도 숨길 수 없었던 것 같다.
도를 쥐면서 스승님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이 되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은 조금 빡빡하게 하자꾸나. 요즘 [바람의 탑]도 슬슬 성장하는 것 같으니.”
그리고 부끄러운 스승님은 그 부끄러움을 해소하셨다. 제자에게 몹시 아픈 방향으로…
*
어느덧 무투대회가 1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변한 것이 의외로 많았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곁에 항상 붙어 있는 마르쿠스.
더 이상 대놓고 마르쿠스를 클라운이라 멸시하는 아이는 없었다. 뒤에서는 말이 많지만 적어도 앞에서는 없었다.
자신의 위상이 그만큼이나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범은 몰랐지만, 여러 귀족의 파티에서 범을 초청하고자 했었다.
그리고 마르쿠스와 범이 골든리그에 참여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색다른 충격에 놀란 학생들이었다.
관계가 이상하게 소원해진 로사 공녀마저 수업시간에 자신에게 한소리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소문에도 태연하기 그지없는 두 사람이고 [우시아] 회원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골든리그 예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