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44화 (44/217)

[44화]

불스용병단의 본거지이자 저택 뒤편에는 야트막한 야산이 있다. 훈련용으로 개조된 야산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향해서 열심히 호통을 치고 있는 씨어가 보였다.

“이런… 훈련을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손에는 파란색 열매가 들려 있었다. 지금까지 훈련은 해도 괜찮았다.

기본적인 수신호를 배우고 대형을 배우는 것은 자신도 꼭 필요한 것임을 느꼈다. 1번 대대의 1소대 사람들과 대형을 연습하고 있었다.

비록 수화를 틀리면 괴랄하게 날아오는 돌멩이에(피하지도 못했다) 열심히 맞고 대형이 틀리면 또 맞는 것의 반복이었지만, 그만큼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문제는, 대형 훈련이 끝나고 야산으로 오게 되면서 벌어졌다. 지금 범이 손에 들고 있는 파란 열매는 독이 든 열매였다.

“수호산맥에서 대표적으로 자라는 열매다! 어디에나 있는 열매지. 조금 독이 들어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훌륭한 식량이다!”

문제는 그 조금의 독이 기준이 다르다는 것. 그 조금의 독은 처음에는 현기증으로 시작해 두통을 유발하고 이내 실명 후 죽음에 이르는 독이었다.

“어… 세 알을 먹으면 사망에 이르는 게 확실한 데도… 조금의 독인가요?”

“세 알이나 먹을 수 있는데! 조금의 독이지. 그리고 지금 하는 훈련을 통해서 내성을 기르면 괜찮다!”

다만, 그 내성을 기르는데 두통이 함께하고 그 상태에서 처음에는 연공을 그 뒤에는 훈련하는 괴랄한 방법이었다.

“해독제는… 따로 먹지 않고 진행하나요?”

“해독제를 먹으면 무슨 의미가 있으려고! 해독제를 먹으면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도 못 해서 지금! 어떻게 수호산맥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이냐!”

“하…”

한숨과 함께 결국 입에 파란 열매를 집어넣었다.

‘어? 은근히… 맛있네?’

열매를 베어 물자, 과즙이 말 그대로 터져 나왔다. 달달하면서도 약간 신맛이 나는 과일의 과즙은 실로 훌륭했다.

“이제 연공에 들어가라! 지금!”

씨어의 말에 따라서 [바람의 탑]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마나를 그대로 흐르게 두면서 극기 심결을 묵상한다.

최근 들어서 공을 들이는 훈련 중에 하나였다. 마나는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고 그 속에서 극기 심결을 묵상하고 탐구하는 것.

그런데, 슬슬 머리가 띵한 느낌과 함께 힘이 풀리려 했다.

“집중해라! 한 알의 현기증과 두통은 그리 크지 않다. 흔들리지 마!”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자신을 다잡는다. 그대로 극기 심결을 묵상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넘어선다는 이름의 심결은 그 이름대로의 효과가 있었다. 다만, 어려운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었다.

자신을 보지 않는데 자신을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 그것이 쉽지 않았다. 잘 잡히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이번에 익스퍼트에 오르면서 그것이 지금 육체와 전생에 기억의 괴리였음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전생의 육체와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사고 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명확하게 느꼈다.

외부의 방해가 들어오자 더욱더 집중이 밀도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범을 보면서 씨어는 기가 막혀 했다.

‘하… 저걸 먹고 바로 저렇게 집중이 되는 거였나. 독한 건지… 저것도 재능인지…’

처음에는 모두가 피를 토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너무도 잘 적응을 하는 범을 보면서 미소가 나오는 씨어였다.

“역시. 막내는 굴려야 제맛이지. 이번 막내는 아주 아주… 잘 굴릴 수 있겠어.”

훈련 강도를 자신도 모르게 높여버린 범은 자신을, 현재의 자신을 명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전생의 기억과 지금의 나와 헷갈리고 있었구나. 전생의 기억이 나를 규정하고 있었어… 지금의 나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구나.’

소소한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 소소한 깨달음 하나가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던 범의 영육을 매끄럽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비로소 나를 받아들였어. 지금에야 익스퍼트에 오른 거구나.”

그날 범은 한 발 걸치고 있던 익스퍼트라는 경지에 비로소 온전히 진입할 수 있었다.

*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큰 아쉬움을 표하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데마르와 씨어였다.

데마르는 떠나는 자신에게 밀봉된 서류 뭉치를 건네주었다.

“대충의 이야기는 다 했지만, 절차라는 게 있으니 이걸 플레미에게 가져다주면 될 거다. 그리고… 량이를 잘 꼬셔 봐라.”

“네? 량이를요?”

“그래. 량이가 우리 용병단에 들어오게만 해주면…”

“데마르 님! 진짜 이러시면 곤란해요?”

“허허허 그만큼 너를 탐내는 거라고 생각해 주렴. 하… 너 없는 1년을 또 어찌 보내야 할지…”

데마르와 씨어의 아쉬움 넘치는 배웅을 받으면서 아카데미 학생들이 있는 숙소로 향하는 일행이었다.

“근데, 범아 왜 씨어 님이 저리 아쉬워하시는 거야?”

카인의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하얘진 채로 대답을 해주었다.

“하… 막내는 굴리는 맛인데 나는 막 굴려도 된다고 좋아하시다가… 내가 가니까… 굴릴 애가 사라진다고… 이젠… 자유다!”

“왜? 훈련이 힘들었어?”

“엌…. 음…. 훈련…. 독 먹고, 눈 가리고 뛰어다니고… 땅 파고… 하…”

혼이 나간 중얼거림에 말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카인이었다. 카인이 범을 위쪽으로 하고 있을 때 량이 에밋에게 다가가 물었다.

“에밋, 원하는 건 다 얻었어?”

“응? 음… 아직 그래도 돌파구는 보인 것 같기도 하고…”

“오? 대단한데? 역시 공녀님인가?”

“아냐. 아직 멀었어. 그리고 왜 수호산맥이 마법사의 무덤인지는 확실하게 알겠더라.”

“그 정도였어?”

“목책을 넘어서 신의 방벽을 넘는 순간, 마법을 만들 수가 없어. 너무도 복잡하게 돌아가는 격류를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

“흠… 그럼 아티팩트 쪽으로 돌파구를 본 건가?”

“…량이 너는… 진짜 그 괴짜 기질만 버리면 천재 같을 텐데…”

그렇게 각자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아카데미 학생들의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숙소의 정문에 플레미 선생님이 아이들을 마중하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얘들아! 다들 너무 수고했어! 잘했어! 범이는 너무너무 축하한다! 진짜 대단해”

플레미 선생님의 반응을 보자,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 것인지 조금이나마 실감이 나는 범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근데 선생님이 어떻게 저희를 마중까지…”

“아카데미 최초로! 재학생이! 그것도 용병대도 아니고 수호 용병단원이 되었는데! 당연히 나와야지!!”

플레미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창문으로 문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 이상의 환대와 축하 그리고 질시를 받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의외로 이게 기분이 좋단 말이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녔다. 포탈을 통해서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학장님이 나와 계셨다.

매년 아카데미에서 수련회를 출발할 때의 모습으로, 아카데미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여러 귀족도 자리에 있었다.

포탈을 넘어온 학생들은 당황하지도 않고 자리를 잡고 탑의 밖으로 나와 정렬했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아카데미 학장이 연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만들게 된 학생을 소개하겠습니다. 저희 수도 아카데미에서 수호 용병단원이 된 사례가 소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설마 설마 하던 마음이 점점 더 불안해진다.

‘설마… 설마…’

“하지만! 아직 졸업도 하지 않고, 재학생의 신분으로 수습도 아니고 정식 단원이 된 학생은 최초입니다!”

아무리 모로 들어도 저건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이 점점 피부로 다가왔다.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초로 15세의 어린 나이에 수호 용병단의 단원이 된 저희 학생을 소개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학장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의 앞에 길이 생겼다. 아이들이 각자 한 걸음씩 옮겨 자신의 앞에는 연단으로 향하는 길이 생겼다.

“범아! 뭐 해! 어서 나가야지!”

자신의 마음도 모른 채 그저 자랑스럽고 기쁜 얼굴로 말하는 카인의 모습을 한 번 보고 이내 걸음을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고 경험이었다. 살의가 뒤섞인 장소가 아닌 경탄과 질시가 뒤섞인 길.

혼란스러운 와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범아. 당당해라 넌 그 누구도 아닌 초인인 나 라니우스의 제자이다.

‘막둥이. 이제 넌 불스 수호 용병단의 정식 단원이 된 것이다. 그러니 그 누구 앞에서도 쉽게 고개 숙이지 말아라. 책임은 내가 진다.’

두 사람의 말이 떠오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펴지고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당당하게 연단을 향해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채를 띄는 이들, 찌푸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와는 관계없이 연단에 섰다. 모든 이가 내려다보이는 연단, 마치 자신이 가장 위인 것 같은 그 기분.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다시 알게 되었다.

‘역시… 난 용병이 좋아. 이렇게 누구 위에 있고 이런 것보다 훨씬.’

여러 소개와 박수를 끝으로 자신의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길고 긴 하루였다고 생각하면서.

*

연꽃이 음각된 여러 의자가 놓인 방에 한 여자 학생과 남자 학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고약하게 되었는데? 설마 수호 용병단원이 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괜찮아요.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왜지?”

“에밋 공녀의 슬하에 들어갈 가능성이 아예 사라진 것이니까요. 그러면 쫓아내면 돼요.”

“쫓아낸다고? 수호 용병단원이 된 학생을?”

“쫓아내는 게 꼭 나쁜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졸업을 종용하면 되죠. 그리고 아마 자기도 자퇴를 고려하고 있을 거예요.”

“하! 하여튼 어서 치워 버리자고. 진짜 머리가 아파. 로사 공녀는 좀 어때?”

“아마… 올해 안으로 동아리를 선택할 것 같아요.”

“후… 그래 두고 보자고. [고귀한 검]에 꼭 들어가야 해. 그나저나 공녀도 우리 모임에 대해서 알 텐데…”

“아마… 별생각이 없을 거예요. 다른 언질을 받은 것 같기도 하구요.”

“하… 진짜…”

그렇게 9층의 어느 한 화려한 방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대충 풀고 스승님이 계신 오두막으로 향했다. 누구보다 먼저 익스퍼트에 올랐음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 운용되는 [바람의 탑]은 한결 더 부드러워졌다. 그만큼 빠르게 오두막으로 향할 수 있었다.

“스승님!!”

“하하하하. 설마설마했는데! 익스퍼트가 되었구나! 대단하다!”

“스승님! 스승님 덕분에 익스퍼트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다. 내가 아니라 네가 이룬 경지란다. 정말 축하한다. 잠시 기다려 보거라.”

오두막에 들어갔다 나온 스승님의 손에는 도(刀)가 들려져 있었다. 검끝에서 손잡이까지 모두 새하얀 백색의 도였다.

“받거라. 이리 빠르게 주게 될지 몰랐지만, 네가 익스퍼트에 오른다면 주고자 했던 것이다.”

은빛이 아닌 진짜 새하얀색의 도. 도첨(刀尖: 칼의 끝)에서 도파(刀把: 칼의 손잡이)까지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도였다. 도파는 가죽으로 단단히 동여 매어져 있었다.

유백색의 아름다운 도신(刀身)은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았다.

“스승님… 너무 마음에 들어요…”

“하하하. 너무 백정의 도 같지 않고?”

“아니에요… 저에게 최고의 도에요. 감사합니다…”

“그럼. 익스퍼트의 경지에도 올랐고 새로운 친구도 받았으니 써봐야겠지?”

“네?”

“뭘 새삼스레. 준비하거라.”

“스승님… 저 이제… 온 지…”

“그럼. 스승이 먼저 간다?”

“스승님!!”

이내 라니우스는 대답을 그만하고 자신에게 달려들었다.

*

“흠… 아직은 어색하구나. 조금 더 가다듬어야겠어.”

공터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을 향해서 그저 무덤덤하게 말을 하는 스승님이었다. 반면에 자신은 그런 말을 들을 정신도 없었다.

“너무 쉬기만 하고 온 것 아니냐!”

“스승니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