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여러 복장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저택의 공터.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켜 놓은 사람이 있었다.
진행이 조금 되었는지, 사람들 이목의 중심인 사람 옆에 선 소년이 있었다.
“이름은 범. 나이는 15세! 아카데미 재학 중임에도 출중한 실력으로 저희 용병단에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모두 축하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입단식이었다.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기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얼굴과 이름은 몰라도 문양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블레어성의 수호 용병단에서는 모두 참석을 하였다.
그리고 수호 용병단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용병대의 문양도 더러 보였다.
범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각자 사람을 찾으며 이야기를 할 때, 한창 성주에게 인사를 하던 중 소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소란이 느껴지는 곳을 보니, 3번 대대장인 나수투스와 언쟁을 벌이고 있는 인물이 보였다.
‘저 문양이… 포효하는 늑대라면… 울프용병대! 수호 용병단을 제외하면 수위를 다투는 용병대인데…?’
“하… 또 시작인가요?”
“또 시작이라 하심은…?”
“흠… 이제 범 용병님도 불스용병단의 일원이니 아시게 되겠지만, 불스용병단과 울프 용병대는 사이가 썩 좋지 않답니다.”
“우리는 신경을 안 쓰는데, 그냥 쟤네가 엄청 우리를 싫어하는 거지. 누가 이유 없이 우릴 싫어하는데 친근하게 대할 이유 없잖아?”
이포쿠라 성주님의 말을 이어서 데마르 님이 첨언을 해주셨다.
“하하하… 그래도 그들도 입장이 그렇지 않습니까. 인원과 실적으로 보아 용병단이 되어도 부족하지 않을 이들인데…”
“부족하지 않다뿐이지 수호 용병단인 건 아니지요. 자신이 원하는 바가 있다면 쟁취를 하면 될 일. 저렇게 꿍시렁대는 건 쯧쯧.”
“수호 용병단이 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저희 블레어성의 수호 용병단은 더더욱 견고하지요.”
“하… 일단 소란이 더 커지기 전에 마무리하러 가시지요.”
얼떨결에 데마르와 성주를 따라서 소란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소란이 가까워질수록 서로 주고받는 소리가 명확해 졌다.
“그러니까! 너희가 울프가 아니라 하이에나 소리를 듣는 거다! 속 시원하게 대놓고 말할 것이지 쯧쯧.”
“누가 감히 우리 울프 용병대를 하이에나라고 말하는데! 오직 너희 불스 용병단 뿐이잖아!”
“뭐 그래서. 틀린 말 했어?”
두 사람의 사이로 자연스럽게 파고 들어가는 데마르와 그 뒤를 따르는 성주와 자신이었다.
‘데마르 님도 그냥 마냥 행정가는 아니신 것 같단 말이지…’
“나수투스 무슨 일이야. 좋은 날 왜 언성이 높아져.”
“데마르 님! 이 하이에나 새끼들이!”
“울프 용병대.”
“하여튼 이놈들이. 안 들릴 줄 아는지 조용한 소리로 ‘저런 핏덩이도 용병으로 받고 아주 용병단이라 잘 나셨어.’ 이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한마디 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좋은 인상으로 다가간 데마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리고 성주마저 약간이지만 낭패 어린 표정이었다.
굳은 얼굴로 데마르 님께서 울프 용병대의 용병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사실이냐? 네가 우리 불스용병단을 함부로 말한 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점점 상황이 커져만 가자 당황하는 용병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고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었다.
더군다나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3번 대대의 낯짝 앞에서 수그리고 싶지 않았던 용병은 결국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조금 과하게 말했다면 그럴 수 있지만 없는 사실을 지어낸 건 아니지 않습니까! 15살 핏덩이를 그것도 용병으로 실적도 전무하고 아카데미 학생을 수습도 아니고 거창하게 입단식까지 열어주고.”
용병의 말이 계속될수록 데마르 님의 표정은 점점 냉랭해져만 갔다. 그러다가 중간에 말을 자르고 물었다.
“그래서. 입단식은 항상 하던 행사일 뿐인데? 굳이 오지 않아도 되는데 와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이유는?”
“초대를 했으니 온 거 아닙니까!”
“아. 그래서 입단식을 축하해 달라고 보낸 초대장을 받고 와서 축하해준 게 아니라 우리 용병단을 모욕하고 신입을 내리 깠다는 거지?”
“뭐! 제가 큰 소리로 말한 것도 아니고! 불만도 이야기 못 합니까!”
이 광경을 지켜보는 성주는 점점 표정이 안 좋아져만 갔다. 그리고 주변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불스 용병단의 용병들도 점점 안색이 굳어만 갔다.
“하… 네가 대가리가 굳어서 돌격밖에 못 하는 건 알겠는데, 지금 네 상황이 이해가 안 가냐?”
주변을 그제야 둘러본 용병은 분위기가 살벌해져 있다는 것을 늦게, 아주 늦게 깨달았다.
처음에 성주의 곁에 있던 자신은 자리를 옮겨 량과 카인의 곁에 가서 서 있었다.
“지금 큰일이 일어난 거야? 그 정도로 큰일이야? 용병인데?”
생각보다 일이 커지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자신도, 비록 전쟁 용병이었지만, 용병 생활을 질리도록 해 보아서 이런 질투나 시기를 받는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되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귀족도 아니고 기사도 아니고 비교적 자유로운 용병 아닌가?
한바탕 욕하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술 한잔 먹고 풀거나 그냥 안 보는 것이 다였던 전생과 너무 다른 전개였다.
뇌가 순수한 질문에 량이는 한숨을 쉬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너는 수호 용병이라는 자부심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게다가 그 수호 용병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수호 용병단에 소속이면서… 아휴…”
“아니… 나도 자부심은 있는데, 저 용병 말대로 내가 핏덩이 인 건 맞지 않아?”
“하… 범아 잘 들어. 쉽게 설명하면 공작가의 내부의 일에 후작가의 가신이 와서 참 거지 같이 돌아간다고 말한 거랑 똑같아.”
비유를 시작으로 이어진 량이의 설명은 이러했다.
수호 용병은 수호 용병의 자부심이 뛰어나다.
수호 용병은 자신이 소속된 용병대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높다.
그중에서 수호 용병단의 단원이 되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자부심이다.
각 용병대 또는 용병단의 내부에 일에 대해서 타인이 간섭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더라도 용병대를 모욕하면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일이 종종 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정점에 있는 수호 용병단을 모욕한 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량이의 말이 끝나고 비로소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자, 데마르님의 말이 이어졌다.
“자. 저 아카데미 학생마저 알고 있는 사실을 왜 우리 대단하신 울프 용병대의 그것도 한 대대를 이끄는 용병이 모르는 걸까?”
“아니… 그게 그냥 혼자 조용히 혼잣말로 말한 건데…”
비로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나서야 기가 죽어 버린 용병이었다.
“아니, 술집에서 그랬다면 뭐 그냥 싸우고 술 한잔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굳이 우리 용병단에 와서 한 용기는 무슨 용기이려나.”
“죄… 죄송합니다!”
“됐고. 너네 대장한테 정식으로 항의할 테니까 그리 알아. 그나마 입단식이라 나름 조용히 넘어가 주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꺼져.”
그렇게 폭풍이 몰아치기 전 고요하듯 고요하던 곳이 순식간에 훈풍이 다시 불어왔다. 몇 명의 퇴장으로 인해서.
*
“야! 이 미친 돌대가리 새끼야! 내가 그냥 얌전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다가 오라고 했냐 안 했냐!”
넓은 방 안 고급스러운 개인용 탁자에 뒤에 앉아 있는 인물이 그 앞에서 머리를 박고 있는 인물에게 쌍욕과 함께 물건을 내던지고 있었다.
조금은 열이 가신 것처럼 보이자 뒤에 시립해 있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대장님. 이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 저 새끼 때문에 지금 무슨 양보를 해줘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무슨!”
“비록 돌대가리인 건 맞지만, 꼭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후… 그래 한 번 이야기해 봐.”
시립해 있던 여성에게 꽤 신뢰가 두터웠는지 화를 가라앉히고 말을 꺼내는 남자였다.
“해석의 여지가 많고 보여주기식의 규례이긴 하지만 엄연히 수호 용병단으로 지켜야 할 규례가 있지 않습니까?”
“그 웃기지도 않은 수호 용병단 3계명?”
“예. 그 규례 말입니다.
실제로 수호 용병단이 지켜야 할 규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1. 수호 용병단의 단원은 그 어느 수호 용병보다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2. 수호 용병단의 단원은 수호 용병단의 단원으로서 그 능력과 품위를 유지한다.
3. 수호 용병단의 단원은 수호성의 대표라는 자각을 가지고 몸가짐을 조심한다.
이내 그 규례를 다 떠올린 남자는 다시 시립해 있던 여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 2번을 보면 수호 용병단의 단원은 능력과 품위를 유지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능력의 부분을 보면 파고들 여지가 있습니다.”
“흠… 계속해 봐.”
“돌대가리가 말한 대로 15세 그것도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과연 그 핏덩이가 용병으로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요?”
“오? 그런데?”
“그 부분을 말하는 겁니다. 수호 용병단에 위치에 대한 열망이 큰 용병으로 말실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능력에 우려가 되어서 나온 말이다. 비록 좋아하진 않더라도 수호 용병단인 불스용병단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이렇게 말입니다.”
“호오? 괜찮은데? 그런데 좀 부족하지 않아?”
“조건을 달면 됩니다.”
“조건?”
“예, 대충 2년 안으로 수호 용병단의 단원으로 실적이 없으면 그 용병을 퇴출하고 이 사건을 없던 일로 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우리한테 좋은 점은? 없던 일로 하는 것 말고도.”
“울프 용병대는 수호 용병단에 대해서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용병단은 아니지만 용병단이 잘못된 길을 걸으려 하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선다.”
“하하하하하하!!! 역시! 아주 좋아! 이래서 내가 너를 좋아한다니까. 좋다 좋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빌미로 삼은 계략이 짜여져 갔고 범 그 자신은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
범의 입단식이 있고 난 후 하루가 지났다. 데마르 님은 정식으로 울프 용병대에 항의했고 성주를 통해서 날아온 답신을 보며 기가 막혀라 했다.
“하… 나 이 하이에나 새끼들이… 짱구를 굴렸는데…”
“외통수네요?”
“야!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아니. 저희한테 외통수가 아니라 울프 용병대에요.”
“어? 흠… 한번 말해 보거라.”
“이게… 진짜 정보가 없으면 이런 무식한 외통수를 스스로 걸 수도 있구나 싶은 사례구나…”
혼자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량이를 보며 데마르는 포기했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뭘 해줄꼬, 뭘 원하니…”
“에이! 데마르 님도 참. 제가 굳이 뭘 원해서 꼭 이러는 것 같잖아요~ 이미 주신 것도 많은데.”
“하… 하… 량이… 너 진짜 우리 용병단 오지 않으련?”
“에이. 에이 저는 아직 어리고 순수해서 잘 몰라요.”
“하… 그래 뭘 원하니.”
“아니… 데마르 님께서 꼭 주시고 싶다면… 저희 스승님께서 마수의 가죽이나 뭐 이런 시체의 부산물을…”
“그건!”
“아주 조오금. 조금만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하신 것 같은데…”
“하… 혈액 100ml 정도 챙겨 주마. 악마 같은 자식…”
“헷! 그럼 왜 외통순지 말씀드려 보자면요. 단순해요.”
“단순해?”
“네! 지금 울프용병대가 이렇게 한 건 범이가 결국 2년 내에도 적응을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거잖아요. 근데 부발 님이나 씨어 님이 과연 그런 학생을 뽑으셨을까요?’
“하!”
“정작 2년이 지나서 잘 적응한 모습을 보이면… 불스용병단은 안목이 뛰어나고 진취적인 용병단이 되는 거고 울프 용병대는 열등감에 쩌든 용병대가 되는 거죠. 약간의 양념은 필요하지만요.”
“하하하하하! 량이! 우리 이쁜 량이! 내가 정말! 그런데 범이가 잘할 수 있을까? 아직 너무 어린데…”
“하하하하! 데마르 님. 아직 데마르 님도 범이를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응?”
“범이… 쟤가 좀 허당에 멍하고 정신머리 없어 보여도… 무(武)에 있어서는 괴물이에요…”
“범… 이가?”
그렇게 꾸민 계략을 한순간에 무용지물이자 역으로 자신들을 찌르는 비수로 만들어 버린 량이.
양쪽의 주제로 나오는 범이는 그 시각 씨어에게 고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것도 못 해서 지금! 어떻게 수호산맥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