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식당에 도착하니 3번 대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용병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처음 온 아이들이 갓 입대한 신병들처럼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범이구나!”
곧이어 자신이 등장하자 용병들이 모두 반겨주었다.
“너무 애들 괴롭히지 말아요. 이봐요 이렇게 얼어있는 거! 나이 먹고 뭐 하는 거예요!”
“오오오오 마치 자기는 그런 적 없는 것처럼 말한다.?”
1번 대대의 부대장이 자신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호 용병단인 불스 용병단은 실상 특이한 용병단 중 하나였다.
각자 하나의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 다른 용병단과 달리, 전천후 만능 같은 용병단이었다. 그렇기에 수는 다른 용병단에 비해 적지만, 그 순위가 수위를 다투는 용병단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수호산맥에서 생존에 관하여서는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는 이가 눈앞의 1번 대대 부대장이었다.
“죄송합니다. 마음껏 가지고 노세요.”
순식간에 사과하는 자신을 보면서 흑역사를 들어서 알고 있는 친구들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범의 흑역사를 만들어 준 것도 1번 대대 부대장이었지만, 그를 팀장으로 내정한 것도 1번 대대 부대장이었다.
1번 대대가 부발의 직속이니만큼 1소대는 부발의 친위대의 성격이 강했다.
1소대가 1번 대대의 전투를 책임진다면 2소대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보조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1번 대대의 부대장이 범에게 기대하는 모습은 1번 대대의 수색이었다.
‘진짜… 그때는… 하…’
그 사건은 2학년 당시 자신이 홀로 수호 용병단에 차출이 되었을 때 일어났다.
*
2학년이 되어서 수련회로 출발하자, 포탈을 나와서 자연스럽게 숙소로 향하고 있던 자신을 멈추게 한 것은 플레미 선생님이었다.
“범아. 잠시 와 볼래?”
선생님을 따라서 들어간 방에서 선생님께서 뜻밖의 말을 전해주었다.
“불스 수호 용병단 기억하니?”
“그럼요. 어떻게 잊어요.”
웃으면서 대답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플레미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불스용병단의 단장님이신 부발님께서, 이번 수련회 기간에 네가 수호 용병단에서 경험을 쌓았으면 어떠냐 하시더라구 그래서…”
플레미 선생님의 이어지는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용병의 꿈이 수호 용병이 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호 용병의 위상은 높았다.
하지만, 그만큼 수호 용병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수호성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적어도 실버등급이 되어야 지원이라도 할 수 있었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은연중 용병의 세계에서도 계급이 있었다. 자신은 그중에서 가장 밑바닥의 전쟁 용병이었다.
그야말로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일반 용병이 있었고 가장 위에 존재하는 것이 수호 용병이었다.
그들의 능력이 뛰어나기에,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제약을 걸고 있는 존재들. 그런 이들이 수호 용병이었다.
그러한 수호 용병들 중에서도 가장 위에 존재하는 것이 수호 용병단이었다. 그중 하나인 불스용병단을 겪어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온몸을 부르르 떨며 당황해하는 모습을 오해한 플레미 선생님께서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네가 산맥으로 들어가거나 임무에 포함되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네가 잘 적응하면 앞으로 우리 학생이 더 들어갈 수도 있을 거 라고 하셔서…”
선생님께서 직접 나서서 말을 해준 이유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카인에게서, 스승님에게서 이런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을 배운 바가 있었다.
“너무 좋은 기회인 건 알겠지만…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거기에 수련회 점수도 있고…”
“수련회 점수는 생각하지도 마! 당연히 만점이지!”
“정말이요?”
“그럼! 거기에 학교 점수에 가산점도 있을 거란다.”
“점수에 가산점까지 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해주셔도 되는 건가요?”
“범이가 잘해서 앞으로 아카데미 학생들이 더 많이 갈 수 있게 된다면 당연히 주는 게 맞지!”
“그럼… 한 번 해볼게요!”
덕분에 수련회 점수도 만점으로 받고 성적에서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만족감에 더욱 기뻐졌다.
‘어린아이 흉내를 내는 것도 힘든데… 머리 쓰는 건 더 힘든 것 같아… 카인은 어떻게 이런 걸 잘하는 건지…’
“그럼. 이리 따라오렴. 안 그래도 용병단에서 나오신 분이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
선생님을 따라서 숙소 앞으로 향하자 불스용병단의 표식을 달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씨어 님. 이 학생이 범입니다.”
조금은 꼬롬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성을 자신도 살피듯이 쳐다보았다.
그런 자신을 보고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어 중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마치는 날에 맞추어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와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몸을 돌려 나가는 남성의 뒤를 따라 급히 인사하고 나섰다.
급히 뛰어나가는 씨어의 발걸음을 맞추기 위해서 거의 뛰다시피 해야 했다.
수호 용병단이 북문에 있어서 혹여나 놓칠까 봐 다른 것을 볼 새도 없이 씨어를 따라가던 범이는 어느새 씨어의 뒤에 부딪혔다.
“도대체 단장님은. 이런 꼬마를 데리고 뭘 하겠다는 건지… 에휴.”
삐뚜름하게 자신을 보고 있는 씨어의 뒤로 불스용병단의 문양이 보이는 거대한 철문이 보였다.
건물 하나만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비웃는 것만 같은 웅장한 저택이 눈앞에 보였다.
“우와…”
중심으로 저택의 본채가 보이고 수련장이 보이는 거대한 저택은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이었다.
씨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따라서 빠르게 뒤를 다시 쫓아가기 시작했다.
중앙에 보이던 가장 큰 건물에 들어가자 용병사무소에서 보던 접수대가 보였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범이구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부발이 걸어 내려오면서 자신을 반겨주었다.
“부발 님!! 엌.”
격한 환영에 자신도 모르는 비명이 새어나온 범이었다.
“그래! 잘 왔다! 작년에 싹수가 보이길래 한 번 데리고나 와 보자 싶었지! 씨어가 잘 데리고 와주던?”
“네. 잘 따라왔어요. 안 그래도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하하하. 퍽이나 저놈이 잘 데리고 왔을까. 안 그래도 데마르가 우리도 좀 키워서 쓸 필요가 있다고 해서 널 시범적으로 부른 거니 너무 마음 쓰지 말거라.”
“네…”
어느새 씨어는 사라지고 말았고, 부발의 옆에서 사용인이 걸어 나왔다.
“우선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대충 설명 듣고 나오거라. 너도 왔으니 우리 애들도 봐야지. 그럼.”
“저를 따라와 주세요 범 님.”
사용인을 따라간 곳은 2층의 숙소였다. 2층은 사용인들과 수습이 모두 있는 숙소라고 알려주었다.
기본적인 제반 사항을 듣고 짐을 풀고 나서 사용인에게 들은 식당으로 향했다.
1층의 뒤편에 있는 식당은 테이블이 여러 개 있는 꽤나 넓은 공간이었다.
모든 테이블이 하나로 모여 있는 식당. 그곳에 현역 불스용병단원이 모여 있었다.
테이블 중앙에 불스가 앉아 있었고 그 좌우에 데마르와 놀랍게도 씨어가 앉아 있었다.
군데군데 빈 자리가 있고 사각 테이블에서 오른편은 모두 비어있었지만, 그 모두가 자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되었다.
“자! 우리 신입 후보생 범이다! 모두 박수!”
불스의 말에 환호를 내지르며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씨어처럼 그저 바라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최대한 주눅 들지 않으려 배에 힘을 주고는 외쳤다.
“안녕하세요! 신입 후보! 아카데미 2학년 재학 중인 범!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모습에 박수를 치는 이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씨어는 그 가운데 묵묵부답이었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씨어가 입을 열었다.
“단장. 난 이거 반대요. 저 꼬맹이를 어디에 가져다 쓰려고.”
그 말을 받은 것은 불스가 아니라 데마르였다.
“씨어. 우리 용병단 특성상 어릴 때부터 키우는 게 좋다니까. 내가 설명했잖아!”
“아니. 그냥 용병하던 애들을 데리고 와도 죽는 마당에 저런 꼬꼬마를 데려다가 어쩌자는 건데.”
이내 두 사람이 설전을 벌이게 되고 여기저기에서 말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조용히 있던 부발이 손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내리쳤다.
“쿵!”
가벼운 손짓과는 다른 무거운 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그럼. 그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볼까?”
과열되고 있던 분위기와는 전혀 동떨어진 미소를 짓고 자신에게 물어보는 부발의 질문에 정신이 번쩍 든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비록 지금은 어리고 꼬마이지만!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꼭 불스용병단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자신의 말에 대답한 것은 씨어였다.
“뭘 보고?”
“무엇이든 시켜만 주시면! 열심히 그리고 꼭 해내겠습니다!”
“무엇이든?”
“네! 할 수 있습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는 모습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씨어가 부발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단장. 그럼 우리 그거 합시다. 통과하면 나도 인정할게.”
“씨어! 미쳤어?!”
씨어의 말에 데마르가 화들짝 놀라서 약간 화를 내면서 반문을 했다.
“아니. 아니. 다 하겠다는 게 아니고 그냥 입구까지만. 그것만 해도 인정할게. 그건 할 수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냥 받기 싫으면 싫다고 말로 해!”
“아냐 아냐… 흠… 입구까지라 이거지. 네가 데려갈 거고?”
“그럼. 내가 데려가야지. 혹시 모르는데.”
셋이 이야기를 이어가다 말고 부발이 다시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엄청 힘들고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시험이 있다. 한 번 해볼 테냐?”
진지한 부발의 말이었지만, 내심 죽지 않을, 아니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먹자!! 출발은 내일 아침이니까 알아 두고!”
그리고 용병들의 술판이 벌어졌다. 자신의 전생과 같은 용병들의 술판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술판에 고기만 있다면 진수성찬이었던 자신의 전생과 달리 고기가 넘쳐나고 다양한 술이 넘치는 술판이었다.
*
다음 날 아침 해가 막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불스용병단의 정문에 몇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경나온 용병들과 씨어 그리고 자신이었다. 불러서 나온 정문에 서있던 자신에게 씨어가 배낭 하나를 던져주었다.
“받아라.”
생각보다 무게가 그리 나가지 않는 배낭에는 정말 별거 없었다. 배낭이라기보다 힙색에 가까운 모양의 것이었다.
“네가 앞으로 2주 동안 목숨처럼 들고 다녀야 할 거다. 간다.”
구경나온 용병들의 환호를 들으면서 두 사람은 북문으로 향했다. 씨어가 있으니 북문을 나가기도 너무나 쉬웠다.
얼마나 걸었을까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분명 해가 떠올랐음에도 어둑어둑한 숲에 들어왔다.
말없이 걸어가던 두 사람이었지만, 먼저 입을 열었다.
“씨어 님. 제가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저도 인정해주세요.”
말이 뜬금없었음일까, 패기가 가득해 보이는 말에 대뜸 씨어는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했다.
“네가 통과하기만 해도 인정해주마.”
어둑어둑한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수호산맥의 초입에 완연하게 들어온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평화로운 자연이 아닌 어딘가 모르게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 악의 등등의 것이 느껴지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었다.
“감이 썩 쓰레기는 아닌가 보다. 도착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약간의 평지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동굴이 보였다.
“시험은 간단하다. 그냥 여기서 2주를 버티면 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시험에 말했다.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나는 어떤 상황이 와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살아서 보자.”
“아! 그리고 함부로 멀리 돌아다니지는 말도록. 여기는 초입이라 그나마 괜찮지만 잘못 들어가면 순식간이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빠르게 사라지는 씨어였다. 그렇게 초입이라지만, 수호산맥 안에서 혼자가 되었다.
상황을 자각하자, 다시 멘탈이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수호산맥에. 혼자. 남았다.
그것이 주는 정신적인 압박감은 실로 상상 이상이었다.
“하… 씨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