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방학이 되어서 카인의 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던 범은 갑작스러운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블레어 왕국의 백작에게서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
평민의 연고도 없는 범은 느닷없는 귀족, 그것도 백작의 초청에 놀랐지만, 이름을 보고 난 후에는 기쁘고 기대가 되었다.
역수로 쥐어진 검을 가문의 문양으로 사용하는 귀족 가문. 5대에 걸쳐 근위기사단의 단장을 역임한 가문
주인을 선택하는 검가(劍家)라는 이명을 지닌 베라타 가문의 표식이었다. 마르쿠스의 아버지로부터의 초대였다.
왕국으로 향하는 대로에, 각각의 위세와 전통에 따라서 각 귀족의 저택들이 들어서 있다. 그중 가장 왕궁과 가까운 저택.
왕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저택. 그 저택이 바로 베라타 가문의 저택이었다.
베라타 가문은 특이한 귀족 가문 중 하나였다. 영지를 받지 않는 귀족. 영지가 없다면 중앙 정치에 발을 담가야 귀족으로서의 힘이 생긴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귀족 가문. 그럼에도 영향력이 큰 가문.
이는 5대를 이어 온 근위기사단의 단장을 역임하기도 한 그 역사에서 나오는 영향력이었다.
그런 만큼 왕이 하사한 저택은 여타 후작 가문의 저택과 비교해도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베라타 가문에서 보내 준 마차를 타고 문을 지나 저택의 앞에 당도하자 마르쿠스의 가족이 보였다.
기사라기보다 행정가가 더 어울려 보이는 남성, 그 옆에 몹시 못마땅한 표정의 여성, 대놓고 불쾌해하는 표정의 어린아이와 함께 마르쿠스가 서 있었다.
범이 이내 마차에서 내리자 마르쿠스가 다가왔다. 다가오는 마르쿠스의 얼굴은 몹시도 밝은 표정이었다.
“범 님! 범 님!… 저희 아버님이세요.”
안 그래도 편지를 받자마자 카인이 옆에서 열심히 가르쳐주고 배운 대로 행동했다.
“베라타 가문의 가주이신 코르누 백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범이라고 합니다.”
의외의 모습이었는지 실망하는 여성과 만족해하는 코르누 백작이었다.
“하하하하. 네가 범이구나. 정말 고맙다. 네 덕에 내 아들이 이제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더구나. 인사하거라 내 안사람과 둘째 아들이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베라타 백작 부인.”
“그래요.”
“안녕.”
무성의하기 그지없는 인사였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의 입장에서 자신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룰루스!”
백작의 나직한 음성에 그제야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하는 둘째 아들이었다.
“자! 들어가도록 하자. 너를 위해 정찬이 준비했음이니.”
백작을 따라 들어간 저택에서 식사하며 자신에게 묻는 질문을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식사를 마쳐갈 무렵 백작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앞으로라 하시면…?”
“미래를 말하는 거란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를.”
“아! 그런 것이라면, 수호산맥에 가서 용병단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흐음… 귀족이 될 생각은 없고?”
“전혀 없습니다. 제 목표는 상위 세계입니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던 백작은 말을 이었다.
“그렇구나… 혹시 우리 가문을 무엇이라 부르는 줄 아느냐?”
“신력의 가문, 역대 근위기사단의 장을 맡은 가문, 왕실의 수호 가문.”
“그리고?”
“주인을 선택하는 검.”
“그래. 우리 가문은 검이란다. 주인을 선택하는. 그런데 이제야 피어나고 있는 장자가 주인을 선택하겠다고 하니 골치가 아프구나…”
“설… 설마…?”
“후… 그래. 너를 주인으로 섬기고 싶다 하더구나. 가문을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하지도 못한 말에 벙찌게 되었다. 평민도 아니고 고아인 자신을 백작 가문의 장자가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하다니.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머리가 새하얗게 되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백작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하는데, 상위 세계가 진정 목표라면 그를 계약으로 증명하거라. 그래야 나도 편히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어지는 말에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무엇을 보고 이 백작 가문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그를… 계약으로 남기는 것이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저의 무엇을 보고…”
혼이 빠진 채로 질문을 하는 자신을 보며 웃음을 짓는 백작이었다.
“여기저기 소식을 들을 곳은 많지. 네가 간다는 용병단이 불스용병단이겠지? 졸업하고 수습을 거친 뒤에는 팀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고도 하고.”
“그걸… 그걸 어떻게…?”
“허허허 이래 보여도 꽤 유망한 백작이란다. 너를 따라가는 것이 결코 나의 아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길인 것 같으니 하는 말이다. 네가 귀족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면 달라질 일이지만.”
정신없이 몰아치는 폭풍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마르쿠스를 바라보았다.
“마르쿠스. 진짜 괜찮겠어? 정말로? 나 고아에 아무것도 없는데?”
“범 님께서 제 인생을 구원해 주시는 그 순간, 그때 범 님을 섬기기로 각오했습니다. 부디 부족하지만, 받아주십시오.”
의기소침하고 어리바리하던, 주눅이 잔뜩 들어있는 마르쿠스는 도대체 어디 갔는지, 눈앞에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의 주인을 구하는 검이었다.
그날 한 자루의 검은 주인을 찾았다.
*
어느새 시간이 흘러 방학이 끝났다. 이제는 더 어색하지 않은 포탈을 지나 블레어 수호성에 도착을 했다.
어리바리하던 1학년의 시절과는 다르게 이내 아이들을 데리고 불스용병단의 본거지로 향했다.
용병단은 수호성 북문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수련실과 숙소, 사무실이 모두 있는 거대한 장소였다.
사무소에 들어가자 이내 여러 용병이 자신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자신들이 온 것을 신고하기 위해서 찾은 단장실.
“안녕하세요!”
“오오오!!! 량이다!! 량아!!!”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것만 같은 반응을 하는 이는 데마르였다. 눈 밑이 검은 데마르는 자신을 지나쳐 량을 향해 달려나갔다.
“왜 이리 늦게 왔어! 얼마나 널 기다렸는데! 수련회 기간은 왜 이리 짧은 거니…!”
2학년일 때 부발 님의 요청에 따라서 자신과 그 친구들은 용병단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량이를 짜게 보던 데마르였지만, 2학년 수련회가 끝나갈 당시 데마르는 온갖 것으로 량이를 꼬시고 싶어 했다.
용병단의 행정을 홀로 책임지던 데마르는 량이 행정을 도와주는 것에서 너무나 행복함을 느꼈다고 말했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듯한 데마르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부발 님은… 또 나가셨나 봐요?”
“하… 부발 님은 무슨 얼어 죽을… 단장이라는 놈이 매번 나가 있으면! 내가! 어!”
“하하하하…”
이 광경이 익숙한 아이들은 그저 웃고 있었지만, 이를 처음 보는 아이 네 명은 웃지도 못하고 얼어있었다.
그중 필로스는 유독 얼어있었는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라? 넌 에푸시오 아들내미 아니었나? 왜 이리로 왔데?”
“안녕하십니까! 아카데미 6학년에 재학 중인 필로스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각이 잡힌 필로스의 인사에 덩달아 다른 아이들도 각을 잡고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애들이 좀 늘었다?”
“네. 저희 동아리에 들어온 아이들이 셋이랑 필로스는 꼭 와보고 싶다고 해서 총 4명이 늘었어요!”
“그래? 그럼! 그럼? 다들 무사에 마법사는 아니겠지?”
“어… 부발 님께 인적사항을 다 보내드렸는데…”
“이 단장…. 하…. 네가 소개 좀 해줘야겠구나.”
“네. 필로스는 아실 것 같구. 마르쿠스는 무사 반이에요. 그리고 두 아이는 연금술과 공학이긴 한데… 행정도 잘해요.”
“오…. 오…!!! 범아! 잘했다!!”
데마르가 실로 기뻐하고 있을 무렵에 단장실의 문이 열렸다.
“데마르! 용병단의 부단장이 그렇게 가벼우면 어떻게!”
부발이 들어오며 데마르에게 한 마디 일침을 건넸다. 그 말을 들은 데마르는 이내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단장님! 아이들의 인적사항을 저는 왜 못 본 걸까요? 단장님은 지금 서류를 쌓아두고 어딜 다녀오신 걸까요? 체통을 지키라고 하셨어요? 제가…! 제가…! 단장님 안 계시는…”
“에이. 뭘 또 그렇게 열을 내고 그래. 그나저나 이 아이들이구나.”
“안녕하세요 부발 님!”
“그래. 이번에는 범이 넌 따로 가는 건 알고 있지?”
“네! 기대하고 있어요!”
“글쎄… 죽지만 말고 돌아와라.”
“설마요~ 그럼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아! 다른 애들은 5번 대가 맡아 줄 거다. 순찰도는 애들이 5번대라서 그리 가면 될 거다.”
“네!”
“그나저나 애들은 어떻게 구워삶아 놓은 거냐. 네가 온다고 오늘 환영회 할 거라고 난리가 났더구먼.”
“하하하. 절 좋게 봐주시는 거죠?”
“그래. 그럼 이따가 식당에서 보자. 나가서 정리하고 있어라.”
“넵!”
아이들을 인솔해서 나오자, 그제야 편히 숨을 쉬는 아이들이었다.
“범 님. 대단하세요! 어떻게 부발 님과 그리 자유롭게!”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르쿠스를 보면서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더 심해진 것 같은데….’
“범이 진짜 특이한 거야. 초인분 앞에서 저렇게 평상시처럼 할 수 있다는 거.”
카인이 자신을 대신해서 자랑을 늘어놓았다. 간단한 규칙들을 설명해주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숙소로 갔다.
용병의 숙소라고 생각하면 허름하리라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굉장히 넓고 깨끗한 2인 1실의 숙소가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사용인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기에 따로 해야 할 일도 없었다. 연신 탄성을 하며 구경을 하는 아이들을 두고 필로스가 다가왔다.
“범 님. 범 님께서는 이번에 따로 움직이십니까?”
“어? 아… 응 그럴 거 같아.”
“어디로…”
“아… 수호산맥 내부로 들어갈 것 같아. 이번 연도에 신고식이야…”
“벌써… 말이십니까? 아직 학생인데도 가능합니까?”
“뭐… 나도 그럴 줄 몰랐는데, 되더라고…”
“역시… 대단하십니다. 불스 용병단의 신고식은 어떤 건지 궁금하네요.”
“너희 용병단 신고식은 뭔지 알고?”
“아니요… 아버지나 다른 분들에게 여쭤봐도…”
“에휴… 뭐 큰일이야 있겠어? 하여간, 애들 좀 잘 부탁해. 특히 마르쿠스 좀 잘 챙겨줘.”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그럼 애들한테 정리 다 하고 구경 다 하면, 저녁 시간에 맞춰서 식당으로 오라고 해주고. 난 먼저 들어갈게!”
필로스와 아이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아이들의 숙소와 조금 떨어진 곳에는 자신의 숙소가 있었다.
불스용병단은 5개의 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1번대는 단장 직속의 대대이고 2번대는 부단장 직속의 대대, 그리고 3~5번 대대는 각각 특징이 다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1개의 대대 안에는 3개의 소대가 있었는데 그를 팀이라 불렀다. 대부분 5-6으로 이루어지는 게 일반적이기도 했다.
범의 소속은 현재 1대대 3팀의 임시 팀원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2번의 신고식을 무사히 마쳐야만 정식 단원이 될 수 있었기에, 범은 아직 한 가지 신고식이 남아있었다.
첫 신고식은 범이 처음 수련회에 왔을 당시에 보았던 순찰에서 살아남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신고식은 알 수 없었다.
다만, 20개의 수호 용병단이 모두가 각기 다른 신고식의 절차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다 함구하고 있었다.
어떤 신고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수호산맥의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니만큼 만전의 준비를 해야 했다.
숙소에 들어온 후 아공간을 열어서 준비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량이 덕분에 받아온 포션과 스승님께서 주신 비상식량과 함께 여러 가지 물품을 확인하고 아공간에 집어넣자, 타이밍 좋게도 카인이 들어왔다.
“범아! 역시! 여기에 와 있었구나! 왜 혼자 와 있어.~”
“아. 신고식 준비도 할 겸해서 잠시 숙소에 들렸어.”
“신고식이 하나같이 다 괴랄하거나 힘들다고 하던데… 죽는 사람도 더러 있고 불구가 되는 사람도 있고… 꼭 지금 가야 해? 나중에 가도 되잖아.”
“알지. 근데, 부발 님도 그렇고 스승님께서도 그렇고 지금 가도 괜찮다고 해주셔서. 조금 위험할 수 있지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
“라니우스 님께서도? 라니우스 님께서는 신고식이 뭔 줄 아시는 거야?”
“부발 님께 들었다고 하시더라고. 지금 내 수준이면 괜찮을 거 같다고 하셔서.”
“후우…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정말 다쳐서 오면 안 된다?”
“누가 보면 내가 어디 갔다 하면 매번 다치고 사고 치고 오는 줄 알겠다.”
“다친 적은 없지만… 사고는 많이 치잖아!”
“어? 나가야겠네, 어서 나가자!”
카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나가는 범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는 카인이었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