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그래서 말인데… 목표를 바꾸자.”
“네?”
“목표를 본선 진출이 아니라 16강까지 올라가는 거로 하자고.”
“제… 제가 어떻게.”
“아니야. 16강은 충분히 올라갈 수 있어. 본선이라 해봐야 128명 안에 드는 건데, 16강에는 나가 줘야 더 효과가 클 거야.”
“아니 저도 그건 알지만.”
“진짜라니까. 운만 좋으면 8강도 충분해. 넌 네 실력을 너무 몰라.”
“허허허. 내 제자의 말이 맞다. 넌 충분히 강해졌어.”
“스승님!”
“라니우스 님!”
“그래. 마르쿠스 때문에 말이 많은가 보구나?”
역시 스승님이었다. 짧게 들으신 것만으로도 대충의 상황을 파악하신 것 같았다.
“네. 그놈의 귀족이랑 클라운이 뭔지 정말.”
“허허허. 귀족들이 좀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마르쿠스. 넌 자신감을 좀 가질 필요가 있단다.”
“라니우스 님.”
“웬만해서는 너를 이길 수 있는 아이가 없을 것이다. 상성 문제도 사람 나름이고, 너희 나이 또래에서 너의 힘을 감당할 아이는 몇 없을 터이니.”
“제가, 제가 정말로 16강에 오를 수 있을까요?”
“자신감을 가져라! 너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감뿐이니. 지금처럼만 한다면 충분하다. 마나가 모자란 것도 아니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감사함을 외치면서도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마르쿠스였다.
‘귀족들이고 뭐고, 받아들이기를 잘했네. 기분 좋다! 역시 귀족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지.’
비록 그 미래를 알고 있기에 받아들인 것이지만, 그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는 범이었다.
“그럼. 마르쿠스 너도 특훈하자꾸나! 어디 가서 내 제자가 욕먹는 것도 마음에 안 드니. 단단히 훈련시켜주마.”
신기하게도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던 마르쿠스의 눈에서 눈물이 멈췄다.
“…네…?…?”
“허허허허! 걱정하지 말거라. 너를 잠시 봐준다고 해서 내 제자에게 소홀하지 않을 것이니! 즐거이 불태워 보자꾸나.!”
라니우스의 말에 힘이라도 담겨 있는지, 그 말에 두 소년이 얼음이 된 것처럼 굳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
그렇게 방학을 한 주 앞둔 시간이 다가왔다. 그 시간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모든 압박과 멸시가 쏟아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방학이 되기 전, 전 [우시아] 소속의 아이들이 수련장으로 모였다.
[우시아]의 멤버는 적었지만, 화려했다.
[우시아] 창립 5인
에밋: 공작가의 공녀. 최연소는 아니지만 3서클을 개방
범: 평민, 기본재능이라는 한계에도 학년 실기 전체 1등
샨: 공작가의 가신으로만 알려져 있음. 하지만, 전체 순위 10위 이하로 내려온 적 없음.
카인: 부유한 평민. 곧 3서클을 앞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음.
량: 평민. 하지만 파울로의 제자
[우시아] 회원
소하: 필기에서 5위 이하로 내려가본 적이 없음. 연금술에 깊은 조예를 드러내 월반
초진: 마도공학에 재능을 나타냄. 공학 부분에서 뛰어난 통찰과 창의력을 가지고 있음
[우시아] 수습
마르쿠스: 백작가의 자제. 아카데미의 클라운.
[우시아]의 종속 동아리
[전투학개론]: 현재 수호 용병단의 단장이 세운 동아리. 재능이 전투의 다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세워진 동아리. 동아리 순위 28
[마법은 연구다]: 현재 상아탑 소속의 연금 마학자가 만든 동아리. 연금마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설. 마법의 기본은 연구다를 외치며 만들어졌다. 동아리 순위 31위
현재 수련장에 모인 인물은 10명이었다. 우시아의 회원과 종속 동아리의 장 그리고 마르쿠스였다.
“범아. 꽤 자신이 있어서 부른 거겠지?”
“그럼! 너네 진짜 놀랄 수도 있어.”
에밋과 범이 말하는 사이, 청색의 머리를 지니고 있는 소년이 끼어들었다.
“범 간부님. 간부님들은 저희가 다 인정을 했지만, 현재 회원과 수습은 아직 아닙니다.”
“아! 필로스. 안 그래도 네게 부탁을 하려고 했어.”
청색머리의 소년. 필로스는 [전투학개론]의 동아리 장을 맡고 있었다. 대게 동아리 장이 6학년인데, 5학년일 때부터 장을 맡은 실력자였다.
골든리그에서 본선에 오늘 강자이기도 했다. 현재 수호 용병단 소속된 용병을 아버지로 두어 전투에 굉장히 능했다.
“부탁 말씀이십니까?”
“응! 애초에 네가 들어올 때 내건 조건이 [우시아] 회원은 두 종속 동아리에 인정을 받아야 한다잖아?”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르쿠스는 무사니까 [전투학개론] 담당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응! 네가 마르쿠스랑 대련을 해주었으면 좋겠어. 너는 마르쿠스를 시험하고 마르쿠스는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흠.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음. 네가 이기기는 하겠지만 쉽지 않은 정도?’
“전력으로 했을 때도 말입니까?”
“응!”
그 해맑은 대답에 마르쿠스는 당황하고 필로스는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다른 모든 아이는 놀랐다. 아카데미의 클라운이, 골든리그의 본선 진출자와 비교해 쳐지지만도 않은 실력이라니.
“범아! 진짜야?”
모두가 놀라 정신이 살짝 나간 사이에 오로지 에밋만이 놀라는 와중에 정신을 잡고 외쳤다.
“응. 확실해.”
“하 이러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 진짜 범이 너는.”
“자! 일단 다른 이야기는 후에 하고 대련을 시작하자! 두 사람 앞으로!”
자신 말에 필로스는 글라디우스와 방패를 가지고 앞으로 나왔다.
“범 님?”
“아! 맞다. 미안.”
이내 아공간에서 망치를 꺼내서 마르쿠스에게 전해주는 범이었다.
“망치?”
“뭐?”
망치를 받아드는 마르쿠스를 보면서 필로스는 범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범 님? 망치가 확실합니까?”
“필로스. 망치라고 얕보다가는 진짜 큰일 난다.”
“그 정도 입니까?”
“자! 그럼! 서로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니까 마르쿠스는 머리는 공격하지 말고, 필로스도 머리와 심장 낭심은 되도록 피해줘!”
어느새 수련장에는 두 사람이 중심에 서 있었다.
“기대해 보지. 범 님이 말한 것만큼인지.”
“잘… 잘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에게 묘한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범이 입을 열었다.
“시작!”
동시에 마르쿠스는 자신이 들고 있던 망치를 있는 힘을 다해 필로스의 어깨를 향해 내려쳤다.
쿠앙!
거대한 소리가 나면서 필로스의 방패가 홈이 파였다.
“쿨럭!”
한 방이었다. 필로스가 피를 토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하 필로스. 내가 경시하면 큰일 난다고 했잖아.”
“쿨럭… 죄… 쿨… 송합니다.”
“하… 이래서는 안되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사건에 아이들은 넋을 놓았다.
마르쿠스가 누군가! 필로스가 누군가!
아카데미의 클라운이라 무시당하던 그 마르쿠스가 한 방에 필로스에게 내상을 입힌 것이다.
아무리 필로스가 경시했다고 한들 필로스가 허투루 내상을 입을 학생은 아녔다.
“하 마르쿠스. 너도 그렇게 한 방에.”
“죄… 죄송합니다! 라니우스 님께서 일단 시작하면 한 방 크게 내리치라고 하셔서…”
“흐음. 이렇게 되면 애매한데. 마르쿠스 넌 어떤 거 같아?”
“아직 아직 실감이 나지를 않아서. 필로스님께서 방심을 하신 게 아닌지.”
“하. 샨은 안되는데.”
아이들을 놀래켜 줄 생각으로 있던 너무나 순식간에 이루어진 대결로 인해서 고심에 빠져있었다.
고심에 빠진 범과 달리 마르쿠스를 제외하고 모두 경악에 빠져있었다.
“에밋? 지금 마르쿠스가 필로스를 이긴 거야?”
카인이 믿지 못할 광경을 보았다는 듯이 에밋에게 물었다.
“어 어. 그런 거 같은데? 그런 거지 샨?”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의 클라운인 마르쿠스가 맞는거지?”
“어 맞는 것 같은데.”
그렇게 웅성이고 있는 사이에 범이 마르쿠스에게 다가갔다.
“그냥, 남은 확인 작업은 너가 집에 가서 아버지께 받아야 할 거 같다.”
“아버지 말입니까. 과연 괜찮을까요?”
“그럼. 어차피 너네 아버님 수도에 계시니까, 그리고 아마 엄청나게 놀라실걸?”
“후 그럼 저도 실버리그 8강에 들어갈 수 있는 걸까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그렇죠 역시 말이 안 되는…”
“아니. 아니. 네가 왜 실버리그를 나가? 내가 말한 8강은 골드리근데?”
“네!!!?”
자신의 말에 마르쿠스도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놀랐다.
“범 범아? 네가 말했던 리그가 골드리그였어?”
“응. 당연하지. 다들, 실버리그를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당연하지! 우리 이제 4학년이야! 마르쿠스는 5학년이고!”
“왜? 필로스도 5학년일 때 골드리그에 나가서 본선에 진출했잖아?”
“아니! 필로스야 당연히 유망했고!”
“마르쿠스도 못지않아. 너무 마르쿠스를 무시하지 마.”
에밋과의 대화에서 뜻밖에도 감동하는 마르쿠스였다.
“마르쿠스 넌 그것 좀. 그나저나 왜 다들 실버리그를 생각한 거지.”
“하 범아. 실버리그가 원래 4~6학년을 위한 리그야.”
“맞아. 그리고 골드리그는 성인 이하면 다 출전이 가능해서 아카데미생을 제외하고도 많이 참가한다구!”
“에밋, 네가 말한 본선이 실버리그 본선을 말한 거였어?”
“당연하지! 실버리그 본선에만 오른다고 해도 4~6학년 다 해서 100위 안에 든다는 건데!”
“뭐야. 그건 진즉에 가능했지, 지금 나가도 실버리그 8강은 가능할걸?”
자신의 말에 아이들이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 놀림을 받던 클라운인 마르쿠스가 그렇게 강해졌을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범 님. 제가 골드리그에, 본선에라도 올라갈 수 있을까요?”
모든 아이가 조용한 가운데 마르쿠스가 의기소침한, 그럼에도 묘한 열망을 품을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흠 지금이라면 운이 좋을 경우? 그리고 네가 하는 거에 따라서 8강도 노려봄 직해.”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아이들이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브로즌, 실버, 골드리그로 나뉘어진 무투대회.
실버리그에서는 그 실력이 아무리 높아도 숙련된 유저에 불과했다.
하지만, 골드리그에서는 종종 익스퍼트를 앞둔 실력자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기에 골드리그에서 본선에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우를 받는다. 그 나이가 어릴수록 더 높이 평가받는다.
그런 골드리그에서 본선 진출이 어렵지 않다고 말하는 대상이 마르쿠스였고,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마르쿠스는 클라운이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학생. 재능이 없어 이미 한계라고 하나같이 말하던 학생.
그 학생이 반년도 되지 않아 골드리그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강자가 되었다는 것을 쉬이 믿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골드리그의 본선에 이미 5학년의 나이로 진출한 강자인 필로스를 망치질 한방으로 내상을 입힌 것을 본 아이들이기에 안돼 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마르쿠스가 [우시아]에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사람은 없지?”
“당연하지! 지금도 충분해!”
에밋의 말에 모든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런데 계속 수습으로 두면 안 돼?”
이어진 에밋의 말에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왜?”
“수습으로 두다가 골드리그에 딱! 본선 진출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서.”
“음 마르쿠스? 괜찮겠어?”
“저야 상관없습니다.”
“음 음 좋아 좋아! 그러면 아주 재밌겠다!”
조용히 있던 량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동아리원을 맞이한 [우시아]는 동아리방으로 돌아가 환영회를 열어주었다.
각자의 소개와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 환영회가 끝나고 범이 마르쿠스를 따로 불렀다.
“마르쿠스. 이번 방학 끝나고 가는 수련회에 널 내 조에 넣을 거야 괜찮지?”
“제… 제가? 좋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3학년일 때 벌써 조를 꾸린 범이었다. 불스 용병단의 수습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에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충원은 없었다. 오직 범, 에밋, 카인, 샨만이 조원으로 활동을 했고 량은 행정일을 도왔다.
“응. 이번에 [우시아] 멤버들은 다 내 조에 소속돼서 활동할 거야. 그리고 너도 들일 거야.”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각오하고 오라고. 그럼.”
범이 사라지기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범을 바라보는 마르쿠스였다.
‘실로… 실로 감사합니다. 범 님’
아버지를 당면하는 것이 두려웠지만, 각오를 다지는 마르쿠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