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35화 (35/217)

[35화]

그렇게 카인은 혼자가 되었다.

*

이어지는 카인의 말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분노가 함께 올라왔지만,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분노이기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카인의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녔다. 자신이 선택한 마르쿠스를 [우시아]에 들이는 것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만 무시와 조롱 그리고 압박이 가해졌다. 사실 자신이 누구보다 그를 잘 느끼고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아카데미 선생님들, 특히 귀족 가문 출신의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대놓고, 나름 돌려서 말한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알 수 있게, 자신에게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별반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애초에 별 관심도 없지만, 그 정도 면박과 압박은 전생에 비하면 귀여울 따름이었다.

자신이 신경을 쓰지 말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니 어느새 포기한 듯 압박이나 그러한 것이 더 이상 없었다.

한데, 그것이 없어진 것이 아닌 다만 대상이 바뀌었던 모양이다.

그 모든 압박이, 눈초리가 카인에게로 간 것이었다.

“미… 안… 미안하다. 카인…”

카인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동안 카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여리고 여린 아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냐! 괜찮아. 어차피 혼자 지내는 게 처음도 아니고. 그리고 [우시아]가 있으니까! 너도 있고.”

“하…”

자신을 위해서 저리 말해주는 카인에게 너무나 고맙고 너무나 미안했다.

“그리고 그 덕에 알게 된 사실도 많고! 진짜 괜찮아. 이래저래 귀찮은 게 많아서 그래.”

“후우…. 지금이라도 마르쿠스… 내보낼까? 마르쿠스도 중요하지만, 네가 우선이야. 너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

“헐!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오히려 나는 마르쿠스가 꼭 본선에 올랐으면 좋겠는데?”

“본선… 일단 그 정도면 완전히 바뀌는 건가?”

“응. 에밋이 그러더라고. 본선에만 오르면 완전히 판도가 바뀐다고.”

“그나저나 넌 진짜로 괜찮은 거야?”

“아? 아! 이래저래 피곤한 건 사실이긴 한데. 에잇. 잠깐 기다려봐!”

이내 서둘러 욕실로 들어간 카인을 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겨 들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행동이었나. 그저 조용히 있어야 했던 것일까. 누구한테… 누구한테 이 분노를 쏟아야 하는 거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에 어느새 카인이 욕실에서 나왔다.

“짠! 이거 봐 봐!!”

어느새 돌아온 카인의 얼굴이었다. 어둡고 힘들어 보이는 표정에서 그저 조금 지쳐 보이는 얼굴로 돌아왔다.

“…? 카인? 갑자기…?”

“엄청 자연스러워 보였지! 변장한 거야. 사실 그렇게 힘든 건 아닌데 그래도 엄청 힘들어 보여야 좋을 거 같아서. 겸사겸사 연습도 하고.”

“하…. 참…내”

“어차피 해봐야 혼자로 만드는 건데, 나 혼자 다니는 건 익숙해서 괜찮아! 거기에다가 [우시아]도 있고, 그리고 좋은 건 저절로 사람이 가려지게 되더라고!”

나름 밝은 얼굴로 말하는 카인이었지만, 나는 안다. 저 순박한 얼굴로 말하는 카인에게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점차 듣는 수업이 달라지면서, 같이 수업을 듣는 시간이 줄어들었을 당시, 카인은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매번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사귀었다면서 종알종알 말을 하던 카인의 얼굴은 기쁘고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던 카인이 이제는, 혼자가 되어도 익숙하다고 말하는 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리라. 새삼 힘에 대한 갈망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조금 해이해졌나 보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예전처럼 독기를 가지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힘이… 힘이 필요하다.

내 주변의 사람들, 나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도, 어중간한 힘이 아닌, 웬만한 모든 압박을 압도적으로 밟을 힘.

‘다시… 다시 정신 차리고 해야겠어.’

“카인. 정말 미안해. 조금만 기다려. 무투대회만 시작하면 모든 게 바뀔 거야.”

“그럼! 나도 에밋도 다 범을 믿고 있는데!”

“후… 고마워… 그나저나 이제 에밋한테 공녀님이라고 안 하는 거야?”

“아? 응! 이제 에밋도 친구야. 우리 엄청 친해졌다? 너 나중에 막 서운해할지도 몰라?”

“하하하하. 잘됐네~ 두고 볼 게 서운해할지 말지.”

“아? 범아 근데 너 로사 공녀님 [우시아]에 들어오는 걸 막았어? 이상한 말이 돌던데?”

“에? 그건 무슨 말이래? 그런 적 없는데?”

“막막 네가 로사 공녀님 절대 [우시아]에 못 들어온다고 그렇게 말했다는 말이 돌고 있어.”

“허… 와… 그건 진짜 아닌데? 아! 예전에 로사가 물어봤을 때 그냥 내가 못 들어올 거라고 하긴 했는데….”

“어? 로사 공녀님한테?”

“어. [우시아]가 부 동아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로사가 주 동아리를 [우시아]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힘들 거라고 했지.”

“아무래도… 이건 너가 로사 공녀님한테 가서 직접 말해 줘야 할 거 같아. 마르쿠스 일이랑 엮여서 이상하게 되는 거 같더라.”

“하…. 진짜 할 일도 많은데 별… 알았서 내일 수업 끝나고 말해 볼게.”

“웅! 그나저나 요즘에 왜 이렇게 힘들어? 막 들어오자마자 뻗어버리고!”

“하… 내가 괜히 그러는 게 아니야… 스승님께서…”

그렇게, 오랜만에 범과 카인은 두런두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밤늦도록 나누며 보냈다.

*

다음날이 되어 상쾌하게 카인과 함께 오전 수업을 마치고 로사를 따로 불러내었다.

“로사. 잠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좋아.”

말이 끝나자, 자신이 먼저 가는 로사였다.

평소보다 훨씬 더 차가워 보이는 말투였지만, 별일 있겠거니 싶기도 하고 로사가 가는 곳으로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강의동 옆의 작은 정원이었다.

“말해”

“아니 별다른 건 아니고 카인에게 들었는데 이상한 말이 돈다고 해서. 내가 널 강제로 [우시아]에 못 들어오게 했다는”

“그래서.”

“그게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해서.”

“그게 왜 오해지. 사실 아닌가?”

“무슨… 소리야?”

“네가 일부로 내가 [우시아]에 못 들어오도록 하지 않았어?”

“하… 내가 왜 그러겠어.”

“마르쿠스라는 클라운은 받아들이면서, 나는 받아들이지도 않은 이유가 뭐야 그럼.”

“하…. 너마저도 마르쿠스 이야기냐. 애초에 마르쿠스는 서류를 보고 면접까지 한 다음에 다른 아이들의 동의를 받아서 수습으로나마 받아들인 거야.”

“그렇다면 왜 나는 받아들이지 않은 건데! 네가 왜!”

격해진 감정으로 소리를 치는 로사를 보면서 범도 점차 감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럼 너는 당연히 받아줘야만 한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게다가 그때 이야기했잖아. [고귀한 검]은 어쩌고”

“[고귀한 검]이 중요해? 내가 [우시아]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잖아!”

“애초에 넌 [고귀한 검]에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너도 그렇게 말했고, [고귀한 검]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네가 말을 했다면! [고귀한 검]을 들어가지 않고 [우시아]에 들어가려 했었어! 네가 받아주지도 않고! 일부러 막았잖아!”

점차 모를 소리를 하는 로사를 보면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후… 내가 언제 일부러 막았는데, 막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그리고 [우시아]에서 네가 들어오겠다고 하면, 당연히 받아줘야 하는 건가? 왜지?”

“그건…! 네가… 네가 막았잖아! 나도 지원했는데! 그리고 내가 들어가면 당연히 좋은 거 아니야? 최상위 재능인데! 무투대회 우승자인데!”

안 그래도 어제 카인과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들 때문에 귀족에 대한 분노가 은연중에 쌓였는데, 로사가 이러자 더욱 열이 받았다.

“네가 언제 지원을 했는데? 그때 잠시 말한 거? 그렇게 잠시 말을 하면 나는 당연히 얼씨구나 하고 받아줘야 하는 건가?”

“아닌…!”

“그리고! 최상위 재능? 무투대회 우승자? 하! 무투대회 우승자가 그렇게도 대애단하구나. 그리고 재능을 말하는 것 자체가 [우시아]의 목표와 다른 거 모르나?”

“너… 너… 네가 어떻게…”

“무투대회 우승?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 그럼 이번에도 해보시지. 내가 나갈 테니.”

“너가… 너가…”

“왜. 나는 평민이고 너는 귀족이라 이러면 안 되나? 나는 하잘것없는 기본 재능이고 너는 찬란한 최상위 재능이라 이러면 안 돼?”

쏘아붙이는 범의 말에 당황하면서, 점차 눈시울이 붉어지는 로사였다.

“네가 적어도 정식으로 절차를 지켰더라면 다르겠지, 너도 결국에는 귀족인가 보구나.”

“너가! 너가! 바로 너가! 안 들은 거잖아! 왜? 내가 우스워? 편하게 대해 주니 우스워 보였어? 고작 몇 번 이긴 것 가지고 내가 우스웠어?”

“널 단 한 번도 우습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지금 보니까 내가 생각하던 그런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네. 실망이네.”

“감히! 네가 어떻게!!”

“그래. 감히 평민 따위는 사라져 줄게.”

그렇게 몸을 돌려서 나왔다.

‘로사도 결국에는 똑같은 귀족인가… 하… 아닌 줄… 알았는데… 조금… 실망이 큰가…’

조금 씁쓸하고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후회도 살포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차분하게 잘 이야기 해야 했나… 하… 나도 모르게…’

하지만, 그렇게 올라오는 후회의 감정을 이내 내리누르며 생각했다.

‘하… 아니지. 귀족들이란… 쯧 무투대회에 쓸데없이 나가게 생겼네…’

그렇게 후회를 자르는 선택을 하고 이내 마르쿠스와 스승님이 기다리고 있을 오두막으로 향했다.

범이 떠나가고 난 자리에, 로사는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사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었다. 그래도 자신을 배려해 주었다 생각했다.

[고귀한 검] 때문에 쉽게 자신을 받아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카데미의 클라운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아카데미의 클라운을 받아드린다는 것은 아카데미 내의 귀족들과의 전쟁 선포와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은 받아들이지 않고서 클라운은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자신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들은 이야기는 아녔다. 자신도 정당하게 서류를 제출했는데, 마치 그런 적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여타 다른 귀족들과 자신이 결국 똑같았다면서 실망이라는 말을 하고 떠났다.

“왜… 왜… 나를 무시하는 거지. 왜…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 거야… 왜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거지….”

슬픔이 지나가자 올라오는 감정은 분노였다. 자신이 약해서 그렇다.

“두고 봐…. 이번 무투대회에서 어떻게 되나 보자…”

그렇게 결심을 하고 정원을 뒤로하고 나섰다.

범과 로사가 떠난 정원에는 어느새 쓸쓸한 바람만이 감돌았다.

*

어느새 도착한 오두막에는 언제나처럼 마르쿠스가 먼저 도착해서 망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죽어라. 훈련하는 마르쿠스가 기꺼웠던 것인지, 스승님께서 특별히 만들어주신 수련용 망치는 자신이 선물해 준 망치보다 1.5배가 무거웠다.

그런 망치를 그리 어렵지 않게 휘두르고 있는 마르쿠스를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범 님! 오셨습니까!”

항상 깍듯하게 맞아주는 마르쿠스를 보며, 그러지 말라고 해도 하는 탓에 포기했다.

‘암… 이런 건 포기하는 게 편하지… 귀족한테 존대를 듣다니… 진짜.’

“응. 여전히 수련하고 있는 모습이 무시무시하네.”

“제가 수련하는 건 범 님의 수련에 비하면야…”

“하… 는 말이긴 하다… 그나저나 잠시만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망치는 내려놔 봐.”

스승님이 아직 돌아오시지 않은 오두막의 앞 공터에서 대략적인 설명을 마르쿠스에게 해주었다.

“감히…!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아니야. 너 때문이 아니지. 그게 왜 너 때문이야.”

“그래도… 저를 받아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이런 일이…”

“흰소리 그만하고! 그래서 지금 상황이 이래.”

“그렇다면… 제가…”

“하… 그게 아니라니까! 그래서 할 말도 있고 너가 해야 할 일도 있어!”

“네! 무엇이든 말만 해주십시오!”

“에밋의 말은 알아들었지? 무투대회.”

“넵! 무투대회 본선에 들어간다면 된다고… 근데…”

“그래서 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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