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스승님께 진(眞) 마스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일까. 아카데미에서 받는 시선과 압박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카데미가 개학하고 난 뒤 1달이 지날 동안, 자신을 안 좋게 보는 시선, 무언의 압박은 점점 더 늘어갔다.
마르쿠스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그 시선은 더 강렬해 졌다.
다행인 것은 마르쿠스 또한 자신의 스승님과 함께 있을 때 들은 이야기 때문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신경을 쓰지 않고 당당하다는 점이었다.
“면접에서 의기소침한 마르쿠스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
“더 이상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습니까요. 전 오히려 무투대회가 기다려집니다.”
“잘할 거야. 분명히.”
“감사합니다.”
의기소침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마르쿠스는 단단하고 굳세었다.
스승님께 받는 훈련에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 익숙해졌다. 방에서 기절하지 않을 정도가 되기까지가 1달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르쿠스와 일별하고 오랜만에 카인을 기다리며 [육체의 이해]를 읽고 있었다.
부드럽게 문이 열리면서 카인이 들어왔다. 한데, 카인의 표정이 어두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자신을 대했던 카인인데 어두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의아했다.
“카인?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야?”
들어오는 카인의 모습이 너무 지쳐 보였다. 평소의 카인과 다르게 어깨마저 처져 보였다.
“범…이? 안 자고 있었네?”
항상 텐션이 나보다 2단계는 높았던 카인이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도 어색했다.
“이제 그래도 조금 괜찮아졌어. 넌 무슨 일이야?”
“하… 범아. 마르쿠스… 꼭 받아야 하는 거지?”
“갑자기… 마르쿠스? 너도…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마르쿠스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쉽게 하지 못하는 카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인이 마르쿠스에게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문제가 있었다.
“무슨 일이야 카인.”
“후… 별다른 게 아니고…”
*
“요즘에는 영 범이랑 노는 게 힘드네… 후”
최근 들어서 범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졌다. 밤에는 방에 들어오면 기절하기 일쑤. 점심도 순식간에 먹고 나가 대화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나도…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데… 비도 오는데 또 수련하러 나가겠지.”
최근 오전 수업에 범이가 받는 압박을 보며 안타깝고 짜증 나고 열이 받았다.
“량이도 그렇고 공녀님도 그렇고… 범이 조차 무슨 생각인 건지…”
재능의 이해 수업 시간에 범에게 뭐라 하는 선생님에게 반박하려 했지만, 그걸 막은 것이 범이었다.
“선생님도 그렇고 도대체 귀족이라는 것들이… 하… 비도 오고 범이랑 놀고 싶다아~ 시원하게 내리는구나!”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가길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포이! 그레고! 수업 가는 길이구나!”
연금과 마법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들이 보였다. 조별 과제를 같이 하면서 친해진 아이들이었다.
둘 다 귀족의 자제였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아서 친해진 친구들이었다.
포이는 말이 많다면 그레고는 항상 과묵한 친구였다.
“안 그래도 너 보러 가려고 했는데 가는 길에 만나서 다행이다.”
“응? 날? 수업 어차피 같이 듣잖아?”
“아니, 수업에서야 보는 거고, 따로 할 말이 있었거든. 잠깐 시간 되지?”
그리고 이내 포이랑 강의동 근처의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에 도착하고 나자 포이는 자못 심각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카인, 너 범이랑 친하지? 너도 [우시아]에 창립 멤버기도 하고.”
“응. 그렇지. 범이랑 친하지!”
“그럼, 그 친구한테 말을 하거나 [우시아]에서 발제해서 마르쿠스 빨리 쫓아내.”
“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걸 네가 왜… 말해?”
“아직 그 친구도 너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너도 내 친구니까 해주는 말이고.”
“아니, 그래서, 뭐가 문제인 건데?”
“그 아이가 클라운이라는 거 알지 않아? 그런데도 너희 동아리에 들인 거잖아.”
“아니, 그래 봐야 아카데미에서나 통용되는 클라운 아니었어?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거야?”
“하… 카인… 이래서… 어르신들이 평민과는… 도대체 공녀님은 무슨 생각이신지…”
무엇인가 중얼거리는 말이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뭐?”
“아니야. 카인, 너나 그 범이라는 애나 귀족이 아니라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클라운은 장난이 아니야.”
“후… 일단 설명부터 해줘 봐.”
“클라운이 정해지는 건, 한 가문만의 일이 아니야. 모든 가문의 과반수가 동의를 할 때 클라운이 되는 거야.”
“아니, 그래서 클라운은 그렇다 하지만, 그 마르쿠스라는 아이가 클라운이야? 아니잖아?”
“아카데미에서 클라운이라는 게 뭔지 몰라서 그래? 아카데미에 있는 귀족의 과반수가 동의했다는 거잖아! 그런 클라운을 너희는 받아들인 거고!”
점차 듣다 보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난다. 귀족도 아닌 것들이, 귀족의 자제라는 것들이 자신들이 귀족이라는 것만으로 사람을 한 명 무참히 밟으려고 한다.
거기에 자신들의 의지에 반하는 일이 있자 모든 이들이 들고일어나 반대를 외친다. 이것이 귀족이라는 건가. 아니면 내가 범이랑 너무 오래 같이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 모르겠다.
할 말이 너무도 많지만, 그래도 친구이기에 참고 참아 말을 내뱉는다.
“후… 아카데미에 귀족이 있다고?”
“당연하지! 우리가 귀족이지!”
“아카데미 수칙에, 아카데미 학생은 귀족과 평민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칙을 떠나서도 아카데미 학생 중에서 귀족 위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있던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자신이 내뱉는 말의 톤에 자신도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카인…. 너 지금 감히 귀족의 권위에 네가 뭐라고 말을 한 거야? 평민인… 네가?”
“하. ‘평민이든 귀족이든 뭐가 중요해. 마음이 맞고 대화가 잘 통하면 친구지! 우린 아카데미 동기잖아!’라고 했던 건 너 아니었나.”
내심 아카데미의 친구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귀족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에밋이 그러했고 샨도 그러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늘어가면서 더욱 변해갔다.
후계 수업을 받으면서 가장 먼저 수업을 받은 것은 귀족에 관한 것 이었다.
‘귀족들의 특권의식을 절대 얕보지 말 것.’
‘귀족이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공격은 모든 귀족의 적이 될 수 있다.’
‘귀족은 자신들이 택함 받은 인간,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주의할 것.’
등등의 내용을 수업받았다. 하지만, 아카데미를 다녀보니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사람은 각자가 모두 다르다고, 귀족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생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포이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준 친구였다. 말했듯이 먼저 다가와 귀족이든 평민이든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걸어 준 친구였다.
에밋 공녀님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 자제 중에서도 차별 없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 기뻤다.
노력도 많이 하고 권위의식도 없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 친구가, 다가와서 선택을 종용한다. 평민이라 모른다고 말을 한다. 당당히 자신들이 귀족이라 말한다.
뿌리 깊은 실망이 차오른다. 왜 … 왜 그런 것일까…
범이 마르쿠스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도 잘못된 것일까?
“포이. 마르쿠스를 [우시아]에 받아들인 게 귀족의 권위에 반하는 거야? 아카데미에서 귀족이 없다고 하는, 모두가 학생이라는 내 말이 귀족의 권위에 반하는 거야?”
조금이지만, 처연해진 목소리였다. 친구라 믿었기에 더욱 큰 실망감이 찾아왔고, 그런 마음이 표현되었다.
‘아직, 나도 갈 길이 멀었구나…’
카인의 말에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정작 말을 하지 못하는 포이었다.
머뭇머뭇하다가 기어코 꺼낸 말은 카인을 더욱 실망하게 했다.
“당연하지! 귀족은 귀족이야! 아카데미 학생은 귀족이 아닌 것 같아? 평민이 아닌 것 같아? 결국, 졸업하면 귀족은 귀족이고 평민은 평민이야!”
“하…”
“네가 재능이 있고 말이 잘 통해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어. 왜 어르신들이 평민과 우리는 다르다 하는지 이제야 알겠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래! 내가 어리석었네. 평민과 귀족은 달라. 그래도 너를 잠시나마 친구였던 그때의 정으로 말하는데 마르쿠스, [우시아]에서 내보내!”
그리고 등을 돌려 나가는 포이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따라가는 그레고였다. 그리 멀지 않아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포이, 내가 누차 말했지. 우리는 다르다고.”
“후…그래 네가 맞았네 그레고.”
그레고는 말이 없는 친구가 아녔다. 그저 내가 그의 친구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멍하니 서 있었다.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자리에 그대로 한 대 더 강하게 맞은 느낌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물이 흘렀다. 나름 사람을 잘 볼 줄 안다고 자부했던 내 긍지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시원하게만 느껴졌던 비가, 너무 차갑고 처연하게 느껴졌다.
결국,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직 정리되지 않아 수업에 들어갈 수 없었다.
포이와 그레고를 볼 자신이, 용기가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방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다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동아리방에 오기 전, 최대한 가면을 만들어 썼다. 친절하고 활기찬 카인. 그 가면을 만들어 썼다.
‘도련님은, 자기감정이 너무 잘 드러나세요! 앞으로 그러면 안 돼요. 감정을 숨기는 건 잘 못 하시니까 그럼 가면을 만들어서 쓰면 돼요!’
유모가 가르쳐 줄 때, 참 쓸모없는 걸 가르쳐 준다고 생각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만 있으면 되는데 왜 그런 게 필요한가 싶었다.
그렇게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가면을 나는 결국 쓰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내심 간절히 바랐다. 에밋 공녀님과 샨은 다르기를…
떨리는 마음으로 동아리 방문을 열었다.
“후… 하….”
다행인지, 동아리방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하긴 아직 수업이 다 끝나지도 않았을 시점이긴 했다.
“후… 긴장했나? 머리가 안 돌아가네…”
에밋 공녀님과 샨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없이 더디게만 흐르는 것 같았다.
1년이 지난 것 같은 그 시간이 지나자 문이, 문이 열렸다.
“에밋 공녀님! 샨! 일찍 왔네?”
“카인?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왔어? 연금과 마법 엄청 오래 하는 수업이라고 너가 항상 늦었잖아!”
“아~ 오늘 그냥 몸이 좀 으슬으슬해서 쉬었어! 자고 나나니까 많이 좋아졌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너 또 비 온다고 좋다고 나가서 비 맞고 그런 거 아니지?”
“아니야~ 이제 비 맞고 그런 거 안 해~”
“철들었다?”
“그나저나, 에밋. 그 마르쿠스 있잖아…”
“응? 왜? 이제 너도 반대하게?”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싶어서…”
“아…음… 사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정말 별일 아니기는 하지.”
“그런데? 지금 왜 문제가 되는 거야?”
“말하자면 길긴 한데… 왜? 누가 너한테 와서 뭐라고 했어?!”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그 포이랑 그레고 있잖아. 엄청 심각하게 말하면서 마르쿠스를 쫓아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잘 이해가 안 가서.”
“아? 그 마법과 연금 같이 듣는다는 친구들? 하… 내가…”
“응?”
“아니야. 음 설명해 보자면. 귀족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사건이야. 지금 마르쿠스 문제는.”
“귀족들의… 우월감?”
“사실, 엄청 길고 긴 이야긴데. 지금 범이 건드린 건 다른 게 아니라 귀족들의 우월감이라서 문제가 되는 거야.”
“어차피 시간도 많잖아~”
“후. 생각해보면 지금 아카데미에 있는 귀족들의 자제가 과반이 이상 동의해서 마르쿠스를 클라운으로 지정한 거잖아”
“응. 아카데미에도 그런다고 해서 엄청나게 놀랐어!”
“그런데, 그 반수 이상의 귀족들 자제가 ‘쟤는 안 돼!’라고 한 상황에서 평민이, 그것도 기본 재능이 그게 아니라고 한 셈이 된 거지. 너희가 잘못 알았다 이렇게.”
“평민이고… 기본 재능인 게… 거슬린 거야?”
“아니, 뭐 그게 없다고는 못하지. 애초에 가지고 있는 귀족의 우월감이란 게 자신들과 비교해서 열등한 존재가 있어야 가능하니까.”
“흐음…”
“그래서 온 귀족 자제들이 반발하는 거지, 거기에 귀족 출신의 교수들이 범을 압박하는 것도 그 이유고.”
“대체… 왜?”
“후… 나도 이런 걸 정말 마음에 안 들어 하긴 하는데… 귀족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다고 생각해 카인?”
“어… 오래?”
“우리 세계의 역사와 함께한 게 귀족이라서 그래. 애초에 귀족들의 폭거에 일어나 세워진 왕국이 블레어지만, 그 블레어 왕국의 역사가 900년이 넘었으니… 귀족들도 900년이 된 셈인 거지…”
“그렇구나…”
“그 긴 세월을 자신들은 평민과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 지금이고. 그래서 아카데미 내의 귀족 전체가 반발하는 거지.”
“그럼. 넌? 너는 왜 ?”
“나? 우리 가풍이기도 하고, 나도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 애당초 가문에서 배우기를 ‘우리는 평민이었다,’ ‘우리는 사람이다’ 이건데 뭐.”
“와흐네 공작가인데?! 공작가도 엄청 오래되지 않았어?”
“뭐… 이것도 가문의 비사라면 비산데, 공작가 이기보다 마법사이길 바라셨대. 선조님께서. 그리고 그게 쭉 이어지고 있기도 하고.”
“그렇구나… 그럼 마르쿠스는 왜 받아들여 준 거야?”
“응? 뭐…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범이라면… 다를 거 같기도 하고. 명확한 결과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을 테니까.”
“명확한… 결과?”
“응. 결과. 만일 범이 말대로 무투대회에 본선에 마르쿠스가 진출하게 되면 완전히 달라질 거야.”
“어째서?”
“애당초 아카데미 클라운이라는 것 자체가 웃기는 거기도 하고. 마르쿠스 가문이 힘이 없는 가문이 아니니까.”
“아….”
동아리에서 나와 방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제야 한숨이 나왔다.
“하… 다행이다… 다행이다.”
에밋은 달랐다. 샨도 달랐다. 그게 너무나 다행이라고 여기어졌다.
그렇게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범이 오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먼저 쓰러져 잠이 들었다.
*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