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공작 합하(閤下)와의 만찬은 또 다른 수준이었다.
에밋과 함께했던 식사는 간단한 식사라는 듯 다양한 요리가 올라왔다.
아티팩트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고 나서 합하의 관심은 범이의 무구에 닿았다.
“굉장히 특이한 도구나? 스승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했던가?”
“예. 스승님께서 과분하게도 저에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허허. 생각 외로 제자를 어려운 길로 가게 하시는구나. 마나를 담으려 할 때 어렵지 않더냐?”
“어? 아… 네… 제가 재능이 미천하여…”
“하하하하! 그런 것이 아니다. 네 도의 소재가 마나를 거부하는 소재여서 그러한 것이다. 아마도 합금인듯싶구나.”
“네?!”
“허허…. 스승님이 말을 안 해주었는데 괜한 말을 한 게 아닌가 싶구나. 다만, 스스로의 재능을 잘 자각하도록 하거라.”
계속해서 되는 합하의 말씀에 그동안의 설움과 초조함이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도에 마나를 조금이라도 흘리는 너의 재능이 몹시 뛰어나다는 뜻이다. 잠시 건네줄 수 있겠느냐?”
“아… 네…”
공손하게 무기를 들어서 합하께 건네드리는 범이었다.
도를 한 손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 “딱” 소리를 내자 도가 합하의 앞에 살짝 떠올랐다.
“호… 흠…. 그렇군! 아…!”
무기를 이리저리 바라보는 합하의 표정은 흥미로움과 즐거움이 떠올랐다.
긴장하고 있는 범의 표정과 궁금함을 띄는 아이들의 표정이 시간이 지나서야 합하의 눈에 띄었다.
“커험… 재밌구나. 이 도는 일반 철검에 비해서도 마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4할 정도구나.”
“거의 못 받아들인다는 뜻 아닌가요. 그럼?!”
“거의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힘든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이 도에도 마나를 잘 흘려보내고 통제한다면, 명도를 들었을 때는 마치 한 팔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래서…”
사실, 마나를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잘되지 않아서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 줄 알았던 범이었다.
전생 때보다도 더 안되는 상황에 답답함과 초조함이 올라오고 있었다.
“흠… 보아하니 파울로 님께서 과거에 만드신 합금 같더구나. 들은 적이 있단다. 여기 있단다.”
도를 받아드는 자신의 머리에는 다양한 감정이 떠올랐다.
감사함. 야속함. 후련함.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감사함이었다.
소중히 도를 다시 허리에 매었다.
“감사합니다. 공작 합하 덕분에 중요한 것을 배워 가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니다. 그리고 우리끼리 있을 때는 피예안 아저씨라고 불러도 된다니까.”
“제가… 량이 같은 성격이 못되어…”
“그렇지… 량이가 별종이긴 하지… 그렇다고 합하라고 할 필요는 없단다. 너희와 있을 때는 에밋의 아비로 있는 것이니.”
*
합하께서는 식사를 마치신 뒤에 바로 영지로 향하셨다.
그 후로는 다시 수련의 시간이었다. 각자 얻은 것을 돌아보고 수련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개학을 일주일 남기고 친구들과 함께 다시 수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수도에 돌아와서는 곧장 스승님을 뵈러 갔다.
“스승님!”
여전히 같은 풍경의 오두막에서 자신을 반겨주는 스승님이 보였다.
“허허허. 잘 다녀왔느냐.”
“네! 스승님. 감사해요.”
“갑자기 무엇이 말이더냐?”
“제 도요! 수련용 도라는 걸 들었어요!”
“허! 누가 말을 해주었느냐?”
“에밋네 아버지께서요! 시련의 던전을 통과하고 나서 만나 뵐 수 있었어요!”
“허허… 그라면 알 수 있지… 에잉! 나중에 말해주려 했더니! 그래. 그래서 이제 표정이 살아난 게냐.”
“네! 사실 엄청나게 고민 많이 했어요. 진짜 재능이 없나 싶어서…”
“하지만, 그런 고민이 없었다면 네가 지금 같은 노력은 안 했을 거다.”
“맞는 말씀이세요. 정말 다양하게 노력해 본 것 같아요. 감사해요.”
실제로도 온갖 노력을 다 해보았다. 도서관에서 책도 찾아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해 본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야속하지는 않고?”
“사실 좀 야속했어요. 엄청나게 힘들어하는 거 아시면서….”
“허허… 고생했다.”
말없이 쓰다듬어주는 스승님의 손길에 조금 남아있던 야속함과 원망이 씻겨 내려가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승님. 그럼 저는 언제 이 도에서 졸업하나요?”
“흠… 익스퍼트에 이른다면 너도 너의 도를 찾아야겠지.”
“하… 익스퍼트…”
“뭐가 그리 걱정이더냐. 거의 다 왔으면서.”
“그런데…”
“허. 로사 때문인 게냐. 지금 이기고 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후…. 맞아요. 죄송해요. 스승님. 그냥 로사에게 지고 싶지 않았어요…”
“하하하, 그럴 수 있지.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에 먹히면 안 되는 것이지. 잘하고 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그래. 그나저나 팔찌는 변화가 있더냐?”
“아니요… 전혀 없어요….”
“허허허. 그래도 지금도 충분하지 않니. 주인 등록에 아공간이라니… 너무 실망하지 말거라.”
“네!”
그렇게 스승님과의 해후는 언제나처럼 따스하게 저물어 갔다.
*
개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바람이 머물다 간’에서 만나 앞으로의 일을 상의했다.
“그래서! 장은 누가 할 건데?”
“네가 하라니까! 애초에 네가 만들자고 한 거잖아.”
“아니… 에밋도 있고 량이고 있는데 왜 내가 해… 에밋 그냥 네가 하면 안 돼?”
“범아. 네가 잘 모를 수 있는데, 장을 하게 되면 권한이 엄청나! 네가 하는게 좋지 않을까?”
“글쎄… 내가 잘할 자신도 없지만, 내가 장이 되면 별로일 거 같은데?”
그 때 량이 나서서 정리를 해주었다.
“그럼! 에밋이 대외적으로 장을 맡기로 하고, 결정은 우리 5명이 같이 동일하게 1표로 해서 결정하면 되는 거 같은데?”
그 말을 반기는 범과 카인과 달리 량을 게슴츠레하게 보는 에밋이었다.
“아냐. 아냐 진짜 별 생각 없었어. 그렇게 보지마!”
둘의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를 일축하고 이어서 말을 했다.
“그럼 그렇게 하고 시험은… 역시 무투대회로 신청하는 게 좋으려나?”
“그 학년 별로 다르게 가자! 이번 연도는 그냥 무난하게 무투대회로 고.”
샨도 간간히 나서며 동아리가 점점 구체화하여 갔다.
*
아카데미의 탑 1층에 있는 게시판에 아이들이 몰려 있었다.
[우시아]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종이 앞에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경계 어린 표정으로, 누군가는 설레는 표정으로, 누군가는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그 종이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아카데미의 개학 전, 한 장의 종이가 벌써 아카데미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
9층 화려한 방에 모인 4명의 아이가 있었다.
화려한 방에 걸맞게, 그 누구도 화려하지 않은 옷을 입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상석에 앉은 아이가 입을 열었다.
“다들 봤어?”
“뭘?”
“[우시아]”
“아! 그거? 그거 재밌을 거 같던데?”
대답을 이어 나가는 것은 활기차 보이는 아이였다.
“그냥 둬도 될 거 같아? 어때?”
이어 말을 하는 것은 냉랭해 보이는 아이였다.
“아직 좀 두고 봐야 할 거 같은데.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아.”
“흠…”
그때 활기찬 아이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두고 보자! 재밌잖아!”
“재미가 넌 제일 중요하냐…”
“그럼! 인생 재미가 제일 중요하지!”
“그럼. 일단 보류하는 거로 하자.”
그렇게, 모르는 사이 어느새 어떤 아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 [우시아]였다.
*
개학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미친 듯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3학년이 되고부터는 아침에 배우는 역사와 재능의 이해 그리고 예법을 제외하고는 모든 수업이 자율적이었다.
개설된 수업을 신청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다만, 무조건 성과가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학생은 매년 선택 수업을 3개 이상 신청했다.
선택한 수업에서 3가지에서 통과를 하면 자연스럽게 진급을 할 수 있기에 대다수가 선택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초인의 제자인 자신은 이러한 제한에서 자유로웠다.
애초에 졸업하기 전에 익스퍼트에 올라 조기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한 가지 수업만 선택해서 들었다.
그러한 범이기에 [우시아]에 들어오기 원하는 아이들의 서류를 보는 것이 자신의 몫이 되었다.
8층에 자리한 [우시아]의 동아리 방에서 범은 쌓인 서류를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 거지…”
60장이 넘어가는 서류, 거기에 카인이 몰래 보라며 붙여준 첨삭 서류.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졌지만, 같이할 학생을 뽑는 것이기에 허투루 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다른 아이들이 다시 볼 것이기에 대략적인 정리만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보자… 얘는 탈락. 탈락. 보류”
열심히 카인이 첨삭한 서류를 읽어가던 중 눈에 띄는 한 사람의 서류가 보였다.
“어? 마르쿠스?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보고 있는 서류에는 마르쿠스의 인적사항과 카인의 첨삭이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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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르쿠스
나이: 14세(5학년)
전공: 무사
이유: 재능이 다가 아니라는 취지에 나도 나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들어가고 싶습니다!
베타라 가문의 자식. 타고난 신력을 가진 가문으로 그 힘으로 섬세한 검을 다루는 전통의 무가. 아버지가 현 근위기사대 단장. 하지만 검에 재능이 없어 버림받은 자식으로 취급받고 있음. 전 부인과 사별하고 현 부인의 자식이 후계자로 거의 세워진 상황이랄까나. 아카데미의 공식 클라운이자 귀족들의 클라운 후보. 받아주지 않는 것을 추천해. 클라운이니까
*클라운 (Clown): 본래 광대를 말하는데, 각 세대별로 클라운이 있어. 그래서 예로 드는 거야. 만약 네가 노력을 하지 못하면 저렇게 될 거라는. 실패의 상징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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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지금의 마르쿠스만을 본다면 카인의 말이 맞는 소리이다.
하지만, 읽다 보니 마르쿠스가 누군지 깨달았다.
“블러디 제노사이더… 그 제노사이더가 지금은 클라운이라니… 허…”
전생에 유명했던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의 주역이 블러디 제노사이더였다.
경기병으로 유명한 슐랑거 백작가의 백사 기사단과 함께 동귀어진한 유명한 사건이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마르쿠스였다.
“합격.”
그렇게 자신만의 분류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
동아리방에 모인 친구들과 면접을 볼 후보를 고르는 아이들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역시나 마르쿠스였다.
“얘는 안 돼 범아.”
“왜? 어째서?”
“재능도 없고, 무엇보다 클라운이잖아.”
“입학 당시에 선천 재능이 중상이였다며, 그리고 클라운인 게 어때서?”
“암묵적인 규칙 같은 거야. 너는 잘 모를 수 있지만, 생각보다 중요한 거야.”
“클라운으로 정해진 사람은 그럼 잘나지면 안되는 거야? 평생을 클라운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그걸 누가 정하는데?”
자신의 물음에 한동안 대답을 못 하는 에밋이었다.
“범아. 네가 귀족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알아. 그래도, 이건 선을 넘는 일이야.”
“귀족들의 암묵적인 약속에 내가 끼어들어서?”
“그래. 거기에 그렇게 들인 마르쿠스가 변화가 없다면, 우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하… 고결함에는 책임이 있다는 5대 영웅시대 때만인가 보네.”
“그건!…”
순간 말이 막혀버린 에밋의 말을 받은 것은 량이었다.
“그럼! 중간으로 가자! 절충안으로. 범이는 받아들이고 싶어 하고 에밋은 결사반대인 거지?”
“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난 여전히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
“그럼. 수습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때? 무투대회 때 본선 진출하면 정식으로 받아들이고 아니면 제명하는 것으로.”
“범아, 꼭 받아들여야겠어? 다른 사람도 많잖아.”
“난, 에밋 네가 이렇게 반대하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 [우시아]에는 가장 간절한, 열의가 넘치는 사람을 받기로 했잖아?”
“하… 좋아. 수습으로 받아들이는 건 인정할게. 대신, 만일 무투대회 본선에 진출 못 하면 범이 너도 일반회원으로 강등한다는 조건으로.”
“에밋!”
에밋의 말에 카인이 언성을 높였다. 사실 범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동아리에서 범을 강등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심, 자신도 서운했다. 에밋은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더 서운한지도 몰랐다.
“좋아. 받아들일게.”
‘확실한 결과를 내면 다르겠지. 에밋도… 귀족이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도 [우시아]를 진지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까.”
“사실. 잘 모르겠어. 왜 그렇게도 클라운이라는 게 중요한 건지.”
“클라운이 중요하다기보다, 귀족들의 명예라고 해야 하나, 자부심이라고 해야 하나. 그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거니까.”
“단지, 클라운을 동아리에 들이는게?”
“그나마 아카데미의 클라운이라 들이는 걸 생각이라도 할 수 있는 거야. 만일 귀족들의 클라운이었다면, 절대 안 돼.”
“그놈에 귀족들의, 귀족들에. 이런 건 정말 모르겠다. 내가 봤던 귀족들과 너무 다르고 내가 배운 귀족들과 너무 달라…”
자신이 보아왔던 귀족은 전생에서, 전장에서 본 귀족들이었다.
하나같이 모두가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고, 능력이 있었다.
비록 재수가 없을지언정 능력은 있는 이들이었다.
안드로니쿠스의 [바람의 탑]에서 배운 귀족들은 하나같이 고결한 목표로 나아가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만나는 귀족들, 그리고 그 귀족들의 자제들은 그렇지 않았다.
능력이 없음에도 귀족이라는 혈통으로 자신들을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다.
대우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무시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다수가 그러했다.
갑작스럽게 조용해진 분위기에 량이 입을 열었다.
“그럼! 대충 다 정해진 거지? 따로 연락해서 면접 보자! 빨리하고 끝내야지!”
“그래! 빨리 부르자. 보고 싶어!”
량과 카인 덕에 다소 풀린 분위기에 면접을 볼 아이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는 아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