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30화 (30/217)

[30화]

스토 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

“나중에 너와 같은 실력의 상대를 만났을 때는 각오의 차이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각오의… 차이요?”

“그래. 같은 실력일 때는 절실함과 각오. 그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

‘각오… 그래. 진흙탕 개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지. 언제부터 고상했다고 내가…’

맞춤한 듯한 춤을 추던 대결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베어 들어오는 도를 흘려내지 않고 그대로 도로 막은 채 몸을 부딪쳤다.

같이 넘어져 뒹구는 사이 빠르게 마운트 포지션을 취해 도의 손잡이를 상대의 얼굴에 꽂아 넣으려는 순간.

허리를 이용해 자신을 밀어내고 일어서려고 했다. 그를 두고 보지 않고 도를 내려놓고 다시 돌진해 넘어트린다.

이어지는 것은 정말 개싸움이었다. 다만, 유술을 배워서 그런지 넘기는 모습이 마냥 개싸움만 같지는 않았다.

이내 머리를 땅에 박아넣는 순간, 자신의 상대가 빛으로 조각 조각났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도 뻗었다.

“와…. 죽겠네…”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대련으로 이렇게 진이 빠진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스승님과의 일방적인 대련이 아닌 대등한 상대와 대련, 그것도 자신과 싸움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뻗어서 쉬고 있는 순간에 빛이 공동의 중앙에 뭉쳐서 네모난 판이 만들어졌다.

[참오하라.]

글귀가 나타나고 사라지고 두 명의 자신이 결투하던 당시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와… 대단하다….”

네모난 판에 나오는 영상을 보며 그 마법에 놀랐다.

어디서도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한 마법이었다.

마법에 감탄을 그만두고 이내 그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전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로운 일인 동시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점점 영상으로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도가 움직이는 경로,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방향, 힘이 들어가는 순간의 움직임.

모든 것을 하나하나 눈에 새기기 시작했다.

얼마나 집중해서 보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적어도 10번은 넘은 것 같았다.

조금 천천히 보고 싶기도 하고 돌려서 보고 싶기도 한마음이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잠시 멈추라는 마음으로 손을 네모 판에 대는 순간. 거짓말처럼 영상이 멈추었다.

“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순간 당황하여 다시 네모 판에 손을 대자 영상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신세계를 발견했다!

네모 판에 손을 올리고 왼쪽으로 서서히 움직이자 영상의 관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모 판을 붙잡고 이런저런 모든 실험을 다 해보자 얼추 방법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이내 알아낸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자신의 모습을 관찰해 나갔다.

영상을 통해 보니 자신의 움직임을 보다 명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바로 벤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베는 것이 아니라 조금 사선임을, 뒤로 나아가는 움직임이 사선임을,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머리에 새겨 나아갔다.

‘재능이… 조금씩 다르게 베게 하는 건가… 어떤 게 맞는 거지… 너무 정직하게 베려고만 했나 내가…?’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자신을 보는데 푹 빠졌다.

그만큼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신세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껴지는 지독한 공복감에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중이 깨진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동의 한 벽에 길이 생겨났다.

“아… 으… 배고프다… 얼마나 지난 것인지도 모르겠네…”

나타난 길을 따라 나가자 처음 들어온 공간만 한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모든 아이가 모여 있었다.

“범아!!!”

“범!”

아이들이 모두 놀라며 자신을 반겨주었다. 카인은 날듯이 뛰어와 범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범아! 괜찮아? 놀랐잖아.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후… 다행이다. 난 내가 괜히 널 데리고 온 줄 알았잖아.”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며 자신을 걱정해주는 아이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들 그래? 얼마나 지났는데? 너희는 나온 지 오래됐어?”

“범아! 2일이나 지났어!!!”

“뭐!?… 어쩐지 겁나 피곤하고 배가 고프다 했다…”

호들갑 속에서 그나마 평정을 유지해 보이는 에밋이 차분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우리 다 똑같은 시련을 겪은 거지?”

“응. 그렇다고 들었어.”

“그럼… 그 마지막에 영상으로 나오는 그거 다 보지 않았어?”

“아! 그거? 막막 나랑 똑같은 애가 나와서 싸우는 거 영상으로 나오는 거!”

기다리지 못하고 카인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응. 그거. 그거 영상 관점도 바뀌고 느리게도 빠르게도 볼 수 있는 거 다 발견했어?”

그 말에 아이들이 모두 놀랐다.

“어떻게…?”

에밋과 샨은 어떻게 알았냐는 듯 놀랐고 카인과 량이는 범이도 알아냈다는 것에 놀랐다.

“우와! 우와! 범이 너도 알아냈구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대단한데 범이는? 대부분이, 아니 거의 모든 무사가 모를 텐데.”

“어떻게… 어떻게 알아낸 거야?”

“뭐야… 너희는 다 알고 있었어?”

“아니… 그걸 알아내는 사람들은 전부가 마법사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데… 무사들은 다들 보기만 하고 나오는데…”

에밋이 놀라 횡설수설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신기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손을 얹었는데 멈추길래 이것저것 해보았지. 그래서 그거 계속해서 보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그래도 2일이나 지날 줄이야…”

카인은 범을 구석구석 보느라 정신이 없었고 량은 여전히 범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에밋은 충격에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근데…. 먹을 거 혹시 없어? 너무… 너무… 배고프다… 이상하게 졸리지는 않네?”

충격에서 돌아온 에밋이 자신에게 동그란 환을 건네주며 말을 했다.

“일단 이거 먹어. 아무것도 없는 속에 좋을 거야. 그리고 시련을 겪는 동안에는 컨디션이랑 컨센트레이션 마법이 계속 너한테 부여되어서 그래.”

환은 곡물 맛이었다. 녹여서 먹으니 공복감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그래? 어쩐지 피곤하지도 않고 집중도 잘된다 싶더라.”

태연하게 말하는 자신을 보면서 샨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범이 너는… 집중하는 것도 네 큰 재능인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집중할 줄이야…난… 그렇게까지는 잘 안됐는데”

“에이~ 신기해서 그래. 언제 또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겠어. 그나저나 맞다! 에밋 진짜 고마워!! 엄청 대단하던데?! 진짜 덕분에 이런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고맙다.”

“아니야… 나야말로 정말 고맙다. 너를 보면 참 많이 배우는 거 같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나저나. 이제 끝이야?”

“아니… 너도 나왔으니까 이제 마무리가 시작될 거야.”

에밋의 말이 마치기 무섭게 공동의 중앙에서 비석이 솟아나고 벽의 몇몇 공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와…”

모두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드러난 몇몇 공간에 보이는 것은 화려한 아티팩트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완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무구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무구에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 공동 중앙의 비석에 각자의 이름이 빛이 나며 새겨지기 시작했다.

“범이랑 카인은 미안하지만, 아티팩트를 포기해야 해… 미안해… 가신이 아니면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어…”

“아!… 그래서 제약서에! 아니야. 괜찮아. 여기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는걸!”

“맞아. 카인 말대로 여기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도움이 충분히 됐어. 미안해하지마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실제로도 두 사람은 시련의 던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었다.

에밋의 덕이 아니라면,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비석의 가장 높은 곳에서 3번째에 위치한 범의 이름만 빛이 났다.

[범. 아티팩트를 선택하라.]

글귀가 나타나면서 몇몇의 아티팩트를 제외하고서는 모든 아티팩트의 공간이 열렸다.

“저는 아티팩트를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이내 글귀가 변하고 에밋의 이름이 빛이 났다. 그와 동시에 열리는 공동이 변했다.

[에밋 와흐네. 아티팩트를 선택하라.]

천천히 공동을 돌아보던 에밋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대뜸 자신에 질문을 던졌다.

“범아. 너는 마음이 끌리는 거랑 이성이 말하는 거랑 어떤 걸 고를 거야?”

“나? 나는 당연히 마음이 끌리는 거지!”

그 대답을 듣자 망설임 없이 투박해 보이는 팔찌 하나를 집어 드는 에밋이었다.

그렇게 샨과 량이 자신의 아티팩트를 고르고 카인은 범과 같이 고르지 않았다.

량이는 반지를 샨은 쌍으로 된 단검을 골랐다.

모든 아이가 아티팩트를 고르자 아티팩트가 있던 공간들이 다시 벽으로 변했다.

공동의 중앙에 통로가 하나 생겨나고 그 통로를 통해서 들어오는 인영이 있었다.

“아버지!!”

에밋이 처음 보는 표정으로 달려나가 안긴 상대는 중년의 미남자였다.

“내 딸!!”

마치 몇 년은 보지 못한 애달픈 부녀 상봉에 어안이 벙벙한 아이들이었다. 아니 자신과 카인이었다.

량이는 익숙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고, 샨은 어느새 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공작 합하(閤下)를 뵙습니다!”

샨의 외침에 자신과 카인도 다급히 한 무릎을 꿇고 옆에 앉았다.

샨의 외침에 두 사람이 그제야 다른 사람이 보이는 듯했다.

에밋의 얼굴은 어느새 곧 터져버릴 파이어볼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크흠. 너희가 에밋의 친구들이구나. 만나서 반갑구나.”

금세 신색을 회복한 공작은 공작다운 카리스마가 보였다. 하지만,

“에이! 아저씨. 인제 와서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없어요. 포기해요.”

거침없는 량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부녀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후… 량아. 계속 그러다가 언젠가 큰일 날 수도 있단다. 모두가 나 같지 않을 것이야…”

“에이~ 아저씨도 참! 저도 알죠! 근데 괜찮아요. 지금은. 여기서는.”

“하… 그래 네가 그렇다 하면 맞는 것이겠지, 모두 일어서거라. 편히 대하여도 된다.”

공작 합하의 말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왕국 유일의 공작. 유일의 초인인 가주. 그것이 우리 눈앞에 서 있는 공작 합하이기 때문이었다.

“샨. 너도 그만하거라.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히 해도 된다 했잖니.”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공작 합하와 아가씨의 수족. 편히 대함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 세바스챤 그 영감태기는 진짜… 그래. 아티팩트는 잘 골랐느냐?”

샨이 일어서자 범과 카인도 쭈뻣쭈뻣 일어설 수 있었다.

“어… 완드는 고르지 못했어요… 그대…”

자신의 팔을 들어 올려 팔찌를 보여주는 에밋이었다. 그리고 그 팔찌를 보자 공작은 감격하는 얼굴이었다.

“하! 드디어!…! 에밋.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구나. 대단하구나!”

“네…?”

“팔찌에 마나를 흘려 보아라. 그럼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작의 말에 따라서 자신의 마나를 팔찌에 흘려보내는 에밋이었다.

그러자, 투박해 보이던 팔찌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더니 어느새 30cm 정도 길이의 완드로 변하였다.

“완드로 너의 이름을 쓰거라!”

공작의 말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허공에 쓰자, 허공에 에밋 와흐네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그 글씨가 완드의 손잡이 부분에 새겨졌다.

아미쿠스 와흐네라는 이름 바로 아래 에밋 와흐네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에밋아. 그것이 선조께서 사용하시던 완드란다. 이름은 [마누스] 소서러의 힘을 타고났으나, 누구보다 마법사 같던 선조님을 위해 현자님께서 선물하신 아티팩트란다.”

“이게…. [마누스]… 근데 왜 팔찌로 되어 있던 거예요?”

“선조님께서 선물을 받으실 때 그 현자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고 하신단다. 너의 이성을 누르고 본능을 택하는 때에 너의 진짜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그를 따라 만든 것이라고 하더구나.”

“아….”

“고생했구나. 잘했다!”

“축하해 에밋!”

“아가씨 축하드려요!”

에밋의 새로운 완드는 특이해 보였다. 얼핏 보면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 팔찌의 모양으로 보았을 때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범아! 고마워. 덕분에 얻게 되었어.”

“아니야. 날 그렇게 믿어주는 게 더 신기하지. 결국에 네가 선택한 거니까!”

“그래도. 네가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으면 고르지 못했을 거야.”

“하하! 나머지는 식사하면서 이야기하자꾸나. 따라오거라.”

공작의 뒤를 따르는 아이들이었다.

정신없이 변하는 상황에서 누구도 에밋의 팔찌가 카인의 완드와 살짝 공명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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