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반 아이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량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량이가 알려 준 사실이 있었다.
“범아. 라니우스 님께 비약 먹는 것을 도와달라고 해. 스승님께서 그 비약이 마나를 늘려주는 게 다가 아니라고 하셨어.”
비약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량이에게 말로 표현 못 할 감사를 느끼며 스승님을 찾아갔다.
“스승님!”
“범이 왔니. 우승했더구나! 잘했다. 이리 와 보거라.”
스승님께 다가가자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손을 대셨다. 순간 빛이 났다가 사라졌다.
“스승님…?”
“오른쪽 어깨를 봐 보거라.”
오른쪽 어깨를 보니 도가 새겨져 있었다. 스승님의 도와 똑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네가 나의 제자라는 문양이다. 그리고 이걸 받아라. 우승한 선물이다.”
스승님께서 건네준 것은 도였다. 스승님의 도와 같은 크기의 거대한 도였다.
도 날은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돌며 요사스러워 보였다. 손잡이까지 일체형으로 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하게 만들어진 도.
손잡이는 가죽으로 동여 매여져 있었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도였다.
“스승님…”
“너도 이제 진짜 도를 가지고 다닐 때가 되었지. 그래도 아카데미에서는 아공간에 넣어 다니거라.”
팔찌에 마나를 넣자 작은 공간이 생겨났다. 자신의 키만 한 도를 그 공간에 넣자 쉽게 들어갔다.
‘[이니티움]을 선택한 게 신의 한 수였다니까.’
문득 자신이 [이니티움]을 받고 난 직후의 밤이 생각났다.
*
“카인도 잠들었고… 포션도 준비했으니까… 해 볼까?”
칼을 들어서 손을 꽤 깊게 그었다. 그러자 피가 줄줄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생각해보면 첫 봉인을 푸는 게 괴랄하긴 하다.’
마나를 팔찌에 불어넣으며 흘러내리는 피를 팔찌에 떨어트렸다. 피와 마나를 동시에 흡수해야 하는 것. 그것이 첫 봉인을 푸는 조건이었다.
‘그걸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전생의 로안에게 감사를…’
감사를 표하고 있는 순간 팔찌에 음각된 이름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니티움]에서 ‘이’만이 색이 변했다.
“됐다! 근데… 어떻게 해야…아!”
머리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지식이 있었다. 첫 봉인이 풀려난 [이니티움]의 효과와 사용 방법이 새겨졌다.
“이래서… 유물은… 유물이구나.”
자연스럽게 팔찌에 마나를 불어넣자 허공에 검은 틈이 생겨났다. 힐로 상처는 이미 치료가 된 상황.
“포션을…”
“오!”
포션을 넣었다 빼며 아공간의 놀라움을 다시 새기고 있었다.
“공간은… 생각보다 큰데? 작은 창고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그리고 성장을 보조해 준다는 건… 뭔지 모르겠네…”
그렇게 유물이 된 자신의 첫 아티팩트를 가지고 노느라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는 밤이 지나갔다.
*
생각이 지나자 올라오는 것은 감사함이었다. 스승님께 감사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항상 받기만 해서…”
“넌 내 제자다! 당연히 받기만 하는 게 맞는 거지.”
“아. 스승님 그리고 오늘 우승한 상품으로 비약을 받았는데 스승님께 꼭 도움을 받으라고 들었어요.”
“누가 그러더냐?”
“량이라구 파울로 님의 제자가요. 이 비약이 마나만 늘려주는 게 아니라 초인이 도와줄 때 내부를 변화시켜 준다고 말해줬어요.”
“허허허…. 성장의 비약인가 보구나. 대단한 걸 내어놓으셨구나.”
“성장의 비약이요…?”
“그래. 몸의 체질을 조금 더 마나에 민감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엄청난 비약이란다. 모르고 먹어도 마나를 늘려주는 대단한 비약이기도 하지만.”
“우와… 엄청난 거네요.”
성장의 비약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자신과 비약은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전생에서 들어 본 적이 없는 비약이었다.
‘확실히… 내가 아는 게 정말 하나도 없구나. 내 전생은…’
“오늘은 넘어가고 내일 먹도록 하자. 그것도 아공간에 넣어 두거라.”
“네!”
“자. 그럼 오늘 경기를 복기해 보도록 하자.”
복기를 마친 후에야 방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비약이라니…’
괜히 아공간에서 비약을 꺼내 손에서 만지작거린다.
“이게 내일 내 입에 들어가는 거라는 거지…”
비약은 무슨 고기도 마음대로 먹어 보지 못한 전생이었다.
“진짜… 다시 살고 볼 일이네…”
그렇게 쉽게 잠들지 않는 밤이 지나갔다.
*
눈이 절로 뛰어서 최대한의 빠르기로 준비를 하고 스승님의 오두막으로 향했다.
자신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스승님이 보이자 새삼 얼굴이 붉어진다.
그럼에도 자상한 말투로 나에게 말씀하시는 스승님. 덕분에 차분함이 돌아온다.
“범아. 앉아서 비약을 먹고 바로 ‘바람의 탑’을 운용하거라.”
라니우스의 말에 따라 비약을 먹고 ‘바람의 탑’을 운용했다. 비약을 먹자 전신에 마나가 충만하게 느껴졌다.
“충만함에 정신을 놓지 말거라. 끊임없이 마나를 움직여야 한다.”
처음 느껴보는 충만한 마나에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놓을 뻔했다.
“계속해서 마나를 이끌어라. 그리고 집중해.”
마나가 탑 하나를 다 채우고도 넘쳐서 두 번째 탑으로 향했다. 계속해서 두 번째 탑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렸다.
두드리고 두드리기를 계속했다. 그러자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두 번째 탑이 문을 열었다.
두 번째 탑은 꾸준하고 일정한 바람이었다. 쉬지 않고 끊임없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바람에 계속해서 몰입해 갔다.
한참을 새로운 바람에 대해서 알아가다 눈을 떴다.
“수고했다. 아주… 아주 잘했다.”
눈을 떠보니 해가 이미 지고 난 뒤였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스승님… 저 두 번째 탑을 열었어요.”
“그래. 알고 있다. 한 번 가볍게 ‘바람의 탑’을 운용해 보렴.”
다시 한번 가벼운 마음으로 ‘바람의 탑’을 운용해 보는 범이었다.
‘어…?어…?’
마나가 너무나도 편하게 느껴졌다. 이전보다 훨씬 간결하고 빠르게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스승님. 마나가 더 세세하게 느껴져요!”
“그래. 그게 성장의 비약의 효능 중에 하나지. 정말 수고했다.”
“감사해요 스승님. 스승님이 없었다면…”
“플레미에게는 내가 말해 놓았으니 상관이 없을 거다. 배가 많이 고플 텐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꾸나.”
“네!”
정말 스승님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스승님을 따라 나갔다.
스승님과 함께 간 곳은 티에르 님의 도축장이었다. 그곳에는 이미 카인과 유모가 있었다.
“어? 카인?!”
“범아! 축하해! 우승한 것도 모두다!”
“네가 어떻게…?”
“내가 불렀다. 이왕이면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더구나.”
“범 님 축하드려요! 우승하시는 모습 잘 봤어요!”
유모와 카인의 축하를 받으며 먹는 저녁은 정말 즐거웠다. 전생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충만한 느낌이었다.
자신을 위해 축하를 해주는 친구도 있고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스승님도 있다.
자신이 기본 재능이라고 무시하지 않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전생에서는 너무나 사람들을 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조차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기본 재능은 안 된다고 하던 사람들이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이야! 지금은 나도 내 사람들이 있어!’
소소한 축하파티를 하던 와중에 정말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량? 에밋? 거기에 샨?”
“범아~~ 우승한 것도 성취가 좋은 것도 축하해!”
“너희가 여길 어떻게…”
“내가 데리고 왔단다. 네가 범이라는 아이구나.”
아이들의 뒤로 들어온 사람은 하얀 수염이 길게 내려온 할아버지였다. 정말 인자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안녕하세요. 파울로 님을 뵙게 되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범이라고 합니다.”
“허허허 눈치도 빠르구나. 게다가 비약도 모든 효과를 보았어. 대단하구나!”
“감사합니다. 파울로 님 덕분입니다.”
“허허 네가 우승한 것을 내 덕이라고 하면 안 되지. 자네가 라니우스인가. 만나서 반갑구만.”
“파울로 님을 뵐 줄은 몰랐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스승님과 파울로 님이 따로 자리를 잡으시자 아이들은 이내 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와…. 범아 고기가 너무 맛있다…진짜 장난 아니야. 에밋네에서 먹은 것보다도 훨씬 맛있어!”
“량아… 당연한 거지. 우리가 지금 먹는 고기는 폐하도 쉽게 드시지 못하는 고기야.”
“응. 맞아 스승님께서 특별히 도축하신 고기들이야.”
“범아… 네가 진짜 부러워졌다 방금.”
정말 온갖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저녁이 되었다.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이 순간이 너무 즐겁다.
공작가의 공녀님과 친구를 하게 될 줄도 몰랐고 이렇게 편히 지낼 것이라는 상상도 못 했다.
모든 귀족은 쓰레기거나 재능을 타고난 재수 없는 것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진짜…. 진짜 전생에서 내가 좁은 세계에서 살았었어…’
전생에서 돌아온 지 이제 2년도 되지 않았는데, 전생보다 훨씬 많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
‘2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생활을 시작하는 건데… 진짜 재밌겠네.’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마무리하는 하루는 꿈결 같은 시간이었다.
*
“카인… 잘 지내고 있어”
“후우… 잘 다녀와.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너도 파울로 님께서 방학 동안 량이랑 같이 가르쳐 주신다고 했다면서! 그리고 2달인데 뭐.”
“그치… 엄청 나지… 그런데… 그런데… 좋겠다… 나도… 가보고 싶었는데…”
“다음에 꼭 같이 가자!”
“후우… 파울로 님만 아니었으면… 나도 같이 가는 건데… 알았어. 잘 다녀와!”
카인의 배웅을 받으며 오두막으로 향했다.
축제가 마무리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카데미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 때 특별한 계획이 없었지만, 스승님의 말씀에 계획이 생겼다.
방학 동안에 중앙신전으로 향하는 수련 여행을 떠날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설레기 그지없는 말씀이었다. 마틴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그중에서 가장 힘든 카인과의 인사를 나눈 후에야 오두막으로 향할 수 있었다.
“스승님! 저 왔어요!”
오두막 앞에는 여러 짐이 놓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 짐들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래. 출발 하자꾸나. 범아. 우리가 어느 길로 갈 것인지 내가 말해 주었지?”
“네! 수호성으로 우선 포탈을 타고 넘어간 뒤에 목책을 따라 중앙신전으로 향할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 그럼 어서 출발하자.”
정말 스승님이 대단해 보이는 범이었다. 포탈의 사용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초인은 몇몇 절차를 진행하면 사용할 수 있었다.
스승님의 덕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탑을 향해 걸어가는 스승님의 등은 정말 넓어 보였다.
포탈을 지나 수호성에 도착한 라니우스와 바로 동문을 통해서 빠져나갔다. 신전과 마탑지구를 구경할 사이도 없이 나와 곧장 관문을 향해 여정을 시작했다.
3일간 스승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여행은 값진 시간이었다. 스승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는 그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스승님! 관문이 정말 거대해요.”
“쌍둥이 관문이라고 한단다. 서대륙에 하나 동대륙에 하나 이렇게 있단다. 그리고 양쪽을 잇는 성벽이 굳건하게 서 있지.”
“근데… 수호산맥을 향한 성벽 말고는 벽이 없어요.”
“왜 그런지 알고 있니?”
“아니요. 그냥 논, 밭이 쭉 있고 마을들이 있어요. 엄청 신기하네요?”
“그건 중앙신전이 있으므로 그렇단다. 본래 도시가 없었어. 신전에서는 도시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런데요?”
“그런데 중앙신전이 있고 성벽이 저리 굳건히 있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거란다.”
“아아… 그럼 방벽은 왜 없어요?”
“중앙신전을 향해서 공격을 할 국가가 있을 거 같으니.”
“아…! 그래서. 우와. 엄청 신기해요.”
스승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중앙신전을 향해서 나아가는 사제(師弟)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 거대하지만은 않지만, 몹시 오래되어 보이는 성전이 눈에 들어왔다.
“스승님! 저곳이 중앙신전인가요?”
“그래. 저게 중앙신전이란다. 생각보다 작지?”
“네…수도에 있는 신전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렇지. 하지만, 저 성전이 무려 985년이 된 건물이란다.”
“985년이요?! 지금이 992년인데요?”
“그래. 분열 이후에 가장 먼저 지어지기 시작해서 7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이 된 가장 오래된 성전이란다.”
성전에 다가설수록 그리 커 보이지 않던 성전이 조금씩 조금씩 커 보였다. 그리고 문 앞에 도착하자 그 무엇보다 거대해 보였다.
“스승님. 성전이 갑자기 엄청 거대해 보여요.”
“하하하. 신기하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일이란다. 혹자는 성유물이 있어 그렇다 하기도 하고 건축의 방식 때문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아직 명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단다.”
스승님과 함께 하는 길을 거의 프리패스와 같았다.
문을 지나 주랑(柱廊: 기둥만 있고 벽이 없는 복도)을 따라 걸으며 성전의 기둥에 양각된 그림들을 보며 걸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범이었다.
“자! 다 왔다.”
“여기가 어디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