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전 제가 잘못한 줄 알았잖아요. 오셨을 때.”
*
“범이라는 꼬맹이가 누구냐!”
견갑(肩甲: 어깨에서 팔꿈치 부근까지를 보호하는 갑옷의 부속구를 말한다)에 불스를 문양으로 새긴 용병 무리가 아카데미 학생들의 막사로 와서 자신을 찾았다. 사람 무리가 아니라 야수들의 무리 같은 기세였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막사에서 나와 당당히 자신을 밝혔다.
“전데요?”
“하하하하! 진짜 꼬맹이였구먼. 우리 애를 찾아주었다지? 고맙다.”
자신의 얼굴만 한 손을 내미는 용병에게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할 일이어서 한 건데요 뭐.”
“하하하하 꼬맹이 마음에 드는구만. 10살 맞아? 난 10살 때 뭐 하고 있었더라.”
“구걸하고 다녔잖아. 우리랑 같이하겠다고 굳이. 참 내. 뭘 새삼. 범이라고 했니. 고맙구나. 덕분에 우리 아이를 찾을 수 있었어.”
덩치에 가려져 있던 용병이 나와서 말을 걸었다.
“너 이새…”
“감사하는 의미로 저녁을 가지고 왔단다. 너희가 50명이라고 했지? 충분히 먹을 음식을 가지고 왔으니 편히 먹으렴.”
“그래! 꼬맹이네 조는 우리랑 같이 먹자!”
“야! 부발이! 왔으면 나한테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오! 이게 누구야~ 병아리 원장님 파로 아니야?”
“아나. 이 무식한… 진짜 데마르 아니었으면 너넨 진작에 망했어.”
“그래서 열심히 데리고 댕기잖냐. 우리 저녁 먹으러 간다? 너도 갈래?”
“아씨… 진짜 무식쟁이 새키… 기다려 봐.”
파로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세 사람이 이야기하다 파로가 다가왔다.
“집합!”
파로의 소리에 부리나케 집합하는 아이들이었다.
“여기는 ‘불스’ 수호 용병단이다. 너희에게 저녁을 주러 왔으니 오늘 저녁은 편히 먹고 쉬도록 해라. 그리고 1조. 너희는 따라온다.”
아이들의 움직임이 일사불란했다. 4일간 얼마나 혹독한 일정이었는지 알 수 있는 동작이었다.
1조는 파로를 따라서 조금 떨어진 커다란 막사로 향했다. 막사의 꼭대기에 불스 문양이 그려진 깃발이 꽂혀 있었다.
막사로 들어가니, 자신들의 막사가 진짜 초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몬스터의 가죽이 바닥을 깔고 있었고 커다란 식탁에 각종 음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2명의 용병이 더 있었다.
“대장. 왓수? 누가 범이래요?”
“저 꼬맹이.”
키가 작지만 단단함을 몸으로 표현하는 용병이 이내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
“네가 범이야? 진짜 고맙다.”
그리곤 말과 함께 어깨를 치고 돌아갔다.
“앉아 앉아! 편하게 먹자고!”
부발이 그렇게 말했음에도 아직은 어색한 아이들이었다.
“괜찮다. 오늘은 편히 먹고 쉬어라. 어차피 내일 돌아가니.”
파로의 말이 나오고 나서야 각자 자리에 앉는 아이들이었다.
“오올~ 파로! 병아리 원장도 잘하는데?”
“닥쳐. 저리 가.”
모든 사람이 식탁에 자리를 잡자 부발이 입을 열었다.
“오늘. 여기 있는 범 덕분에 우리 막내가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한다. 맛있게 먹고! 죽자!’
“죽자!”
용병들의 선, 후창 이후에 식사가 시작되었다.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분위기가 즐겁고 더 익숙했다.
먹고 마시다 보니 용병들과 친해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
“그래서 전 제가 잘못한 게 있나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고민했잖아요.”
“원래 저 무식쟁이가 그래.”
“내가 어디가 무식하다는 거냐! 무식한 건 너지. 쯧”
“근데. 불스는 수호 용병대에요?”
“큿흠! 아니다! 우리는 용병대가 아닌 20개만이 존재하는 용병단이다!”
굉장히 어깨가 하늘을 치솟은 채로 말하는 부발이었다.
“그래… 이 무식이가 용병 대장이지. 정말… 데마르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망했을 텐데.”
“와… 엄청나요! 제가 그 수호 용병단의 대장을 만나고 있다니.”
정말 놀란 범이었다. 용병대라는 호칭은 누구나 달 수 없다. 3성의 마수를 잡은 곳만이 용병대를 칭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용병대 중에서도 각 성에 4개만의 용병대에 ‘단’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아이들이 용병과 어울리면서 잘 먹고 있는 반면에, 무엇이 불만인지 잘 먹지도 않고 불만에 찬 표정으로 있는 로안이었다.
계속된 자신의 칭찬이 듣기 싫었던 건지, 자신이 소외된 것이 싫었는지 결국 내뱉고 말았다.
“그래 봐야 고아 주제에. 쓰레기나 뒤지고 다니던 게 쓸모가 있으니까 좋나 보지. 격식도 없는 식사 따위…”
말을 끝내지 못하는 로안이었다.
혼잣말이라 생각했겠지만, 막사 안이었고 이 막사 안의 모든 이는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이들.
모두가 다 들었다. 시체를 쓰레기라고 하는 순간부터 냉랭해지고 말이 이어질수록 기세가 흉흉해졌다.
그 기세를 뒤늦게 알아차리고 말을 멈추었지만, 이미 쏟아진 말이었다.
“지금. 쓰레기라고 했나.”
일전, 자신의 어깨를 두드린 용병이 그르렁거리며 말했다. 그 기세에 정신이 나갔는지 말을 쏟아내는 로안.
“그래 봤자 용병 주제에. 날 뭐 어쩌려고. 저런 천한 고아 놈이랑 어울리는 주제에, 너희들도 귀족이 되어서 저런 놈이랑 어울리고!”
분위기는 점점 더 안 좋아졌다.
“대장. 쟤 죽인다.”
“죽여.”
냉랭한 용병들 사이로 파로가 끼어들었다.
“파로. 비켜라. 아무리 너라지만 안 돼.”
어느새 막사의 문은 다른 용병이 막고 있었다. 진짜로 자신을 죽일 것 같아 보이자, 그제야 두려워하는 로안이었다.
“부발루스. 한 번 넘어가 줘. 내가 총책임이야. 나도 죽이는 데 동의하는데, 내 신용이 걸려 있어.”
그 말에 움찔하는 부발루스 분노한 용병이었다.
신용이란. 용병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귀하기에 이들이 잠시 멈춘 것이다.
그때 조용히 이 사태를 보던 데마르가 나섰다.
“그럼. 조건이 있다. 저 새끼는 수호성 어디에도 평생 들어오지 못하는 최상급 제약서에 서명을 할 것. 부발, 파로 어때?”
그 말에 그 정도면 괜찮다는 듯 동의하는 두 사람이었다. 다행히 사태가 멈춘 것에 안도하는 파로였다.
“좋아. 그런데 그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조건에 동의할 때까지 저 새끼는 여기서 못 나가.”
“하…. 기다려 봐.”
그 말을 끝으로 파로는 막사 밖으로 나갔다. 남은 아이들은 어이가 없어 생각이 멈춘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냥 용병도 아닌 수호 용병대, 아니 수호 용병단 앞에서 저런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여러모로 폐를 끼치네요.”
자신이 태연히 나서서 사과했다. 자신도 도대체 무슨 개념으로 저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꼬맹이.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지. 고아인 게 죄도 아니고, 내 새끼들도 고아 많다.”
부발이 나서서 사과를 받아주었다. 조금 분위기가 풀리려는 찰나였다.
“고아 새끼들이…”
기어코, 다시 실언을 입에 담는 로안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발이 튀어 나가 로안을 후려쳤다.
“하여튼 귀족 새끼 중에 꼭 미친 새끼들이 있다니까. 애새끼가 벌써부터… 쯧 이런 새끼는 진작에 죽여놔야 하는데.”
내심 죽인 줄 알고 놀랐지만, 그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한편, 아쉽기도 했다.
“조장으로서 죄송합니다. 허나 모든 귀족이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스콜라스였다. 그 모습에 자신을 포함해 모든 아이가 놀라워했다.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스콜라스를 처음 본 탓이었다.
“하! 왕자 나리는 좀 다르다. 이건가? 아니면…”
놀랍게도 부발은 스콜라스가 왕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사를 받는 것을 전혀 어색해하지 않았다.
‘부발 님이… 뭔가 있나?’
그 모습을 보며 신기했다. 어쩌면 로사보다 더 자부심이 높은 스콜라스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만큼 신기한 일이었다.
그 사이 파로가 플레미 선생님과 함께 막사에 들어왔다. 그리고 본 것이 쓰러져 있는 로안이었다.
“아저씨!”
“오! 플레미 아니냐. 오랜만이네! 아카데미에 있다고는 들었는데 잘 지냈냐?”
“아니! 하… 정말. 아저씨 어떻게 안 되겠어요?’
“응. 안 돼. 둘 중 하나야. 죽든가 제약서를 쓰든가.”
“제약서도 그쪽에서 알아서 구해와야 합니다.”
“응 그렇대!”
단호한 부발의 말에 결국 한숨을 쉬는 플레미였다.
“하… 저 멍청한… 잠시 기다려 봐요. 통신을 연결해 드릴게요.”
이미 오기 전에 아카데미에 상황 설명과 연결을 부탁해 놓은 플레미였기에 바로 통신을 연결했다.
조금 지나자 통신 구슬 위에 두 사람의 인영이 떠 올랐다.
“오! 이게 누구야. 카시스 후작 나리 아니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귀족 나리가 이 새끼 아비 되나 보네?”
“허… 오랜만이네 부발.”
후작에게조차 말을 편히 하는 부발을 보면서 넋이 나갔다. 그리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카시스 후작에 더욱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넋이 나간 것이 자신뿐이 아닌 듯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나, 로사는 아버지의 성격을 알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충 상황 설명은 들었지?”
“한 번. 선처를 베풀어 줄 수는 없겠나. 아직 어린아이이지 않은가.”
“아! 몰랐을 수도 있겠네. 파로가 나간 뒤에 저 애새끼가 나한테 고아 새끼라고 하던데?”
이어지는 부발에 말에, 탄식을 내뱉은 카시스 후작이었다. 옆의 사내는 무엇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카시스 후작 때문에 가만히 있는 듯했다.
“애비 귀족 나리. 할 말이 있나 본데. 해 보시지?”
“아니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내일 제약서를 보내도록 하지. 그나마 선처해줘서 고맙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도 고생이 많다. 그래도 딸을 잘 키웠던데?!”
“고맙군. 그럼 다음에 보지.”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아이들도 대략 상황을 눈치챘다.
“그럼. 내일 제약서 오기 전까지는 대충 묶어서 구석에 놓는다.”
“아저씨… 그냥 데리고 가면 안 될까요?”
“응 싫어.”
“하…. 알겠어요. 내일 제약서가 오자마자 가지고 올게요. 죄송해요.”
“아냐. 니가 죄송할 게 뭐가 있냐. 됐어. 됐어.”
“그럼.”
인사를 하고 나가는 플레미 선생님이었다. 그 사이 아이들은 한껏 긴장된 상태였다. 그 상황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나서서 태연히 물었다.
“와…. 아저씨 초인이셨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웃던 부발이 웃음을 그치고 나직하게 자신에게 말을 했다.
“범이 너 진짜 재밌는 꼬맹이구나? 내가 무섭지 않냐?”
“왜요? 적으로 만난 게 아니잖아요.”
“하하하하하. 범이 너 진짜 마음에 든다. 나중에 수호 용병할 생각 있으면, 꼭 우리 용병단 와라.”
“그러면 저야 좋요!”
태연히 초인과 대화를 나누는 범을 보면서 신기한 생물을 보는 듯이 하는 아이들이었다.
다만 자신은 매일 초인을 보고 함께하고 스승으로 모셔서 그저 하던 대로 할 뿐이었는데 그것이 부발의 호감을 높이게 되었을 뿐이었다.
“근데요. 아저씨 부탁이 하나 있어요.”
“뭐냐. 말해 봐라.”
“그 제약서 있잖아요. 아카데미 수련회는 참석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뭐?? 왜 그러냐. 저 새끼가 귀족이라서 그래?”
그러더니 자신에게 귀엣말로 말을 다시 하는 부발이었다.
“저 새끼가 아카데미 졸업 못하게 하는 거라고 하던데?”
“아니요. 잠시만…”
이내 귀엣말로 다시 부발에게 말하는 범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잠시만. 파로, 데마르 잠깐 이리 와봐.”
세 사람이 이야기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부발이 무엇인가 한 것 같았다. 그러더니 모두가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괴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이내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좋아. 그렇게 해주마. 단! 아카데미 수련회 기간뿐만이다.”
부발의 말에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숙여 감사했다. 그리고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 나도 이뻐서 해주는 건 아냐. 그렇게 안 봐도 돼.”
로안이 이뻐서, 주눅이 들어서 그런 부탁을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워서 그런 부탁을 한 것이었다.
‘두고두고 괴롭혀야지. 굳이 다른 애들이 이걸 알 필요도 없고.’
*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플레미선생님이 막사로 들어오셨다. ‘불스’ 용병단의 막사에는 아이들이 그대로 있었다.
“어? 너희들 여기에서 잤니?”
“네. 로안 데리고 가려고 남아 있었습니다.”
“역시. 조장은 다른가 보네. 아저씨! 가져왔어요!”
“플레미야. 조건 하나만 더 넣자.”
“아저씨!! 안돼요!”
“아카데미 수련 기간에 오는 건 된다는 조건인데도? 범이 부탁해서 특별히 들어주는 거다.”
부발의 말에 웃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묘한 미소를 짓는 플레미였다.
“그런 거라면 좋아요! 얜 어디 있어요?”
“저기.”
구석에 있는 로안의 표정은 말 그대로 썩어있었다. 왜 하필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보기 싫은 고아 놈의 도움을 받는 건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로안이었다.
제약서를 수정하고 부발에게 확인을 시켜준 뒤 로안에게 던졌다.
“서명해.”
다른 때와 달리 한없이 차가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거지로 서명하는 로안이었다.
“그럼 다 데리고 나가라. 저 애새끼랑 더 있고 싶지 않으니.”
부발의 축객령에 플레미 선생님은 말없이 아이들을 모두 인솔해서 나왔다.
“너희는 바로 너희 막사로 가서 짐을 챙겨 나와. 너희는 오늘 뛰어간다.”
평소의 나긋한 목소리가 아닌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돌아갈 때는 마차로 간다고 했는데, 뛰어가는 거로 보아 문책성 처사로 보였다.
다들 로안을 한 번씩 보고 그저 한숨을 쉬고 짐을 챙기러 가는 아이들이었다.
나온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파로와 플레미 선생님이었다.
“너희가 종합 1, 2반이지. 그럼 그에 걸맞게 빠르게 간다. 뒤처지는 인원은 알아서 오도록.”
“무사 반 아이들은 마법 사반 아이들 짐을 들어.”
파로와 플레미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준비하고 출발했다.
수호성으로 오는데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오롯이 한 번만 쉰 강행군이었다.
“다들 들어가. 로안은 따라오고.”
다 죽어가는 얼굴로 겨우 걸어서 방에 들어가는 아이들이었다.
“아… 죽을 거 같아. 왜 그런 거야 범아?”
“뭐… 빚이랄까?”
“고마워 범아.”
카인과 대화를 하는데 뒤에서 로사가 말을 건넸다.
“응? 아니야. 근데 너가 왜 고마워?”
“로안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의 가신(家臣) 이거든…”
“아… 그래서 아까 같이…”
“내가 꼭 주의하라고 할게.”
“됐어 됐어. 너무 그러지 말고.”
‘의도치 않게 로사한테 도움이 된 건가…뭐… 나쁘지는 않네.’
이내 모든 아이가 방에 들어가서 쓰러져 잠들었다. 폭풍 같은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