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에 반응하는 로사였다. 로사가 쳐다보는 자리에는 어정쩡한 자세의 범이 서있었다.
“너…”
“어… 미안…”
둘 사이에 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악과 독기로만 살아온 30년을 보낸 10살 소년과 귀족으로서 가진 긍지와 자부심에 금이 간 10살 소녀는 그저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다.
“너…. 어떻게 날 계속 이기는 거지?”
“무슨 소리야?”
“내가… 내가… 어째… 너한테만 계속 지는 거지…?”
‘…내가 당연히 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잖아?’
“왜….? 나는 이기면 안 돼? 고아라서? 내 재능이 기본 재능이라서? 너는 귀족이고 최상위 재능이라는 이유로 난 항상 져야 하는 건가?”
“…”
“귀족이 이기는 게 당연한 거야? 재능에 고하에 따라 승패는 이미 결정된 거야? 넌 그런 세상에서 살아. 나는 그런 세상에서는 못 사니까.”
점점 이야기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올라와 격하게 말을 하고 말았다.
로사에게 말하는지 자신에게 말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일단 쏟아내 버렸다.
“고아라서 안 될 거다. 기본 재능이라서 안 될 거다. 이런 소리 신경 쓰지 않아. 네가 얼마나 잘난 가문의 자식이고 얼마나 잘난 재능을 가졌는지 알 게 뭐야. 난 결코 너에게 지지 않아. 아니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결국, 넌 나에게 지게 될 거야.”
“아니.”
부정하는 말과 함께 연무장을 나왔다. 홀로 남은 로사는 그제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범은 그저 자신의 갈 길을 걸어갔다.
‘너희가 핏줄이 대단하고 재능이 대단하다면, 난 회귀했어. 나는 결코 지지 않아.’
평소보다 격한 감정을 가지고 돌아가는 범이었다.
한편 오지 않는 로사가 걱정이 된 프라우는 연무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로사를 발견했다.
“아가씨!!”
“프라우…. 또 지고 말았어…”
“아가씨! 아니에요! 몇 년만 지나면 아가씨께선 그 고아가 바라보지도 못하는 곳에 있을 거예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럼요!! 아가씨는 왕국 제일 검가에서 가장 독보적인 분이신걸요!”
“후….”
눈물로 감정을 모두 털어낸 로사의 눈에는 단호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미안. 프라우. 내가 못 볼 꼴을 보였네. 맞아 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야.”
*
도축장으로 향하는 사이,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몇 번을 돌아가서 위로해 주어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쳤다. 모든 세상이 자신에게 안된다고 하는 것에 더 이상 대꾸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하나의 선택이 하나의 인연을 꼬아버린 것도 모른 채 범은 그저 도축장을 향했다.
그 후로 로사와 범은 서로를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그렇게 5일이 지나 방학이 되었다.
방학이 되자 카인과 함께 아카데미를 나섰다.
본래 아카데미에서 지내려 했지만, 카인의 계속된 강권에 방학 동안 카인의 집에서 지내기로 결정되었다.
카인의 말에 따르자면, 카인의 집은 여관을 한다고 했다. 여기저기에 분점이 있는 꽤나 큰 여관이라고 했는데, 방학 동안은 수도에 있는 여관에서 지내기로 했다고 들었다.
새삼 전생과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서는 죄다 주변인이 범죄자 아니면 또라이였는데 지금은 친구가 부잣집 도련님이네.’
카인을 따라가니 어느새 수도의 남부지역에 큰 여관 앞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여관의 이름을 본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머물다 간]
이 여관은 굉장히 유명한 여관이었다. 용병들에게는 무조건 1순위의 여관이었다.
깨끗하고 음식이 맛있고 가격이 적당한 여관으로 어느 곳을 가도 ‘바람이 머물다 간’이 있으면 그곳을 가는 것이 일과와도 같은 그런 곳이었다.
‘왕국 수도 지점장 아들인 건가…?’
수도의 여관에 안에 들어가자 모두가 카인을 반갑게 맞이했다. 다만 특이하다면 우락부락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었다.
본래 ‘바람이 머물다 간’에서 일하는 직원은 은퇴한 용병이나 새내기 용병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수도라서 그런가 싶었다.
“도련님!! 이제 오신 거예요?! 어떻게 한 번도 안 나오실 수가 있어요!”
“유모~~ 오랜만이야!! 아카데미에서 나가는 게 쉽지 않더라구. 공부도 엄청해야 하구. 그래도 어떻게 지내는지 다 알면서!!”
“그래도 그렇죠. 제가 왜! 굳이! 수도 있는 데요. 정말…!”
“카인…..?”
“아! 유모!! 얘가 범이야! 내 룸메이트이자 친구!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
“아하… 도련님에게 독설을 날리신 그분이시구나.”
갑자기 자신의 가까이에 다가와 하는 말. 왠지 모르게 싸늘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유모리고 하기에 너무 젊어 보이는 자태에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빨개졌다.
“어…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래도 도련님에게 잘 되었으니 이번에는 넘어갈게요! 진짜 안 그랬으면 쓱.”
“유모!!!”
“우리 도련님.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 유모를 애타게 찾던 게 엊그제 같은데 6개월 동안이나 헤어져 있더니 정말… 걱정에 눈물이…”
“유모!! 정말!!! 나 올라갈 거야!”
냉큼 범을 데리고 2층으로 향하는 카인이었다. 그런 카인을 너무나 귀엽게 쳐다보는 유모였다. 그러면서 범을 보며 고민을 잠시 하는 유모였다.
“범…범이라… 저 아이가 과연 우리 도련님에게 득이려나 실이려나… 우리 도련님이 정말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은데…”
2층으로도 들어가는 문이 있었고 들어가니 굉장히 깔끔하고 정돈된 방이 있었다.
2층으로 이루어진 방은 각 층이 거의 기숙사의 방과 넓이가 비슷했다.
“와… 카인 너 엄청 부자였네? 여기 후계자 이런 거야?”
“어? 내가 말 안 해줬어??”
“어 안 해줬어.”
“헤헤헤… 그냐앙~”
‘설마 했는데… 지점장이 아니라… 그냥 카인네 꺼라는 거잖아?’
“괜찮아. 근데 부모님은 여기 안 계셔?”
“아! 우리 부모님은 조금 지나고 오실 거야. 몇 년간은 나 때문에 순회를 못 하셔서 요즘 좀 바쁘시다고 하시더라구.”
“그나저나… 내 친구가 그 유명한 ‘바람이 머물다 간’의 후계자라니. 앞으로 숙식 걱정은 덜었네?”
“그럼!!! 당연하지! 앞으로 쭉 범이 너는 무료 숙식이지!! 그리고 아까 일은 미안… 유모가 내 일이라면 좀… 정신이 없어지는 경향이 있어… 후…”
“아니야~ 엄청나게 보기 좋았는데? 좋겠다 넌!”
“어…?어…?”
“아니 아니 그냥 사심 없는 부러움이랄까 나.”
“헤헤. 고마워”
방을 구경하던 중에 침대에 기둥에 ‘오치’라고 적혀있는 글자를 발견하고 카인에게 물어보았다.
“아. 그거 내 아명(兒名: 아이 때 이름)같은 거야. 예전에 큰 도시 위주로 부모님 따라 다녔는데 그때 내 키가 얼마나 크나 하면서 쟀거든. 온 김에 해야겠네! 범아 너도 같이하자!!”
‘오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기둥에 오치라는 글자와 함께 범이라는 이름도 새겨지게 되었다. 짐을 대충 풀고 내려오는 길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있는 카인은 말이 적었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범아. 범아. 너 오늘 식당에서 밥 먹어보면 깜짝 놀랄걸? 특히 수도에서는 정말 공들여서 섭외한 도축 장인분이 고기를 주시는데 진짜 장난 아니야.”
‘뭐… 그래 봐야 라니우스 님에 비하면야. 적어도 티에르 님 정도는 될 수나 있으려나?’
금방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은근히 붐비는 식당이었다.
“도련님! 어떻게 한 번을 안 내려오실 수 있으세요!”
“유모! 나도 이제 어린애 아니라구!”
“도련님은 어린아이 맞아요! 그리고 저한테는 평생 어린아이라구요!!”
“유모!!”
“카인. 너무 그러지 마. 널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으면 그러시겠어.”
그 말에 투덕대던 두 사람이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았다. 유모는 세상 맞는 말이라는 표정으로, 카인은 무언가 배신당한 표정으로였다.
“카인. 누군가가 너를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 건 엄청난 축복이야.”
담담하기만 한 말에, 그 덤덤함에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범아…미안”
“아니 아니 미안할 게 아니라. 그렇다는 거지”
“범 님… 도련님이 정말 좋은 친구분을 만나셨네요. 좋아요! 합격!”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선을 통과한 범이었지만, 이를 절대 알 리 없는 범이었다.
“유모… 미안 잘못했어.”
“도련님! 아녜요…!”
갑작스러운 신파 분위기였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그저 보기 좋아 보였다.
‘나도 아니다. 무슨…’
“어머! 내 정신 좀 봐. 도련님이랑 범님 식사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유모가 떠난 뒤에 카인은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범아… 난 항상 너한테 도움만 받는 거 같아.”
“무슨 소리야~ 네 덕에 방학에 수도도 구경하고 그 유명한 ‘바람이 머물다 간’에서 지낼 수도 있는데! 도움은 내가 더 많이 받지!”
“넌 진짜 평생 무료야! 진짜 고마워.”
소소하게 수다를 떨고 있는 중간에 유모가 양손에 대접을 들고 나왔다. 갈비뼈 5대가 이어져 있고 구워진 샐러드와 함께 으깬 감자가 같이 나왔다.
“도련님. 범 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범아. 너 진짜 놀란다!”
갈비는 먹기가 좋게 갈빗대 끝이 정리되어 있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다 자란 양이 아닌 어린 새끼를 도축한 고기 같았다.
도축하면서 배운 것이 있어 절로 분석이 되었다. 아무래도 카인이 왔기에 새끼 양으로 요리를 한 것 같았다.
양념이 발린 갈빗대 하나를 집어 들고 살짝 힘을 주자 부드럽게 그 살이 찢어진다. 달큼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뜯어낸 갈비를 입에 넣자 진한 향을 남기며 어느새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고기였다.
“맛있지? 맛있지!?”
먹지도 않고 먹는 모습을 구경하더니 호들갑을 떨며 말을 하는 카인이었다.
“와… 진짜 맛있다. 근데 고기도 좋긴 한데 요리를 엄청나게 잘한 거 같은데? 거기다 너라서 새끼 양으로 특별히 해주신 거 같고.”
“우와… 범아 너 진짜 고아 맞아?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카인… 내가 저녁마다 배우는 게 뭐라고 했냐.”
“아…맞네… 도축 배운다고 했지. 근데 있자나~ 우리한테 고기 주시는 분이 왕국 제일의 도축 장인의 제자 분이셔!”
“어?? 티에르 님께서 고기를 보내주셔?”
“응??어??? 어떻게 알았어?”
“그 티에르 님에게 도축을 배우고 있어서. 세상에, 너희 여관으로 들어가는 고기들이었구나.”
“헐… 헐…말도 안 돼…티에르 님께서는. 도축을 알려주시지 않는데?”
“세상에! 범 님! 티에르 님께 도축을 배운다는 것이 사실인가요?!”
곁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유모가 놀라며 소리쳐 물었다.
“네… 티에르 님께서 그렇게 유명한가요?”
“세상에… 그 티에르 님께서 도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니…”
“카인. 티에르 님이 유명한 분이셔?”
“범아. 너 혹시 라니우스 님이라고 들어봤어?”
“어? 어… 잘 알걸?”
“그럼 그분의 원래 직업이 뭐였는지도 알아?”
“응. 백정이셨잖아.”
“그렇지. 근데 지금은 초인이시잖아. 초인한테 도축하라고 할 수 없잖아? 그런데 그분의 제자가 티에르 님인거지. 그럼 왕궁에서 누구한테 도축하라고 하겠어?”
“그게… 티에르 님이라는 거야?’
“그렇지! 티에르 님께서 도축한 고기를 정기적으로 받는 곳은 왕국이랑 우리 여관 밖에 없다구! 나머지는 모두 경매로 팔려!”
“와…티에르 님 엄청 유명하시구나…”
“범아…. 너 설마 그러면 그 단도가…”
“응. 맞아 티에르 님께 받은 거야.”
“도련님? 저도…. 좀 알고 싶은데요…?”
“아…! 다른 게 아니라 티에르 님께서 범이가 이제 도축 혼자 해도 된다고 하시면서 단도를 주셨대!”
“어머! 범 님!! 대단하세요!!”
“아니에요. 그냥 욕먹지 않은 수준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도축 전 과정이 아니라 정형 정도 만인데요. 카인 잠시만 방에 올라갈까?”
“왜?? 왜? 유모도 같이 가도 돼?”
“어… 그래.”
어느새 방으로 올라온 세 사람이었다.
“음…카인 나 사실 라니우스 님께 제자가 되는 과제를 하고 있어. 그 과제를 다 하면 제자로 받아주신대. 도축을 배우는 것도 그 과정이였구….”
“???!?!?!?!?!?!?!?!?!?!?”
소리 없는 비명이 방을 가득 채웠다. 온 얼굴을 다해 경악이라는 단어를 보여주는 두 사람이었다.
“범 님… 고아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네. 고아 맞는데요?”
“와… 대단하다. 이러다가 네가 제일 먼저 초인의 제자가 되는 거 아니야?! 초인의 제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데…”
호들갑 떨며 신기해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자신이 티에르 님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족도 아니고, 초인도 아닌, 그저 순수한 백정인 티에르 님을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었다.
티에르 님 자체를 무시했다기보다 백정이라는 직업 환경에서 무시가 절로 나왔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참 나…. 고아라고, 기본 재능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나 백정이라고 무시하는 나나 다를 게 없구나… 나중에… 로사한테 사과나 해야겠네…’
그렇게 자신을 조금은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호들갑스러운 점심 식사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