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도축장에 다녀온 뒤에 들어간 기숙사의 방에는 카인이 아직도 코트를 입은 채 있었다.
“범아!!!”
가슴을 과하게 피면서 자신을 부르는 카인을 보며, 그 가슴에 달린 청동 브로치가 눈에 들어왔다.
“카인! 브로치 받았구나! 대단한데!?”
‘얘도… 진짜 재능괴물 중에 하나긴 하네…’
“나도… 오늘에야 받았어! 비록 우리 반에서는 마지막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것 봐봐!!”
카인이 침대에 고이 모셔둔 완드를 집어서 보여주었다.
완드는 일반적인 완드보다 훨씬 길었다. 거의 2m는 되어 보이는, 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길이였다.
거기에, 대부분 하나의 소재로 만들어지는 일반적인 완드와 다르게 검은색의 금속이 중심에 있고 그를 따라 나무가 엮여 감싸서 올라가며 맨 위에 빈 공간이 있는 모양이었다.
“오늘 플레미 선생님께서 축하한다며 주셨어. 엄청 좋은 거래! 근데 무속성의 마법사가 거의 없어서 방치되고 있다고 하시더라구. 기대하신다고도 하셨어!”
“오! 대단한데?!”
“그치? 내가 경지가 올라가면 갈수록 개량할 수도 있다고 하셨어! 평생의 동반자가 되어도 될 만하다고… 진짜 기뻤어!!”
“카인 대단하네~”
“너가 날 잡아줘서 그래… 고마워 범아… 앞으로도 정말 잘 부탁해. 근데 있잖아. 이 완드가 엄청 오래되었대.”
가만두면 끊임없이 완드와 플레미 선생님에 대한 찬양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 카인을 진정시키면서도 범은 의아함이 들었다.
‘전생에서… 이번 연도 아이들은, 특히나 우리 반 아이들은 다 한 번쯤 들어봤는데 어째서 카인만 들어본 적이 없지? 심지어 수치라는 이명까지 생겼는데 카인은 없단 말이지…’
지금 학년의 아이들은 정말 말 그대로 찬란한 아이들이었다. 특히나 종합 1, 2반의 아이들은 더더욱 대단했다.
이명(異名: 본 이름 외에 다르게 부르는 이름)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님에도 모든 아이가 이명이 생겼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는 점이다.
생산 계열의 아이들은 대부분 숨기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기에 이해가 되었지만, 카인은 마법사. 그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 의아한 범이었다.
‘포기하고… 완전히 마법에서 손을 떼었나… 그러면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그러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범이었다. 그리고 카인도 새로 보였다. 이명이 생길 것이 분명한 한 명을 자신이 더 만들었다는 것이기에 기분이 좋고, 그 아이가 자신이 친구라서 더 좋았다.
그런 아이가 울보에 자랑쟁이라는 것이 웃기기는 했지만.
’여기서 더 들으면… 귀에 피날 각이니까…‘
“카인! 진짜 대단하다. 축하해!! 나도 너무너무 더 듣고 싶은데 우리 약속한 게 있잖아.”
“아! 맞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역시 범이는 대단해!”
너무나 순수한 눈망울로 자신을 대단하다고 외치는 카인을 보니 죄책감이 조금 올라오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라 변명하면서 책을 드는 범이었다.
언제나 무식하게 두꺼운 [육체의 이해]가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
어느새 아카데미에 입학한지도 5개월째가 되어 갔다. 이제는 대련하는 풍경이 낯설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의외로 자신이 그렇게 배척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드러내놓고 싫어하는 것은 로안과 프라우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샨과 히베, 방인 그리고 베라트는 자신과 대련도 많이 하면서 친해지게 되었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거리를 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연무장에서 대련을 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모두 가검(假劍)을 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재능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 모두 도미토르 님의 명에 의해서 바뀐 점이었다. 진검을 들기에 미숙하다는 것이 가검을 든 이유였다.
재능은 평소의 도미토르 님과 다르게 긴 설명과 함께 사용이 금지되었다.
짧게 요약하면, 선천 재능이라는 것은 매우 크고 강한 힘이다. 그러나 그 재능에만 의존하면 한계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재능과 함께 자신의 무가 동일하게 섞일 때 진정한 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2학년 때 재능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과 지금의 무의 기초를 쌓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련에서 언제나 자신이 승자였다. 모두 ‘무’에 관해서 재능이 뛰어나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상은 10년을 전장에서 구른 덕과 기본 재능 덕이지만,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기에 무 그 자체의 재능으로 보인 것이다.
로운의 경우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 그냥 보였다. 어차피 자신도 싫어하는 귀족 나리라 신경을 끄고 살았다.
프라우는 그저 로사를 이겼다는 이유로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굳이 친해지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언제나와 같은 날이라 생각하면서 도축장에 도착한 범은. 도축을 마치고 티에르 님의 부름을 받고 선생님의 방으로 향했다.
‘도축이 생각 이상으로 재능에 도움이 된단 말이지… 재밌기도 하고… 이제는 항상 재능을 깨우고 있어도 조절이 가능할 정도라니.’
생각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재능이 발전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죽기 전에야 발을 걸친 곳에 금방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티에르 님! 저 부르셨다면서요.”
“꼬맹이. 축하한다. 받아라.”
무뚝뚝하게 말하며 범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티에르였다.
가죽으로 된 혁대와 함께 그 혁대에 꽂혀 있는 것은 작은 도축용 도였다. 조심스럽게 단도를 빼내자 묵 빛의 자태가 드러났다.
날의 길이는 자신의 얼굴보다 조금 길어 보였다. 예리하게 빛이 나는 날이 얼마나 날카로운 도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날의 끝에서 손잡이의 끝까지 묵빛으로 된 외날의 단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손잡이에는 가죽으로 마감이 되어있었고 맨 끝부분에 자신의 이름이 음각되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절대 범상치 않아 보이지 않는 단도였다.
“티에르 님…이게…”
“졸업 선물이다. 정형은 그래도 어디 가서 욕먹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니. 축하한다.”
예상보다 빠른 범의 성장에 오히려 놀란 것은 티에르였다. 미리 도를 준비한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티에르는 라니우스 님에게 언제나 죄스러운 마음이 컸다. 자신이 부족해서 스승님의 반쪽짜리 제자라는 것이, 범이 이번에는 스승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티에르 님… 감사해요…”
이런 선물을 받으리라 생각지도 못했었다. 감사를 표현하는 얼굴에는 다양한 감정이 묻어났다. 그런 표정에 헛기침을 한 두어 번 하며 말을 잇는 티에르였다.
“헛험. 네가 잘해서 받은 것이니 너무 그럴 필요 없다. 본래 도축자들의 전통이기도 한 것이니. 네가 스승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생각하거라. 단도를 다룸에 있어 스승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단도의 날은?”
“제대로 사용하면 날을 갈 필요가 없다! 정말… 감사합니다. 반드시 라니우스 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 제자가 될게요!”
선물을 받고 벅찬 마음으로 신전으로 향했다. 몬시뇰의 배려로 매달 편지를 마틴과 받을 수 있었기에 신전을 종종 찾았다.
편지에 단도를 받았음을 쓰려고 도착한 예배당. 그곳에서 편지에 내용을 더하고 잠시 감사함을 표현하던 중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예배당의 가장 앞에 있는 석주에, 어디선가 마주친 듯한 이름을 본 것 같은 느낌에 다가가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석주의 맨 아래 귀퉁이에 쓰여있는 글자를 발견했다.
[마틴]
빛이 나지도 않는, 그저 음각되어 보이는 그 글자에 몇 번이고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았다.
‘???? 마틴이… 벌써 수습 사제가 되었다고?!? 내가 아는 그 마틴인가? 설마… 근데…’
너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아선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몬시뇰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방에 노크하고 깨달았다.
‘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방금 미쳤… 어떡하지?’
정식으로 사제가 되었다는 것은 귀족과 동등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중 수도에 존재하는 몬시뇰은 의미가 남달랐다.
사제의 다음 서품인 몬시뇰이지만, 수도에 존재하는 몬시뇰은 대주교와 다름없었다.
다만, 수도의 국왕을 배려해 서품을 받지 않고 몬시뇰로 칭할 뿐이었다.
그리고 수도에서 몬시뇰을 맡은 사제님들 대부분은 추기경으로 서임(敍任) 되었다.
즉, 국왕과 다름없는 위치를 지닌 것이 수도의 몬시뇰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큰 권위를 가진 사람의 방에 무턱대고 찾아가서 노크한 것이다.
한창 자책을 하며, 도망가야 하는가 고민하는 사이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망함을 인지하며, 방의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부터 시작했다.
“몬시뇰… 죄송합니다. 이 늦은 시간에… 제가 너무 생각도 없이…”
자책하며 사과하는 범의 모습에 인자하게 웃는 몬시뇰이었다.
“괜찮습니다. 형제님이 오죽 놀랐다면 그렇겠습니까. 무슨 일이 형제님을 그리 요동하게 하였는지요?”
몬시뇰은 놀라긴 했지만, 범의 모습을 보고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그에겐 범이라는 소년은 너무나 기특한 아이였기에 그랬다.
자신의 환경에도 비관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아이이기도 했고, 꾸준히 예배당에 오는 소년이 너무 기특했다.
그를 보면서 고아원에 너무 무심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자한 몬시뇰의 모습에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몬시뇰. 사실 고아원에 제 형제가 있습니다. 동생과 함께 약속한 것이 저는 아카데미로 동생은 사제를 목표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오! 대단해요. 멋진 꿈이군요.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들어오게 된 것인가요?”
“아니요… 친형제는 아니지만, 고아원에서 만나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이름을 석주에서 보아서… 너무 놀라 이렇게 달려오게 되었습니다…”
이어진 말에 몬시뇰조차 놀랐다.
“그 동생의 나이가…?”
“저와 같은 10살입니다.”
10살에 수습 사제로 석주에 이름이 새겨지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아주 극히 드문 경우였다.
석주에 이름이 올라왔다는 것은 [프린시오 비블리아]에 이름이 올라갔다는 뜻.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롯이 자신의 일생을 그분을 위해 살아가겠노라 다짐하고 진심으로 맹세해야만 이름이 새겨지게 되었다.
10살. 순수한 믿음은 어른보다 나을지언정 일생을 드린다는 헌신은 몹시 어려운 나이었다.
“저와 함께 내려가 보도록 할까요?”
이내 몬시뇰은 범을 데리고 예배당으로 내려왔다.
“동생의 이름이 무엇인가요?”
“마틴입니다. 저기 구석에…”
석주의 한 귀퉁이에 몸을 숙이고 확인하는 몬시뇰은 이내 무릎을 꿇고 이름에 한 손을 얹은 뒤 기도를 시작했다.
이내 손을 떼고서 기도를 드리는 몬시뇰을 보면서 범도 그 뒤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느새 기도를 끝낸 뒤 뒤를 돌아본 몬시뇰은 무릎을 꿇고 있는 범을 발견했다.
‘보면 볼수록 정말 기특한 형제님이시군요…’
“범 형제의 동생이 하늘빛 머리를 하고 눈이 노랗게 반짝이는 형제가 맞나요?”
“네! 네. 맞아요! 설마… 정말로…?”
“축하드려요. 범 형제님의 동생이 진실로 수습 사제가 되었더군요. 다음 주쯤에 중앙신전으로의 여정을 출발할 듯하더군요.”
“아….아…너무…. 너무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감사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두 형제의 결단에, 마틴 형제의 신실함에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려야지요.”
몬시뇰의 축하와 함께 신전을 나섰다. 아카데미를 향하면서도 지금 꿈을 꾸는 것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단도를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는데, 마틴은 수습 사제가 되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방문이 어느새 존재했다.
“카인! 나 왔어!”
범은 자신의 코트를 열어 젖힌 채로 카인을 불렀다.
“왔어? 고생했어 범아.”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인사하는 카인이었다. 코트를 잡은 채로 카인의 앞에 다가갔다.
“책은 잘 읽고 있었어?”
“응! 역시 너무 재밌는 거… 어? 범아 그거 뭐야?”
“아… 이거? 에이 별거 아냐. 이제는 혼자서 도축을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주신 거야.”
단도로 으쓱거리는 범은, 전생을 살아온 노회한 용병이 아닌 그저 10살의 어린 꼬마였다.
“게다가… 진짜 놀라운 건 따로 있어. 마틴이라구 내 동생 알지? 걔가 이번에 수습 사제가 되었어! 10살에!!”
마틴의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이는 카인이었다. 단도에서 눈이 범에게 바로 향하는 카인이었다.
“마틴이? 10살에 수습 사제가 될 수가 있어??”
“그럼! 내가 석주에 새겨져 있는 이름도 보고 몬시뇰께서 확인도 해주셨어!”
몬시뇰을 보았다는 소리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지는 카인이었다.
“몬시뇰?!? 네가 몬시뇰을 뵈었다고?!”
“아… 나 수도에 올 때 신전 상단이랑 같이 왔었는데, 그때 인사를 드렸었어서… 오늘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몬시뇰의 방으로 가버려서…”
“범아!!!! 미쳤어?!?”
“아니… 나도 그때는 내가 미친 줄 알았는데 다행히 몬시뇰께서 좋게 보아 주셨어.”
“범아! 조심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은 정말, 정말 운이 좋아서 그런 거고! 그렇게 막 다니면 어떻게!!”
카인을 놀릴 생각으로 가득하던 범은 카인에게 오히려 폭풍이 몰아치는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지! 수도에 네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데! 수도에서의 생활은 말이야…”
지은 죄가 있어서 얌전히 잔소리를 듣는 범이었지만,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카인에게 말을 꺼냈다.
“카인…우리 책… 읽기로…”
“범아! 지금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책을 읽고 수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내가 누누이 얘기했지!! 수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단호했다. 자신의 필살기가 먹히지 않자. 그저 묵묵히 카인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가 10살 꼬맹이한테 잔소리나 듣고… 쟤는 왜 10살 주제에 저렇게 논리정연한 거야… 틀린 말이 없으니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시무룩해진 범과 달리 카인은 열정을 다해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아…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