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꽤 늦은 시간에 기숙사에 돌아왔음에도 카인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 일견 무식해 보이는 책을 보고 있었다.
“범아? 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있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됐어. 벌써 책 고른 거야?”
“응! 아직 내 길을 정하지 않았으니까 뭘 고르기도 애매해서! 그냥 마음에 드는 책을 가져왔는데, 이 책이 글쎄!”
“심각하게 크고 두꺼운데? [현자의 비망록]?”
“응! 엄청 재밌어. 마법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접근한 책인데, 거기에 구체적이고 상세한 논증들이랑, 그 시각이 굉장히”
“응 응. 재밌겠다~ 그래도 이제 자야지.”
‘말만 들어도 토나오는데… 마법사들은 진짜…’
어느새 카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한 범이었다.
“범아 넌 벌써 골랐어? 아니면 내가 추천해 줄까?”
“아냐. 괜찮아. 나도 골랐어.”
“역시 대단해! 그래도 나중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물어봐!”
“고마워.”
‘카인은 아는 게 정말 많단 말이지… 10살이 맞나 몰라. 마법사들은 원래 저렇게 다 똑똑한가?’
책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카인을 설득해서 겨우 재웠다.
남은 6일간은 매일 온종일 라니우스 님의 오두막에서 서킷을 수련했다.
재능을 개화시키는 것보다 서킷이 우선이었다. 조금은 익숙해지려 하는 때에 아카데미가 시작되었다.
오전 수업은 각자의 소개와 더불어 수업 내용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바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카데미에서 오전 수업에서는 대부분 예법과 상식 그리고 역사를 배웠다. 오후 수업은 각자 자신의 계열에 따라서 수업을 받았다.
오후 수업을 처음 가는 길은 설레었다. 아카데미는 철저하게 성적 본위의 구조이다. 자신의 성적에 따라 배움의 자유도가 천차만별이었다.
1학년은 처음 배정된 반에 따라서 수업이 진행되는데, 그 때문에 1-2학년 때는 반의 이동이 잦았다.
범은 [종합2반]. 최상위 재능을 제외한다면 가장 높은 반이었고, 수도 아카데미였기에 어떤 수업을 누구에게 받을 것인지 기대가 절로 되었다.
연무장에 도착하고 나서 잠시 뒤 들어오는 사람을 보고 놀랐다.
‘쟤가 왜 여길?’
들어온 아이가 로사였기 때문이었다. 뿐만아니라 로사와 같은 반인 프라우도 같이 들어왔다.
잠시 후 그 의문은 절로 해결이 됐다. 수업이 시작될 즈음 들어온 선생님은 키는 조금 작아 보였지만 육체미가 엄청났다.
부풀어 오른 근육은 하나도 없었지만, 극한으로 단련되어 보이는 몸은 일반인이 보아도 단련되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내 이름은 도미트로다. 내 수업에서는 따라오지 못하면 그만이다. 1학년의 목표는 기초 체력을 쌓는 것이니 그렇게 알아두도록.”
도미토르. 그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에게 도미토르라는 이름은 하나의 도시 전설 같은 이름이었다.
전생에 범이 전쟁 용병으로 이제 갓 브론즈를 달았을 무렵. 그 때부터 여러 가지 전설, 낭설, 괴담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범이 관심이 있게 들은 전설 같은 괴담이 도미토르에 관한 전설이었다.
그가 키운 용병은 햇병아리도 실버가 확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었다.
하지만 범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 누구도 도미토르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람이 없어 괴담으로 치부했는데, 그런 그가 눈앞에 있었다.
‘수도 아카데미에 있었구나…. 그러니까 모르지. 그나저나 귀족 나리들은 다 알고 있었나 보네.’
놀란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나니 적지 않은 박탈감이 들었다.
‘이러니 귀족들을 이기기가 더럽게 어렵지…’
“오늘은 기본적인 체력 훈련을 할 것이다. 1년간 무기를 쥘 수 없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불만이라면 나가면 된다. 그리고 모두 이것을 차도록.”
도미토르가 나누어준 것은 팔찌였다.
“지금 받은 것은 마나 구속구다. 기본 체력이 되지도 않는데 마나를 사용할 생각은 마라. 다행히 이번 기수는 모두가 마나를 지니고 있군.”
도미토르의 말에 모두가 범을 쳐다보았다. 아이들의 몰리는 시선을 담담하게 넘기면서도 은근한 희열을 느꼈다.
‘잘난 것들이 보기에 고아가 마나를 가지는 게 이해가 안 될 법도 하지. 그래도 꽤기분이 좋은데?’
“간단하게 몸을 풀고 달린다. 달리는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달리도록. 달리는 자세, 호흡 모든 것을 따라 해라.”
이내 몸을 푸는 도미토르였다. 다들 따라 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았다.
어떤 자세는 너무나 느렸고 어떤 자세는 호흡이 너무 길었다. 그나마 악착같이 따라 하는 아이 둘이 있으니 범과 로사였다.
“최상위 재능은 남다르다 이거군. 거기에 기본 재능인 고아 꼬맹이는 독기가 있고. 허나 나머지는 그저 그렇군.”
욕은 도미토르에게 들었지만. 분노는 범에게 쏟는 아이가 있었다.
“고아 따위가”
작게 하는 혼잣말이었지만, 그리 크지 않은 연병장이기에 모두가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분노를 표출한 것은 로안뿐이였지만, 모든 아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은 같았다.
‘운이 좋아서 좋은 집안에 태어났는데, 내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잘나신 분들이란…’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몸풀기만으로도 전신에 땀이 나는데 휴식은 없었다.
2열 종대로 아이들을 세운 후 바로 뛰게 하는 도미토르였다.
“바로 빠르게 뛸 필요는 없다. 그보다 내 자세를 호흡을 따라 하는데 신경 쓰도록.”
말을 마치고 달리는 도미토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힘의 낭비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
탄성이 나온 것은 범과 로사의 입에서였다.
타고난 재능만으로 도미토르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로사가 놀랍고 부러웠고 화가 났다.
‘쟤는 진짜 날로 먹는구나…’
로사는 자신 말고도 알아보는 동년배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심지어 고아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번 기수 병아리 중에는 눈 좋은 병아리들도 있군.”
다시 나온 도미토르의 칭찬에 모두가 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자세를 바로 따라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호흡이라도 따라 하려고 해야 할 것 아니냐! 그것도 못 하면서 뭘 하겠다고 아카데미에 온 것이냐!”
도미토르의 호통에 모두가 달리기에 집중했다. 집중하다 보니 연무장을 지나 강의동을 거쳐 숙소까지 뛰어왔다.
숙소를 돌아가서 연무장으로 향하기가 쉽지 않았다. 항상 달리던 자신조차 호흡에 신경을 쓰면서 뛰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금씩 호흡을 따라 하는 것은 역시 범과 로사뿐이었다,
“범을 보아라. 저렇게 흉내라도 내란 말이다!”
굳이 범을 예로 드는 도미토르였다. 그리고 이에 자극을 받아 어떻게든 해 보려 하는 아이들이었다.
어느새 연무장이 눈에 보일 무렵 모든 아이의 옷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럼에도 도미토르는 쉬지 않았다.
다시 연무장을 지나 숙소 근처에 왔을 때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제 걸어라. 천천히 걸으면서 호흡을 고르게 가져가야 한다. 고작 이 정도로 헉헉대는 걸 보니 갈 길이 멀고 멀었구나. 자세를 바로 세워야지!”
걷는 동안 도미토르의 강의와 지적이 쉼 없이 이어졌다. 연무장에 도착하자 아이들의 호흡은 그나마 돌아왔지만 그뿐이었다.
“그럼. 다시 뛴다. 도중에 지쳐서 쓰러지는 학생은 알아서 연무장으로 가 있도록!”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시 숙소 부근에 오자 걷거나 쓰러졌다. 그리고 연무장에 다시 도착했을 때 도미토르를 따리 뛰는 것은 범과 로사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로사는 다리가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자신도 한 명 한 명 쓰러지는 것을 보며 포기하고 싶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아이들 앞에서 쓰러지고 싶지 않았다.
그저 도미토르의 등만을 보며 달릴 뿐이었다. 어느 순간 도미토르의 등이 멈추었다. 범은 자신도 모르게 그 등에 부딪혔다. 정신이 없는 범에게 도미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고했다.”
미소를 지으며 쓰러지는 범을 보면서 도미토르 또한 미소를 지었다.
맛있는 먹이를 바라보는 미소 같지만,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
눈을 뜨자 맑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상쾌하고 기분 좋게 일어나자 주변에 아이들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빨리 일어났다고? 아니면 하루가 꼬박 지났나?’
주변을 둘러보니 새하얀 로브를 두른 사제가 보였다.
‘사제님이? 우리 수련을 위해 있다고?’
동대륙과 서대륙 모든 대륙에서 동일하게 제일의 가치는 강함이었다. 하지만 예외가 있는데 그것이 사제였다.
사제는 사제라는 것 하나만으로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프란시오 비블리아]에 이름이 등재되어야 해서, 사제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존중과 배려를 받는다.
어떻게 보면 귀족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사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사제가 학생들을 위해서 아카데미에 있다는 것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는 범이었다.
‘아무리 수도 아카데미라고 한다고 해도 사제님이… ’
괜히 마틴이 감히 사제가 될 수 있을까 한 것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도미토르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그저 웃음을 짓고 나가는 사제님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이번 한 번뿐 만이 아니라는 것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범이었다.
“왕궁에서 너희를 위해 신전에 부탁해서 사제님을 보내주셨다. 이번 학년에 대해 기대가 큰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영 아니군.”
왕국에서 얼마나 이번 학년에 기대가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덕분에 범도 혜택을 받게 되었지만, 즐거움보다 씁쓸함이 더 컸다.
‘이래서 있는 놈은 더 잘 하는 거지… 거기에 최상위 재능이 왕자이니 더 한 거고.’
사제가 있다면 무리하며 수련을 이어갈 수 있다. 게다가 사제들의 치유는 자연치유를 높여주는 것이기에 단련에 매우 좋다고 알려져 있다.
“병아리들에게 과분한 대우라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더 힘든 훈련을 할 것이니 알아두어라. 너희들의 1 차 목표는 5바퀴를 완주하는 것이다.”
5바퀴면 대략 30키로미터. 그게 몸풀기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그 후에는 너희 몸을 사용하고 단련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난 모두를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 따위 없다. 따라오는 놈만 데리고 갈 것이니 알아서 따라오도록. 연무장 정리를 하고 가라. 그리고 범은 나에게 오도록.”
말과 함께 도미토르가 나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범에게 향했다. 범은 그저 묵묵히 정리하고 나가려는 찰나였다.
“고아 주제에, 그래도 체력은 있나 보지? 그래 봐야 기본 재능 주제에 쯧.”
연한 갈색 머리의 소년이 말하는 것이 보였다. 굳이 자신의 성을 말하며 자기소개를 했던 아이였다.
“그 고아보다 못한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로안이었나?”
“이래서 기본조차 되어있지 않다니까. 감히 내 이름을 부르지 말도록. 나는 필스너 가문의 적장자. 네가 감히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다.”
“여기는 아카데미입니다만, 아카데미에서는 모든 학생이 평등하다. 오로지 선, 후배만이 존재한다. 제 1 수칙인데 모르나 보지? 아니면 너무나 대단한 귀족님이라 아카데미 따위는 우스운가 봐?”
비아냥거리는 범에게 말을 잇지 못하는 로안이었다. 왕가(王家)조차 아카데미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 근간이 초인에게 있기에 아카데미에서는 아카데미의 법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고작해야 자작 가문이 아카데미를 무시할 수 없기에, 로안의 얼굴은 붉다 못해 터질 것처럼 변했다.
‘그래도 영 멍청하지는 않나 보네. 꼬맹이라고 해도 알 건 아나 보지? 귀족 가(家)의 꼬맹이는 배움이 다르긴 한가 보군…’
“두고 보자… 고아 따위….”
그런 로안에게 범은 진심으로 우러나온 미소를 띠며 말해주었다.
“우와! 너무 무섭다아. 귀족님께서 두고 보자 라니! 잘 알아둘게 로.안!”
‘그래봐야 꼬맹이지. 10살밖에 안되는.
밖으로 나와 도미토르의 사무실로 향하며 너무 웃기고 즐거웠다.
‘전생에서는 귀족만 보면 벌벌 떨었는데.’
전생에서는 귀족 나리들 앞에서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힘이 있었고 위엄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고개를 들어 본 귀족들은 자신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치기 어리고 단순한 그 모습에 그들도 같은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재능과 혈통이 다가 아니야. 내가 증명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