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8화 (8/217)

[8화]

감각이 살아났다. 재능의 한 자락이 피어올랐다. 지쳐가던 것이 거짓말이란 듯 신나게 양을 잘라나갔다.

“흠 꼬맹이. 도축에 꽤 소질이 있는데? 진작 그렇게 할 것이지. 좋아. 이건 쓸 만하겠군.”

정신없이 잘라놓고 칼을 내려놓자 들려온 티에르 님의 칭찬이었다. 하지만 귀에 꽂히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느껴졌어. 아직 깨어난 건 아니지만, 확실히 비교 할 수 없이 빠르지 이대로 개화만 시킨다면…’

몸이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오두막으로 향하는 그 발걸음은 너무 가벼웠다.

‘기본 재능으로…’

새삼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해가 더 밝아 보였다.

*

어느새 2주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2주간 정말 많은 경험을 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라니우스 님께서 도축한 불스고기를 먹은 일이었다.

고작 고기를 먹은 것이 뭐 그리 인상 깊냐 싶었지만 맛의 폭력에 굴복한 날이었다. 라니우스 님께서 도축한 고기는 차원이 달랐다.

그 다음은 재능을 일깨웠다는 점이었다. 아직은 미미해서 베는데 도움이 되는 것뿐이었지만, 전생에 비하면 20년이 빠른 속도였다.

거기에 더해 열 번 정도는 기본 도식을 마칠 수 있다는 정도였다. 2주간의 변화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변화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입학식을 하루 앞둔 날이 다가왔다.

“꼬맹이, 내일 입학식이지?”

“네! 내일 입학식이에요.”

‘이제는 꼬맹이라는 말도 익숙해졌어. 진짜 가끔은 어린애가 된 것 같으니…’

“입학식이 끝나고 나면 1주일 동안 입학 대기 시간이 있는 건 알고 있나?”

“네! 일주일 동안 반도 나누고 확인 작업을 한다고 들었어요!”

“그럼 그 시간에 아카데미 도서관이 개방되는 것은 알고 있겠구나? 그때 [바람의 탑]을 찾아보거라.”

“[바람의 탑]이요?”

“그래. 꼬맹이 안드로니쿠스 님을 알고 있나?”

“유명하신 분인가요?”

“본명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명은 모두가 알고 있는 분이시지. 폭풍의 검은 들어보았지? 그분의 이름이다.”

“ㅆ…우와… 엄청난 책이네요? 어떤 책인가요?”

순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욕이 나올 뻔했다.

‘폭풍의 검이라고? 진심인가?’

“그냥 읽어봤을 때는 그저 평범한 책이다. 그 책을 가지고 마나 서클릿을 하면 그분의 서클릿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꼭 찾아서 보거라.”

“라니우스 님…. 라니우스 님께서도 익히고 계신가요?”

“내가 익힌 것은 다른 것이다. 나도 던전 탐사 도중에 알게 된 사실이니, 아마 아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을 것이다. 네가 성실했던 상이라 생각해라.”

“…감사합니다…”

‘진짜 이번 생은… 미쳤다. 상급의 오러 서킷만으로도 충분한데 전설의 것이라니…’

새삼 달라진 변화가 느껴지는 하루였다.

*

두 번째 입학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잠을 설치고 말았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동안 심장이 두근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부모들, 각종 길드 관계자들, 귀족들이 아카데미로 향하기 때문이었다.

오늘 치러진 입학식은 입학생이 즐기는 그런 입학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각귀족들과 길드들을 위한 입학식이었다.

입학식은 재능판별기에서 각자의 재능을 나타내고, 각 귀족과 길드 관계자들은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서 모여드는 날이었다.

‘거기에 수도 아카데미니… 더하면 더하겠지

라니우스 님의 말에 따르면 재능판별기는 본래의 이름이 파루스라고 하셨다. 등대와 같이 그저 길을 안내해주는 유물이라고 하셨다.

‘처음 알았어 그냥 등급별로 나누는 악독한 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재능 판별기에 들어가면 그 판별기 위로 목록이 뜨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름이 재능 판별기로 불리는 것처럼. 지금은 아이들의 가치를 매기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아카데미의 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강당에 도착하자 무수히 많은 아이들이 서 있었다. 강당의 강단에는 다섯 개의 원통들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서 계셨다.

2층에는 부모들과 위세가 약한 길드나 클럽들이 있었고 3층에는 귀족들과 길드 관계자들이 있었다.

‘와… 여기는 강당에 2층이랑 3층도 있네. 역시 수도 아카데미라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강당의 문이 닫히고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오늘 수도 아카데미 입학식에 참여해 주신 여러 귀빈들을 환영합니다. 이제 곧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정중하게 말하던 선생님의 행동과 말투가 사뭇 위압적으로 변했다.

“수도 아카데미에 지원한 예비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고합니다. 오늘은 입학식이면서 여러분의 재능과 적성을 알 수 있는 날입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자신의 판별표는 판별이 끝나고 바로 내려가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정중하게 변한 아카데미 선생님이 선언하셨다.

“그럼 이제 신력 990년 아카데미 입학식을 시작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2층과 3층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5명의 이름이 각각의 원통형 위에 떠올랐다.

‘역시나, 여기서도 고아랑 평민이 먼저구만. 주인공은 귀하신 귀족 나리들이라는 거겠지… 쯧’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이름이 떠오른 것을 보고 강당으로 향했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긴장이 되었다.

재능 판별기 안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들어가자 몇 번의 빛이 점멸되고 빛이 꺼지면 나오면 되었다.

10초. 아이들의 인생이, 미래가 결정되는 시간이었다. 순식간에 10초가 지나갔고 범이 강단에서 내려와 자신의 판별표를 받았다.

‘어?!’

*

그 시각 3층에서는 각 세력의 고위 인사들만의 파티가 있었다. 3층은 밖에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마법이 부여된 유리로 되어 있었다.

3층의 실내는 강당이라기에 화려했다.

그들은 파티 중임에도 재능 판별기에서 표기되는 재능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가장 구석이지만 가장 넓은 장소를 차지하는 테이블

여 기사와 중년의 귀족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로사는 거의 마지막이겠군. 인재 분류는 잘하고 있나?”

“네 후작님. 지금 바로바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재능이 다소 낮더라도 적합도가 높으면 입학을 포기하더라도 영지로 데리고 오도록.”

“네. 알겠습니다.”

순간 웅성거림이 생겨났다.

“허 기본 재능이라니. 몇 년 만인 건지. 그래도 적합도는 나쁘지 않군”

“하지만. 기본 재능인 이상 한계가 명확한 것 아닌가요?”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 다만, 같은 경지라면 이길 수 없는 정도랄까.”

“아! 그렇군요. 저는 기본 재능이면 안 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너의 이런 부분 때문에 곁에 두는 것이지. 재능이라…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재능이 무조건 경지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란다.”

주군과 기사의 관계라기보다 스승과 제자처럼 보이는 이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웅성거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탄사와 탄식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탄성이 나오기 전, 범이 판별표를 받아들었을 때 믿어지지 않는 것이 보였다.

‘적합도가 성장했어?’

자신의 판별표는 본래

[범 무인 / 중 / 기본]

이런 표였지만 지금은,

[범 무인 / 중상 / 기본]

이렇게 나와 있었다.

‘왜 적합도가 오른 거지?’

수많은 생각과 상념이 휘몰아치는 순간, 전생과 자신의 6개월이 떠올랐다.

‘적합도는 고정이 아니었구나!’

이 세계에서 아무도 관심이 없어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는 범이었다.

‘내가 보낸 시간이 의미가 없는 시간이 아니었어!!’

온갖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잘 가고 있음에, 그리고 나아갈 수 있음에 고양감이 오르고 열정이 불타오르는 무렵.

순식간에 고양감과 열정이 바로 식어버렸다.

‘찬란한 세대의 주역들이 나랑 동기라니. 수도 아카데미 난리 났던 그때가 이때라니. 잘나신 귀족 나리들이 재능도 잘나셨구만… 세상’

끓어오르던 자신의 열정과 고양감을 순식간에 식어버리게 만든 광경이 범의 눈앞에 있었다.

[스콜라스 마법 / 상 / 최상]

[로사 무인 / 상 / 최상]

[에밋 마법 / 상 / 상]

[재인 생산 / 상 / 최상]

[로안 무인 / 중 / 상]

넋을 놓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유독 범과 비슷한 나이대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들이 튀어나왔다.

그리하여 그들을 찬란한 세대라고 불렀는데 그 세대의 중심을 이룬 세 명이 등장한 것이다.

블레어 왕국의 왕자

남부의 군권을 쥔 변경백의 딸

왕국의 재산을 ⅓ 쥐고 있다는 귀족의 딸.

찬란한 세대의 주역으로 손꼽히는 셋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범과 같은 동기였기에 범의 고양감이, 열정이 식어버린 것이다.

재능이 상인 인재는 많이 나와야 일 년에 두 명이었다. 최상의 인재는 100년에 한 번 정도로 나오면 자주 나온다고 하는 재능.

그런 백년지재(百年至材)가 세 명. 상의 인재는 열 명이나 나온 미쳐 돌아가는 학년이었다.

1층에서는 중위 재능을 받아 기뻐하던 아이들이 허탈해하고,

2층에서는 혼돈의 카오스가 이루어지는 혼란이,

3층에서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 가운데 이유도 없이 화가 났다. 뭔가 해 보려고 할 때마다 가로막는 것이 있는 느낌이었다.

‘찬란한 세대고 나발이고. 내가 이기면 되는 거잖아. 내가 기필코…’

왜인지 모르겠지만 재능이 뛰어난 그들에게 열이 받으면서 반드시 그들을 이기리라 다짐하는 범이었다.

이렇게 파란이 일어난 입학식이 마무리되었다. 입학을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은 우측, 포기한 아이들은 좌측으로 나갔다.

우측으로 나간 아이들은 판별표에 따라 반과 숙소가 배정되기에 범 또한 우측으로 나갔다.

그렇게 매년 있는 입학식이, 수도에 폭풍을 몰고 왔다.

*

강당의 우측으로 나왔지만, 자신은 반 편성을 받지 못했다. 안내하는 사람에게 이끌려 다른 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적합도가 중상이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상담실이라 안내받은 작은 방에는 세 사람이 앉아있었다.

중앙에는 안경을 쓴 학자 풍의 남자 선생님.

좌측에는 나이가 있는 기사.

그리고 좌측에는 붉은 머리에 굉장히 젊어 보이는 여자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순간 여자 선생님을 보고 범은 화들짝 놀랐다. 전생에서 가장 범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마법사였다.

‘폭발의 마녀’ 플레미. 그녀가 전장에 서는 모습을 보고 전율했던 범이었다. 그녀가 어린 모습으로 범의 눈앞에 있었다.

범의 놀란 표정을 보고 안경을 쓴 선생님이 말했다.

“범 학생이 플레미 선생님을 알고 있나 본데요? 역시 유명하십니다”

“훗. 제가 이 정도랍니다.”

“반가워요. 범 학생. 범 학생이 왜 상담을 받는지 알고 있나요?”

“음… 제가 기본 재능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순진무구하지만 열정 넘치는 어린아이! 잘하고 있다!’

“그것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아카데미 입학 후 중도에 포기할 시 10년 동안 병사로 복무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나요?”

“네! 알고 있어요. 그래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갑자기 노기사가 말을 가로챘다.

“허. 수도 아카데미 수준이 언제 이렇게 떨어진 건지. 기본 재능도 기본 재능인데 역시 고아라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온 거겠지. 쯧 그래서 아무나 받으면 안 되거늘…”

나름 천진한 아이를 연기하던 중에 열이 확 뻗쳐서 뭐라고 하려는 순간, 자신이 열 받아서 더운 것이 아닌 방의 온도가 훅 올라간 느낌이 들었다.

“우와. 너무 잘나게 태어나서 그 나이를 먹도록 익스퍼트에서 지지부진한가 보다. 고아보다 못하네~”

웃으면서 말하는 여 선생님에게서 열기가 무럭무럭 나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젊은 여자 선생님이 기사를 압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아였다니 더욱 놀랄 일이었다.

‘폭발의 마녀가 나처럼 고아였어?’

“범 군. 고아는 원래 그래요. 능력이 없으면 밟힐 뿐인 거구요. 거기다 기본 재능이라 더 심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플레미 선생님의 말에 범이 체한 속이 내려가듯 시원함을 느끼며 상큼한 미소로 대답했다.

“네! 실력이 있으면 고아라도 밟을 수 있는걸 선생님께서 지금 보여주고 계시잖아요! 할 수 있어요!”

‘시원하다! 역시 멋진 사람이었어!’

“호호호호호. 마음에 드는 학생이네요. 플레미라고 해요. 나중에 부탁할 일이 있다면 찾아와요. 두고 볼게요. 그럼 이거 가지고 이만 나가봐요.”

범에게 브로치가 하나 날아왔다. 브론즈로 만들어진 브로치에는 [종합2반 범]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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