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날이 밝아오자마자 아침을 먹고 예배당으로 향했다. 프란체스코 님의 배려로 한 주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낼 수 있었기에 예배당으로 온 것이었다.
‘안 봐도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텐데… 안 보냈다가는.’
예배당에 온 김에 맨 앞에 앉아서 잠시 시간을 보내는 범이었다.
‘이상하게 여기는 마음이 편안해 진단 말이지. 정말 감사해요. 이번에는 다르게 살아갈게요.’
그리고 그런 범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참으로 기특한 형제님입니다. 한 번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서 프란체스코의 말도 있었으니…’
어느새 몬시뇰에게 신실하고 기특한 형제가 된 범이었지만, 범은 모르는 일이었다.
예배당을 나와 오두막으로 향했다. 저녁의 풍경과는 또 다른 수도의 거리를, 아카데미를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오두막에 도착했다.
‘여기는 전혀 수도같지 않단 말이지… 요람은 어떤 느낌일까.’
오두막에 도착하자 이내 라니우스 님이 나왔다.
“꼬마.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도축을 배우는 게 너무 궁금해서요!”
‘이제 자동으로 나오기는 하는데… 진짜 오글거린다.’
그래도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라니우스 님을 보니 오글거린 값을 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래. 그럼 따라와라. 내성 끝으로 가야한다.”
라니우스 님이 가는 길을 따라 구경하던 범은 어느새 도로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와 수도에 이런 곳도 있었어? 분위기가 아예 다른데’
아직 아침인데도 어둡고 스산한 느낌이었다. 서쪽의 신전과 북쪽의 왕궁 사이에 있는 골목길은 왠지 모르게 음산한 기분이 들었다.
“꼬맹이. 감이 좋은데?”
“이 골목은 왜 음산한 느낌이 드는 건가요?”
“이 골목의 이름이 뭔 줄 아나 꼬맹이.”
고개를 젓는 범을 보고 말을 잇는 라니우스였다.
“비천자의 거리라고 불린다. 가장 비천하지만 필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여서 그렇지. 백정, 장의사, 망나니 등이 살아가고 있단다.”
“아 근데 왜 음산한 건가요?”
“그건 네가 기운에 민감한 편이라서 그런 거다. 죽음에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그런 기운이 쌓이는 것이지. 그래서 감이 좋다고 한 거다.”
‘어쩐지 전장이랑 비슷한 느낌이 살짝 있더라니 광기가 없어서 그런가 싸한 느낌이네.’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거리에 끝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티에르 도축]이라고 씌여진 건물이 있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곰같은 덩치의 산적 부두목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라니우스 님! 어쩐 일로 이곳에 오셨습니까?”
우렁차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니 티에르인 것 같았다.
“오랜만이구나. 티에르. 살이 많이 빠졌구나… 오늘은 너한테 소개시켜줄 꼬맹이고 있고 해서 왔다.”
“아! 새로운 제자 후보인가요?”
자신을 힐끗 본 후에 의아한 표정으로 라니우스 님께 말을 하는 티에르였다.
“너무 호리호리한게 딱 봐도 비리비리하게 생겼는데요?”
“하하하하하! 저렇게 보여도 꽤 독기가 있는 녀식이니 너무 걱정 말거라. 그나저나 도축장을 잠시 쓰도록 하자.”
“!!! 라니우스 님께서 직접 도축을 하시는 건가요?!? 가시죠!”
라니우스 님이 도축을 한다는 말에 놀라며 곧장 도축장으로 향하는 티에르였다.
“꼬맹이, 운 좋은 줄 알아. 라니우스 님께서 도축하는 것을 볼 수 있다는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도축하는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만큼 대단한 일인가? 산적 부두목이 초롱한 눈이라니…’
지하로 내려가니 불스의 고기들이 거대한 자태를 드러내며 매여있었다. 그 중에서 하나를 한 팔로 들어서 준비를 하는 라니우스 님이었다.
‘와 힘 봐… 어떻게 저걸 한 손으로 저렇게 가볍게 들 수 있냐.’
허리춤에서 작은 소도를 꺼내며 라니우스 님이 도축을 시작하려 하셨다.
“꼬맹이. 도축이라함은 생명을 거두고 피를 빼고 가죽을 제거하고 각 부위 별로 나누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다.”
말과 동시에 도축을 시작하셨다.
“생명을 거두는 행위에서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그저 살생에 미친행위이다. 도축을 하는 것은 먹고 입고 사용하기 위함이니. 그 선을 지키지 못하면 살귀가 될 뿐이다.”
그 이후로 말이 이어졌지만, 잘 들어오지 않았다. 도축을 하는 그 손길에 온 마음이 빼았겼기 때문이었다.
라니우스 님의 도축은 멈춤이 없었다. 아니, 고기와 뼈가 절로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막힘없이 흐르는 소도는 너무나 유려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그 소도가 추는 춤은 범의 마음을 빼았았다.
그리고 도축이 끝난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
도축이 끝나자 절로 탄식이 나오는 범이었다.
“당분간은 여기 와서 티에르에게 도축을 배우거라.”
“네! 잘 부탁드립니다 티에르 님.”
“후… 역시 라니우스 님의 도축은 볼 때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만 듭니다.”
“허허허 겸손하긴, 되었다. 그저 종종 보자꾸나. 그리고 범이는 내일부터 보내마.”
“예. 라니우스 님.”
*
라니우스 님을 따라 오두막을 향하는 내내 도축장에서의 라니우스 님의 도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진짜 유려했어 자연스럽고… 나보다도 더.’
자신의 재능을 개화시키고 난 후에는 누구보다 잘 벨 수 있다고 생각해 왔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오늘 그 생각이 변했다. 자신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경지를 보았다.
‘도축… 재능을 개화시키는데도 엄청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라니우스 님의 손길이 그것 같았는데…’
기본재능. 참 애증 어린 이 재능을 깊이 탐구하는 동안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게 된 후 자신은 미친듯이 성장했다.
‘개화 시키고 발아 단계를 눈앞에 두고 죽었지. 내가 멍청한 것이긴 했지만 개새끼들.’
오두막에 도착하자 자신을 두고 오두막에 들어갔다 나온 라니우스 님의 손에는 도가 하나 들려있었다.
도… 라고 하기보다 칼이라고 해야 하는 모양에 가까웠다. 다만 일반적인 칼의 크기가 아닌 거의 범 자신의 키와 같아 보이는 칼이었다.
“투박하지? 네가 상상하는 도(刀)와는 조금 다른 모양이지?”
‘오히려 전생에 썻던 것 보다 더 투박해 보이는데, 하긴. 난 저런게 차라리 낫지.’
“내가 생각하는 베기에 가장 이상적인 도는 칼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이만한 무기가 없지.”
“조금… 아니, 엄청 커요!”
‘이런 반응이려나? 쉽지 않네.’
“하하하. 그렇지. 제대로 베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되어야지! 나중에 네 손처럼 쓰게 된다면 베지 못 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제가 잘 다룰 수 있을까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까지 2주간 기본은 가르쳐 주마.”
“라니우스 님… 감사합니다!”
‘예스! 좋았어!’
“우선. 먼저 보여주도록 하마. 네가 도를 잡게 된다면 평생 익히고 수련해야 하는 기본 동작들이니 머리에 새기도록 하거라.”
도를 그저 들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도를 손에 쥐자 라니우스의 기세가 변했다.
라니우스라는 사람이 사라지고 하나의 도가 되어 날카롭게 예기를 발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끔 불꽃을 보며 매혹되듯이, 자신은 그 예기에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귓가에 라니우스 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를 쥐고 있으면 하나만 생각해라. 어떻게 벨 것인가.”
자세를 잡고 허공에 휘둘렀을 뿐인데 그 예기에 자신이 베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찌릿한 느낌이 꼬릿뼈에서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도는 잘 베면 된다. 그렇기 위해서는 언제나 기본자세가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말을 마치고 범에게 도와 허리띠를 건네주며 라니우스가 말을 이었다.
“자. 그럼 이제 해 봐라.”
라니우스의 말에 따라서 자세를 잡고 도를 빼어 들었다.
“도를 빼어 드니…”
“다시! 도를 빼어 든다고 하체가 흔들리면 안된다!”
“도를 빼어드니…”
“다시! 이번에는 상체가 너무 뻣뻣하다!”
“도를 빼…”
“다시!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도를…”
“다시! 하체는 단단하게, 상체는 여유롭게!”
지옥의 시작이었다. 그놈에 다시가 몇번이나 울려퍼지는지, 한 번의 베기를 시행하기까지 수십 번이나 도를 빼는 동작만 반복했다.
그리고 지쳐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까지 범은 단 두 번만을 성공할 수 있었다.
“흠 처음치고 나쁘지 않구나. 아침에 간단하게 뛰고 도축장에 다녀와서 계속 배우거라.”
“헉 헉… 네 라니우스 님. 감사합니다.”
‘지옥이다. 진짜 죽을 것 같다…’
기본 도식을 배우는 것이, 행하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도를 휘둘러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배운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혼자 수련한는 암담함이 아닌 옆에서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너무 든든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어느새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
이른 아침 신전을 나와 비천자의 거리에 있는 티에르 도축으로 향했다.
티에르 님을 따라 지하로 들어가니 중간중간 피비린내가 짙게 풍겼다.
‘오랜만에 맡는 것 같기는 한데, 썩은 내는 안 나네. 근데… 지하가 생각보다 큰데?’
여러 생각을 하면서 신기한 광경을 구경하듯이 티에르 님을 따라갔다.
작은 방에는 양이 이미 가죽이 벗겨진 채로 중앙에 고리로 걸려있었다.
“흠 그래도 싹은 보이는군.”
“감사합니다.”
‘뭐 이걸 가지고 토하고 난리 칠 단계는 15살에 지났지.’
“라니우스 님께서 부탁하셨어도, 네가 어리다고 해도 봐주는 건 전혀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허리 춤의 단도를 꺼내더니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셨다.
“도축에는 방혈, 박피, 도체, 골발, 정형 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설명과 함께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티에르 님의 단도.
‘와 엄청 직선적이다. 빠르고 간결하고… 대단하다.’
말을 하면서도 이어지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곤 어느새 소분(小分 : 작게 나눔)이 마친 고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와…”
오히려 라니우스 님의 도축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도축이었다. 라니우스 님의 도축은 이상과도 같았다면 티에르 님의 도축은 완벽해 보였다.
“네가 연습할 동물은 양이다. 지금 보여준 것처럼 하면 된다.”
“네?!”
“여기저기에 기부하는 것이긴 하지만,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작은 방인 줄 알았는데, 벽면을 밀자 냉기가 확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
몇 번이나 놀라는 건지. 하지만 지금 광경에 안 놀랄 수도 없었다.
‘저게 다 양이잖아…’
열린 벽면에는 한가득 박피(剝皮 : 껍질이나 가죽을 벗김)와 내장 제거가 된 양들이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몇 번의 시연 끝에 자신에게 할 일이 생겼다.
‘그러니까… 저기를 자르면 된다는 거지.’
고리에 걸린 양의 척추를 향해 받은 단도를 쥐고 가져다 대었다.
‘[절(切)]을 느끼면서 해 보자. 이런 기회에 빨리 개화시켜야지.’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의 재능이 기본재능이었다. 그 재능을 느끼고자 집중하며 칼을 가져 대었다.
“여길 봐라. 이렇게 자르면 못 쓰는 부위가 생기지 않나! 지금 네 돈이 아니라고 막하는 거냐!”
끝날 때마다 도축된 것의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는 티에르 님이었다.
‘저 얼굴로 저렇게 화를 내면… 진짜 심장 떨어지겠네. 통과 못 할 만도 하다. 강도도 빡센데…’
자신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오히려 하나하나 짚어주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20개체가 넘어가는 양에 칼을 대자 점점 몸이 지쳐오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체력이 딸리네… 근데 왜 감이…’
재능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었다. 한 자락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이걸 마지막으로 하고 마무리 하도록.”
‘이번에는 아닌가 보다… 어차피 첫날이니까.’
마음을 내려놓고 도축칼을 들고 양에게 다가갔다. 척추의 부근에 칼을 대는 그 순간.
살덩이가 매끈하게 잘려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