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본 재능으로 정점-3화 (3/217)

[3화]

쪽빛이라는 이름 말고는 생각할 수 없는 푸르른 색의 머리를 가진 아이. 순박한 눈망울에 아이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 누구야!!”

이미 생각해 놓았고, 마음의 준비도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눈앞에 다가오니 당황스러움이, 격동이 일어난다.

“마틴… 누구냐니. 이제 못 알아보는 거야?”

‘순진무구. 순진무구. 잘해야 해… 내 첫 단추니까.’

“거짓말하지 마! 내가 아는 범은 이렇지 않았어! 거기다가 오늘 아침에 수레도 끌었다며! 너 이상해…”

어린아이의 통찰력이란… 무섭게 정확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아니야. 그저. 시도하기도 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 원장님이 말해주셨잖아. 그분은 허투루 하는 것이 없다고, 난 우리 재능이 빛날 수 있다고 믿어.”

“우리 기본 재능이잖아! 아카데미는 안 가기로 했잖아!”

실제로 마틴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 형제, 전생(前生)에서는 그 약속을 뒤로한 채 마틴을 두고 말없이 나갔다.

‘성공해서 당당하게, 떳떳하게 돌아오려고 했지만… 뭐…’

그리고 그 선택은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는 큰 후회로 남았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서운해하는 마틴의 서운함을 받아주고 위로를 해주어도 별반 먹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이럴 땐 충격요법이지!’

“마틴. 내 기본 재능은 ‘절(切)’이야. 자르는데 도움을 주는 능력이야. 그래서 그때 내가 농부나 되어서 살겠다고 했던 거야. 우리도 할 수 있어.”

‘수확하는 대신 사람 목이나 수확하고 다녔지만… 그리고 기본 재능에 대해서 깨달은 것도 있고’

“범아…”

본래 재능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서약서를 먼저 사용하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재능을 여과 없이 말해주자 마틴의 표정이 변했다.

“후 알았어. 나도 다시 생각해 볼게. 근데 내 기본 재능은 ‘수(修)’야. 뭔지 잘 알지도 못하겠어… 이런 내가 할 수 있을까?”

‘?!?! 어쩐지 그 졸린 성경을 잘 본다 했더니. 마틴도 개화만 할 수 있으면… 아니 개화를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마틴! 너 사제를 지망해보는 건 어때? 그럼 굳이 아카데미를 가지 않아도 되고 네가 좋아하는 성경도 마음껏 읽고 공부할 수 있어!”

“사제? 내가 감히… 사제님이 될 수 있을까?”

마틴의 반응이 당연하긴 했다. 사제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특별하고 범접(犯接: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 접촉함)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해 보지도 않으면 알 수 없잖아? 그리고! 고아원에서 알려주실 분들도 많잖아!”

“내가…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럼. 할 수 있어. 그리고 넌 혼자가 아니잖아.”

점점 뚜렷하게 초점이 돌아오는 마틴의 눈이 보였다. 쪽빛 머리카락과 같이 푸르른 눈동자가 또랑또랑해지기 시작했다.

“근데… 기본 재능인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이걸 어떻게 말해 줘야 하지. 말해 줘도…’

“기본 재능이란 게 말이야 마치 심어진 씨앗 같은 건데…”

가뜩이나 초롱초롱했던 그 눈이 빛나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본래의 사람의 재능이라는 건, 발현이 기본적으로 되는 거잖아.”

“그렇지. 그래서 막막 땅도 움직이고 세상에 온갖 재능이 있다고 하는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기본 재능은 조금 다른 거 같아. 음… 뭐랄까 발현을 하기 위해서는 깨워야 하는 거라고나 할까.”

미틴에게 내가 느낀 변화를 설명해 주고 아침마다 함께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

이제는 둘이 수레를 끄는 것이 익숙해졌다. 한스 선생님은 이제 같이 걸어 주실 뿐 수레를 이끄는 것은 온전히 우리가 하는 일이 되었다.

“너희가 이 일을 하면서 후원을 해주시는 분이 늘었단다. 기특한 녀석들.”

칭찬을 받으면서 언제나 마지막으로 향하는 칸 님의 저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상하게 수레가 가득 차면 기분이 좋단 말이지.’

“칸 님!”

‘마틴은 칸 님을 이상하게 잘 따른단 말이야. 든든해서 좋다던가…’

“꼬맹이들. 오늘도 어김없이 나왔구나. 한 달 내내”

“안녕하세요 칸 님.”

“너희가 한 달 동안 나온 게 기특해서 선물을 하나 주려 한다.”

“선물이요?! 어떤 선물이요?”

선물이라는 말에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지는 마틴이었다.

‘하 아무리 노력해도 저런 건 잘 안 된단 말이지.’

“너희 점심에는 같이 훈련한다면서? 내가 도와주마. 원장님께는 말씀드렸으니, 앞으로 아침 일과가 끝나면 내 저택으로 오거라.”

“칸 님…”

마틴은 이미 감동받아 그렁그렁해 졌지만, 범은 순간 경계심이 들었다. 자신의 삶 속에서 배운 게 있다면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칸 님… 정말 감사한 제안이지만 너무 과분한 것 같습니다.”

“후 애 늙으니 꼬마. 너네의 성실함이 보답받았다고 생각해라. 나도 무료함을 달랠 수 있고, 어디까지나 너희가 하기에 따라서 훈련을 지속할지 안 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경계한 자신이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든 범이었다. 자신들은, 고아였다. 벗겨 먹을거리가 없었다.

한스 선생님을 흘깃 보니 선생님은 이미 알고 계신 듯 축하한다는 미소를 짓고 계셨다.

“죄송합니다, 칸 님…”

“아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니. 그럼 어서 가서 일과를 마치고 오도록 하렴.”

“감사합니다. 칸 님. 정말 열심히 할게요…”

조건 없는 호의를 받고 돌아가는 길은 신기했다. 전생과 다를 바 없는 같은 곳임에도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범아… 칸 님은 정말 좋으신 분 같아.”

“응 응 열심히 해야지.”

수레를 끌고 고아원에 도착한 뒤 평소보다 빠르게 자신들의 일과를 마친 둘은 다시 칸의 저택으로 향했다.

해가 밝은 후 보는 칸의 저택은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보았던 저택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거대했다.

“범 님과 마틴 님이십니까?”

저택 앞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들을 맞이하러 나와 있었다.

“네 누구…세요…?”

“칸 님의 사용인 세빌이라고 합니다. 들어오시죠.”

저택은 컸다. 그것도 매우. 항상 정문과 담장만 보다가 막상 들어가니 길게 뻗은 길을 따라 거대한 저택이 보였다.

자신들의 사는 고아원의 예배당을 합쳐서까지 두 배는 됨직한 저택. 처음 보는 화려한 외양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되는 두 소년이었다.

‘…전생에조차 이런 저택에 들어와 본 적은 없는데’

세빌을 따라 저택을 가로질러 나오자 연무장이 보였다. 그리고 칸이 보였다. 평소보다 더 거대해 보이는 칸이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칸 님.”

“그래. 수고했네.”

고개를 숙이고 떠난 세빌. 저택의 위용인지 자신도 모르게 굳어있었다.

“그리도 대찬 꼬맹이들이 왜 이렇게 굳어있어!”

“안녕하세요 칸 님”

“그래. 오늘은 첫날이니까. 너희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 볼까? 그럼 연무장을 뛰도록 하자.”

“얼마나요?”

“쓰러질 때까지.”

말이 끝나자마자 뛰는 칸이었다. 그리고 두 소년도 허겁지겁 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칸의 배려인지 뛰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두 바퀴가 되고 세 바퀴가 되었을 때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다섯 바퀴에서 마틴은 쓰러졌다.

여섯 바퀴가 되었을 무렵 포기하고 싶었다. 폐는 찢어지는 것 같았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끝까지 한 번 뛰어보자. 죽는다 생각하고.’

순간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천근 같았던 몸이 깃털처럼 느껴졌다. 죽을 것 같은 순간이 너무 상쾌했다.

바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이 순간이 너무 즐거웠다.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순간 땅이 가까이 다가왔고, 그렇게 쓰러지고 말았다.

“호흡을 바로 하려고 하려무나. 깊게 숨을 쉬어. 배로 쉰다고 생각하면서. 다음부터는 이렇게 무리하지 말거라.”

“범아!! 너 진짜 대단하다!! 너 열 바퀴가 넘게 뛰었어!”

‘내가 그렇게 많이 뛰었다고?!’

숨이 너무 차 대답할 수 없는 범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이 뛰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 경험한 그 신기한 현상 덕에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독하기만 하게 하면 안 된다. 그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야.”

“네… 그런데 칸 님. 뛰는 와중에 갑자기 너무 기분이 좋아지고 달리는 게 쉬워졌어요. 그리고 제가 뛴 것인지도 몰랐어요.”

“허… 무아를…”

“네?”

“꼬맹이. 네가 경험한게 무아(無我)라 말하는 것이다. 아마 네 나이에 무아를 경험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대단하구나.”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그렇게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고 싶었던 무아를 달리면서 경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가 무아를 겪었다는 말씀이신가요?”

“하 꼬맹이가 무아가 무엇인지도 안다 이건가… 생각 이상으로 재밌는 꼬맹이였군. 재밌겠어. 다 쉬었으면 밥부터 먹으러 가자!”

후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마틴의 도움을 받아 오는 내내 “대단해!” 를 몇 번이나 들은 건지 세지 못할 정도였다.

칸 님을 따라 도착한 식당은 절로 탄성이 나왔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빛을 발하고 있었고 식탁에는 여러 가지 채소들이 있었다.

“앉아라. 항상 혼자 먹다 사람이 있으니 좋구만. 안 그래 세빌?”

어느새 식당에는 세빌이 들어와 있었다. 주변을 구경하기 바빠서인지 세빌이 언제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했다.

“칸 님. 제가 어찌 칸 님과 같이 식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곧 음식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에휴… 고집도 정말… 너희는 앞으로 나와 함께 점심과 저녁을 먹을 것이다.”

“저희가요?”

“그래. 훈련하는 것만큼이나 쉬는 것과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먹는 것도 훈련이라고 생각하면서 남기지 말고 다 먹도록.”

이내 세빌이 접시를 가지고 와서 각자의 앞에 놓아주었다. 놀랍게도 접시에는 고기가 노릇노릇 익을 상태로 올려져 있었다.

“이건?”

“너희가 앞으로 먹을 고기는 불스다. 음 건강에 좋은 음식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불스 고기는 비싸다고…”

“꼬맹이 아는 게 많구나? 그래 봐야 얼마 안 하니 부담가지지 말도록. 먹는 것도 훈련이라 말했지 않니.”

“칸 님… 잘 먹겠습니다!”

생각 없이 그저 맛있게 먹는 마틴이었다. 칸 님이 정말로 감사했다.

용병으로 구르던 시절 전장에서 공을 세워야만 먹을 수 있던 고기가 불스 고기였다.

보양식으로 유명했던 만큼 그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는데, 자신들에게 이렇게 베풀어주는 칸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다 다짐하며 고기를 씹어 갔다.

불스 고기는 맛있었다. 씹는 순간 느껴지는 진한 육향이 입안에 가득했다. 이빨과 닿는 순간 부드럽게 씹히는 고기.

입이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자신이 전장에서 포상으로 받았던 고기보다 훨씬 질이 좋은 고기인 것 같았다.

정말 행복한 점심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다시 나온 연무장에는 자신의 몸보다 조금 더 큰 통나무가 있었다.

“너희는 체력 훈련뿐만 아니라 나에게 한 가지 무술을 배울 것이다.”

“무술이요?!”

“저희가요?!”

“그래. 수호 용병이라면 모두가 배우는 무술을 배울 것이다. 기본이지만,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한 법이다. 무술의 이름은 수호 유술이다. 맨손으로 전투를 해야 할 때를 대비해서 배우는 무술이지.”

‘수호 용병의 무술이라니! 정말…’

“일단. 너희가 배울 유술에 대해서 설명하기에 앞서 보여주마.”

연무장의 중앙으로 나서자, 칸 님의 기세가 일변했다. 마치 산을 바라보는 듯 진중한 기세가 퍼졌다.

“수호 유술 1식. 나의 거리로 들어오는 것을 쳐낸다.

수호 유술 2식. 상대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수호 유술 3식. 상대의 힘에 내 힘을 더해 상대를 돌려세운다.

수호 유술 4식. 힘을 거스르지 않고 상대의 힘으로 벗어난다.

수호 유술 5식. 상대의 힘으로 급소를 가격한다.

수호 유술 6식. 나의 거리 안의 힘은 모두 나의 힘이니

수호 유술 7식. 모든 힘으로 상대를 땅에 내리치다.

수호 유술 8식. 나를 해하려는 힘은 나를 해할 수 없음이오, 나의 힘이니. 이것이 호신이라.”

고요한 가운데 힘이 넘치는 칸 님의 시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런 무술을 자신이 배운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8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수호 유술이다. 기본자세를 몸에 새겨 놔야 상황에 맞게 사용할 수 있으니, 기본자세를 체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칸 님께서 자신들의 앞에 통나무를 하나씩 가져다주셨다.

“자. 기본자세를 이 통나무로 연습하면 된다. 자! 그럼 가볍게 연무장을 두 바퀴 뛰어 볼까?”

조금이라도 빨리 유술을 배우고 싶었건만, 결국 칸을 따라 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날 해가 지기 전까지 연무장에 칸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침대에 쓰러졌다.

한스 선생님이 사제가 되기 위해 순례길에 오르셨기에, 그 방을 원장님의 배려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침대에 누운 둘이었다.

“범아자?”

“아니 아직. 왜?”

“어… 고맙다구..”

“뭐야 징그럽게. 자 빨리”

“아니 네 덕에 칸 님에게 무술도 배우고, 사제를 꿈꾸는 지금이 사실 너무 꿈만 같아. 그래서 깰까 무섭고 그래. 그래도… 그래도 너무 고마워 범아. 내 재능으로도 꿈을 꿀 수 있다고 해줘서, 같이 해줘서 고마워…쿠울….”

“아니야 오히려 내가 고마워 해야 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네가 알려 준 거니까… 고맙다 마틴.”

그렇게 서로가 한 발 내딛는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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