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155화 (에필로그) (155/155)

에필로그

월드 시리즈 MVP는 유현이 선정됐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1차전 승리투수, 4차전 7이닝 세이브, 그리고 5차전 22탈삼진 노히트노런까지 더해지며 압도적인 피칭을 보여 줬으니 말이다.

놀란 아레나도의 활약 또한 대단했지만 2승 1세이브를 기록한데다 5차전에서의 임펙트가 엄청났던 유현이 더 많은 지지를 받았다.

2020시즌.

결국 유현은 월드 시리즈 우승과 월드 시리즈 MVP라는 영애를 동시에 안은 채 시즌을 끝마치게 됐다.

그리고 며칠 뒤.

유현과 알리사 메켄이 덴버 외곽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알리사 메켄의 가족들과 지인들만을 초대해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결혼식을 치를 예정이긴 했지만, 알리사 메켄을 위해 미국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거였다.

결혼식에 참여한 강태영은 유현에게 다가가 진심 어린 투정을 부렸다.

“축의금 두 번 내야 하는 거야?”

“두 번 내고 싶다면 굳이 사양하진 않을게.”

“나보다 돈 많이 버는 월드 시리즈 MVP님께 줄 축의금 같은 거 없다.”

“월드 시리즈 MVP로 얼마나 우려먹으려고 그러냐. 벌써 지겨운 느낌인데.”

“내년까지? 아, 맞다. 우리 단장이 너 데리고 오려면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더라.”

“그래? 우리 단장도 너 데려와서 슈퍼 클린업 트리오 만들려면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던데.”

“나쁜 놈. 절대 한 마디를 안 져요. 결혼 축하한다. 너 닮은 아들딸 절대 낳지 마라. 무조건 재수씨 닮아야 된다.”

월드 시리즈가 끝난 이후.

강태영은 유현이 월드 시리즈 MVP를 받은 걸 가지고 계속해서 부럽다고 난리를 쳤다.

물론 반쯤은 장난이었다.

유현은 월드 시리즈에서 최고의 피칭을 보여 줬고 콜로라도 로키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혁혁한 기여를 했다. 그로 인해 보스턴 레드삭스가 우승하지 못한 게 아쉽다 보니 장난을 치는 거였다.

유현은 강태영의 장난을 기분 좋게 받아줬다.

승패가 갈리긴 했지만 강태영은 월드 시리즈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줬고, 야구선수를 그만두더라도 평생 함께하고 싶을 만큼 좋은 친구였으니까.

약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한 분위기 속에 결혼식이 진행됐다.

심사숙고해서 고른 반지를 알리사 메켄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유현이 속삭였다.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요. 싸우기도 할 거고 힘든 일도 있을 테지만, 한 가지는 약속할게요. 절대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을 거예요.”

며칠 후.

유현이 만장일치로 1위 표를 싹쓸이하며 사이영 상 수상을 확정짓고, 압도적인 차이로 내셔널리그 MVP까지 독차지한 날.

유현은 알리사 메켄과 함께 대한민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머리 위에는 봉식이를 올려 둔 채로 말이다.

* * *

-그토록 바라던 사이영 상을 받게 된 기분이 어때?

‘솔직히…….’

-별 감흥 없지?

‘어. 예상하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무덤덤하네. MVP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좋게 생각해라. 그만큼 네가 2020시즌에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는 뜻이니까.

유현을 만난 이후, 봉식이는 틈만 나면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사이영 상을 받아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현은 자신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사이영 상은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다.

메이저리그를 가시권에 두게 된 건 2019시즌부터였다. KBO리그를 지배하는 피칭을 하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내 공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고 막상 사이영 상을 받게 되자…….

예상과 달리 큰 감흥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뿌듯함과, 내년에도 그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을 동시에 느낀 정도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유현에게 온갖 방송과 광고 섭외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하지만.

유현은 대부분의 일정을 메켄 코퍼레이션을 통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 대신 펠컨스타디움으로 향했다.

근 1년여 만에 다시 만나는 전 동료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했고, 모교를 방문해서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적절한 조언과 선물을 주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방송 출연?

나쁘진 않지만 좋을 것도 없었다.

지금의 유현에게 필요한 건 비시즌 동안의 휴식이었고, 알리사 메켄과 온전히 함께 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였으니까 말이다.

12월 초.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이틀 앞두고 유현과 알리사 메켄이 한국에서 한 번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은 따로 떠나지 않았다.

유현은 어디든 좋으니 신혼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알리사 메켄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자기한테 필요한 건 신혼여행이 아니라 충분한 휴식이에요. 푹 쉬면서 컨디션 관리 해야지 다음 시즌에도 사이영 상 받죠.”

“전 최대한 빨리 은퇴하고 싶은데, 언제쯤 은퇴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10년 연속 사이영 상 받고 명예의 전당 입성 확정 짓은 다음에 생각하는 게 어때요?”

“끄응. 아직 한참 멀었네요.”

“가족과 함께 하는 건 은퇴 이후에 즐겨도 충분하잖아요. 시즌 중에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요. 난 자기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어 줬으면 좋겠어요.”

“10년 연속이라…… 그래요. 한번 해 보죠.”

10년 연속 사이영 상.

그 어떤 투수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고, 유현 또한 자신이 이룰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자신의 기량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자신이 메이저리그에서 어느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진심으로 궁금했다.

봉식이가 남긴 유산이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12월 중순.

한국에서의 휴식과 일정을 모두 마친 유현이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마침내 봉식이와의 작별이 다가왔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내년에도 사이영 상 받아서 돌아올 테니까 펠컨스타디움 더그아웃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누가 보면 평생 못 보는 줄 알겠네. 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거라니까? 스칼렛 씨 보고 싶어서라도 돌아갈 거야.

‘한 10년 걸릴 거라며.’

-10년 연속 사이영 상 받고 나서 기량 떨어져 가지고 은퇴할 즈음에 다시 나 만나서 기량 회복하고 말년에 펄펄 날아다니면 되겠네.

마지막 순간까지 봉식이는 봉식이였다.

3년 동안 함께 한 유현과의 이별에 크게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다시 만날 거라며, 그때까지 잘하고 있으라 말했다.

유현은 봉식이를 펠컨스타디움에 데려다준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유현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 *

미국으로 돌아온 유현은 메켄 코퍼레이션에서 차분하게 몸 상태를 끌어올렸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몸 상태를 만들고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유현은 훈련에 집중했다.

함께 훈련을 하는 강태영마저도 유현의 집중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넌 어떻게 훈련하는 내내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이지를 않냐.”

“내년에도 사이영 상 받으려면 노력해야지. 월드 시리즈 우승도 해야 하고.”

“월드 시리즈 우승은 레드삭스가 하면 안 될까? 로키스 한 번, 레드삭스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것도 좋잖아.”

“아냐. 그냥 나 혼자 다 해먹고 싶어.”

“에이, 나쁜 놈. 그러지 말고 레드삭스 오라니까. 우리 단장이 5억 달러 주고서라도 너 데려왔어야 한다고 난리더라.”

“이젠 10억 달러 줘도 우리 단장이 날 안 팔 것 같지 않아?”

“젠장. 그러니까 영입하라고 할 때 영입하지. 사치세고 나발이고 로키스보다 연봉 2배로 준다 하고 데려왔음 얼마나 좋아.”

“크흐흐. 그럼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월드 시리즈에서 맞대결을 했고 승패가 갈렸음에도 강태영과 유현은 여전히 좋은 친구였다.

강태영은 여전히 유현에게 농담을 건네고 장난을 쳤고, 유현은 무덤덤하게 그런 강태영의 장난을 모두 다 받아줬다.

유현은 강태영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강태영과 훈련하고 있을 때만큼은 봉식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집에 돌아가면 알리사 메켄이 있어서 괜찮았다.

문제는 강태영도 알리사 메켄도 없는 시간이었다. 비어 있는 시간마다 유현은 3년 동안 늘 붙어있었던 봉식이의 빈자리를 확실하게 느꼈다.

봉식이 대신에 스칼렛이 머리 위에 올라탔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스칼렛 또한 야구 지식이 해박하고 땅의 정령이긴 하지만 봉식이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불가능했다.

어느 날.

유현이 스칼렛에게 물었다.

‘봉식이 없어서 허전하지 않아?’

-허전하긴 하지만 괜찮습니다. 10년 안에 돌아올 테니까요.

‘난 그 안에 스트레스 받아서 탈모 올 거 같은데.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까 너무 허전하네.’

-저희에게는 10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서 괜찮습니다.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돌아오면 평생 붙어 있을 겁니다.

‘호오. 언제 관계가 그렇게 진척됐어?’

-유현 씨가 없을 때마다 죽어라 작업을 거는 거에 홀라당 넘어갔습니다.

스칼렛과 대화를 나누면서 유현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봉식이가 스칼렛을 보기 위해서라도 예정보다 빨리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어느새 스프링 트레이닝 합류를 앞두게 된 시점에서, 유현은 더 이상 봉식이에 대해 그리워하지 않게 됐다.

가끔씩 봉식이가 생각나긴 했지만 이전처럼 짙은 허전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봉식이를 떠올릴 때마다 목표를 떠올리는 것으로 허전함을 달랬다. 봉식이가 돌아왔을 때,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걸 보여 주자는 다짐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더 이상 부상을 막아 주고 체력 관리를 수월하게 만들어 주던 축복이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봉식이가 가르쳐 준 훈련법은 3년 사이 유현의 몸에 확실하게 각인됐고, 유현을 이전과 전혀 다른 선수로 만들어줬으니까.

철저하게 관리하에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간다면 10년 연속 사이영 상까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스프링 트레이닝 합류 전.

유현은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불펜에서 홀로 몸을 풀었다.

팡! 팡! 팡!

포심 패스트볼이 그물망에 시원사원하게 박혔다. 스피드건에 기록된 구속이 조금씩 올라갔고, 마침내 95마일까지 올라갔다.

베스트는 아니지만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컨디션은 좋았다.

오히려 오버 페이스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제부터는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개막전에 맞춰 베스트 컨디션을 완성하는 게 관건이었다.

-이야. 몸 상태 좋은데? 잘하면 100마일을 원할 때 자유자재로 던질 수도 있겠어.

‘어. 몸 상태를 조금 더 끌어올리고 투구 폼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면 많이는 아니지만 주요 순간에는 100마일을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아…… 잠깐.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던 유현이 경기를 일으키며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한 손에 뭉클하게 느껴지는 햄스터의 감촉을 느끼며 유현이 진심으로 당혹감을 드러냈다.

10년 정도 걸릴 거라던 봉식이가 고작 2달도 안 돼서 미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유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떻게 된 거야?’

-요즘 시대가 좋아져서 원격으로도 관리가 가능하더라고. 배우는 게 조금 귀찮긴 했지만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돌아올 수 있었어. 스칼렛 씨가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나는 안 보고 싶었어?’

-남자한테 관심 없다. 뭐…… 그래도 두어 달 만에 보니까 반갑긴 하네. 옛다, 선물. 오다 주웠으니까 쓰든가 말든가.

[앞으로 10년 동안 땅의 정령님의 축복이 부여됩니다! 부상 확률이 현저히 감소합니다! 체력 회복 속도가 2배로 증가합니다! 땅볼 확률이 2배로 증가합니다!]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유현의 입꼬리가 실실 올라갔다.

3년 전.

봉식이로부터 받았던 축복을 기간을 대폭 늘려서 다시 한 번 받게 됐다.

‘선물이 어째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다?’

-3년 전 떠오르고 좋지? 앞으로 딱 10년만 메이저리그에서 더 해먹고 은퇴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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