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 볼러-150화 (150/155)

150화 월드 시리즈 (2)

-드디어 강태영 타석이다!

-누가 이길 거 같음?

-유현이 이기지 않으려나.

-ㄴㄴ 님들 강태영 무시함? 강태영 아메리칸리그 MVP 후보임.

-근데 유현은 0점대 방어율임. 사이영 상은 후보가 아니라 확정이라 봐야 하고.

-강태영이 못하는 건 아닌데 유현이 너무 잘해서, 솔직히 유현이 이길 거 같음.

-강태영이 아무리 잘하면 뭐함. 일단 타구를 띄워야 장타를 노려볼 텐데, 유현 상대로 내야를 벗어난 타구를 만들어 내기가 어디 쉬운가.

-제일 좋은 건 유현이 승리투수 되고 강태영이 홈런 하나 정도 치는 거라고 본다.

한국인 투수와 한국인 타자가 월드 시리즈에서 맞붙는다는 사실에 많은 대한민국 야구팬들이 아침부터 일찌감치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심지어 두 선수 모두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서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데뷔 첫 시즌 신인왕과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했던 강태영은,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해서는 더 무서운 타자로 진화했다.

타격 폼의 교정으로 장타력이 살짝 죽긴 했지만 그 대신 컨텍트와 선구안이 한층 좋아졌고, 정타가 많이 나오다 보니 장타력이 예상한 것보다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타율 3할 5푼 8리, 출루율 4할 3푼 3리, 장타율 6할 5리, 41홈런 157타점 134득점 45도루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타선이 전체적으로 장타율이 높긴 했지만, 그 중심에는 단연 정교한 타격과 힘을 함께 갖춘 강태영이 있었다.

사실상 아메리칸리그 MVP는 강태영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2020시즌의 임팩트는 엄청났다.

그리고 유현의 성적은 엄청난 걸 뛰어넘어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247이닝을 투구하며 28승 1패 235탈삼진 방어율 0.55를 기록했다. 어쩌면 메이저리그가 사라질 때까지 다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20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가 0점대 방어율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거기에 노히트 게임과 퍼펙트게임도 정규 시즌에 각각 한 차례씩 달성했다.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은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무려 아메리칸리그 MVP 유력 후보와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내정자의 맞대결이다.

대단한 기록을 세운 두 선수가 모두 대한민국 국적이라는 사실에, 대한민국 야구팬들은 자부심을 느끼고 자국에서 월드 시리즈를 치르는 것처럼 엄청난 관심을 보였다.

새벽 6시부터 시작하는 인터넷 생중계 동시 접속자 수가 60만 명이 넘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야구팬들의 관심은 하나였다.

유현과 강태영.

둘 중 누가 마지막 순간 웃게 될까?

콜로라도 로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중 월드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건 한 팀이다. 다시 말해 유현과 강태영 둘 중 한 명만이 우승 반지를 손가락에 끼울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 야구팬들의 의견은 미국 현지에서 예상하는 것만큼이나 엇갈렸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압도적인 선발진이 마운드 높이 차이를 실감하게 만들어준다면 콜로라도 로키스가 우승할 테고, 최강 타선이 맹타를 휘두르면 보스턴 레드삭스가 우승할 거라는 것이다.

1회 초 2아웃 상황.

3번 타자인 강태영이 타석에 들어서자 인터넷 중계창 댓글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와 타자가 최고의 무대인 월드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맞대결을 하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유현은 초구로 스플리터를 선택했다.

강태영은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다섯 번째 타석까지만 하더라도 부진했지만, 이후 맹타를 휘두르며 결국 챔피언십 시리즈 MVP가 됐다.

유현의 입장에서도 강태영을 상대로는 조심스럽게 피칭을 할 필요가 있었다. 실투가 나오는 순간 강태영은 그대로 담장을 넘겨 버릴 만큼 좋은 타격감을 유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강태영은 유현의 초구 스플리터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스윙을 참은 게 아니라, 스플리터가 들어올 거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이 아예 스윙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다시 던져도 반응을 안 하려나?’

유현과 마크 번칠은 2구 또한 스플리터를 선택했다. 또다시 스플리터를 던졌을 때 강태영이 반응할까 반응하지 않을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스트라이크!”

2구째 스플리터에는 배트가 따라 나왔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커터를 예상했는지 강태영의 배트가 크게 헛돌았다.

유현과 마크 번칠이 예상한 대로였다.

강태영이 초구 스플리터에 반응하지 않은 건 스윙할 생각이 없어서였고, 2구째에 다시 스플리터가 들어오자 크게 헛스윙을 하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덕분에 유현과 마크 번칠은 확신했다.

제아무리 강태영이라 하더라도 오늘 유현의 스플리터에는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 거라고 말이다.

그 정도로 오늘 유현의 스플리터는 좋았다.

‘다음은…….’

3구째.

유현은 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3구째로 강태영을 잡아내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딱!

강태영이 몸쪽으로 깊게 타고든 투심 패스트볼을 받아쳤다. 배트 안쪽을 맞았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스윙을 했다.

투심 패스트볼은 문제없기 구사됐다.

구위와 무브먼트 모두 좋았고, 제구 또한 몸쪽 보더라인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만큼 적절했다.

그럼에도 타구는 중견수 정면으로 날아가 아웃 처리됐다. 제대로 구사된 투심 패스트볼에 제대로 힘을 실어 내야를 넘겨 버린 거였다.

‘제대로 구사된 걸 내야를 넘길 정도면, 실투는 큰 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부터 달아 오른 타격감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강태영이라고 해서 항상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었다.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막바지까지의 타격 부진에서 알 수 있듯, 그 역시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난조를 겪곤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강태영의 컨디션은 베스트였다.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막바지부터 달아오른 타격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몸쪽으로 제대로 파고든 96마일짜리 투심 패스트볼에 힘을 실어서 내야를 훌쩍 넘긴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유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재밌네.’

스플리터와 투심 패스트볼.

오늘 경기에서 베스트라고 생각되는 두 구종을 이용해 강태영과의 탐색전에서 이겼다.

다음 타석에선 어떻게 승부해야 할까?

전신의 털이 모두 쭈뼛 설 정도로 긴장과 흥분이 동시에 됐다. 강태영을 잡아낼 생각에 벌써부터 심장이 요동쳤다.

* * *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유현은 자신이 보여 줄 수 있는 대부분을 보여 줬다.

구사할 수 있는 구종을 모두 적절하게 이용했고, 상대 타자의 성향에 따라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했으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맞춰 잡는 피칭을 통해 투구 수를 아껴 4차전 오프너의 발판을 마련하는 영리함까지 보여 줬다.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함에 있어 사실 별다른 전략을 준비하지 않은 건, 하던 대로만 해도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선을 막아 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고, 실제로 인터리그에서 맛보기로 보여 주지 않았던가.

유현이 가장 주의한 건 강태영의 앞에서 주자를 쌓지 않는 거였다.

‘타격감을 죽여 놓는 게 좋겠지.’

강태영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재능이 KBO리그에서 담아 내지 못할 정도로 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강태영의 타격 스타일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강태영은 분위기를 타는 타자다.

달아오를 때는 그 누구보다 화끈하게 달아오르지만, 가라앉을 때는 마이너리그 타자들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가라앉는다.

타고난 성격으로 인해 달아오르는 날이 가라앉는 날보다 월등히 많았고, 이는 곧 큰 슬럼프 없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됐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타자라고 해도 슬럼프가 없는 건 불가능하다. 슬럼프를 얼마나 빨리 극복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슬럼프는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타자라 해도 컨디션이 좋은 투수의 공을 공략하지 못했을 때, 조급함을 느끼면서 예기치 못하게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한다.

월드 시리즈 1차전.

유현의 컨디션은 좋았다.

제아무리 강태영이라 하더라도 아웃카운트를 잡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을 가질 정도였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유현을 상대로 굳이 우타자 일색의 라인업을 가져가지 않았다. 좌타자와 우타자를 적절하게 섞은, 오로지 타자들의 컨디션을 중심으로 타선을 꾸렸다.

우타자 일색으로 라인업을 꾸려 봐야 유현을 공략하기 힘들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타자 일색 라인업이 통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최근 컨디션에 중점을 주는 게 나을 거라 봤고, 실제로 우타자 일색 라인업보다는 유현에게 더 많은 안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결국에는 좌타와 우타가 중요한 게 아니라 타자들의 컨디션이 중요하다고 봤다.

나쁘지 않는 판단이었다. 좌우놀이를 고집하는 것보단 현명한 판단이었다.

문제는…….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유현의 컨디션이 보스턴 레드삭스의 타자들을 압도할 정도로 좋다는 거였다.

유현의 투구 패턴은 단순했다.

우타자를 상대로는 스플리터를 결정구로 삼진을 잡아내려 했고, 좌타자를 상대로는 투심 패스볼을 결정구로 땅볼 유도를 했다. 거기에 하이 패스트볼과 커터와 싱커성 투심 패스트볼을 적절히 섞어 던지며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했다.

누가 보더라도 결정구는 스플리터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두 구종의 구위가 너무 좋았다.

문제는…….

예상한 타이밍에 스플리터와 투심 패스트볼이 아닌 다른 구종을 찔러 넣는다는 거였다.

유현과 마크 번칠이 월드 시리즈를 기다리며 철저하게 준비한 볼 배합이 보스턴 레드삭스 타자들의 머릿속을 농락했다.

그사이 콜로라도 로키스 타선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에이스 크리스 세일에게 7회까지 2점을 만들어 냈고, 크리스 세일이 마운드에서 내려가자마자 8회 말 빅 이닝을 만드는 데에 성공하며 추가로 4득점을 만들어 냈다.

스코어는 0대6.

유현이 선발투수라는 걸 감안했을 때 사실상 승부가 기울어진 상황.

그럼에도 9회 초 선두타자로 타석에 선 강태영은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딱!

그리고 마침내 강태영이 해냈다.

몸쪽으로 날카롭게 파고든 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결국 홈런을 만들었다.

유현이 유도한 건 보더라인으로 확실하게 걸치는 거였는데, 워낙 제구가 어려운 구종이다 보니 공 한 개 정도가 가운데로 쏠렸다.

제구가 괜찮게 된 편이라고 봐야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고, 그걸 놓치지 않고 강태영이 홈런을 만들어 낸 거였다.

“쉽지 않겠는데?”

유현이 원하는 건 강태영의 타격감을 죽여 놓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강태영은 팀의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 데에도 능한 타자다. 자신의 손끝으로 만든 결과물로 더그아웃을 고무시킬 줄 아는 남자였다.

그래서 타격감을 죽여 놔서 분위기를 끌어 올릴 계기 자체를 없애 버리고 싶었는데…….

유현이 슬쩍 보스턴 레드삭스의 더그아웃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1대6으로 패배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발투수를 공략하지 못해 패배가 유력함에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이기기라도 한 것처럼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유현에게 1득점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도 홈런을 기록했다는 사실에 고무됐다.

유현은 직감했다.

월드 시리즈는 챔피언십 시리즈처럼 4대0으로 완승을 거두긴 어려울 거라고 말이다.

‘내일까지만 이기고 보스턴으로 넘어가면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일 것 같은데…….’

강태영의 홈런에도 불구하고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현이 이후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자신의 손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9이닝 3피안타 1피홈런 무사사구 11탈삼진 1실점 완투승을 거뒀음에도, 인터뷰에 임하는 유현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유현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2차전에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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